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을 그대로 실현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꿈이 이루어지면 과연 행복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학창 시절에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른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혹시 알게 되더라도 ‘나’의 행복은 이미 사회나 가족의 구조 속에 너무 촘촘히 구속되어 있기 마련이다. ‘나’보다는 그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할 때가 많다. 언젠가부터 내 욕망으로 산다기보다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지 가끔 불안해진다.
‘업Up(2009)’은 평생 동안 꿈꾸던 신비의 폭포를 찾기위해 수많은 풍선을 매단 집을 타고 떠난 칼 할아버지와 꼬마 러셀의 모험담이다. 어린 시절, 칼은 말이 없고 소심한 아이였다. 우연히 말괄량이 소녀 엘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본인의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였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가 포도 소다 병뚜껑을 칼의 가슴에 달아주기 전까진 그랬다. 엘리가 어느 날 밤 창문을 넘어들어와 자기의 꿈은 남아메리카의 파라다이스 폭포로 탐험을 가는 것이고 폭포 옆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 속사포 같이 쏟아내기 전까진 확실히 그랬다. 바로 다음은 어른이 된 칼과 엘리가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약 4분간 대사 한마디 없이 칼과 엘리가 함께 살 집을 수리해서 꾸미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들의 일상, 그들이 함께 꾸는 꿈과 좌절, 할머니가 된 엘리가 먼저 세상을 뜨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시퀀스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한 편의 시같이 그려진다. 최근 개봉해서 감동을 준 독립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4분으로 축약한 듯하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아프게 아름답다.
영화는 엘리가 세상을 떠나고 칼이 홀로 남겨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엘리의 부재가 그녀의 빈 의자와 항상 둘이 같이 앉았던 빈 식탁으로 표현되어 칼의 상실감이 전달된다. 칼과 엘리의 아름다운 목조 주택은 개발 사업으로 들어선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있다.
칼은 집값을 두 배로 쳐 준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수없이 많은 자물쇠를 걸어 잠근 채 공사로 인한 소음과 먼지 속에서 살아간다. 그에게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엘리의 등의자, 엘리의 사진, 엘리와 같이 동전을 모은 저금통, 엘리와 함께 꾼 꿈이 담긴 ‘엘리’ 그 자체다. 결국 집을 비워주고 요양원으로 떠나는 날, 칼은 거대한 풍선 다발을 이용해 집을 하늘로 띄워서 탈출에 성공한다. 오래전부터 엘리와 함께 가고 싶었던 파라다이스 폭포로 향한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풍선이 하늘로 튀어 오르고 집을 대지에 고정했던 장치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오래된 목조 주택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주변 고층 빌딩 사이에 고립된 섬 같았던 칼의 집은 풍선으로 띄워져 보란 듯이 자유롭게 날아간다. 형형색색의 원색 풍선 그림자가 회색 빌딩의 유리창을 화려하게 물들인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