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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눕기의 기술
  • 환경과조경 2023년 07월

성큼, 여름의 중심이다. 이번 7월호에는 조경가들이 참여한 ‘스테이’ 외부 공간 작업 일곱 편을 모았다. 김모아 기자의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의 제목처럼 “비록 잘 세팅된 편안함을 빌리는 형식일지라도, 복잡한 도시 생활로부터 이격된 약간의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지 모른다”(77쪽). 

 

올해 초부터 편집자들이 공들여 섭외해 함께 실을 수 있게 된 얼라이브어스의 ‘롯데호텔 부산 야외수영장’, 안마당더랩의 ‘호지’, 연수당의 ‘하도문 속초’, 듀송플레이스의 ‘와온’과 ‘월령지헌’,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퍼즈 글램핑장’, 펠릭스Felixx의 ‘언바운드’는 다양한 위치만큼이나 다채로운 성격을 지니지만, 경험에 방점을 둔 공간 설계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뚜렷한 공통점을 갖는다.

 

호텔, 모텔, 여관, 펜션, 게스트하우스 등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숙박 시설이 언젠가부터 ‘스테이’로 통칭되고 있다. 물론 이름만 바뀐 건 아니다. 스테이의 유행은 ‘머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간’의 부상을 의미한다. 스테이는 단순한 숙박을 넘어 머물며 공간을 소비하고 장소를 경험하는 일련의 활동 전체를 뜻한다. 스테이(머물다)와 베케이션(휴가)을 합성한 신조어 ‘스테이케이션(staycation)’도 요즘 휴가 트렌드를 대변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스테이 문화의 확산은 공간 경험의 맥락과 계기를 짓고 엮는 조경가의 안목과 손길을 초대하고 있다.

 

스테이에 그대로 스테이하고 싶은 유혹 때문이었을까. 다른 경우와 달리 스테이 원고 교정지는 집중해서 살피기 어려웠다. 편집된 텍스트와 이미지의 디테일로 눈이 가지 않았다. 교정지 속 스테이 공간 한가운데 두 발 뻗고 누워 일상을 규정하는 수많은 관계와 의무를 다 내려놓고 잠에 빠져드는 장면을 계속 상상했다. 이번 여름엔 나도, 독자 여러분도 어느 안온한 곳에 한참 머물며 침대로부터 등을 결코 분리하지 않는 완벽한 스테이케이션을 누릴 수 있기를. 알람 소리 없이 눈을 뜨고, 침대에 누워 창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쬐고, 다시 나른한 잠을 즐기다 후덥한 여름 정원을 산책하고, 책 몇 쪽을 읽다 다시 잠에 빠지기를 반복하는 온전한 시간.

 

홈캉스이건 호캉스이건 책 한 권은 동반해야 와식臥食 생활이 완성된다. 『환경과조경』 신간 말고 다른 책을 가져가야 한다면, 나는 독일 작가 베른트 브루너의 『눕기의 기술』(현암사, 2015)을 망설임 없이 꼽는다. “침대에서 할 수 없는 일은 가치 없는 일이다.” 희극 배우 그루초 막스의 말로 포문을 여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통쾌하게 눕는 자세를 옹호한다. 누운 상태만큼 편안한 자세가 어디 있겠는가. 저자 브루너의 말처럼 “눕는 것은 신체에 가장 저항이 적게 주어지는 자세이며 가장 힘이 덜 드는 자세이다. 우리는 누운 자세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사랑을 하고, 생각을 하고, 슬픔이나 그리움에 잠기고, 백일몽을 꾸고 고민을 할 수도 있다.”

 

측정 가능한 성과를 중시하고 순발력과 결단력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하며 성실과 근면을 입증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누운 자세는 게으름의 표상이자 무능력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브루너의 생각은 다르다. “누워 있는 것은 짙은 안개 속에서 산책하는 것과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다. …… 누워 있는 행위는 목표 없이 걷는 수직적 산책의 수평적 짝꿍”이다. 눕기는 앉고 걷고 뛰는 무한 경쟁 사회에 브레이크를 거는 수평적 삶의 지표다. 비생산적이라 더욱 소중하다.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 위쪽(실내에서는 천장, 야외에서는 하늘)을 바라볼 때면 움켜쥐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며, 우리의 생각 또한 부유하기 시작한다. 몸의 자세를 바꿈으로써 마음도 따라 변하는 것이다.” 

 

“수평적 삶을 위한 가이드북”을 자임하는 『눕기의 기술』은 다양한 시각으로 눕기를 관찰한다. 7만 년 전의 침상, 수면에 혁명을 일으킨 코일스프링 매트리스의 발명과 전파,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누워서 음식을 먹기 위해 고안한 소파와 그 현대적 변용, 침실의 사회적 변천사 등 역사적 주제가 책의 뼈대를 이루는 씨실이라면, 과학과 문학, 철학은 책에 무늬를 입히는 날실이다. 누워서 눕기의 기술을 익히며 『눕기의 기술』을 읽다 보면 수평 자세와 와식 생활에 대한 묘한 자부심까지 생긴다. 눕는 행위 하나로 중력이라는 자연의 진리에 순응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적 경쟁에 저항하고 있다는 자부심.

 

이번 여름 어딘가에 머물며 오래 누워 있는 시간을 실천할 계획이라면, 생활의 수직/수평 비율을바로 잡을 생각이라면, 그 깊은 심심함과 이완의 정점을 함께할 친구로 『눕기의 기술』을 권한다. 이 책은 누워서 읽어야 제맛이다. 읽다 보면 잠이 스르르 온다. 읽다가 얼굴에 떨어뜨려도 책이 워낙 가벼워 절대 코뼈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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