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로마군에 의해 가족을 잃은 마일로는 노예 검투사다. 대규모의 검투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폼페이에 방문한 마일로는 영주의 딸 카시아와 사랑에 빠진다. 마일로는 경기에 참여해 사투를 벌이는데 경기가 절정에 달한 그때, 베수비우스 화산이 터지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된다. 마일로와 카시아는 살아남기 위해 도시를 벗어나려 사력을 다하지만 역부족임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기로 결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를 나눈다. 그 순간 고온의 화산재가 도시를 덮어버린다. 79년 8월 24일 화산 폭발로 폼페이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2014)’은 폼페이에서 발굴된 실제 인간 화석을 모티브로 삼았다. 폼페이는 1592년 한 농부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서로를 끌어안은 연인의 화석을 비롯해 유독가스와 화산재를 피해 망토로 입을 가린 남자,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감싼 채 쓰러져 숨을 거둔 여자, 정원으로 피신한 상태에서 죽은 사람들이 화석으로 출토되었다.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 안에서 발굴된 희생자는 총 1,047명이다. 그중 103건이 캐스트로 제작되었고 일부는 시체의 체적과 형태, 자세가 잘 보존돼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에서 열리는 기획특별전 ‘로마제국의 도시 문화와 폼페이’에서 그 현장을 만나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폼페이에서 출토된 조각품, 장신구, 벽화, 캐스트 등 298건의 다양한 유물을 선보여 고대 로마제국의 화려한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폼페이 유적을 조명한다.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도시다. 사르누스 강 하구에 위치한 항구 도시 폼페이는 로마인들에게 각광받는 휴양지이자 상업지로 번성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발굴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로마 문명은 서양 문명의 본류로 예술과 철학, 종교, 과학,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현대 문명의 원형을 볼 수 있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 고대 사람들의 생활문화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데, 폼페이 유적은 화산 폭발로 당시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정지된 상태로 묻혀 있어 고고학적 가치가 높다. 당시로서는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후대에는 귀중한 사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폼페이 회화에서 자연 풍경은 모든 그림의 배경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화와 도시 풍경, 신전, 항구와 바닷가 저택, 목가적인 장면 등을 그렸다. 전시품 중에는 집 내부의 벽을 장식하던 벽화들이 대거 전시되었는데,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정원 벽화는 단연 압권이다. 정원 벽화는 4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실제 건물 벽면을 장식하던 크기 그대로 옮겨와 전시장 높이를 넘어서는 웅장함을 자랑한다. 때문에 3면은 벽면에 그대로 재현되었고, 반원형의 상단부 1면은 다른 벽면에 전시되었다. 정원 속에 심긴 꽃과 나무가 수종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물 수반과 가면 등의 점경물, 새가 노니는 모습을 통해 당시의 정원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정원 벽화가 전시된 섹션은 직사각형으로 공간이 구획되어 있는 데, 둘레를 실제 기둥과 같은 건축적 양식으로 재현해 놓아 전시물을 로마인들이 감상하던 느낌대로 간접 체험하는 효과가 있다. 폼페이에서는 실제로 정원 그림에 건축 구조를 도입해 실내 공간에서 외부로 개방되는 구조를 통해 실제 자연을 보는 듯한 효과를 연출했다. 당시에는 정원을 가꾸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이는 지속적으로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건축물의 경계 없이 벽 전체를 마치 정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화려함을 장식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밖에 도시 곳곳에 세워졌던 신들의 조각상과 화석으로 남은 젊은 여인의 팔을 두르고 있던 금으로 만들어진 팔찌와 장신구 등이 호화로웠던 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상점에서 구워져 판매되었던 빵이 그대로 굳어진 화석, 와인을 담았던 항아리, 저울과 추등은 활발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던 당시의 역동적인 시대상을 전달해 준다.
아름다운 예술과 풍요로 가득 찼던 고대 로마제국의 도시 그리고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비극의 도시. 폼페이는 극과 극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폼페이 전시회는 1800년 전의 찬란했던 도시의 유산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처참했던 화산 폭발의 현장을 증언한다. 대비되는 두 개의 상황은 영광의 시간보다 자연 재해로 한 순간에 몰락의 길을 걸은 참사의 시간을 더욱 강렬하게 인상에 각인시킨다. 전시는 전반적으로 화려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지만, 마지막 섹션의 ‘최후의 날’을 맞이하면 숙연함이 더 짙게 남는다.
이곳을 찾은 날,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전시관을 점령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도슨트 설명을 듣기 위해 어머니 몇 분이 인솔해 오신 모양이다. 설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섹션을 옮겨 다니는 모습이 마치 자기들이 로마군이라도 된 냥 전투적이다. 어려운 질문도 호기롭게 받아낸다. 여유롭게 감상하기에는 짜증이 일기도 하지만, 일견 대견하다. 조심스레 대열에 합류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종일관 북적북적하더니 폼페이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섹션에서는 분위기가 잠잠해졌다. 두 개의 시간을 공유한 아이들은 전시관을 나서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