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포텍 1Topotek 1의 베를린 오피스에서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를 만났다. 그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도발적이고 강렬했고, 그의 오피스는 그의 작품 이상으로 절제된 표면이었다. 즐거움과 에너지로 가득했던 그와의 대화를 옮긴다.
고정희(이하 G): 지난 주말에 한국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아직 여독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뷰에 응해주어 감사하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땠는가?
마르틴 라인-카노(이하 R): 열흘 동안 인도를 경유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를 다니고 마지막에 한국에 머물렀다. 젊은이들의 팝 문화의 수준이 대단히 높다고 느꼈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음식이다. 몹시 독특하고 강렬하더라. 각종 김치 종류, 불고기에 미끄러운 홍합 미역국까지 모두 먹어보았다(웃음). 너무 강렬하고 독특해서 좋다 싫다 말하기 어렵다. ‘나중에 집에 가면 익숙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라는 마음으로 일단 모두 시도해 보았다.
G. “집에 가면”이라고 했는데 어디를 말하는가? 베를린? 아르헨티나? 스페인?
R. 일단은 베를린을 집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는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스페인계 가톨릭인데, 열세살 때 독일로 이주했다. 그래서 독일 개신교에 대해서도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 문화적으로 좀 복잡하게 섞였다.
G. 더 이상 복잡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인지 토포텍 1의 작품을 보면 다원적인 점이 눈에 띈다. 토포텍 1이란 이름을 제공한 토포텍처와 도시 광장이 다르고 공원이 또 다르다. 최근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수퍼킬렌Superkilen의 도시 구역은 대단히 강렬하다. 사회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R. 그렇다. 내 개인적인 출신과 성장 배경으로 인해 다원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은 무신론자이지만 가톨릭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히 외할머니는 아주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가톨릭은 신비주의적이고 영적인 종교다. 그 반면에 아버지의 유대교나 독일의 개신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내가 어떤 종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는지나 자신도 잘 모른다. 이렇게 복잡한 종교적·문화적 배경과 이주자라는 사실이 내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것을 동시에 보고 이해하는 다원적 능력이 키워진 것 같다. 내게는 ‘낯선 것stranger’과 ‘이주migration’가 중요한 테마다.
G. ‘낯선 것’이라는 테마는 도처에 나타난다. 특히 정원 자체를 낯선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매우 독특한 견해인 것 같다. ‘이주자들’이라는 테마의 경우, 특히 덴마크 코펜하겐의 수퍼킬렌 프로젝트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이 점은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선 토포텍 1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정되고 있는 ‘표면 전략surface strategy’에 대해 듣고 싶다.
R. 표면 전략은 우리 디자인의 가장 핵심이다. 나는 대학에서 처음에 미술사를 공부했었다. 미술사 중에서도 정원의 역사에 관심이 컸고 나중에 정원 문화재 관리사가 되고 싶었다.1 그때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원으로 답사를 갔던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 그 다음 프랑스 정원과 영국 정원을 둘러보았다. 정원의 역사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함을 알게 되었고, 현대 조경에서 역사적 맥락이 사라져간다는 것을 느꼈다. 학문도 좋지만 직접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조경학과로 옮겼다. 처음부터 정원의 회화적인 면에 매료되었다. 그래픽적인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 예를 들어 바로크 정원의 파르테르, 소위 자수화단이라는 것을 보면 결국 표면에 수를 놓은 것인데, 나는 이를 평면 그래픽으로 이해했다. 영국 정원은 풍경화를 모델로 삼았으며, 현대에 와서는 로베르토 부를레 막스Roberto Burle Marx, 마사 슈왈츠Martha Schwartz 등이 그래픽적으로 작업했다. 거기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대학 때 피터 워커Peter Walker와 마사 슈왈츠의 설계실에서 6개월간 실습한 적이 있다. 그때 두 사람이 실험하던 랜드 아트 혹은 대지 예술을 보고 이야말로 예술적인 것과 조경적인 것을 연결하는 교량임을 깨달았다.
G. 그렇지만 마사 슈왈츠의 작품을 보면 조경을 공간적인 것으로 다루는 면이 강하다. 그 밖의 모든 사람들도 조경을 3차원의 예술로 파악하고 있다. 당신만은 유독 정원과 경관의 2차원성을 주장한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R. 3차원은 건축의 영역이다. 벽을 세우고 지붕을 덮으면 그 내부에 3차원의 공간이 형성된다. 그 반면에 우리가 하는 작업은 외부의 표면, 즉 2차원에서만 이루어진다. 산, 언덕, 호수, 모두 표면의 일부다. 3차원이 아니다. 지표면은 하늘과 직접 맞닿아 있다. 농담반 진담 반으로 신은 최초의 조경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구 전체의 표면과 지형을 다루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조경이다. 어떻게 보면 과대망상증에 가깝다(웃음). 지구 전체를 놓고 본다면 우리 인간은 표면에 붙어서 살며 표면을 통해 우주와 소통한다.
G. 그렇다면 표면에 그리는 그래픽은 하늘과 소통하기 위한 기호인 셈인가.
R. 바로 그렇다. 예를 들어 페루 나스카Nazca의 지상그림geoglyph을 보면 우리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지표면에 부호를 그려 하늘과 소통했다. 나는 바로크 정원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바로크 정원은 거대하게 비어 있다. 채운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채워진 것들에 집중하지만, 빈 외부 공간에 들어서면 위를 바라본다. 이것이 바로 지붕 덮인 건축의 폐쇄적 속성과 외부공간이 다른 점이며 외부 공간의 매력이자 강점이다. 하늘은 매우 흥미로운 요소다. 볼 것도 많고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이를 체험할 수 있게 하려면 공간을 비워야 한다. 대개는 빈 공간을 보면 채우고 싶어 한다. 빈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 모르겠다. 바로크 정원의 평면 기하학과 더불어 대형 연못은 하늘을 인지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하늘과 지표면이 닿아 있다는 것을 이처럼 분명하게 증명하는 것도 없다.
평면과 하늘로 압축한 것이다. 20세기의 바우하우스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환원reduction하고 절제한다는 점이 그렇다. 단지 비율만으로 승부한다. 사실상 바우하우스 디자인이나 바로크 정원 모두 ‘비움’이 특징이다. 나는 빈 것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