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지나치게 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상위 도시들은 시간에 따라 크게 바뀌지 않았다. … 이들은 대체로 부유한 나라에 있는 중간 크기의 도시다.”1 이러한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도시 규모’와 ‘살기 좋은 환경’ 사이에는 꽤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일까?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부유한 도시들—이를테면 멜버른, 비엔나, 밴쿠버, 헬싱키 등—에서 공통적으로 살기 좋은 환경이라는 특질을 발견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일정 규모를 초과하는 대도시는 그 거대함으로 말미암아 불가피한 도시 문제로 신음해야 할 운명일까(그림1) 흥미롭게도 이미 1990년대 말 미국 시카고의 리처드 데일리 전 시장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인다. “뉴욕은 지나치게 크다.” 데일리 시장은 … 두 팔을 양 옆으로 쭉 펴며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로스앤젤레스도 너무 크다. 그 외의 다른 도시들은 너무 작다. (우리) 시카고가 딱 적절한 크기다.”2
이러한 “딱 적절한 크기”의 도시에 대한 추구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신규 도시 개발에 대한 수요가 큰 시기에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중국에서는 개혁 개방을 전후로 1970~80년대에 적정 규모의 도시에 대한 논의가 정점에 다다른다. 미국 밀워키 대학교 데이비드 벅 교수나 하와이 대학교 궉인왕 교수에 따르면 특히 작은 도시(小城镇 xiǎo chéngzhèn)에 대한 정책적 추구가 이 시기에 두드러졌으며, 이는 중국에서 큰 도시의 수에 비해 작은 도시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3 작은 도시에 대한 정책적 선호는 1980년 개최된 국가도시계획 콘퍼런스에서 잘 드러났다. “큰 도시의 성장을 억제하고, 중간 도시의 확장을 적절히 추구하며, 작은 도시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라”는 원칙이 여기서 선언되었고,4 같은 해 12월 중국 도시 개발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국무원에서 이를 승인하게 된다. 이렇게 한 지역이나 국가에서 몇몇 도시가 과도하게 성장하는 것을 규제하자는 주장을 반-수위도시론anti-primate city 혹은 반-대도시론anti-metropolitanization이라 부를 수 있다. ‘수위 도시’란 한 국가나 지역에서 인구, 경제, 일자리, 서비스 등의 측면에서 그 비중이 지배적인 도시를 말한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서울(혹은 수도권)이, 중국 양쯔 강 델타 지역에서는 상하이가 수위 도시에 해당한다(그림2). 국내에서도 수도권 과밀 해소나 지역 균형 발전과 같은 일종의 반-수위도시론이 서울의 행정 기능 분산이나 지방 거점 도시 육성을 통해 구체화된 바 있다. 좀 더 지역적으로는 서울주변에 분당(계획 인구 39만 명)이나 일산(27만 명)과 같이 비교적 큰 규모의 신도시 개발이 가져올 폐해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수도권 신도시 정책을 인구 10만 이하의 미니 신도시 건설로 선회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안건혁 교수는 “자족적 신도시의 적정 인구 규모”에 대해 20~30만 명을 그 기준으로 삼아도 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구 집중은 해당 지역이 여러 가지 도시적 매력이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에 인구를 강제로 분산시키기보다는, 제한된 수의 신도시를 만들고 인구 집중에 따른 여러 문제를 계획적으로 잘 해결하면 된다고 주장했다.5 안 교수의 주장이 옳다. 다수의 미니 신도시를 건설하여 인구 집중의 폐해를 해소하자는 주장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더욱이 현재 분당이나 일산의 규모가 너무 커서 통제 불가능할 정도의 문제가 일어난다고 보기도 어렵다.
적정 규모 이론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 질문해 보자.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큰 도시입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시 기억을 더듬은 후 이에 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떠한가. 지금의 도시 규모가 적절합니까? 혹은 인구 천 만의 도시와 백 만의 도시 중 삶의 다양성, 주거 만족도, 출퇴근의 편리성을 모두 고려하면 어느 쪽이 더 좋습니까? 이쯤 되면 난처하다. 적정성 자체와 여기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에 대한 가치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도시의 적정 규모에 대한 고민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도시 규모는 일정한 하한선과 상한선 사이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도심지 면적의 하한선, 즉 최소 규모는 도시민들이 요구하는 음식이나 땔감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최소 영토로 결정되며, 상한선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도시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최대 면적이라고 보았다.6 꽤 그럴듯한 논리임에도 여기에는 큰 약점이 있다. 물론 도시가 최초로 형성될 시점에 규모의 상·하한선이 존재한다는 설명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상·하한선이라는 기준 자체가 시대와 관습의 산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땔감을 구하는 방법이나 효과적인 방어를 위한 영토라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 정확한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로 돌아가 하나의 규모에 대한 기준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를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 시대의 상·하한선은 다른 시대에 큰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조선 초 한성부의 방어를 위한 적정 성곽 규모가 조선 중기 임진왜란 시기에 방어를 위한 최적의 성곽 규모와 얼마나 다를지 떠올려 보자. 적정 규모에 대한 논의는 이와 같은 시·공간적 맥락성과 함께 도시 규모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는 여러 가지 잠재적 요소—이를테면 도시의 지형적 특성, 주요 이동 수단의 기술적 수준, 또는 한 사회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도심지 크기나 과거 도시 개발의 관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