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ve Senses Garden
빗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비 소식을 들은 날이면 설렘으로 그녀를 기다린다. 한번에 달려오면 좋으려만 한밤중이 돼서야 찾아온다.
감나무 잎 새에 떨어지는 소리, 파초에 떨어지는 소리, 처마 위에서 마당으로 떨어지는 소리, 장독대에 떨어지는 소리,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소리, 자갈 위에 떨어지는 소리,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바람에 날리는 소리 등. 오감만족 감성디자인의 소재로 비처럼 좋은 소재는 없다. 비가 지닌 자체의 속성도 있지만 세상의 재료와 만나 오케스트라를 연출한다.
지난 6월 성균관대 경관연구실과 하거원을 답사했다. 정기호 교수님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제는 문헌 속에 나타난 정원유적의 추적이었다. 우리 문화는 아직 복원에 있어서는 매우 소홀한 것 같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확한 단서도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추하고 또 그것을 너무 빨리 가시화해 버린다. 그 날 답사를 한 학생들은 어떤 것이 원형이었는지, 현재 상태가 어떤 층으로 나눠져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복원된 활수담도 예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였다. 답사 온 학생들은 문헌에서 나타난 하거원에서 동쪽 외원의 유구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앞에서 묘사된 활수담, 수미폭포는 선비들의 이상향인 선경의 세계다. 하지만 실제는 활수담은 약 1.5㎡ 정도의 규모, 수미폭포의 높이도 약 1.2m 정도이다. 삼근정사 동쪽에 흐르는 조그만 개울물을 막아 만든 것이다. 마치 창덕궁 소요암에 새겨진 어제시(飛流三百尺 遙落九天來 看是白虹起 飜成萬壑雷)처럼. 더욱 유구조차 발굴되지 않은 상태이니, 초보 답사객들은 동쪽 외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원림은 과장이 심했다. 담양 명옥헌 그 이름의 유래는 정자 곁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옥과 같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학원시절 그 실체를 찾으려 명옥헌에 자주 들르곤 했다. 정자 곁을 흐르는 계곡도 찾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정자에 홀로 앉아 배롱나무를 보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상지(上池)와 하지(下池) 사이, 돌틈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가 불과 5~10cm정도의 단차로 떨어지고 있었고 돌 틈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맑았던 것이다.
선비들의 정원 경영은 과장이 심할 수 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에서 느낄 수 없는 조그만 자연도 우주로 받아들이는 그 마음이 정원이 아니었을까. 한 눈에 매료시키는 외국의 정원은 많다. 그 웅장함에 놀라기도 한다. 조선조 선비들의 정원은 자연의 소소한 세계에서 ‘물고기의 움직임’, ‘구슬같은 거품’, ‘떨어지는 복숭아 꽃잎’과 같은 시어, 생명력 있는 의성어를 통한 청각적, 시각적 효과(획연, 영연, 형연), 고사를 통한 심리적 연상효과 등을 이용해 한 폭의 동양화와 같은 선경 세계의 표현한 문학정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