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나 때는),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다’라고 배웠다. 어렸을 때는 계절마다 특색이 확연히 다르다는 그 말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 줄 몰랐다. 스무 번 넘게 네 개의 계절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기후위기로 계절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는 요즘에서야 사계절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은 똑같은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이 힘을 완성하는 데 가장 큰 한 몫을 하는 요소가 나무라고 생각한다. 나무 한 그루를 시간의 간격을 두고 보면 지금이 봄인지, 겨울인지 눈치 챌 수 있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은행 열매 특유의 냄새에,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나무를 보고 나서야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유독 경계를 넘는 순간이 아쉬운 계절이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다. 특히 형형색색의 모습을 띄었던 나무들이 가지만 남기고 조금은 황량한 풍경으로 바뀔 때면 꽤나 아쉽다. 그래서 가을이면 곧 사라질 그 모습을 담기 위해 단풍이 가득한 곳으로 종종 떠나곤 한다. 작년 이맘때, 경복궁에 있는 몇 백년 된 은행나무 앞에서 가을을 즐겼던 추억이 생각나 이번 가을도 종로에서 보내게 됐다.
올해 종로는 조금 달랐다. 3년의 보수 공사를 마치고 복원한 향원정과 취향교를 볼 수 있었고, 새 단장을 위해 2020년 11월부터 공사를 시작한 광화문광장이 재개장했다. 작년에는 공사 안내판을 사진에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면, 올해는 많은 관광객을 피해 사진을 찍는 게 최대 난관이었다. 그래도 원래의 모습을 갖춘 향원정과 취향교, 그리고 새 광화문광장 덕분에 작년과는 비슷한 듯 또다른 느낌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똑같은 곳이었지만 그 날은 색다른 풍경을 보았다.
종로 일대를 거닐던 중 꽉 막힌 빌딩 풍경을 씻어준 공간을 지나쳤다. 처음 본 공간이여서 우리 가족 모두 여기가 어디냐며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곳에 들어갔다. 조형물에는 ‘열린송현 녹지광장’이 적혀있었다. 드넓은 잔디밭과 야생화 군락이 우리를 맞이했다. 초·중·고등학생일 때에는 현장 학습으로, 대학생일 때에는 조경사 수업의 일환으로 수없이 방문했던 경복궁과 그 일대였는데, 이곳은 처음 보는 곳이었다.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있던 미지의 땅이었다. 경복궁 동 쪽 일대는 본래 송현(松峴)이라는 이름처럼 소나무가 많은 왕실 소유 언덕이었다. 임진왜란 무렵 부마와 외척들 거주 공간으로 변모했고, 조선 말기에 이르면 권문세가 집들이 들어선다. 1910년대에는 친일파 윤덕영 일가가 송현동 땅 대부분을 소유했다. 이후 조선식산은행 차지가 돼 직원 숙소로 쓰였다. 해방 뒤 미국 정부가 이 땅을 양도받아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가 들어섰고 폐쇄적인 돌담이 둘러쳐졌다.1 이후 여러 기업의 소유가 되었다가 서울시 땅으로 넘어오게 됐다. 서울시는 향후 ‘이건희 기증관(가칭)’ 건립이 본격적으로 착수되기 전인 2024년까지 이 공간을 열린 녹지 공간으로 임시 개방하기로 했다. 짦은 시간이지만 서울광장의 약 3배 면적인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서울 시민의 녹색 쉼터이자 열린 광장이 되어줄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풀꽃‧1’, 나태주) 공간도 그렇다. 오래 보아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듯, 수없이 지나가던 곳에서 어느 날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공간을 발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똑같은 출퇴근길에 우연히 새로운 카페를 발견하는 일은 어제와 다른 오늘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남들보다 조금 빨리 알게 된다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추운 겨울, 이불을 박차고 일단 나가고 보자. 혹시 모른다. 새로운 공간을 발견할지도.
각주1. 배정한, “금단의 땅에서 도시의 여백으로”, 「한겨레」 2022년 10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