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작가’ 또는 ‘예술가’로 불리거나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 이들을 한두 가지 유형으로 묶어둘 수는 없겠지만, 그 내용과 형식이 무형의 것이든 유형의 것이든, 정치적 함의를 가지든 그렇지 않든, 감각에 따른 것이든 이성이나 감성에 따른 것이든, 내 한몸 고사하면서 창작 욕구를 풀어내고자 하는 것만은 아마도 그들 공통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여기에 더해 예술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고, 훌륭한 작가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도 있을 수도 있고, 명성을 쫓는 일을 떠나 예술, 철학, 사회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응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자가 천민자본주의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런일들에 맞서겠다는 투쟁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고, 한편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 팔리는 ‘비싼’ 작가가 되어 럭셔리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동력이 무엇이든 대체로 애초부터 확실한 경제적 성공이나 안정을 담보로 하지는 않는 예술가의 노력은, 바로 그런 이유로 ‘굶어 죽을지언정 빵보다는 장미를 택한다’거나 ‘그림 때문에 귀를 자른다’는 둥 딱히 반드시 예술성과 결부되지 않았어도 되었을 사례를 통해 보편화의 오류를 거쳐 신화화되거나, 반대로(그러나 같은 이유로) 부르조아나 한량들의 시간 때우기, 또는 엘리티시즘, 더 나아가서는 한낱 어린아이의 미성숙함 쯤으로 치부되고는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회의 일원으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각지대에서 ‘기타 등등’으로 존재하며 쓸모없는 잉여인간으로 부유하던 예술가들이 돌연어떤 부분에서 필요한 사람들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값을 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우리가 사실은 버티기 위해 종합곡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여기가 맹지인데, 자네 친구들 좀 불러서 건축 실험하고 그럴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하나 지어서 레지던시같은 것도 좀 하고. (밤이면 늑대들이 울부짖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섬이라 조용히 작업 구상하기에도 좋을 거야.”또는, “미술 해요? 어머 잘 됐다, 그림 그리고 싶으면 우리 동네 와요. 벽화 좀 그려 줘. 사람들한테 그림 알려지고 그러면 좋잖아? 나는 지금 빚까지 내어가면서(물론 그가 소유한 집이 있는 동네에) 마을 만들기 하고 있는거야.”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문화 예술계 언저리에서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을 가지고 최근에는 메이커스 문화나 신연금술, 인공지능 등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들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하여 활동하였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 지역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