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나팔꽃을 심었다. 물에 적신 키친타월에 올려둔 씨앗 세 알은 이틀도 되지 않아 껍질을 채 벗지 못한 머리를 들어 올렸다. SNS 속 친구들의 정원에는 벌써 나팔꽃이 피었던데. 봄 한철인 프리지아와 수선화가 늦게까지 베란다 자리를 비워주지 않아서 여름 꽃 준비가 늦고 말았다. 벌써 반쯤 새싹이 된 씨앗을 보니 놓친 계절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바로 플라스틱 포트로 옮겨주었다.
다시 이틀이 지나자 V자를 그리며(나팔꽃 떡잎은 V자 모양이다) 새싹 두 개가 불쑥 솟아올랐다. 역시 나팔꽃이라서, 그리고 더운 계절이 되어서 빠르구나. 그런데 돋아난 싹이 새잎을 펼치며 자라는 동안 나머지 하나가 감감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가, 궁금해하다, 마침내 땅 속을 파헤쳐볼 결심이 섰을 때 막내가 돋아났다. 떡잎 대부분을 잃고 줄기만 남은 모습으로.
뿌리파리의 소행일까. 나팔꽃에는 수선화 화분의 흙을 재활용했는데, 지난 봄 수선화가 뿌리파리를 겪었다는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보드라운 떡잎과 연약한 새 뿌리를 갉으며 얼마나 신났을까. 어쨌든 불상사를 대비해 세 개나 심은 거니까 허름한 녀석은 솎아내고 튼튼한 녀석만 기르면 된다. 식물을 뽑아내는 일은 필요할 때마다 해왔고 어렵지도 않다. 식물에는 사람의 신경계나 뇌와 같은 부분이 없으며, 따라서 통증을 느끼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을 테니까.(각주 1) 그렇지만 올해는 막내를 끝까지 기르기로 했다.
나팔꽃은 잃어버린 떡잎에 아파하지 않는다. 작은 잎 조각으로도 다음을 준비하고 줄기를 뻗을 것이다. 다른 형제보다 느리고 작고 볼품없겠지만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뽑아버리거나 또다시 실수하지 않으면 된다. 나팔꽃 덩굴을 시들게 하는 찬바람은 11월에야 불어온다. 꽃과 열매를 경험할 수 있을 만큼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있다고, 막내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나팔꽃에게는 응원도 무의미하겠지만. 참, 막내에게 이름도 붙여주었다. 보험을 들듯 여분으로 심었던 것이니 보험이라 부르기로 했다. 짓궂은가 싶지만 보험이는 모르니까 괜찮다.
**각주 정리
1. “식물은 접촉을 느끼지만 통증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리고 동물과 달리 식물의 반응은 주관적이지 않다 …… 식물은 뇌가 없기 때문에 주관적 제약에서 자유롭다.” 대니얼 샤모비츠, 『식물의 감각법』, 도서출판 다른, 2019,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