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환경을 더 풍요롭게
창작을 업으로 하는 조경가로서 처음에는 멋지고 이상적인 공간을 상상하지만, 실제로 그리다 보면 현실의 여러 가지 제약에 부딪힌다. 예산, 공간, 환경 등 여러 제약은 그 구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더욱 크게 만들며, 때론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그 과정 자체가 깊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만들고 있으며, 그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물론 우리의 의도가 실패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가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것마저 자양분 삼아 또 다른 창작을 이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재미를 느낀다. 우리의 작업 공간은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라, 상상력의 화폭이며, 창의성의 정수를 담아내는 캔버스가 된다. 협업이라는 무대에서 서로 다른 의견과 꿈을 조율하는 일은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닮아 있어서 협업의 멜로디가 설계 도서 위에 펼쳐지는듯한 기분이 든다. 그 멜로디가 이용자들의 삶에 영감을 줄 때 세상의 흩어진 조각을 맞추어 나가는 것과 같은 기분을 만끽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일 자체도 일이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워라밸이 삶의 질에 중요한 척도가 된 오늘날 재미라는 단어로 야근이라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회사는 디자인의 완성도 이외에도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목표와 기대를 조정하고 정기적인 휴식을 제공하며 창의적 사고를 촉진할 수 있는 세미나와 답사를 기획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자율적인 자기 시간을 설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은 언제나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균형을 동시에 맞추는 작업은 도전적일 수 있지만, 설계가에게 도전이란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과제일 뿐이다.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만나는 난관들은 결국 내면의 우리 환경(uri environment)을 더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프로젝트
다락의 꿈
다락은 어두운 천장 아래 감춰진 비밀 정원 같은 공간으로, 좁고 조금은 가파른 계단에 올라서면 외부 세계와는 다른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원에서 꽃이 자라듯, 다락방에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라난다. 마치 푸른 식물들이 자생적으로 자라는 것처럼 다락방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꿈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꿈꾸는 다락방’(2015 코리아가든쇼)에서는 그대로 드러난 건축 부재, 낡은 고벽돌,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들이 옛것의 향수가 있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엮여 새로운 꽃을 피우듯, 정원 속에 사유하며 다채로운 영감을 제공한다.
정원의 각 구석에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다락방의 구석구석에는 과거의 기억들이 묻혀 있어 방문객에게 감정의 씨앗을 심어준다. 햇볕이 잘 드는 정원의 한 부분이 특별히 더 풍성한 식물들로 가득차듯 몰입도 높은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통해 아늑한 다락방 분위기를 연출하는 창살 가벽과 긴 그림자와 함께 추억으로 이끄는 몽환의 나비를 만날 수 있다. 다락방 내부로 들어서면 낮은 천장에 맞춰진 낮은 책장과 집 앞 풍경을 볼 수 있는 작은 창 너머로 어릴 적 추억이 꿈처럼 펼쳐진다. 다락의 물건에는 그 집의 역사가 담겨 있으며, 낙서로 가득한 책상, 오래된 서랍장 등 기억을 품은 것들이 모여 잘 삭은 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시김의 미를 자아낸다.
결국 꿈꾸는 다락방은 건물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하게 이어지는 공간으로, 시간과 경계를 초월하며 과거의 추억과 이루고 싶었던 꿈들이 뒤섞인 누구에겐 특별한 새로운 낡은 정원이 된다. 이는 무한한 상상과 휴식의 공간이며, 고요한 자연 속에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는 장소로 기능한다.
그러나 현대 주거 공간에서 다락이라는 기능이 상실되면서 많은 사람이 자연과의 연결을 찾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조경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된 공간이 옥상 정원과 테라스 공간이 아닐까. 이 공간들은 도시의 고층 건물 속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장소로 기능함과 동시에 도시에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는 전망대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아늑한 가구를 배치해 편안한 휴식과 사색의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기존의 추억과 자연과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공간의 기능과 사용 방식이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땡큐, 썰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거칠 수밖에 없는 청춘의 시작점, 군대. 특히 논산 육군훈련소는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에게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곳은 단순히 군사 훈련을 받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훈련소에서의 시간은 자아를 성찰하고,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된다. 또한 이곳에서의 경험은 이후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억으로 남는다.
생활밀착형 숲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군사훈련소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군복무를 수행할 이들과 그들을 떠나보내는 가족들에게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대상지는 매주 약 3,000명의 입·퇴소 장병을 포함해 함께하는 12,000명의 가족들이 이용하는 곳으로서 일 년 중 단 한 계절의 정원만 즐길 수 있는 이용자들의 특징을 고려하여 설계됐다. 봄에는 기(起)(시작, 일어나다), 여름에는 승(承)(진행, 받아들이다), 가을에는 전(轉)(회전, 변화하다), 겨울에는 결(結)(마무리, 완성하다)의 단계로 정원을 순환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 공간이 군인과 그 가족들에게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 안정감을 제공하고, 군 생활 동안 한 단계 더 성장한 자신을 대면하는 만남과 쉼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 정원에서 특별한 아이템이라고 한다면 군화를 소품으로 활용하여 만든 화분일 것이다. 행군이 끝난 군인들의 군화를 본 적 있는가. 군인에게 군화는 단순한 신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군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 장시간 행군이나 험한 지형에서도 발을 보호해 주는 편안함, 모든 군인이 동일한 군화를 착용함으로써 일체감과 조직적 단결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행군이 끝난 군화에 남겨진 열기처럼, 군화에 담긴 흙은 강도 높은 훈련을 이겨낸 강인한 정신력을 상징한다. 그 흙에서 피어난 보랏빛 꽃은 청화 쑥부쟁이로 인내, 그리움,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설계자로서 모든 군인 장병에게 바치는 작은 보답이다. 그들의 희생이 우리 국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 의해, 아이들을 위한
청주 센트럴자이에 조성한 놀이 공간은 굉장히 특이한 테마로 계획했는데,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대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네 개 챕터(토끼 굴 속으로, 코커스 경주와 긴 이야기, 애벌레의 충고, 여왕의 크로케 경기장)를 소재로 놀이터와 놀이 정원을 연결하는 약 0.5km의 놀이 길을 구성하고 단계별 모험을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게 연출했다.
공동 주택이라는 주거 공간에서 어린이 놀이터의 중요성은 다양한 측면에서 잘 드러난다. 단순한 놀이 공간을 넘어서 신체적, 정서적 발달을 촉진하고, 상상력과 모험심을 자극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 주택의 특성상 놀이터는 형평성을 고려해 배치되기 때문에 다수의 놀이터가 있는 단지에서는 어린이들이 자주 가는 놀이터에서 만나는 친구들과만 상호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키즈길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개별 놀이터가 한정된 범위 내에서 사회적 상호 작용을 유도하는 반면 공통된 테마의 스토리로 연결되는 키즈길은 주거 단지 내에서 서로 다른 놀이터를 연결한다.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자연 요소를 통합하여, 자연과 교감하며 놀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모험을 어린이에게 선사한다. 어린이들이 다양한 친구들과 교류하며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환경 감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공동 주택 내 커뮤니티가 더욱 풍요롭고 따뜻한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다.
놀이 공간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이용하는 아이들의 색다른 행태를 목격하게 됐다. 원래 놀이 가벽은 가벽의 구멍 사이를 통과하거나 미끄럼틀을 이용하는 목적으로 설계됐는데, 의도와는 달리 가벽 위로 올라가는 행위가 아이들에게 더 큰 재미를 주는 것 같았다. 일부 가벽은 안전을 고려하여 아이들이 쉽게 올라설 수 없는 높이로 계획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기어코 올라가 노는 모습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이 경험은 설계자가 바라봐야 하는 시선이 단순히 설계 의도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용자들의 다양한 행동과 반응에도 닿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아이들의 창의적이고 예기치 않은 활용 방식은 놀이 공간이 단순한 구조물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발견은 공간 구성과 시설 설계에 있어 사용자의 행동을 면밀히 분석하고 반영될 필요성을 시사한다.
도예와 자연의 조화
이천시는 한국 도자 문화의 심장부이자 공예와 민속 예술 분야에서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인정받은 특별한 도시다. 이천시 사음동의 사기막골 도예촌은 1950년대 조선 관요의 폐쇄로 한때 사라졌던 전통 도자기의 숨결을 다시 되살린 성지로 전통 도예 장인들이 수광리 칠기가마에 모여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 각종 도자기를 재현하며 한국 도자 예술의 혼을 이어 나가고 있다.
설봉산의 부드러운 산자락에 자리한 사기막골 도예촌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전통 시장의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연 경관과, 상점들마다의 개성 넘치는 도자기들이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는 이 특별한 장소의 우수한 자연 경관과 도예 조형물들을 최대한 살리면서, 거리의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한 공간을 구상했다. 도화광장에는 세 그루의 아름드리 정자목이 우직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은 도예촌에서 가장 넓은 공간으로 방문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입구 정원이다. 사기막의 형태를 형상화한 유려한 퍼걸러와 무대, 그리고 마당 뒤쪽에 펼쳐진 도자 조형물과 초화가 가득한 포토존은 예술 작품처럼 그 자체로 감동을 선사한다. 화란원은 상가에 둘러싸인 작은 섬처럼 아늑한 공간으로 잔잔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적인 휴게 공간이다. 상춘원은 울창한 숲과 매화나무 군식이 어우러지며 자연의 밝은 배경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편안한 쉼터로 조성되었다. 앞으로 이곳이 단순한 방문지를 넘어, 도예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감성적이고 특별한 공간으로서 방문객에게 장인의 혼이 담긴 도자기와 아름다운 정원의 조화를 통해 색다른 인상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보고, 걷고, 웃자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몇 년간 외부 활동이 제약을 받고, 직원들 역시 폐쇄된 환경 속에서 지쳐가는 모습을 보았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해소된 지금, 몇 년간 지속되었던 무기력한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일부 프로젝트 참여 인원들만 경험했던 준공 답사를 모든 직원과 함께 하기로 했다. 외부 활동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공기의 사무실에서 벗어나 외부의 자연으로 향하는 것은 생각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냈다. 자연 속에서의 시간은 신선한 공기와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설계와 시공의 괴리를 각자의 방법으로 비교할 기회가 된다. 때론 설계자로서 보람을 느끼고, 때론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자책하며 각자의 디자인 감각을 다듬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조경설계에서 시공 후 답사는 정원에서 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소중한 과정이 아닐까. 설계도가 땅 위에 실체화되고, 상상력이 현실로 드러나는 그 순간,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만남을 경험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계획안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서, 그 공간이 우리의 꿈과 노력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내는지 경험하고 점검한다.
이 과정에서 설계의 세밀한 부분까지 확인하고 실제 사용자의 시각에서 기능성과 미적 요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설계와 시공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꿈꾼다. 조경이 단순히 공간을 꾸미는 것을 넘어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연이 함께 숨 쉬고 성장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일이라면, 답사는 이러한 조경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설계와 시공이 만들어낸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관찰이지 않을까.
마무리 작업을 통해 우리의 노력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치 정원에서 꽃이 활짝 피어나듯 우리의 마음에 깊은 만족과 기쁨을 안겨준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노고를 인정하고, 새로운 활력과 영감을 얻으며, 공동체로서 더욱 단합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엔디자인펌은 1997년에 설립된 후 27년간 우리의 행복을 찾기 위해, 그 행복을 공간으로서 창조하는 데 정성을 다해 온 공방이다. 단순한 작업장이 아닌 꿈의 실체가 되어가는 곳이며, 매일매일 우리의 손길과 마음이 닿은 모든 것들은 삶의 고요한 순간들과 따스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중한 그릇이 된다. 우리(URI)와 환경(Environment)의 합성어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환경을 추구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사명처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상생하며 아름다움을 나누는 세상을 상상하고 실현해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