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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풍경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10주기 회고전
  • 양다빈
  • 환경과조경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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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Stock, Magnum Photos

 

물 위를 뛰어 건너는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한 남자를 포착한 사진(‘생 라자르 역 뒤에서’, 파리, 프랑스, 1932)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결정적 순간’의 미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결정적 순간’이란 풍경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외부 세계에 대한 작가만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다는 개념으로, 미국과 프랑스에서 출판된 카르티에-브레송의 작품집 제목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사진 한 컷에 담겨지는 순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구성하는 사물들이 정돈되고 조직화되어 미학적으로 특정한 의미를 띠는 어떤 ‘절정Clement Cheronx’의 순간을 의미한다.

스토리가 풍부한 이 사진은, 이번 전시를 구분하는 세개의 큰 구성 중에서 ‘거장의 탄생-그의 초기작부터 1947년 MOMA까지’에 속하는 카르티에-브레송의 초기 작품 중 하나다. 카메라를 처음 움켜쥐었을 때부터 이러한 장면을 포착했다는 것은 천재적인 능력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어느 특정한 순간에 우연히 이런 피사체를 발견하고 포착했다고만 생각하면 그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저널리즘 교수인 클로드 쿡먼Claude Cookman은 카르티에-브레송이 “사전에 연구하고 계획을 세워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있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며, 그토록 철저한 자세로 혼신의 힘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을 ‘행운’과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작가가 되기 전의 행보 또한 그의 이런 능력이 단순한 천재성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알게 한다.

카르티에-브레송은 화가가 되기 위해 1926년부터 2년간 미술아카데미에서 입체파 예술가 앙드레 로트Andre Lhote로부터 기하학과 황금분할, 신성한 비율, 구도의 법칙 등을 배우며 예술적 재능을 발전시켰다. 전시 감독 김이삭은 그가 이 2년의 시간 동안 “미술을 통해 구도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커다란 창조적 성취를 이루는 데 필수 불가결한 ‘자기 통제’와 프레임의 ‘내적 침묵’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히게 되었다”고 얘기한다. 또한 회화를 할 때부터 교류했던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살바도르 달리Salvadore Dali,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같은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교류도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는 공방의 화폭에서 거리와 세계의 풍경으로 그의 시야를 넓히게 된 결정적인계기가 된다.

‘풍경landscape’은 사전적으로는 ‘눈으로 보았을 때 한 번의 조망으로 포착되는 사물의 전체’를 의미한다. 이번 전시의 메인 테마인 ‘영원한 풍경’을 접하게 되면, 그의 작품은 이러한 단어의 나열이 한정할 수 없고 수식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번의 조망이고, 분명 한 장의 정지된 사진이지만 생동하는 영원성과 살아 숨 쉬는 영혼을 갖고 있기에 오직 이미지로서의 커뮤니케이션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카르티에-브레송은 1968년 사회변혁운동으로 프랑스가 급진적인 변화를 겪는 동안 이와 관련된 사건의 현장을 찍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시기에 어떠한 움직임도 없는 정적인 프랑스 브리의 광활한 평원을 찍었다(‘브리’, 프랑스, 1968). 어떠한 움직임도 없는 정적인 풍경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결정적 찰나’가 잘 나타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면에서 약간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늘어선 큰 키의 가로수들은 멀어질수록 작아지며 시선을 깊이 이어진 길의 끝으로 이끈다. 이 사진은 보는 이의 심리 상태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한다. 언제나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큰 관심을 두었던 카르티에-브레송의 작품이라서 일까? 단 한 명의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 사진에서조차 관객들이 자신만의 휴머니즘humanism을 찾아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번 전시의 메인 테마는 ‘풍경’이지만,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과 그의 천재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전시는 마지막 구성인 ‘순간의 영원성’이 아닐까 싶다. 보통의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에 앞서,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먼저 탐색한다. 그러나 카르티에-브레송

의 사진은 그런 단계를 생략한 채, 날 것의 생생함을 곧 바로 담아낸다. 달리 스냅숏snapshot의 마이스터Meister라 불린 것이 아니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작가의 피사체가 되었다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한 듯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찰나를 포착하는 그의 능력은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는 사진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으며, 그렇게 찍힌 사진은 삶의 한 순간을 예리하게 관통한다. 카르티에 앙리-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작가라면 어느 개인의 세계에 대해 내면적인 부분만큼, 외면적인 것에 대해서도 진정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물을 찍는 과정에서 그 인물을 둘러싼 환경의 중요성도 인지한 카르티에-브레송은 그만의 ‘주변 환경을 포함하는 포트레이트environmental portait’를 제시했다. 한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소품, 의상, 배경 등을 통해 그 인물의 내면까지 담아낸 사진을 완성한 것이다. 담배, 차tea 그리고 고양이를 비롯 사진 곳곳에 배치된 소품들이 사진의 주인공을 스포트라이트하는 방식을 찾아내는 것도 카르티에-브레송의 작품을 보는 특별한 재미가 될 것이다.

HCB재단과 매그넘Magnum Photos이 공동 주최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10주기 회고전인 ‘영원한 풍경’전展은 한국에서는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을 포함하여 카르티에-브레송이 생전에 제작한 총 253점의 오리지널 프린트Original Print가 함께 전시된다. DDP 디자인 전시관에서 3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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