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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과정
The Way They Design: Process
  • 환경과조경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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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억, 기념비가 즐비한 자투리 땅, 드나이퍼 에지(Dneiper’s Edge) 굽이쳐 흐르는 드나이퍼 강과 급속한 속도로 팽창하는 키예프 구도심의 경계를 형성하는 드나이퍼 에지는 날카로운 경사와 역사적 구조물의 산재로 인해 개발이 제한된 지역이다. 이 지역은 도심 속에 있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사람의 접근이 없었고 덕분에 풍요로운 야생 생태 환경을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본 프로젝트는 드나이퍼 에지를 키예프의 역사 보존 지역으로 선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키예프의 관광객과 거주민, 상위 문화와 하위 문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엮일 수 있는 인프라스케이프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미 지난 호에 언급했지만 나의 특별한 ‘설계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설계할 때 유용했던, 그리고 여전히 도움이 되는 다양한 단상을 공유하고자 한다. 지난 달에는 설계에 있어 ‘문제 제기’와 관련된 단상을 열거했다. 이번 달에는 ‘과정’이라는 넓은 범주에 해당하는 테제를 나열해본다. 각 테제의 개별적 유효성과 적합성은 전적으로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책상다리의 순서

1934년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는 『독서의 ABC』에서 “완성된 후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똑바로 설 수만 있다면 책상의 네 개 다리 중 어느 다리를 먼저 만들었는 지는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1 완성된 결과물이 무엇이든 간에 설계, 제작, 시공 작업이 끝난 후에는 사용자의 영역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결과물 사용에 있어 설계 과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설계 과정, 의도, 순서에 상관없이 완성품은 나름대로의 세계를 구축하고 사용자의 경험은 전혀 다른 의미 체계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사이즈의 문제

언젠가 홀데인J. B. S. Haldane의 “적합한 사이즈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읽은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한다.2 홀데인은 “동물 유형에 따라 적합한 사이즈가 있고 사이즈의 변화는 형태의 변화를 동반한다”라고 말하며 다음 이야기를 한다.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키가 60피트인 거인은 그리스도인보다 10배나 더 크고 넓고 두꺼워서 그리스도인 무게의 100배, 80~90톤가량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거인의 뼈는 그리스도인의 100배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각 제곱인치당 인간의 뼈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의 10배를 감당해야 한다. 인간이 자신의 10배의 무게에 의해 허벅지 뼈가 부러진다는 사실로 유추해 보았을 때 『천로역정』에 표현된 거인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허벅지가 무너지는 고통을 경험했을 것이라고 홀데인은 이야기한다.

사이즈는 물리와 중력의 문제다. 작은 생쥐가 코끼리와 맞먹는 크기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구조·시스템적 변화가 있어야 하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는 표면 장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파리가 물에 빠졌을 때는 표면 장력에 의해 파리의 온 몸이 무력화되지만, 인간의 몸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물속을 빠져나올 수 있다. 모든 물질에는 적합한 스케일이 있으며, 공간도 마찬가지다. 최근 건축, 조경, 도시 분야에서는 생태모방biomimicry 혹은 파라메트리시즘parametricism이라는 개념 아래 유기체적 형태의 모방과 적용에 대한 작업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3 혈구 세포의 구조적 형태를 몇 백만 배 확대한 구조·설치물에서부터 물고기의 비늘에서 착안한 건물 표피 시스템까지, 스케일의 증폭과 적용은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창의적 작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홀데인이 말한 스케일의 문제는 직설적인 해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자하 하디드Zaha Hadid 제국의 전도사인 패트릭 슈마허Patrick Schumacher가 전파하는 파라메트리시즘은 파라메트릭 디자인과 디지털 디자인의 직설적·형태중심주의적 해석만을 주창한다. 파라메트리시즘을 의미하는 ‘변수주의’와는 정반대 지역적 특수성과 사이트 변수의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독단적인 유기 곡선 형태의 상품을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 시장의 스타키텍트starchitect 시스템 속에서 세계 전역에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슈마허는프라이 오토Frei Otto를 파라메트리시즘의 유일한 선도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프라이 오토의 업적은 자연의 형태와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구조 시스템을 해석, 제안, 개발한 데 있다. 그의 건축 구조에 관한 작업보다는 덜 알려진 도시 시스템에 관한 연구를 보면, 나뭇잎의 잎맥 무늬, 거품 패턴의 분석 등 최소거리에 기반을 둔 도시 시스템의 가능성이 실험되었음을 알 수 있다.4 오토에게 형태는 시스템을 담아내는 메커니즘의 발현이었고 목적 대상이 아닌 매체일 뿐이었다. 홀데인의 사이즈에 대한 일화를 통해 우리는 자연의 순수성에 매혹된 형태에 대한 강박 관념을 경계해야 한다.

 

 

서예례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의 도시설계와 조경 담당 교수이며, 어반 터레인즈 랩(Urban Terrains Lab)의 디렉터다. 코넬대학교, 바나드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뉴욕 시립대학교,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도시설계와 건축을 가르쳤다. 미국 공인 건축사이자 친환경건축 인증제 공인 전문가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와이즈/만프레디(Weiss/ Manfredi: Architecture/Landscape/Urbanism)에서 프로젝트 건축가로 일하며 시애틀 올림픽 조각공원, 뉴욕 바나드 디에나 센터 등의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2009년부터는 오피스 오브 어반 터레인즈(Office of Urban Terrains)의 디렉터로 다양한 건축, 조경,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서 건축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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