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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비정통적 기회주의자
  • 환경과조경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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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매스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던 브라질 농업생태신도시 계획안은 대상지의 예상치 못한 제약 요건을 재빨리 기회로 전환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차태욱

 

얼마 전 중국 베이징 대학교에서 수퍼매스 스튜디오(Supermass Studio)의 작업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 제목을 달라고 해서 사무실을 시작할 때 내세운 세 가지의 방법론 중 두 가지를 뽑아 ‘Unorthodox & Opportunistic’이라고 보내주었다. 헌데 발표장에 가서 공고 포스터를 보니 제목이 비정통적 기회주의자로 번역되어 있어 당황한 적이 있다. 비정통적인 기회주의자라니! 얼핏 들으면 아주 하류의 질 나쁜 시정잡배처럼 보일 수가 있으니 (이에 대한 설명으로) 내가 설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비정통적 창의성(Unorthodox Creativity)’, ‘기회주의적 다양성(Opportunistic Diversity)’, ‘사회적·환경적 책임감(Social Environmental Responsibility)’은 수퍼매스 스튜디오를 시작하면서 작업 방법의 근간으로 내세운 세 가지 가치다. 생소한 개념인 것 같지만 이 세 가지 가치에 그동안 내가 학업과 실무를 통해 경험하고 쌓아온 조경에 대한 모든 생각이 담겨 있다.


비정통적 창의성

설계가라면 누구나 창의적인 설계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설계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창의적인 행위니 모든 설계가들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창의적인 작업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설계가에게 창의적인 접근이 당연한 것이라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만 ‘남과 다른’ 창의적 접근을 할 수 있을까? 비정통적 창의성은 이러한 주류 창의성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하였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남다른 추구는 1990년대 초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황기원 교수가 가르치던 ‘경관의 해석’ 수업시간에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과제가 있었다. 나는 옴스테드가 설계한 센트럴파크의 성공이후 자연풍경식으로 일관되어온 20세기 현대 조경에 대해 일침을 가했고 “이제는 전혀 다른 가치와 미학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현대 조경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라는 나름 거창한 선언을 했다. 더불어 내가 기억하는 1990년대는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새로운것에 대한 강한 갈망이 있었다. 

조경에서는 피터 워커(Peter Walker)를 비롯한 조지 하그리브스(George Hargreaves), 마사 슈왈츠(Martha Schwartz), 마이클 반 발켄버그(Michael Van Valkenburgh) 등의 미국을 위주로 한 일단의 조경가들이 기존의 조경 미학에 반하는 파격적인 개념과 형태를 내세워 조경 설계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실체 자체도 모호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개념을 통해 근대화를 거치며 적체되어 온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이해하려 했다. 1997년에 나온 애플 컴퓨터의 가장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 ‘다르게 생각하자(Think Different)’는 이러한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갈망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었는데 특히 규범과 질서를 따르는 모범생과 착한 학생이 아닌 말썽꾼, 왕따, 반항아, 그러나 세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고자 하였던 선구자들을 기리는 ‘정상이 아닌 이들을 위하여!(Here’s to the Crazy Ones)’ TV 광고는 아직까지도 나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2000년대 중반 제임스 코너와 함께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에서 일하면서 이러한 ‘비정통적’ 또는 ‘비정형적’ 창의성의 추구에 대한 생각이 점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당시의 필드 오퍼레이션스는 일찍이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공공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으며, 이제까지 아무도 사용해 보지 않았던 방법을 도입하고 싶어 했다. 이전에 이미 만들어진 것, 했던 것들은 무조건 열외로 밀어냈고 엉뚱한 것, 말이 안 되는 것을 찾아 말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주요 관심사였다.

개념과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물리적 공간 형성으로 완성되던 기존의 방법론을 뒤엎고, 공간의 물리적인 틀을 먼저 구성한 뒤 여기에 프로그램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개념을 도출시키는 방법론이 시도 되었다. 전혀 상관이 없는 여러 가지 패턴들을 대상지 위에 이리 저리 엎어보면서 공간의 구성과 프로그램간의 연계성을 찾으려는 작업들이 이때 시도되었다. 

당시 설계공모 당선안과 계획안들을 통해 이름을 얻고 있던 제임스 코너는 실제 실무의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장님 무서운 것 없다’는 말처럼 이러한 무경험이 오히려 당시의 필드 오퍼레이션스의 작업을 더욱 모험적으로 만들었고 기존의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시기에 진행했던 춘천 G5 설계공모 당선안은 이러한 패턴의 적용, 물리적 틀의 형성을 통한 프로그램의 도출 등과 같은 새로운 방법론이 대표적으로 사용되었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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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오퍼레이션스 + 코이터 킴 어소시에이츠, 설계 총괄 차태욱. 춘천 중도에 존재하던 농경지의 경작 패턴을 바탕으로 특정한 위계가 없는 중립적인 물리적 틀을 제시하고 여기에 활동 프로그램을 대입함으로써 향후 개발 시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했다.

 

2000년대 후반 다국적 건축·엔지니어링 업체인 EDAW/AECOM(지금은 AECOM으로 통합)의 설계 총괄 담당(Design Director)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비정통적 창의성에 대한 개념이 점점 확고해졌다. 조경계의 거대 기업이었던 EDAW는 창의성을 강조하였지만 이는 매우 제도화되고 규범화된 이른바 ‘정통적’인 의미의 창의성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조경설계사무소이기도 한 EDAW는 몇십여 년간 자신들이 해 오던 방식이 있었다. 이와 같이 틀에 박힌 진부한 설계에서 벗어나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이 설계 총괄로서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전 세계에 업무 네트워크가 있고 막대한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EDAW에는, 매년 세계 각국의 사무실에서 가장 뛰어난 설계 인력들을 한자리에 모아 서로의 방법론을 공유하고 창의적 업무 방향을 논의하는 설계정상회의(Design Summit)라는 행사가 있었다. 여기에 참석하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EDAW 내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이른바 진보파 설계가들이었다. 어느 해인가 논의의 주제가 ‘변방에 서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커팅 에지(cutting edge)가 될 것’인가 아니면 ‘중심에서 주류 사회를 이끌어 가는 리딩 에지(leading edge)가 될 것’인가에 모아진 적이 있다. 이때 결론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바다에서 먹이를 찾아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비유해서 ‘끊임없이 변방에서 헤엄치지만 언제나 중심을 향해 움직인다(swarming toward the center but swimming on the edge)'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결론이었는데 궁극적으로 주류를 염두에 두지 않은 비주류의 추구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적 다양성

1996년 하버드 GSD에서 공부할 때 렘 콜하스와 함께 ‘하버드 도시 연구(Harvard Project on the City)’라는 연구 프로젝트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십여 명의 건축, 도시설계, 조경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모여 1년 동안 특정한 도시 현상을 다각적인 방향에서 연구하는 것이었는데 우리의 연구 주제는 쇼핑이었다. 지금은 유명 건축가들이 너도나도 프라다니 샤넬이니 고급 상업 부티크(boutique)를 설계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명한 건축가들은 상업 시설을 설계하지 않았다. 미술관, 학교, 공공 건물과 같은 고상한 건물들을 설계하면 이른바 건축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상가나 백화점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쇼핑 건축가라고 하여 저급하게 취급받는 때였다. 

그러나 우리는 쇼핑이 이미 우리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가에 주목했고 상업 시설의 건축, 조경, 생태, 마케팅, 테크놀로지, 브랜딩 등 쇼핑과 관련지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연구했다. 그 결과는 쇼핑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도시의 중요한 물리적 환경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콜하스는 상업 건축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뉴욕 소호의 프라다 매장을 처음으로 설계하게 된다. 콜하스와의 쇼핑 연구는 나의 설계관 및 방법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이것이 오늘 이야기하는 기회주의적 다양성이라는 개념의 밑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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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은 이제 가히 공공 활동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쇼핑은 점점 더 공격적인 형태로 도시 생활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고 점령하였으며 심지어 대치하기까지 했다.” (출처: Chuihua Judy Chung, Jeffrey Inaba, Rem Koolhaas, and Sze Tsung Leong, The Harvard Design School Guide to Shopping / Harvard Design School Project on the City 2 , Taschen, 2002)

 

내가 쇼핑 연구를 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도 건축(조경을 포함해서)에는 옳은 건축과 그렇지 않은 건축에 대한 구분이 있었다. 이는 당시의 건축이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대의를 중요시하지만 생각을 경직시키고 사물을 흑백 논리로 끌고 갈 수 있다. 이데올로기에 근거하게 되면 ‘해야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이 분명해지는데, 이를테면 상업 논리에 바탕을 둔 쇼핑이 하지 말아야 할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다변화·다가치가 점점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과거의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접근법은 명확히 선을 긋기 어려운 애매한 경우가 종종 있다.

기회주의적 접근은 이러한 경우를 마주칠 때 재빨리 기회를 포착하고 그 속에서 공허한 대의 대신 실리를 선택한다. ‘모 아니면 도’라는 강경함 대신 위기와 제약을 기회로 바꾸는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한다. 이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찾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에게 기회주의적이란 것은 모든 프로젝트가 그 나름의 기회와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기회와 가능성이 설계를 통해 어떻게 구현되는지는 전적으로 설계가에게 달려있다. 많은 설계가들이 ‘왜 자신이 하는 프로젝트는 이리도 재미가 없고 진부하고 천편일률적인지’에 대해 회의하는데, 내가 볼 때에 설계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도 설계가이고 이를 진부하게 만드는 것도 설계가다.

수퍼매스 스튜디오에서 진행했고 2012년 미국조경가협회 뉴욕 지부에서 계획 분야의 상을 받기도 했던 브라질 농업생태신도시 계획안은 이러한 제약 요건을 재빨리 기회로 전환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브라질의 주요 농업 개발 지역인 북동부 사바나 지역에 유기농업을 위한 대규모 생태 신도시를 계획하는 작업이었는데 쓸모없는 황무지인줄 알고 시작한 사업 대상지가 최근 십여 년 사이에 아마존 열대우림에 버금가는 종 다양성을 갖는 생태계의 보고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프로젝트는 개발 프로젝트에서 개발을 가장한 생태 보존 프로젝트로 급선회하게 되었다. 대상지 내에 생태적으로 가장 민감한 자연 배수로 지역과 인접한 습지를 먼저 보존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보존 지구로 지정한 후 나머지 지역을 농업 지구로 개발함으로써 개발 사업으로는 흔치 않은 선 보존·후 개발이라는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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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농업생태신도시 계획안, 수퍼매스 스튜디오

 

이러한 기회주의적 접근은 다양한 유형의 프로젝트를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하는데, 이는 곧 작업의 다양성과 연결된다. 나는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능하면 다양한 유형의 프로젝트를 하도록 노력한다. 수퍼매스 스튜디오에서 다루는 프로젝트 유형을 보면 대단위 마스터플랜부터 주거단지 계획, 업무 시설, 전시 시설, 캠퍼스, 공원 계획, 광장, 호텔, 주택 정원, 공동주택, 수변 개발, 설치 예술에 이르기까지 공공, 민간, 상업, 문화, 업무, 주거, 예술 시설 등을 망라한다. 여기에 이전 회사에서 다루었던 프로젝트까지 더하면 식물원, 동물원, 놀이공원, 카지노, 리조트 등 실로 다양한 분야와 성격의 프로젝트를 포함한다. 이렇게 작업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데는 창의적인 욕구에 대한 만족 그 이상의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보다 조직화 되면 업무 분야를 분화 및 특화시키려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내가 이전에 일했던 AECOM도 마찬가지여서 처음 시작할 때 회사에서는 나에게 전문 업무 분야(practice line)를 선택하여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를 원했다. 당시 AECOM은 공공 공간(public realm), 커뮤니티 단지 설계(community design), 호텔 및 리조트(resort hospitality), 캠퍼스 설계(campus design & planning), 생태 설계(ecological design) 등과 같이 업무 분야를 특화하여 이 중 자기가 관심 있고 잘 할 수 있는 한 분야를 선택해 발주처 관리부터 마케팅, 프로젝트 운영, 설계에 이르기까지 선택 분야에 집중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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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및 보존 전략 다이어그램, 수퍼매스 스튜디오. 개발 대상지였던 브라질의 사바나 지역은 아마존 열대우림에 필적하는 생태적 중요성을 갖고 있음이 밝혀졌고 이는 계획의 방향을 일반적인 선 개발·후 보존에서 선 보존·후 개발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생태적으로 가장 민감한 배수 습지 지역을 네트워크로 연결된 보존 지구로 지정하고 나머지 지역에 농경지를 개발하였다.

 

이러한 시스템은 경기가 좋을 때는 효율성을 발휘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경기를 타는 특정 분야가 직접적 인 타격을 입게 된다. 실제로 2000년대 후반 미국 경기가 급격한 불황으로 빠져들게 되자 민간 중심의 주거 커뮤니티 개발과 호텔·리조트 개발 사업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었고 이 분야로 특화되어 있던 담당 소장들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특정한 업무 분야로 빠지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설계 총괄 소장으로 회사 내의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던 나는 불황이 시작되자 경기를 심하게 타는 민간 개발 팀을 떠나 공공 개발 팀으로 용이하게 전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뭐든지 다 할 줄 아는 사람은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세울 수 있는 특화 분야가 있는 것이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고 프로젝트를 따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본인들이 필요로 하는 요구 사항이 명확하기 때문에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원하지 다른 것을 이것저것 다 한다고 특별히 더 좋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수퍼매스 스튜디오에서는 이러한 특화 분야를 특정한 프로젝트 유형이 아닌 프로젝트에 특화된 방법론으로 접근한다. 수퍼매스 스튜디오가 특화점을 갖고 있는 분야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 친환경 기술의 시각적·경험적 구현, 공간의 조직적·구조적 처리 등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특화된 방법론은 모든 프로젝트 유형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사회적·환경적 책임감

예전 회사에서 일할 당시 우리끼리 하던 농담이 있었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한다(We’ll do anything for one magazine shot).” 물론 최고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공간을 더 많은 대중에게 제공하고자 했지만 그 이면에는 그 작업이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고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가 무척이나 강했던 것이다. 친환경성을 가장 중요한 기치로 내세우는 회사에서 일하며 가장 친환경적인 경관을 만들고자 할 때에도 이러한 것들이 결국은 회사의 수익이 맞춰진 후에야 시작된다는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대다수의 뛰어난 설계사무소들은 모두 최상의 설계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설계의 질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고 이를 통해 조경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이러한 노력이 정당하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뛰어난 회사들을 거쳐 오면서 나는 아직도 많은 설계가들이 (특히 그들의 설계가 뛰어날수록) 우리가 처한 사회적·환경적 문제의 많은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가 설계하는 대부분의 공간은 다수의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이러한 ‘일반 대중’에 속하지 못하는 빈곤층과 소외계층이 존재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를 조금만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눈을 돌리면 우리의 빈곤층·소외계층의 생활에도 미치지 못하는 생활을 하며, 최소한의 기본권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너무도 많이 있다. 친환경적 설계 또한 이제는 거의 기본이 되어버렸지만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지금, 설계가들이 과연 우리가 처한 절박한 환경적 위기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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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90%와 함께 하는 디자인(Design with the Other 90%)’ 전시회. 지구촌 65억 인구 중 90%에 해당하는 58억이 기본적인 생필품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그 중 절반은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먹을 것, 깨끗한 물, 잠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퍼매스 스튜디오의 세 번째 가치인 사회적·환경적 책임감은 이러한 자각에서 시작됐다. 때마침 사무실을 시작하던 해인 2011년 가을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박물관이 기획한 ‘나머지 90%와 함께 하는 디자인(Design with the Other 90%)’이라는 획기적인 전시가 있었다. 지구촌 65억 인구 중 90%에 해당하는 58억의 인구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기본적인 생필품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그중 절반은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먹을 것과 깨끗한물, 그리고 잠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디자인을 통해 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들을 찾고자 하는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는 나에게 매우 큰 감명을 주었고 설계가의 보다 실천적인 사회 참여에 대한 적극적 인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수퍼매스 스튜디오는 지난 3년간 직·간접적으로 이와 같은 다양한 사회 문제의 해결에 참여하고 있다. 2011년에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주제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12명의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들이 공동으로 기획한 ‘지구촌의 위기와 디자인(Global Crisis & Design)’ 전시회에 참가해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2012년에는 필리핀 태풍 와시의 피해를 입은 이재민 구호를 위한 정착민 마을 조성 기본 계획안을 필리핀 당국에 제안하였으며, 지진으로 황폐된 아이티(Haiti)에 산림녹화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에 간접적인 지원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비정통적 창의성’과 ‘기회주의적 다양성’은 2006년 『건축문화Architecture and Culture』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당시 필드 오퍼레이션스에서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개념이었다. 이것이 AECOM에서의 작업을 통해 보다 구체화되고 여기에 ‘사회적·환경적 책임감’이 더해지면서 수퍼매스 스튜디오의 실무 철학이 된 것이다. 그러나 2006년의 첫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이런 용어들은 내가 만들어낸 말들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훨씬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수퍼매스 스튜디오가 설계하는 법에 대해 다시 한 번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한 줄로 답할 것이다.

 

“남과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러나 책임감 있게 한다.”

  

차태욱은 미국 뉴욕에 위치한 수퍼매스 스튜디오(Supermass Studio)의 대표로 미국을 근거로 한 17년간의 국제적 설계 경력을 통해 설계 및 프로젝트 운영, 시공에 이르는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하버드 GSD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뉴욕, 매사추세츠,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에 공식 등록된 미국 공인 조경가로서 친환경전문자격증(LEED)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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