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 of Chun Hyang(2)
사람들에게 정원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없다고 이야기한다. 정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넓은 잔디마당과 고급스러운 나무들, 연못 등이 연상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린왕자의 정원은 장미 한 송이가 전부였다. 김 교수님의 정원은 어린왕자와 같은 장미 한 송이는 아니다. 가냘픈 시인의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가슴속으로는 자연을 품었다. 그의 정원에는 자유롭게 날아오는 새가 있고, 바람이 있고, 달과 별이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모든 자연의 생명을 느낄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이 있다. 나는 그 정원을 시정(詩庭)이라 표현한다.
격식 없는 시골의 정원, 말끔하게 가꾼 텃밭에는 ‘그곳만의 영혼’이 있으며 자연의 언어가 살아 움직이는 곳이다. 그의 정원에 앉아 있으면, 자연의 색과 소리에 매료되며 그 순간 시인의 정원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정을 거닐고 있으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산책하는 커플과 공공 정원>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의 정원은 시인을 만드는 정원이며 예술적 영감을 주는 정원인 동시에 사랑을 꽃피우는 정원이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수많은 정원을 경영해 왔다. 민가, 별서, 정자와 누 등 장소 특성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주위의 낮은 구릉지나 계류, 뒷산에 의해 자연스럽게 영역이 설정되고 정자와 연못, 샘과 경물이 적절히 배치되어 풍류공간을 조성했다. 자연이 만든 선형線形과 더불어 직선적인 요소를 가미해 화계와 방형의 연못을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정원을 경영한다는 의미는 자신의 이상향과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자연의 순리를 근본으로 삼아 지세를 함부로 변형하지 않았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순리이기에 정원을 조성함에 있어서 물을 돌아 흐르게 하거나 폭포를 떨어지게 하거나 넘쳐나게 하였다. 조선시대 정원에는 계절의 변화가 민감하게 반영되었다. 봄이면 꽃과 신록이 움트는 것을 보며 생의 신비를 느낄 수 있고, 여름이면 시원한 녹음 밑에 한 낮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가을이면 단풍과 열매가 풍성한 결실의 시간을 만끽하며, 겨울이면 고독을 맛볼 수 있다.
(중략)
달빛을 탐내다 _ 이규보
산에 사는 중이 달빛을 탐내더니
물 긷는 병에 달까지 담았네
절에 가면 금세 알게 될 거야
물 쏟으면 달도 없어진다는 걸
우주의 세계가 펼쳐진 조선시대의 최고의 스토리텔링이다. 아마도 광한루에 담겨진 뜻이 있기에, 춘향과 몽룡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원의 묘미는 시인의 마음이 펼쳐질 때 그 의미가 풍부해진다. 비록 선현들의 호연지기와 호방함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광한루를 단순히 춘향으로만 도배하기에는 너무도 값진 문화유산이다. 용성관, 남원 구도심, 우주의 세계를 표현한 광한루, 삼신산과 오작교 등은 춘향과 추어탕에 눌려 그 본질이 사라지고 있다. 공간과 장소는 생성, 변화, 쇠퇴, 소멸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하지만 역사물을 다루기 위해서는 그 태생적 의미와 정신세계에 대한 탐색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퇴색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그 변화상과 본질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