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글에서는 비정통성, 기회주의, 그리고 책임감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통해 나의 설계 방법론이 구체화되기까지의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호에서는 실제 설계를 함에 있어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여느 조경가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설계를 할 때 연구, 분석, 개념, 프로그램 설정, 공간의 구상과 같은 과정을 거치며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투시도를 만든다. 특별히 남과 다른 것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하는 것은 아마 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남과 다른 것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완전히 희한한 새로운 것을 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하더라도 남들과는 다른 방법을 찾아서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연구 방법론은 가설을 설정하고 연구를 통해 이를 검증한다. 전통적인 설계 과정도 이와 비슷해서 합리적 분석을 통해 초기에 설계의 전제와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이용해 최종적으로 도출되는 논리와 결과를 정당화시킨다. 이와 상반되는 방법이 탐구적인 연구exploratory research다. 어떠한 가설이나 전제를 갖고 특정한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다양한 방향을 연구한 후 여기에서 나타나는 증거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구의 궁극적인 방향이 발견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탐구적 연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1996년 하버드 GSD에서 렘 콜하스Rem Koolhaas와 함께 하버드 도시 연구 프로젝트Harvard Project on the City를 수행할때였다. 연구 첫 시간에 모든 연구원이 각자의 연구 주제와 이를 위한 가설thesis을 만들어 왔는데 연구를 총괄한 콜하스가 엉뚱한 주문을 했다. 모든 가설을 버리고 백지에서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가설을 원하지 않는다.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는 연구는 이미 답을 알고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잘 되어도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설과 입증의 전통적인 연구 방식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이와 같은 탐구적인 방법론은 획기적인 것이었는 데,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열린 결과를 추구하는 연구방식이 지금까지 나의 설계 방법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탐구적 접근은 당연히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기대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 탐구적 방법론에서 연구와 분석은 결과를 정당화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차태욱은 미국 뉴욕에 위치한 수퍼매스 스튜디오(Supermass Studio)의 대표로 미국을 근거로 한 17년간의 국제적 설계 경력을 통해 설계 및 프로젝트 운영, 시공에 이르는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하버드 GSD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뉴욕, 매사추세츠,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에 공식 등록된 미국 공인 조경가로서 친환경전문자격증(LEED)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