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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 환경과조경 2023년 07월

풍경감각 23년 7월호.jpg

 

길을 나선다. 삐리릭. 도어록 소리를 듣고 나서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잠근다. 철컥 철컥 철컥. 세 번 손잡이를 돌려 확실히 잠겼는지 살핀다. 열쇠 꾸러미를 끌러 왼쪽 앞주머니에 넣고 계단을 내려가다 멈춘다. 가스 밸브를 닫았는지, 창문 잠금 장치를 빼먹지 않았는지, 콘센트 전원 버튼을 껐는지 문득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나오기 전에 두어 번씩 확인했지만, 혹시나 싶어 다시 계단을 오른다.

작업실로 돌아와 잠금 장치와 버튼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 확인한다. 역시 다 괜찮구나. 다시 집을 나선다. 이 과정을 거치느라 3분 거리 버스 정류장 가는 데 늘 20분 정도 걸린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괜찮을 걸 알면서도 자꾸만 한번 더 온갖 버튼을 확인하는 일을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다. 깜빡 잊고 열어 둔 창문으로 누군가 들어오거나, 가스레인지나 과열된 콘센트에서 불길이 치솟는 장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습관을 고칠 수 없을까 싶어서, 정말 도둑이 들거나 불이 나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아깝지만 그렇다고 정말 비싸거나 다시 구하기 어려운 물건은 거의 없다. 중요한 파일은 클라우드에, 그리고 돈은 통장에 넣어두었다. 그럼 괜찮지 않을까? 아니다. 컴퓨터와 태블릿 PC, 스캐너, 액정 태블릿이 없어지면 큰일이다. 당장 그림을 그릴 수 없고 다시 구하기엔 가격도 만만치 않다. 클라우드에 업로드하지 못한 옛 작업물 파일과 종이 원화는 잃어버리면 끝이다. 작업실은 여러 가구가 사는 빌라인데, 만약 내 방에서 시작한 불이 건물을 홀랑 태운다면, 그래서 누군가 큰 해를 당한다면…….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계단 몇 번 오르내리고, 버튼 여러 개를 다시 확인하고, 3분 거리에 20분을 쓰는 게 무슨 대수인가. 아무래도 이 습관을 고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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