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출판사 사옥에는 정원이 딸려 있다. 이 정원은 사유지이지만, 동네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개공지다. 좁은 골목과 건물만 빼곡할 것 같은 장소에서 만난 뜻밖의 열린 정원은, 공간의 질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사유 공간의 공공적 활용에 대한 이야기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겨울에 방문한 정원이라 을씨년스럽고 황량하기까지 하다. 겨울의 흔적을 통해서 푸르렀을 때의 상황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지만, 다행히 지난 여름에 이곳을 찾았을 때 찍어 둔 사진이 있어서 참고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공간 구성을 살펴보면, 삼성출판사 건물이 안쪽 벽을 맡고 그 좌우는 높은 코르텐 스틸 벽면과 자작나무에 의해 위요되어 있다. 특히 코르텐 스틸의 단순명료한 질감과 과감한 스케일이 눈에 띈다. 이미 만들어진 공간에 대해 호불호를 말하기는 쉽지만, 설계 단계에서 재료와 스케일에 대한 확신을 갖는 데는 오랜경험이 요구된다. 입구 주변은 단차를 극복하기 위해 설치된 계단이 둘러싸인 느낌을 주고 있어, 공간 전반에 걸쳐 정원다움의 기본 속성 중 하나인 위요감은 꽤효과적으로 설정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곳에 서 있으면 주변 요인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하게 ‘내부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이곳이 과연 공개공지로서 적합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가를 따져볼 수 있다. 공개공지는 건축주가 일정 인센티브를 받고 공공에게 제공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개방성과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며, 다른 사례를 떠올려 보아도 스퀘어나 포켓 파크의 형태로 조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