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살고 싶은 집으로의 초대
‘즐거운 나의 집’, 아르코 미술관에서 2월 15일까지
  • 조한결
  • 환경과조경 2015년 2월
ARK 001.JPG
에스오에이(SOA), ‘자기 몸과 생각에 집중하다’

 

“귀를 기울이자, 한 시간이 지나 저기 작지만 영원한 순간이 부드럽게 나를 요람처럼 흔들며 깨우는 신선한 목소리가 들린다. 집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다.” 헤르만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에서 ‘집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아침에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기까지, 때로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떠난 여행 중에도 ‘집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2014년 12월 12일부터 2015년 2월 15일까지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리는 ‘즐거운 나의 집’ 전시회는 ‘집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시각화한 전시다. 아르코미술관과 글린트의 협력 기획전으로 까사미아와 대림바스가 후원했다. 전시는 ‘기억의 집’에서 시작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거쳐 ‘살고 싶은 집’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집에 대한 추억과 낭만

“우리 삶에는 유년 시절을 보낸 기억의 집, 현재 사는 집, 살아보고 싶은 꿈속의 집이 있다. 이 세 가지 집이 겹친 곳에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현재의 ‘집’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전시는 건축가 고故 정기용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기억의 집’을 형상화한 제1전시실을 들어서며 관객들은 누군가의 집에 초대된 느낌을 받는다. ‘집’을 얘기할 때 으레 떠올리곤 하는 일상의 사물들과 ‘집’을 구성하는 공간들이 재구성되었다.

전시실 입구에 설치된 현관문에 다가서자 현관 센서등이 기다렸다는 듯 켜지며 관객에게 작은 즐거움을 준다.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관객들을 맞이하는 상패, 액자, 화병, 시계 등의 일상의 사물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소한 물건들이지만 동시에 집주인의 취향과 기호를 읽을 수 있는 물건들이다. 찌개 끓는 소리, 그릇 내려놓는 소리, 식기와 집기가 부딪히는 소리 등이 맛깔스럽게 담긴 영상과 소담한 식탁을 재현한 베리띵즈의 ‘마주앉는 식탁’은 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본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나’ 문득 그리워진다. 금민정의 ‘비밀기지 만들기’는 다락방에 대한 추억을 환기한다. 지붕과 맞닿은 높고 좁은 다락방에서 아이들은 꿈을 키우곤 했다. 하지만 도심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세대들에게 ‘다락방’은 생소한 공간이다. 금민정은 바닥에 붙은 낮은 다락방을 만들어 공간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관객들과 함께 나눈다.

에스오에이SOA의 ‘자기 몸과 생각에 집중하다’는 화장실을 아름다운 사색의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인간의 몸에서 배출되는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오물을 받아내는 화장실이 전시실에서 가장 깨끗하고 빛나는 공간으로 탄생했다. 하늘거리는 샤워 커튼과 빛나는 조명은 환상적이다. 다가가면 자동으로 올라가는 변기 뚜껑과 그 위에 적힌 글귀는 사색을 유도한다.

집, 나의 쉴 곳은 어디에 제1전시실에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추억의 집을 보여주었다면, ‘현재 사는 집’을 주제로 한 제2전시실에서는 삼포 세대의 불안과 물질화된 욕망이 농축된 집을 보여준다. 옵티컬레이스의 ‘확률가족’은 에코 세대(1979~1992)의 최대 독립 자금과, 에코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의 향후 30년간의 가계 상황을 예측할 수 있도록 그래픽화한 작품이다. 부동산 조사 연구자와 그래픽 디자이너의 합작품인 이작품은 자신의 소득 및 대출 가능 금액과 부모의 증여 가능액을 합한 금액으로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을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전시 공간의 바닥과 벽면을 활용한 입체적인 그래프는 관객이 그래프상의 꼭지점이 된 느낌을 받게 한다. 본격적으로 그래프 안으로 들어가기 전, 관객은 열 개의 문 중 자신의 소득 수준이 적힌 발판 앞에 있는 문에 선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적자를 의미하는 흰색 발판이 절반 이상을 채운 그래프를 마주한다. 숨이 턱 막힌다.

조혜진의 ‘섬’은 철거 지역에서 수집한 간유리와 철제대문을 이용해 주상 복합 빌딩을 만든 작품이다. 작품설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세련된 설치물이 폐자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 도시의 고급 개발 지역 역시 폐허와 쓰레기 더미 위에 지어졌다. 무너진 폐허에서 나온 폐자재를 고급 주거 문화의 상징으로 만든 작품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역설을 담아낸다.


그럼에도, 다시 집으로

제3전시실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아카이브 전이다. 제2전시실에서 ‘집’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불안감을 보여주었다면 제3전시실에서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 현재 한국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주택불안을 앞서 경험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는 일본, 스웨덴, 핀란드 등의 주택 정책을 패널로 소개한다. 또한 ‘집’과 관련한 50여 권의 서적과 새로운 마을형태와 대안 주택을 제시하는 건축가들의 평면도도전시된다. 많은 사람들이 동요로 알고 있는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은 존 하워드 페인 대본, 헨리 비숍 작곡의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에서 불린 곡이다. 이 노래는 미국 남북 전쟁 때 전쟁에 지친 군인 사이에서 남군, 북군 할 것 없이 유행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집을 떠난 군인들이 불렀던 노래를 전시의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나의 쉴 곳은 작은집, 내 집 뿐이네’라고 맘 편히 노래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전시의 제목은 ‘즐거운 나의 집’이다.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