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laint about Bench
(중략) 공원을 만났습니다. 아이들 놀이터가 있고 화장실과 벤치 몇 개가 놓여 있을 뿐인 공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반가웠습니다. 화장실이나 놀이기구나 벤치 등이 모두 새것이었습니다. 그곳이 공원으로 조성된 지 얼마 안 되어 보였습니다. 공원 둘레에 서 있는 나무들은 빈약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팍팍한 길을 걷다가 만나게 된 공원은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한숨을 내쉬면서 걸음의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화장실에도 다녀왔습니다. 다리쉼을 하기 위해 빈 벤치에 걸터앉았습니다. 벤치는 등받이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한 사람씩 따로따로 떨어져 앉으라는 듯 세 칸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쇠로 만든 낮은 팔걸이로 칸을 나눴습니다. 등을 편하게 기대고 앉아 어깨의 긴장을 풀고 싶은 사람은 앉을 수 없는 벤치였습니다.
(중략)
나는 벤치에서 일어났습니다. 등받이가 없어서 어깨를 옹송그린 채 잠시 걸터앉는 것만이 허용된 벤치였습니다. 공원의 벤치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화단 턱에 걸터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노인들의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나 연인들 심지어 그 동네 주민들의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벤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드러눕는 것은 안 됩니다. 입을 맞추거나 끌어안고 있는 것도 안 됩니다. 옆 사람과는 적당히 떨어져 앉아 있어야만 합니다. 오래 앉아 있어도 안 됩니다. 잠시 걸터앉아 있는 것만
허용됩니다.”
(중략)
늦도록 노닥거릴 수 있는 여름밤 공원을 상상해 봅니다. 도시 공원에서 잠든 아이를 안은 채 말놀음을 놀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부질없는 상상인 줄은 압니다. 그래서인지 느리게 노닥거릴 수 있는 여름날밤 공원에 대한 상상은 가닿을 수 없는 낙원의 꿈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공원을 나서기 전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벤치들은 여전히 모두 비어 있었습니다. 벤치의 말이 아니라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의 말이 들리는 공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저귀를 찬 갓난아기와 그를 돌보는 엄마가 돋보이고 그들의 말이 들리는 환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노인들처럼, 느리게 걷는 것이 가능한 구역이 어딘가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