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린 왕자’는 새로운 이야기 구조 속에 어린 왕자의 원작이 소개되는 형식의 애니메이션이다. 모두가 다 아는 뛰어난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그 자체를 충실히 재현하느냐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하느냐로 나뉜다. 전직 비행사였던 괴짜 할아버지는 옆집으로 이사 온 소녀에게 어린 왕자가 등장하는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준다. 할아버지와 소녀가 등장하는 현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하고, 어린 왕자가 등장하는 소설은 종이로 만든 인형을 스톱 모션 기법으로 촬영해 만들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된 공간과 종이로 만든 어린 왕자의 공간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현실의 도시는 획일적이고 건조한 분위기이며 감정 없는 인간들로 채워져 있다. 좀비 같은 표정의 인간들은 똑같이 걷고 똑같은 자세로 일하며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린다. 반듯한 도로, 사각의 주택, 네모난 가로수 모두 질서 정연하다. 자세히 보면 문손잡이도 네모다. 효율을 상징하는 직선의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회로란 없다. 소녀의 엄마는 치밀하게 인생 계획표를 짜서 하루하루 실천하도록 강요한다. 회색의 도시와 대조적으로 종이로 만든 캐릭터와 풍경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풍부한 색감의 동화 그 자체다. 색종이나 상자를 찢어서 무언가 만들어 본 사람은 기억하고 있을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두꺼운 종이를 투박하게 찢거나 겹쳐서 만든 구름과 연기에서 종이가 가진 특성이 잘 드러난다. 얇은 종이를 돌돌 말아서 만든 어린왕자의 황금빛 머리칼과 여우와 만나는 밀밭은 생동감이 넘친다. 어린 왕자가 입고 다니는 연두색 항아리 바지는 걸을 때마다 사랑스럽게 펄럭거리고 긴 머플러와 여우 꼬리가 햇빛에 투명하게 빛나며 바람에 날리는 장면은 눈부시다. 사막과 오아시스의 물, 밤하늘에 뜨는 별, 어린 왕자가 좋아하는 해지는 풍경까지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 종이가 이토록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구나. 책 속 캐릭터들이 종이로 생명을 얻다니, 마법이 따로 없다. 어린 왕자와 여우가 서로를 길들였듯이 소녀는 할아버지에게 좋은 영향을 받으며 변한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