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특이한 분위기의 보라색 책 한 권이 주목을 받았다.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재직 중인 한국인 교수 한병철의『피로사회』이다. 이 책은 면역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 시대의 신경증적 정신질환으로부터 오늘날의 사회를 해석하는 통찰을 보여준다. 소비주의와 세계화의 특징으로서 나타나는 ‘이질성과 타자성의 소멸’, 즉 ‘탈경계’의 사회는 곧 부정과 저항이 많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말로 긍정과 수용이 과잉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아무런 면역반응도 일으키는 않는 정보와 자극의 과잉 속에서 낙오가 되지 않기 위해 자기착취의 마법에 걸리고, 끝내 소진되고 피로한 상태에 이르러 신경증적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것이다.
이 논의에서 ‘탈경계’로부터 발생하는 긍정의 과잉이 현대사회를 피로하게 만든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이것은 경계의 벽을 허무는 통합, 융합 등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는 오늘날 사회 전반의 발전 방향과 명백히 대치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탈경계는 현대조경이 꾸준히 고민해온 숙제였기 때문이다.
현대조경은 이론과 실천, 자연과 인간, 도시와 공원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이론과 설계기법을 생산해왔다. 하이라인(highline), 프레쉬 킬스(freshkills park) 등 현대조경설계의 트렌드를 이끄는 공원을 다수 설계한 미국 조경가 제임스 코너(James Corner)는 조경에서 이론과 실천의 분리가 가져오는 위기를 극복하고자 땅과 인간의 관계, 자연과 문화의 세계, 존재에 대한 가치 등을 조경의 이론적, 철학적 전거를 추적한 바 있다. 버지니아대학교 교수이자 조경이론가, 비평가인 엘리자베스 마이어(Elizabeth K. Meyer)는 사회 전반으로 가중화되는 환경오염문제 속에서 자연계로부터 멀어지는 문화적 태도를 비판하며, 공간 구축 과정에서 생태적 가치를 통합시키는 조경설계의 궁극의 목표를 제시하였다. 20세기 후반에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이라고 하는 개념이 학계 전반에 선언되기도 했다. 이는 전 지구적으로 도시화 현상이 가속되는 상황에서 자연과 도시의 이분법이 이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변화될 필요가 있음을 논의한 결과로, 경관을 매체로 한 도시의 통합적 구축 이론이자 방법론으로 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