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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의 서재] 책과 헤어지지 않기 1
시집 활용법
  • 환경과조경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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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영

 

돌이켜보건대 내 독서 생활은 어디까지나 그저 책에서 손을 완전히 떼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모양 좋은 책들을 여럿 사서여기저기 꽂아두고 쌓아두었지만, 간혹 생각난다 싶을 때에만 깨작깨작 들춰보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설계 일을 시작하면서는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당당하게 일정 기간 아예 책을 멀리한 적도 많았고, 설령 읽었다고 하더라도 그리 심오하지도 않은 책을 띄엄띄엄 조금씩 아껴가며 훑었을 뿐이다. 그나마도 읽고 난 뒤 메모나 서평을 따로 써둔 적도 없는 터라 세상의 책들과 그리 끈끈한 사이가 아니다. 그런 나에게 ‘조경가의 서재’라는 타이틀은 부담스럽고도 민망하기 짝이 없다. 물론 집에 서재라고 따로 정한방도 없거니와.

그리하여 여러 밤낮을 찌푸린 낯으로 끙끙댔다. 고민끝에 ‘교양인으로서의 삶’을 근근이 이어가기 위해서 읽기 편한 책을 가려내던 나름의 수법과 알량한 독서수준에도 불구하고 이를 야무지게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쓰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보잘것 없이 아주 조금만 읽었지만 줄기차게 많이도 써먹었던 방법, 과문寡聞함을 거뭇한 먹구름으로 가리고 그 사이로 언뜻 드러나는 빛줄기처럼 남다른 감성을 은근히 과시하는 방법이랄까.


설계하는 사람은 책을 언제 어떻게 읽을까? 출퇴근 시간 잠깐 올라 탄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야근 끝에 돌아간 늦은 밤 방구석에서나 짧게 틈을 내어 책장을 펼칠 것이다. 심신이 피곤하면 그마저도 힘들다. 비단 설계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아예 공부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꾸준히 매일 한두 시간씩 시간을 정해놓고 책을 읽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쁘기로는 세상에서 둘째라면 서러워 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어른들이니 말이다(그런데도 가공할 만한 독서량으로 이름 난 ‘로쟈’ 이현우는 서평집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에서 사람들이 날마다 무려 60~70쪽, 그러니까 한 주 한 권의 책을 꾸준히 독파하는 ‘독서력을 갖춘 사회’를 만들어보자고 이야기한다).

정말 이토록 가련한 형편이라면, 그래서 지속적인 읽기가 수월치 않아서 좀처럼 책 펴기가 힘들다면, 숨을 끊어가면서 읽을 수 있는 시집들을 우선 권해본다. 뭔 소린지 통 모르겠다며 서점의 시집 코너 앞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경우는 이렇다. ‘교양 있는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차피 제대로 된 시詩가 아니지’라는 당돌한 자세로 자신감을 상승시키며 눈에 들어오는 시집을 여러 권 집어 든다.

그러고는 방 책상에 올려두거나 가방에 넣어 두고 틈나는 대로 이리저리 훑어본다(화장실 또한 시집 보기에 꽤나 좋은 장소일 터). 앞에서부터 봐도 상관없고 마음에 드는 제목만 골라서 봐도 상관없다. 다만 한 가지! 한 장 한장 넘기다가 마음에 들거나 눈에 쏙 들어오는 부분은 책장 끝부분을 세모꼴로 접어둔다. 나아가 마구 떠오르는 잡생각을 널따란 주변 여백에 재빠르게 끼적거려도 좋겠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면 시집 맨 뒤에 나오는 시평詩評을 본 내용에 앞서 읽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론가나 동료 시인들이 해설해 놓은 내용이 전반적인 이해에 도움이 될뿐더러 여기서 인용한 시나 시구만 먼저 찾아보는 것도 알뜰한 독법讀法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집을 시리즈로 내는 출판사로는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사, 세계사, 실천문학사 등이 있다. 내 경우에는 그중에서도 유독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된 시집을 많이 사두었다. 익숙한 시인을 즐겨 찾게 마련이고 내용 또한 비슷한 맥락을 이어가며 구입한 탓이겠지만, 여기에는 시인 겸 소설가 겸 화가인 이제하가 그린 시인 캐리커처가 담긴 담백한 표지 디자인이 한몫 단단히 했을 듯싶다. 사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내 돈 주고 시집을 산 이후로 맘에 들어서 기억할 만하거나 능히 써먹을 만한 대목이 있으면 꼭 책장 모서리를 접어두곤 했다. 가깝게는 몇 달 뒤나 멀리는 몇 년 후쯤 그걸 찾아서 읽어 보시라. 접어 둔 페이지나 밑줄 그은 시구나 휘갈겨 쓴 메모를 보면서 당시 그렇게 한 이유를 혼자서 추리해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1999년부터 16년째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니고 있다. 4년 전부터는 개인 주택 정원, 어린이집과 학교의 외부 공간, 농장 조경계획, 공장 외부환경 개선사업, 아파트 조경 가이드라인 등 하나하나성격이 다른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중에 그 공간에서 머무는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일하는 조경설계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현재 스튜디오 테라(STUDIOS terra)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공저로 『철새협동鳥합』이 있고, 제프 마노가 쓴 『빌딩 블로그』를 번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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