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형 ([email protected])
제방이 무너져 내렸을 때
‘제방이 무너져 내렸을 때When the Levees Broke’는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뉴올리언스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가족을 잃은 주민들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그들은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에 접근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해안 제방이 이를 충분히 막아낼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앙은 카트리나 상륙 사흘 후 새벽에 일어났다. 뉴올리언스를 보호하고 있던 폰차트레인Pontchartrain 호의 제방이 붕괴되어 멕시코 만의 검은 바닷물이 순식간에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은 뉴올리언스 지역의 80% 이상이 물에 잠겼다. 2만 명 이상이 실종 혹은 사망했고 8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로써 화려했던 재즈의 도시가 종말을 알리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에서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가장 취약한 지역이었던 뉴올리언스는 거대한 재난 이후의 상황을 감당하지 못했다. 치한을 위해 ‘사살권’을 발효하는 등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했다. 약탈과 방화, 주민 간의 총격전, 성폭행, 구조대와 이재민의 마찰, 시체썩은 물과 토양 속의 오염 물질이 뒤섞인 식수…. 강력한 인공 구조물로 폭풍을 막으려고만 했지, 폭풍이 도시를 붕괴시킨 이후 사회와 환경을 재건하는 방법과 이전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계획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카트리나는 완벽한 재난 대응법은 없다는 것을 일깨웠다. 오히려 재난을 받아들임으로써 피해를 줄이고 피해를 입은 지역을 회복시킬 수 있는 대응법이 더욱 중요했다. 이에 미국 사회는 회복력, 즉 리질리언스resilience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 단체인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과 손을 잡고 1조 원 규모의 ‘국가 재해 리질리언스 대회National Disaster Resilience Competition’를 개최했다. 이는 리질리언스 개념을 도입하여 대형 재난 대응 계획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뉴욕, 뉴저지, 뉴멕시코, 시카고 등 많은 해안 도시가 이에 동참했다. 프로젝트는 조경계획과 도시계획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미국조경가협회ASL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는 2014년 학술 대회 주요 테마로 ‘리질리언스’를 선정해 계획과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과 관리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시킬 방안을 논의했다. 리질리언스라는 실천적 개념을 미국 조경계에 환기시키기 위한 방법이었으며, 이를 시작으로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조경 정책에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도시 조경에 집중되어 있던 미국 조경계가 방재, 해안 복원, 기후 변화, 사회 생태 시스템 등 거시적이고 복잡한 시스템에도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리질리언스 개념은 지속가능한 사회 구현의 전략적 수단이자 예측 불가능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어젠다로 급성장했다.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 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연재 순서
1.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 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2. 리질리언스 개념의 등장과 확장
3. 새로운 사고의 틀, 리질리언스 사고
4.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전략, 적응과 전환
5.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1: 도시 리질리언스
6.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2: 해안 리질리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