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면서도 화려하고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하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단순하지만 있어 보이는 그런 느낌으로 가주세요.” 흔히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막연하고, 그러다 보면 모순되는 소위 갑의 요구를 희화화한 우스갯소리다. 매달 새로운 콘텐츠를 편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런 주문을 디자이너에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혹은 매달 반복되는 꼭지의 틀 안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게도 된다. 잡지의 지면은 크게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된다. 혹은 콘텐츠와 이를 지면화하는 편집 디자인으로 구성된다. 내용(텍스트)도 중요하지만 독자의 눈을 먼저 사로잡는 디자인은 잡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다.
지난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에는 『환경과조경』 리뉴얼 준비가 한창이었다. 리뉴얼을 위한 T/F팀이 꾸려지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회의가 이어졌다. ‘새로운 시작’을 천명한 만큼 콘텐츠뿐만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당시 편집 디자인 리뉴얼을 위해 영입했던 아트디렉터 노희영 실장(반하나 프로젝트)은 새로운 잡지에서 “중성적이고 묵직한 느낌으로 전문지라는 점을 부각”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말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막연한 이 목표를 퍼즐을 맞추듯이 만들어가며 1월호를 기다리는 설렘도 커져갔다.
좀 더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판형이 작아졌고, 지질은 가볍고 광택이 나지 않는 종류가 선택되었다. 판형, 지질, 표지 콘셉트, 제호 디자인 등 모든 요소를 결정하는 데 많은 시안이 필요했고(때로는 지나치게 많은 시안이 결정을 어렵게도 했고), 결정을 위한 난상토론이 이어졌지만, 지질을 바꾸는 데는 좀더 복잡한 고려와 결단이 필요했다. 종이는 크게 매끈하고 반짝이는 종류와 종이 본연의 느낌이 살아있는 질감을 가진 계열이 있다. 아트디렉터는 후자를 택했고, 그 자연스러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표지에 코팅을 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반면 마케팅 부서에서는 코팅을 하지 않을 경우 책이 쉽게 훼손되고, 뒤표지 광고의 색감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우려를 보였다. 편집부 내부에서도 의견이 나누어졌다. 잡지란 본래 손때가 묻고 닳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지질의 은은함이 조경 잡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었다. 여전히 지질에 관해서는 독자들의 선호가 다르겠지만, 무사히 12번째 책을 만들고 있는 지금, 특히 책의 개성을 수용해준 광고주의 아량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매달 반복되는 필수 과정은 바로 표지 디자인을 결정하는 일이다. 마감 기간에 출근하면 회의 테이블 위에 새로운 표지 시안들이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해장국을 먹으러 간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표지를 정할 때면 편집실 한가운데 있는 회의 테이블에 시안을 늘어놓고, 편집주간부터 막내 기자까지 모두들 수평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며, 주장과 회유와 설득의 장이 펼쳐진다. 특히 1월호 표지는 『환경과조경』의 변화를 가장 먼저 드러낼 상징성이 컸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과 토론이 이어졌다. 당시 여러 이미지를 활용한 수많은 안이 제시되었고, 여러 차례의 투표와 공방이 오고갔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때 극적으로 ‘백지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사진 없이 단색면에 제호와 로고만 들어가는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2월호에 실린 공간지 심영규 기자의 리뷰처럼 “가장 큰 변화는 표지다. 단색과 변경된 영문 제호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줬다.” 가끔 고개를 들어보면, 여전히 편집실 게시판 한 가득 붙어있는 1월호의 시안들이 보인다. 그 가운데 어떤 것도 선택되지 않았지만, 당시 나왔던 많은 아이디어들은 그 뒤로 이어진 호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실현되었다.
그밖에도 표지를 확정하는 과정은 매달 에피소드를 남겼다. 2월호에서는 파크 킬레스베르크 ‘잔디 쿠션’ 사이에 앉아있는 여성의 아름다운 목선이 드러나는 사진을 쓸 것인가, 아니면 아이가 걷고 있는 사진을 쓸 것인가를 두고 남녀가 나뉘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매달 표지색을 고르고 책이 나온 후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일도 흥미로웠다. 핫핑크를 염두에 두고 만든 7월호는 고무장갑 핑크라는 품평을 듣기도 했다(개인적으로는 고무장갑의 핑크색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그마한 팬톤 컬러칩을 늘어 놓고 로고에 올라갈 박을 고르며 인쇄를 마친 결과물을 상상하는 일은 기대와 걱정 모두를 불러일으킨다.
리뉴얼 이후 내지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편집 레이아웃도 바뀌었지만, 유청오 사진작가의 영입은 좀더 자신감 있는 편집을 가능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의 순간에는 수많은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진 한 컷을 배열하더라도 정보가 많이 담긴 사진을 고를 것인지, 아니면 보기에 좋은 사진을 전진 배치할 것인지, 혹은 어떤 사진이 메인을 차지할 만큼 대상을 잘 표현하는지 그 선택을 두고 디자이너와 함께 고민을 거듭한다. 예를 들어 ‘ 름모루’(5월호)처럼 선형의 시퀀스를 이루는 공원의 경우, 한정된 지면 안에서 대부분의 영역을 보여주며 정보를 전달하는 데 충실할 것인지, 인상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조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했다. 돌아보면 너무 많은 정보를 담으려다 가독성이 부족해진 것은 아닌지, 소화불량에 걸린 독자가 많지는 않았을지 염려도 된다. ‘부산시민공원’(6월호)의 경우는 인물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사진이 실려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시설물이나 각 공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할 수도 있다는 편집부 자체 리뷰 결과도 있었다. 결국 에디터와 디자이너 사이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적정선을 찾아내는 것이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중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각종 기호·구호 식품을 나누며 동지애를 다지는 것 또한 좋은 지면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12월호 마감을 앞둔 지금도 어느 기자는 자신의 인터뷰이를 좀 더 돋보이게 할 방도를 찾느라 디자이너의 모니터 앞을 서성이고 있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환경과조경』을 보면 순식간에 1년이 흘렀음을 느낀다. 책등으로 보이는 다양한 색깔만큼이나 매호 느꼈던 기대감과 아쉬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올 한해 겪었던 시행착오만큼 성장했기를 바라며 2015년을 기다린다. 남들보다 한 달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