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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계속 1번부터 5번 중에 답이 있었잖아
  • 환경과조경 2023년 04월

우리 동네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집에서 두 골목 떨어진 곳에 있는 카페의 사장이다. 원두 로스팅을 하며 소일거리로 커피를 파는 곳이라 부르는 게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테이크아웃 매장인 데다 주문할 수 있는 공간도 사람 서너 명이면 가득 찰 정도로 좁다. 카페는 저녁 다섯 시가 넘어서야 문을 연다. 장사를 할 생각이 있는 거야? 투덜거리면서도 골목에 카페 입간판이 세워져 있으면 얼른 달려간다. 각종 로스팅 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쥔 실력으로 내린 커피 맛이 좋기도 하지만, 샷을 추출하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사장의 취미를 엿볼 수 있는 가게 앞 공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손수 만든 의자와 도장, 붓 그림과 캘리그라피로 완성한 메뉴판, 흑백 타일로 바닥에 새긴 카페 이름까지. 이토록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그가 언제 로스팅을 자신의 길로 삼았는지 궁금했는데, 한 인터뷰를 보니 아버지가 로스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더라.


이번 특집에도 과수원을 한 부모님 덕분에 일찍 나무와 자연에 대한 흥미를 느꼈다는 인터뷰이가 있었다(39쪽). 어린 시절부터 직업으로 삼을 분야를 가까이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좋아하는 일로 성공한 사람의 행복한 일상을 지켜보면 덩달아 즐거워지고 선망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가는 길에 언제 확신이 생겼을까. 비슷한 이유로 미니멀리스트를 동경한다. 나는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의도치 않게 맥시멀리스트로 살고 있다. 카메라, 건반, 잡다한 서적들까지 관심이 생긴 것들을 좁은 방에 꾸역꾸역 욱여넣는다. 외출 가방을 꾸릴 때도 마찬가지다. 나가서 뭘 할지 모르니까. 변명하며 가득 채운 가방 속 물건을 반도 사용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대체 나에 대해 아는 게 뭘까.


직업을 고민할 때면 맞닥뜨리는 아이러니가 있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삼으라고 조언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양자택일 전에 직업으로 삼을 만큼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 멈칫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가심비, 소확행 같은 단어가 쓰이는 세상은 사람들이 실패를 겪고 다시 일어날 시간을 내어주지 않으니 말이다. 8년차 에디터인 나도 “내가 나를 잘 모를 때 / 선택하기조차 어려울 때 / 어떻게 보면 호불호 강한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1 죽겠으니 말이다. 82년생 김조경들이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하고 싶은 일로 나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기를 추천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돈은 없어도 그나마 시간 여유가 가장 많은 때가 대학 시절이니까.


대학 졸업반 시절, 동기는 크게 두 분류로 갈렸다. 일찌감치 공사, 공무원, 임용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건설사 취업을 위해 인적성 문제집을 사는 친구들. 업무 강도와 걸맞지 않은 연봉 문제로 조경설계사무소를 기피하던 때였다. 나는 어디에도 끼지 못한 여집합의 원소였지만, 대세를 따라 괜히 두 그룹을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산책하듯 시험장에 가고 면접을 봤으니 붙을 리가 없었다. 당시에는 어떤 목표 없이 방황하는 게 참 부끄러웠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계속 1번부터 5번 중에 답이” 있는 삶을 살아왔으니까. 늘 오와 열을 맞춰 나인 적이 없고, 눈치를 계속 보며 나를 잃어버리는 중이었을 거다.2


연구소 행정 인턴, 언론고시생, 조경설계사무소 공무팀을 거쳐 환경과조경에 정착한 난 어쨌든 잘 살고 있다. 탈조경을 할 거라던 선배는 조경 동네 한복판에 머물고 있고, 식물이 좋다던 친구는 얼마 전 조경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공부를 시작했다. 빠르게 적성을 찾은 동기들도 있지만, 적어도 10년은 헤매야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가닥을 잡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니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는, 또 무위의 상태를 유지해보라는 82년생 김조경의 조언들은 의미가 있다. 한 가지 조건만 더 갖춰지면 더 완벽해질 거다. 면접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빙자한 무안 주는 말을 하지 않기. “휴학을 2년이나 하셨는데 (졸업한 지 2년이나 지났는데), 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자격증도 별거 없네요. 그냥 놀기만 했나요?”

 

**각주 정리

1. 우원재 ‘호불호’ 가사

2. 위의 노래 가사 변형. 기존 가사는 다음과 같다. “계속 1번부터 5번 중에 답이 있었잖아. 넌 오와 열을 맞춰 너인 적이 없고 눈치를 계속 보다가 또 잃어가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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