유치한 녀석
오늘 작업을 함께 하는 녀석과 크게 싸웠다. 처음 녀석과 같은 조가 되었을 때는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좀 거만한 편이기는 했지만 세련된 감각과 손재주로 설계 시간만큼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던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 녀석이 내가 열심히 고민한 설계안을 다 듣고 나서 한마디를 던졌다. “유치한 녀석.”
내 설계에 직설적인 디자인 모티브가 많은 것은 인정한다. 고래 분수, 코끼리 놀이터, 꽃무늬 포장.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복잡한 설계 이론은 잘 모른다. 최신 외국 사례를 열심히 들여다본 적도 없다. 하지만 좋은 디자인이라고 해서 꼭 유럽에서 건너온 듯 세련되어야 하고 어려운 개념을 통해서 설명되어야 하는 걸까? 나는 좋은 설계란 여든이 넘으신 우리 할머니도 쉽게 이해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일까? 아니면 그 녀석의 비아냥거림처럼 그냥 내 설계 능력이 유치한 수준인 걸까
라스베이거스의 교훈
1968년 가을, 벤츄리Robert Venturi는 학교 스튜디오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라스베이거스Las Vegas로 향한다. 이후 수업의 결과는 책으로 출판되어 건축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당시 라스베이거스는 건축적으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도시였다. 학계는 물론이고 건축가들도 모두 라스베이거스를 상업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유치함과 천박함의 표상으로 여겼다. 벤츄리는 가난한 욕망을 위한 잡동사니의 총체인 라스베이거스에서 어떠한 교훈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다음은 벤츄리의 말이다.
“하나는 비너스 동상 옆의 에이비스Avis1 상표,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 신전 모양 지붕 아래 있는 쉘Shell 주유소 간판과 잭 베니Jack Benny2 사진, 혹은 수백억짜리 카지노 옆의 주유소. 이들은 내포의 건축Architecture of Inclusion이 선사한 생기를 보여주며, 우아함과 총체적인 디자인에 과도하게 사로잡힌 무기력함과 대비된다(그림1).”3 벤츄리는 라스베이거스를 통해서 당시 건축계를 지배하고 있던 모더니즘 건축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모더니즘 건축의 업적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모더니즘은 19세기 말 대량 생산을 바탕으로 한 기성 자본주의 문화에 기반을 두고 형성되었다. 20세기 중반, 바야흐로 대량 생산의 시대는 가고 대량 소비를 지향하는 후기자본주의가 도래했다. 그런데 여전히 모더니즘은 시대적 흐름과 괴리된 채 50년 전의 주장만을 되풀이한다. 현대 예술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몬드리안, 칸딘스키로 대표되는 추상과 아방가르드의 시대는 오래전에 막을 내리고 앤디 워홀Andy Warhol, 로이 리헨슈타인Roy Lichtenstein과 같은 작가가 새로운 양식의 예술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 건축의 방향을 제대로 지시하고 있는 대상은 모더니즘의 후예들이 이끌고 있는 엘리트 건축이 아니라 라스베이거스의 잡동사니인 것이다.
그렇다고 벤츄리가 현대 건축이 라스베이거스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교훈은 지침이 될 만한 가르침일 뿐 정답은 아니다. 벤츄리는 ‘추하고 평범한 건축Ugly and Ordinary Architecture’이라는 비평문에서 당대 최고의 모더니스트였던 루돌프Paul Rudolph의 ‘크로포드 매너Crawford Manor’와 자신이 설계한 ‘길드 하우스Guild House’를 비교한다.4 그는 크로포드 매너를 영웅적이고 독창적Heroic and Original이라고 추켜세움과 동시에 길드 하우스를 추하고 평범하다고 깎아내린다.5 얼핏 들으면 선배에 대한 살신성인의 각오를 동반한 아부처럼 들리지만 이 칭찬과 비판은 곧 역전된다.
모더니즘 건축은 ‘Less is more’라는 유명한 모토처럼 모든 장식을 건축에서 배제한 기능적인 미학을 추구했다. 20세기 초 모더니스트들은 자신들이 과거의 모든 건축 양식을 파기했고 새로운 건축을 추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벤츄리는 이것이 대단한 착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상 그들도 당시 교량이나 구조물에서 나타난 산업시대의 양식을 모방했으며 그들이 모델로 삼은 기능적 구조물에서조차 장식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벤츄리는 구차한 장식 없이 구조적인 완결성을 구현한 듯 보이는 크로포드 매너의 외관이 가식임을 밝힌다. 영웅적인 독창성은 이미지에 불과할 뿐 실제 크로포드 매너에서 사용된 공법과 구조는 고전적이고 평범하다. 결국 크로포드 매너는 스스로 아방가르드 건축처럼 보이기 위한 장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그림2). 반면 길드 하우스는 의도적으로 건축에 장식을 다시 도입한다. 길드 하우스에서는 일상적으로 늘 마주치는 건축적 요소들을 볼 수 있다. 동네 대부분의 건물들처럼 벽돌로 만들어진 길드 하우스는 얼핏 보기에 별다른 특징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건물은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일상적인 건축적 요소들이 모두 의도적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길드 하우스의 이름이 새겨진 간판은 과도하게 거대하다. 정면의 황금색 안테나는 조각품과 흡사하게 디자인되었다. 창틀 역시 기성 제품처럼 보이지만 보통의 창틀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일반적인 면적 구성의 비율은 파괴된다. 그리고 길드 하우스의 전면부는 르네상스 시기의 고전적 파사드를 그대로 모방한다. 모더니즘에서 금기시 되어오던 과거 양식의 부활인 것이다(그림3).
벤츄리는 크로포드 매너의 겉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더욱 강력한 결정타를 날린다. 모더니즘 건축은 시대착오적이며 더 나아가 공허하고 지루하다. 유치함을 거부하고자 했던 모더니즘의 양식은 20세기 중반 이후 너무나 과도하게 소비되어 스스로 유치한 상징이자 장식이 되어버렸다. 마치 우스꽝스러운 오리 모양의 집처럼 말이다. 이제는 유치함을 거부하기보다 오히려 제대로 유치해져야 역설적으로 세련되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상업자본과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쉬운 설계
“지루한 건축이 재미있는가Is boring architecture interesting?” 벤츄리가 던진 이 질문은 대중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제시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양식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반드시 모더니즘 건축의 폐기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굳이 장식을 디자인에 복귀시키지 않아도, 과거의 양식을 재해석 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건축은 가능하다. 그 한 가지 방법이 쉬운 설계다.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가장 탄탄한 이론적 기반을 바탕으로 설계를 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이지만 가장 대중적인 설계를 하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자들만이 현대 건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편견임을 증명한다.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계는 이론적기반이 약하다는 건축가들의 선입견도 철저하게 파괴한다. 다음은 OMA에서 진행한 시애틀 중앙도서관의 설계다(그림4).
지식의 양적 증대와 함께 도시의 인구도 늘어나면서 시애틀 중앙도서관은 이미 여러 차례 증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은 여전히 이용자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에 역부족이었다. 1998년 시애틀 시는 과거의 도서관을 아예 철거하고 미래의 변화를 유동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도서관을 설계하고자 했다. 콜하스는 이 도서관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은 서고와 관리실처럼 고정된 공간과 열람실처럼 고정되지 않은 공간으로 구분된다. 모든 도서관의 문제는 책이 늘어나면서 고정된 공간이 고정되지 않은 공간을 잠식하면서 발생한다. 고정되지 않은 공간도 서고처럼 기능에 따라 구분한다면 서로의 영역을 잠식하지 않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재단된 유동성Tailored Flexibility’6 이것이 콜하스가 제시한 해결책이었다(그림5).
당시 시애틀 도서관의 공간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책을 위한 공간이 32%, 나머지 기능을 위한 공간이 68%의 공간을 차지한다(그림6). 콜하스는 ‘나머지 기능’들이 무엇인지 살펴본 뒤 책과 ‘나머지 기능’의 영역들을 성격에 맞게 결합시킨다. 이렇게 다섯 개의 고정된 공간과 네 개의 고정되지 않은 공간으로 도서관을 재구성할 수 있다.7 그럼 건축적인형태는? 두 가지 공간을 성격이 중복되지 않게 번갈아 배치한다. 그대로 쌓아 올리면 재미가 없으니 프로그램의 블
록들을 밀고 당겨보자. 그러면 어떤 공간은 햇빛도 더 들어오고 어떤 공간에서는 거리 풍경도 잘 보인다. 이제 블록다이어그램에 외피를 씌우면 건축적 형태는 완성된다. 벽돌 쌓기만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설계다(그림7).
콜하스가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건축가라면 조경에는 제임스 코너James Corner가 있다. 이론가가 아닌 건축가로서 시작한 콜하스와는 달리 코너의 출발점은 학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이론과 초기의 설계는 깊이 있고 난해하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최근의 설계 작품을 보면 까다로운 코너 씨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그림8).
유선형의 지형이 만들어내는 조형적 경관을 보면 산타모니카에 위치한 통바 파크Tongva Park의 설계 개념이 무척 궁금해진다.8 코너는 캘리포니아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계곡 지형인 아로요Arroyo에 주목하여 세 가지 설계 개념을 제시한다.9 첫째는 아로요 흐름Arroyo Wash이다. 말 그대로 폭우가 만들어낸 물줄기가 건조한 사막 지대를 지나가면서 형성한 유선형의 형태다. 둘째는 아로요 협곡Arroyo Ravine. 물줄기가 집중되면 양쪽에 절벽을 만들면서 흐르는데, 두 번째 안은 절벽의 형태를 디자인에 그대로 도입하였다. 셋째는 아로요 둔덕Arroyo Dune. 물이 흐르며 계곡을 형성하면 자연히 계곡 옆에는 유동적인 모래 언덕이 형성된다. 세 번째 안은 이러한 사구의 형태를 형상화하였다. 세 가지의 개념 중에서 최종적으로 첫 번째 개념인 아로요 흐름이 공원의 설계 개념으로 선택되었다(그림9).
이렇게 듣고 나니 황당할 정도로 간단하다. 거의 유치원 꼬마들을 데리고 미술 시간에 “물줄기 모양을 그려볼까요? 아니면 언덕처럼 그려볼까요”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이 성의 없다고 생각한다면 반문을 해보자.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 공원은 주민들이 편안한 반바지 차림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관광객과 어우러져 산책을 하는 장소다. 굳이 다양한 사회적 층위의 중첩과 교차, 공간과 시간의 충돌과 혼성이 매개된 까다로운 설계가 필요할까? 누군가 여전히 통바 파크의 설계 방식이 너무 쉽다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이 공원의 디자인이 훌륭하지 않다고 함부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계 개념, 그리고 설계 방식의 새로움은 그 공간이 좋고 나쁨과는 의외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