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로 땅과 바다가 오염됐고, 공기 속에서 퍼지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존재하는 ‘인류세’와 ‘자본세’의 시대에 살고 있다.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인간과 사물, 자연의 수평적인 관계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공예에서도 생명 없는 재료로만 취급해온 다양한 사물과 생명체에 대한 존중, 천연 자원의 남획과 인공 재료의 남용으로 인한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인간 중심의 ‘일방적 세계화’와 ‘자본세’에 맞설 공예의 윤리적·사회적 실천, ‘기계적 유기체(AI, 사물인터넷)’와 공존하는 공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시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현시대에 대응할 새로운 공예와 디자인을 모색하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한 공예의 태도와 실천을 보여준다. 인간 중심의 공예에서 벗어나, 재료, 사물, 기계, 환경 등과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다. 인간을 위한 공예도 필요하지만, 인간 이외의 모든 존재들을 함께 존중하는 태도가 이 시대 공예의 새로운 윤리이며 사회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류세와 자본세에 포위되어 소외되고 고립된 공예, 작가들의 존재와 가치를 복원하는 길이다.
대지, 생활 그리고 반려까지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2021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공예를 통해 조망했던 전시로 현지에서 찬사를 받았다. 당시 전시를 개최했던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한국 관객들을 위해 동명의 주제로 이번 전시를 마련했으며, 2021년 밀라노 한국공예전 출품 작품과 더불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공간에 재구성했다.
공예, 디자인, 사진, 영상 등 참여 작가 38팀의 290여 작품은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다룬다. 1층은 하늘과 땅,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대지의 사물들’, 2층에서는 한국의 다양한 생활문화를 담은 공예 ‘생활의 자세들’, 인간과의 지속적인 삶을 이어가는 소중한 반려로서 공예를 바라보는 ‘반려 기물들’을 이야기한다.
공예는 인간, 사물, 자연이 상호 매개되고 결합된 광범위한 결과물의 총체다. 이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는 결합 과정에서 그 의미가 끊임없이 변화되고 새롭게 생성된다. 공예는 단순히 고정된 물건이 아니라 인간, 사물, 재료, 기계 등과 결합과 배열을 통해 새로운 상징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전시는 ‘대지의 사물들’을 통해 전통과 현대, 공예와 예술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공예의 사물성을 보여준다. 또한 코로나19와 관련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한선주 작가는 코로나19로 지친 일상을 위로하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길 고대하며 화려한 색감의 대형 직물 ‘봄날은 온다’ 시리즈를 1층 중앙홀에서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