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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만든 도시] 제도, 크기를 줄일 수 있을까?
  • 환경과조경 2023년 07월

지난 글에 이어 제도가 우리가 사는 도시의 ‘크기’에 관여하는 방식과 결과를 축소도시 문제를 통해 다룬다. 대도시 원도심, 지방 중소도시의 인구 감소는 적어도 1980년대부터 나타났지만 정책적 관심을 받게 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지방 소도시들이 인구 감소를 넘어 인구 소멸의 위기에 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 것은 매우 최근이다.

 

그런데 인구 감소가 왜 문제일까. 더 정확히 묻자면, 도시 공간에서 인구 감소는 왜 문제인가. 세금 낼 인구가 감소하면 도시의 재정 재원도 줄어드는데 도로나 공공시설 등 이미 만들어진 도시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동일하다. 늘어나는 빈집을 관리하고 운영 수입이 감소한 시설을 보조하기 위해 어쩌면 비용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결국 지자체가 파산하거나 최소한의 유지·관리를 포기하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또한 온갖 지식과 문화를 교류하고 향유할 수 있는 도시적 기회는 물론 의료와 보살핌, 교육, 치안과 같은 기본적 사회 서비스를 누리기 어려워질 것이다(그림 2).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이 들어갈 것이고, 이는 장차 매우 큰 사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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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행정안전부 고시 인구 감소 지역 중 55개 시·군·구의 행정구역 면적, 시가화 면적, 시가화 예정 면적과 인구 규모. 어떤 도시가 인구 대비 얼마큼 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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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동네에서 프랜차이즈 햄버거를 못 먹는 것이나 새벽배송을 못 받는 게 큰 문제냐 싶을 수 있지만, 이런 점들은 우리가 도시에서 누리는 즐거움과 편의, 기회를 의미한다. 어린이집이나 병원 같은 필수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다. 한편에서는 서비스 ‘인구’ 기준이 아닌 서비스 ‘거리’ 기준으로 근린 기능과 필수 공공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는 ‘N분 도시’ 정책이 논의되고 있다. 출처: 이도은, 대구mbc; 정현수, 「머니투데이」; 김창효, 「경향신문」

 

 

그런데 인구 감소로 인한 이러한 위기는 단순히 인구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인구가 성장하던 (또는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던) 시기에 조성된 도시의 과도한 ‘크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1 그럼에도 2022년 제정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비롯해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제도와 정책은 인구수에만 주목하고 인구 대비 도시의 크기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 도시는 ‘몸에 맞지 않는 너무 큰 옷’이 되어버렸는지(그림 3), 줄어드는 인구 변화를 유연하게 수용하기 어려운지, 도시 제도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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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스마트 축소의 공간 관리 개념 출처: 성은영 외, 『지역특성을 고려한 스마트 축소 도시재생 전략 연구』, 건축공간연구원, 2015, p.6, 재가공

 

 

‘과학적’ 도시계획의 회계분식, 사회적 인구 증가

지난 연재에서 수용 인구를 기준으로 신도시의 용도별 적정 토지 면적을 ‘과학적’으로 자동 산출하는 플로 차트를 실었는데,2 이 ‘도시 면적 계산기’는 신도시 계획뿐 아니라 모든 도시계획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다. 다소 거칠게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2000년대 중반 수립된 OO시 ‘2020 도시기본계획’에서는 2020년 OO시 인구를 15만 명으로 예측하고 이 인구를 ‘적정’하게 수용하기 위한 주거, 상업, 공업, 녹지 등 용도별 도시 지역 면적을 산출한다. 이 면적에서 기존 도시 내 각 용도별 면적을 제하면 2020년까지 이 도시에 더 필요한 도시 지역 면적이 된다. 이 필요 면적을 어디에 개발할지 정하는 것, 대표적으로는 ‘시가화 예정 용지’를 설정하는 것이 도시기본계획의 중요한 부분이다.

 

2023년 5월 기준 OO시 인구는 9만 6,700명으로 ‘2020 도시기본계획’의 계획 인구 15만 명은 고사하고 계획을 수립하던 당시 인구 10만 9,400명에서 12%나 감소했다. 반면, 도시 면적은 30km2에서 35km2까지 늘었다.3 ‘2020 도시기본계획’은 2020년쯤에는 15만 명이 적정하게 살기 위한 도시 면적을 38km2라고 했는데, 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도 15만 명을 목표로 하는 도시계획이 꽤나 착실하게 실행된 것이다. 그러나 인구는 오히려 줄어든 탓에 결과적으로, 숫자로만 보자면 그 적정하다는 수준보다 1.2배 큰 도시가 된 셈이다.

 

이러한 적정 도시 크기 설정의 오차는 인구 예측에서 비롯된다. 도시기본계획의 목표 년도 계획 인구는 해당 도시의 인구 구조(성별, 연령)를 기초로 산출되는 인구의 자연 증감과 도시 간 이주 예측에 따른 인구의 사회적 증감을 합산해 산출된다. 여기서 많은 지자체는 ‘희망’일 뿐인 사회적 인구 증가를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근거로 ‘도시 면적 계산기’를 돌려 도시계획을 수립한다. OO시는 ‘2020 도시기본계획’ 수립 당시에도 이미 1980년대 중반 인구 정점을 지나 20년 간 지속적으로 인구 감소가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당시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규모의 외부 인구 유입이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시나리오를 채택하고 미래의 도시 크기를 재단했다.

 

인구는 감소함에도 도시의 크기를 더 크게 만들 ‘과학적’ 근거로서 도시계획 계산기의 산출값을 인정해 온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도시 제도다. 도시기본계획에서 목표 년도의 인구를 추정하는 기준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도시·군기본계획 수립지침’에 근거하는데, OO시처럼 사회적 증가를 부풀려 도시 지역 면적을 과도하게 계획하는 폐해가 만연해왔다.4 최근에야 인구 추정에서 사회적 증가를 보조적으로 적용하라는 지침 개정이 이뤄졌지만 너무 늦었다.

 

환경과조경 423(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국내외 여러 연구는 축소도시 또는 도시축소를 쇠퇴 도시, 도시 쇠퇴와 구분해 정의한다. 대체로 축소도시란 인구와 사회경제적 활동의 쇠퇴로 주택, 공공시설 및 도시 기반 시설의 실질적 이용이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과거 성장기에 공급한 도시의 물적 자원이 과잉인 상태에 이른 도시를 말한다(구형수 외, 『저성장 시대의 축소도시 실태와 정책방안 연구』, 국토연구원, 2016). 이 글에서는 도시의 ‘크기’를 단순히 도시의 면적, 즉 시가화 면적만이 아니라 그 안의 도로와 공공시설, 주택을 비롯한 민간 건축물 등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물적 자원의 규모로 규정하고자 한다.

2. 유영수, “제도, 도시의 크기를 정하다 1”, 『환경과조경』 2023년 5월호, p.104, 그림 1.

3. OO시 통계연보, 인구 및 용도지역 면적 통계

4. 구형수 외, 『저성장 시대의 축소도시 실태와 정책방안 연구』, 국토연구원, 2016.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 및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 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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