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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색맹의 섬
Editor’s Library: The Island of the Colorblind
  • 환경과조경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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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 이민아 역 | 알마 | 2015

 

 

포스터의 “절대 현혹되지 마라”는 경고를 일종의 선전포고로 읽었어야 했다. 영화 ‘곡성’은 상징과 메타포, 블랙유머로 뭉친 ‘떡밥’을 관객들 앞에 던진다. 이미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의 증언에도 코웃음 치며 나는 절대 감독의 의도에 홀리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의를 하고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앉았다. 그렇지만 선로를 이탈한 기차처럼 폭주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당해내랴. 영화 초반부, 주인공 종구(곽도원 분)가 밥 먹고 나가라는 장모의 만류에 못 이기는 척 아침밥을 배불리 먹고 사건 현장에 지각할 때, 이 영화는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 데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 종구의 직업은 경찰이지만 그가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고 해결하는 방식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사와는 거리가 멀다. 종구는 허술하고 친근한, 우리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이다. 관객들은 그의 시선을 따라 정신없이 끌려다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관객들의 예상과 기대를 비껴가며 ‘들었다, 놨다’하는 영화의 장치는 대부분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 시각적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피해자들의 집마다 걸려 있는 해골을 닮은 금어초, 속을 알 수 없는 무당 일광(황정민 분)이 미끄러지듯 차를 몰며 등장할 때 배경으로 보이는 구렁이 같은 능선과 도로, 일본에서는 길조로 보지만 한국에서는 흉조를 뜻하는 까마귀 등의 상징적 이미지가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관객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주입시킨다. 주인공 종구 또한 ‘보는 것’에 집착한다. 일본인을 조심하라고 충고하는 무명에게 “직접 봤냐”고 추궁하다가 급기야는 “내 눈깔로 직접 봐야 쓰겄다”며 나선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어떤가. 종구와 관객이 ‘본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사건의 전말은 여전히 알 수 없다.

만약 우리의 시각적 정보가 제한적이라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최근에 읽은 올리버 색스의 『색맹의 섬』은 태평양 한가운데 미크로네시아 제도의 조그만 섬핀지랩에 살고 있는 색맹 원주민의 삶, 풍습, 역사, 섬의 생태 등을 관찰한 여행기다. “완전한 색맹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보는 세계는 어떨까? 그 사람들은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 자체를 느끼지 못할까? 그들도 우리가 보는 세계 못지않게 강렬하고 활기 넘치는 세계를 갖고 있을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뮤지코필리아』,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등 뇌와 정신 활동에 관한 서적을 10여 권 저술한 저명한 신경과 전문의인 작가는 단순한 의학적 호기심을 넘어 색맹의 ‘삶’에 관심을 갖고 색맹의 섬을 찾아 떠난다.

그가 도착한 핀지랩에서는 색맹을 ‘마스쿤’(‘안보인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이 섬 인구의 3분의 1이 마스쿤 유전자 보유자이며, 전체 인구 약 700명 가운데 57명이 색을 완전히 구별할 수 없는 전색맹이다. 세계 다른 지역에서 색맹의 발생률은 30,000분의 1 미만이지만, 핀지랩에서는 12분의 1에 달한다. 이 섬에서 색맹은 불쌍한 장애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불편할 뿐인 흔한 질병이다. 올리버 색스는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뭔가를 검사할 때, 대개 상당히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핀지랩의 색맹 검사는 “마을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즐겁고 경쾌한 분위기”였다고 묘사한다.1

올리버 색스의 가장 큰 미덕은 환자를 ‘치료 대상자’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병의 원인을 탐구하고 치료방법을 연구하지만, 환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편견 없이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가 넘친다. 그는 색맹 원주민이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일반인보다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고 기술한다. 색맹원주민은 밝기만으로 색을 구분하기 때문에 색채의 대비가 뚜렷하지 않은 색깔들을 쉽게 구분해 아름다운 무늬의 깔개를 만들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도 명암을 잘 구분할 수 있어서 밤낚시를 할 때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기도 한다. 한번은 올리버 색스의 일행 중 한 명이 노란색과 녹색을 구분할 수 없는 색맹 원주민에게 바나나가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묻는다. 원주민은 대답 대신 연두색 바나나를 내민다. 아직 푸른 기가 돌지만 껍질을 벗겨보니 속은 완전히 익은 바나나다. 놀라워하는 색스의 일행에게 원주민은 말한다. “색깔만 보는 건 아니에요. 우린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냄새 맡고, 또 알아요. 여러분들은 그냥 색깔만 보겠지만 우린 모든 걸 따지는 거지요!”2

지난 5월, 문경원 작가의 프라미스 파크 워크숍, ‘미래 공원의 제안’이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려 취재를 다녀왔다. ‘향’으로 공원을 탐구한다는 기획을 처음 들었을 땐 막연하고 추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양한 감각을 이용해 구체적인 개념을 만들어가는 시도와 과정 자체가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문경원 작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시각이 지배하는 현대인의 얕은 사유 방식에 경종을 울리는 새로운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기대했던 결과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와 연구 방식은 ‘공원’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예술의 언어로 표현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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