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머물렀던 공간에는 이야기가 남는다. 공포 영화 ‘장화·홍련’을 본 뒤 적었던 감상이다. 이 영화는 탄탄한 이야기를 받쳐주는 아름다운 영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영상미는 영화의 배경인 건물에서 비롯됐다. 일본식 목재 가옥은 영화 전반의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보색으로 구성된 벽지는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어깨가 움츠러든다. 한동안 나무로 된 건물을 보면 ‘장화·홍련’이 떠올랐다. 이처럼 공간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사람이 영화나 드라마를 추억하기 위해 촬영지를 찾고, 과거의 건물이 보존된 거리에서 역사탐방을 한다. 건물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고, 그 이야기가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경우 역사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미술관이 된 구벨기에 영사관’ 전은 복잡한 사당 한구석에 자리한 붉은 벽돌 건물의 역사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2015년 12월 15일부터 올해 2월 21일까지 남서울생활 미술관에서 ‘미술관이 된 구벨기에 영사관’ 전이 열린다. 이 전시는 대한제국기에 벨기에 영사관으로 세워져 현재 남서울생활미술관으로 활용 중인 건물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 준다. 올해 건물이 세워진 지 110년을 맞이해 그 의미가 깊다.
전시는 건축과 미술 두 부문으로 구성된다. 건축 부문에는 초청 큐레이터로 한국 근대 건축사학자 안창모(경기대학교 교수), 문화재 복원 모형에 고주환(티엠새한 문화재 대표이사), 전시 공간 디자인에 건축가 최욱(원오원팩토리)이 참여해 건물의 역사와 특징을 해석했다. 미술 부문에는 김상돈, 노상호, 임흥순, 장화진, 허산 작가와 남서울예술인마을 그룹이 참여했다.
미술관 뜰에 들어서면 좌우 대칭의 붉은 벽돌 건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런 붉은 벽돌집은 20세기 초, 서구 문화가 도입되면서 주로 서울의 사대문 안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벨기에 영사관도 본래 회현동에 당시 유행하던 열주―하층은 도리아식, 상층은 이오니아식 석주―가 아름다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도심 개발 사업에 밀려나 1982년 관악구 남현동에 이축됐다. 계속 방치됐던 건물은 2004년이 되어서야 소유주인 우리은 행이 서울시에 무상으로 임대하면서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인 남서울미술관으로 문을 열게 됐다.
1층은 건축 부문 전시장으로 건물의 역사와 이축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설치했던 가벽이 제거됐고 그 뒤에 숨겨졌던 기둥, 벽난로, 창문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가벽을 들어내면 창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와 추울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1층의 벽면을 채운 창은 햇빛을 통과시켜 전시장을 따뜻하게 달군다.
흰색 대리석 벽난로는 이축 과정에서 굴뚝과 연결되지 못해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외에도 건물 목재 골조모형, 석주 거푸집, 이축 시 샘플로 만들어졌던 석주, 전시 기획 중 발견된 타일―건물의 발코니에 사용된 타일이 본 건물의 다락방에서 발견됐고, 지금은 1층 우측 전시실의 바닥에 설치되었다― 등을 통해 건물을 이해할 수 있다.
목재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예술 부문의 전시가 이어진다. 1층의 전시가 과거에 대한 궁금증에 답하고 있다면 2층은 그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느낀 감성을 확장한다. 회화, 설치, 사진, 영상, 조각 등의 예술 작품은 미술관을 비롯해 미술관이 있는 남현동과 사당 지역까지 화두를 확장하여 건물을 재해석 했다. 장희진 작가의 ‘모던 테이스트(정관헌)’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바라보게 하고, 노상훈 작가의 ‘소년시少年市’와 허산작가의 ‘벽에 난 균열 #03’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건물의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도록 만든다. 해가 잘드는 방에 설치된 ‘노스텔지아’를 통해 건물의 애환을 위로하고 싶었던 임흥순 작가의 마음도 느낄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작품은 건물이 지닌 역사와 문화, 사회에 걸친 다층적인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