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경관론
프랑스가 경관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조경에 접근하며 개념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물론 조경에 대한 학문적 접근의 토대는 그 이전에 마련되어 있었던 상태였다. 17세기의 조경가 브와소(Jacqures Boyceau)의 『정원기법서(Traite de jardinage)』에서 알 수 있듯이, 전문적인 조경 서적이 출간되고 조경 작업의 텍스트로 활용되는 전통은 이미 수세기에 걸쳐 프랑스 조경계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여러 세기 동안 항상 기본적인 텍스트가 존재했고 조경에 대해 체계적이고 미학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은연중에 정원사나 조경가 사이에서 당연시되고 있었다. 조경은 원예와 달리 녹색 공간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작업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조경 이론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잘 보여주며, 무엇보다도 르네상스 양식이 프랑스에 전파되며 프랑스 고전주의 양식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이 시대의 조경이 단순한 원예 작업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역사적인 기록들에 비추어보더라도 정원이란 용어에 항상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조경 작업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고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장기간 축적되며 정원의 협소한 의미는 희박해지고 좀 더 광범위한 경관의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었던 것이고, 마침내 20세기에 들어 정원을 생각할 때 경관에서부터 생각하는 폭넓은 사고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20세기에 일어난 ‘정원에서 경관으로의’ 개념 전이를 보면 모더니즘에서 포스터모더니즘으로 진행한 시류를 읽을 수 있다.
정원에서 경관으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포레스티에(J. C. N. Forestier)는 1908년 『대도시와 공원의 시스템』이란 책을 발표했고, 몇 년 후인 1913년 앙드레아 베라(André Vera)는 『새로운 정원』을 출간했다. 여기서 말하는 도시의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개혁 정부가 들어선 후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같은 이상적 도시에 영감을 받은 것이었고 공원의 개념에도 아테네 학당과 같은 철학자들의 사유 공간 또는 학문과 문화의 전당으로서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18세기 말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영국 풍경화식 정원양식에 따라 고전주의 조경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낭만주의 조경이 파리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공원은 19세기에 일반화된 문화 현상이자 20세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대중문화의 장으로서 중요한 사회 변화의 한 획이되었다. 이 시기의 공원 문화는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를 모델로 신전이나 폐허, 그리스 신화등을 소재로 가져왔고 그런 점에서 유럽의 고대문명에서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 19세기 모더니즘과 맥락을 같이 하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 풍경화식 정원과 19세기 프랑스공원의 큰 차이점은 포레스티에의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공원을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과학적 태도, 즉 고대 정원과 고전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과는 조금 다른 태도였다. 이런 신학문적 태도는 20세기 이후 포스트모던 경관론을 전개하게 되는 프랑스 조경의 특징이 되기도 하는데, 동시에 또한 19세기의 전체적인 유럽 사회 분위기에 기인하기도 하는 것이다. 19세기는 무엇보다도 과학이 예술을 앞서나가며 예술을 선도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예술의 신경향들, 즉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오르피즘, 표현주의, 기하하적 추상주의 등의 전개가 과학에 의해 새롭게 눈을 뜬 예술의 경향들이다. 포레스티에는 그 동안 발전되어 온 공원과 도시를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시스템의 체계를 정리하며 조경학의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조경학은 따라서 정원을 기반으로 하는 모더니즘에서 시스템과 경관을 기반으로 하는 포스터모더니즘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여기서 경관은 새로 등장하는 공원문화를 과학적으로 정의하면서 발전한 추상적 관념이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공원과는 다른 것이었다.
대안적 경관론:
포스트모던 경관과 한국식 내외이원론內外二元論
이처럼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 조경학은 그 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조경에 대한 욕구로 발전될 수밖에 없었고, 앙드레아 베라의 ‘새로운 정원’을 비롯해 1925년 가브리엘 게브레키앙(Gabriel Guevrekian)의 유명한 ‘물과 빛의 정원’과 ‘빌라 노아이유 정원’ 등이 결과적으로 빛을 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문화적 맥락이었다. 새로운 시도는 계속 나타났다. 포레스티에는 설계 노트를 책으로 묶어 내며 새로운 정원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고, 아쉴 뒤센느(Achille Duchêne)는 『미래의 정원』을 출간하였다. 도시화와 함께 찾아온 사회 변화는 이 시대에 이미 환경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1930년 통과된 경관 지구 보존법이 그 예이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옛 유산이 훼손되고 특히 과거로부터 보존되어 오던 경관이 파괴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근저에는 당시 풍경화가들의 역할이 컸고 또한 문화가 사회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경관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경관에 대해 토론하고 경관을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개발을 저지하고 경관을 보존한다는 사고는 경관에 대한 이런 인문학적 의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포스트모던 경관론이란 이러한 모든 새로운 인식의 체계를 포함한다. 정원은 모던의 갑갑한, 어쩌면 구시대의 먼지가 가득한 개념이지만, 경관은 포스트모던의 시원하게 열린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닫힌 공간에 기반을 둔 중국의 원림이나 일본의 정원보다는 외원과 내원의 소통을 통해 계속 변화해가는 경관 개념, 즉 내외이원론內外二元論으로 접근했던 한국 정원이 훨씬 더 유럽의 포스트모던적 경관 인식 체계와 가깝다. 한국정원은 21세기 이후 등장하는 경관의 신개념들을 이미 포함했던 매우 추상적인 정원이다. 전통적인 시경이나 관축론에서부터 포스트모던 경관론의 추상성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안적 경관이 될 수 있다.
박정욱은 파리 소르본느 4대학에서 고고미술사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술평론으로 고암논문대상을 받은 후 이응노 미술관 소장으로 일하며 ‘세브르도자기’전, ‘이응노 롤랑 바르트’전 등을 기획했다. 프랑스 국립사회고등과학원(EHESS, Paris)의 자크 레나르 교수, 장 폴 아고스티, 지아니 부라토니, 장 샤를 피조 등과 함께 Ars & Locus 연구원을 창설하여 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세트 출판그룹, 쿠베르탱 재단, 파리한국문화원, 뉴욕 모마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파리 루브르 미술관, 파리 시 시테 데 쟈르 등과 함께 전시 기획과 도시설계, 아트 프로젝트 등을 유럽 및 미국, 한국 등지에서 수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