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서촌 통의동에 거주하고 있다. 집과 사무실이 한 건물 안에 있는 직주근접의 삶이다. 이러한 삶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나의 졸저인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와 『무지개떡 건축』에 자세히 설명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건물은 개인 소유다.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내가 운영하는 건축설계사무실을 비롯한 몇 개의 작은 회사에게 임대하고 있다. 즉, 나는 지주이며, 건물주이며, 임대인이다. 나에게 원고 청탁을 한 배경에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미리 밝혀 둔다. 소유 지분의 상당 부분은 당연히 대출로 해결했으며 그 원리금의 상환을 위해 노력 중이다. 서촌으로 이사 온 지 햇수로 14년째가 되었다. 따라서 완전히 ‘굴러온 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박힌 돌’도 아니다. ‘이웃사촌’이라는 표현은 낯간지러워서 못쓰겠다. 필요할 때 만나서 서로 상의하거나 힘을 합치는 정도다. 이사 온 직후 도시가스 간선 설치 문제를 두고 이웃적선동과 해묵은 갈등이 불거졌을 때 그랬고, 눈을 치우거나 골목길 주차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그리 한다.
(주차와 관련해서 대놓고 싸운 경험 또한 물론 있다.) 몇 년 전 인근의 작은 공원이 사라지게 될 상황이 되었을 때는 사회적 명분이 뚜렷했기 때문인지 이웃들 못지않게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많이 모였고 결국 없던 일로 만들었다. 긴밀하게 참여해 온 지역 단위의 움직임은 ‘오픈하우스 서촌’이나 보안여관이 주최하는 벼룩시장 정도다. 자율 방범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다소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이웃 및 경찰들과 순찰을 돈다. 결론적으로 이웃과의 관계는 이전에 아파트 단지에 살았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어차피 도시에서의 삶은 여러 변수들로 구성되는 인간관계의 맵핑mapping에 의해 결정된다. 공간적 인접성, 오래된 역사, 골목길과 같은 물리적 요소 등은 그 변수의 일부일 뿐이다.
직업적으로는 스스로를 ‘동네 건축가’라고 불러왔다. 동네에 대해서 주민으로서의 입장을 넘어서는 건축적, 역사적 차원의 관심이 있다. 그리고 서촌 및 북촌, 광화문 일대를 대상으로 다수의 작업을 수행해 왔다. 지금은 작업 범위가 넓어졌지만 건축가로서의 나의 경력이나 건축적 사고의 많은 부분은 이 지역에서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동네의 여러 문제에 매우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노라고 할 정도는 아니기에 그런 점에서 ‘동네 건축가 1.0’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개념도 앞으로 좀 더 진화하기를 바란다. 여기까지가 주로 사실의 기술이라면, 이제부터는 의견을 제시한다. 오늘날 서촌의 화두는 단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그리고 디즈니랜드화disneyfication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맞물려 있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일시할 성격은 아니다. 디즈니랜드화하지 않고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고 또 그 반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젠트리피케이션의 경우, 이것은 시장 경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일종의 부작용이므로 사회적인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의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시장 경제 자체를 부정하며 완전히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인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하며, 이 글의 주제나 사회적 통념과 거리가 있으므로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제도적 개입이다. 시장 경제 자체는 인정하되, 법과 제도 및 행정력을 통해 그 부작용의 해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아무리 민주적인 사회라도 각종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적 개입은 존재하며, 그것은 종종 놀랄 정도로 강력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프랑스의 파리 시가 얼마 전에 발표한 구도심 내 주거용 건물의 매매에 대한 제한 규정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각종 건축 심의에서 제시되는 내용들도 그러하다. 2016년 현재 서촌 일대에 적용되고 있는 건축 행위에 대한 강제적 제약은 법리적으로는 심지어 위헌 가능성도 제기될 정도다. 하지만 사유 재산권에 대한 이러한 공공적 개입 자체를 원론적으로 부정하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임대차와 관련된 합리적인 법률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할 의무가 있는 국회보다 일선 행정 기관이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적극적인 것은 역설적으로 흥미롭다. 마침 몇몇 지자체가 앞장서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 그 좋은 예다.
건축가 황두진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2년 서촌으로 이주한 이후 구도심에서의 경험을 배경으로 자신의 건축적 생각을 키워 왔다. 이 과정에서 현대 건축가지만 한옥 작업을 병행하게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가회헌’, ‘춘원당 한방병원 및 박물관’,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원앤원 빌딩’ 등이 있다.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2005, 해냄), 『한옥이 돌아왔다』(2006, 공간사), 『무지개떡 건축』 (2015, 메디치미디어) 등을 펴냈다. 서울시 건축상, 대한민국 한옥 대상, 대한민국 공공 디자인 대상,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문화 유산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