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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만든 도시] 도시의 기능
  • 환경과조경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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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서울 강남 일반주거지역 내 소규모 상업 시설과 업무 시설 분포

 

 

도시라고 부를 만한 맹아가 나타난 수천 년 전이나,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각주 1)이 도시에 살고 있는 공히 도시의 시대인 현재나, 우리는 도시의 어떤 곳에서는 생산하고 거래하며, 어떤 곳에서는 교류와 유흥을 즐기고, 어떤 곳에서는 쉬면서 사적인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구분되는 서로 다른 활동, 즉 도시의 기능이 도시 내 특정 위치를 점한 모습은 당연히 사회적 결과물이며 임의적이거나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도시 기능의 특정한 공간 배열은 여러 곳에서 유사하게 반복된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앞에는 달달한 냄새를 풍기는 빵집과 사은품을 쌓아둔 핸드폰 가게가 있고, 골목길 어귀 편의점에 꼬맹이와 편맥족(편의점 맥주+족)이 모여드는 저층 주거지의 흔한 풍경이 그런 예다.

 

도시 스케일에서도 마찬가지다. 구분되는 서로 다른 도시 기능의 배열을 ‘도시 공간 구조’라고 하며, 특정한 패턴이 다수의 도시에서 발견된다.(각주 2) 예를 들어 모든 도시 기능이 옅어지고 있는 구도심, 그에 인접한 기차역·버스터미널 주변으로 병원·상가·재래시장이 모여 있는 상업 지역, 그 밖으로는 1980~1990년대 구도심에서 옮겨온 시청과 금융·세무·법무 사무실 등이 모인 (이제는 오래된) 신시가지의 중심과 그 주변을 둘러싼 아파트 단지, 시가지에서 벗어나 고속도로 나들목 근처에 위치한 산업 단지와 그곳의 젊은 근로자가 사는 원룸촌 등은 한국 많은 지방 중소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형적인 도시 기능의 배열이다.

 

도시에서 특정한 기능의 위치는 다수의 도시

구성원에 의해 긴 시간에 걸쳐 자연스레 결정되기도 하지만, 소수에 의해 매우 의도적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전자의 예로 세계의 오래된 많은 항구 도시는 항만을 바라보는 경사지에 형성된 주거지와 같은 전형적인 도시 경관을 공유한다(그림 2). 사람의 힘으로 바꾸기 어려운 지리·기후적 특성과 특정 도시 기능에 요구되는 사회·공간적 조건을 따르는 집합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후자는 비단 근대 이후 도시계획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세계의 여러 역사 도심에는 그 시대의 관념적 가치와 위정자의 정치적 의도가 투영되어 있고(그림 3), 왕조가 사라진 현대 도시 공간에서도 공간을 매개로 한 정치가 여전히 시도된다.(각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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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간척이 아닌 자연적으로 생겨난 오래된 항구 도시는 항만의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대개 가파른 지형이 바닷속까지 이어지는 곳에 생긴다. 당연한 결과로 항구를 둘러싼 좁은 땅은 항만 시설과 어시장 등으로 채워지고 주거지는 경사지로 올라가게 된다.

 

 

현대 도시계획에서 도시 기능의 위치를 인위적으로 정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물론 공적 이익이다. 산업 단지나 위락 시설로부터 주거와 교육 시설의 환경을 보호하고, 접근성이 높은 지역은 고밀도의 상업 및 업무 시설을 짓도록 하는 등 토지의 ‘합리적 이용’이 그 공적 이익에 해당한다. 공적 이익을 위해 특정 도시 기능이 도시 내 적정 위치에 들어서도록 하기 위한 대표적 제도가 제2종 일반주거지역, 근린상업지역 같은 용도 지역, 즉 조닝(zoning)이다. 한국 국토의 모든 부분은 예외 없이 9개 용도 지역(각주 4)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종류에 따라 어떤 용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혹은 지을 수 없는지, 어떤 규모로 지어야 하는지가 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제 도시 공간의 기능 배열은 용도 지역의 배열과 일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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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수도였던 북경의 지도 (Beijing di tu = Map of Pe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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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첸룽 지구의 지도(Qianlong Entire Beijing Map, 1488~1491) Dang A., Mao Qizhi, Ren Huaixiang, He Xindong, Deng Yi-liang, “Study on conservation planning for Beijing old city based on RS and GIS”, IEEE International Geoscience and Remote Sensing Symposium, 2005

 

그림 3. 청의 수도였던 북경(베이징)은 무려 우주의 중심으로서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 우주관을 따라 자금성을 중심에 두고 환이라 불리는 사각형의 위계 구조를 이룬다. 내부는 격자형 블록인 리방(里坊)과 일정한 간격의 내부 도로인 호동(胡同)으로 분할된다. 호동은 사회 통제의 공간 단위이며, 호동에 면한 획지의 너비는 곧 신분과 권력 혹은 부의 가늠자다. 전봉희, 『中國 北京 街家 風景: 2000년 북경 서구렴자호동 현장기록』, 서울:공간, 2003. 

 

 

환경과조경 435(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2050년경에는 인류의 70%가 도시에서 살 것으로 예상된다. www.worldbank.org

2. 버제스(Burgess), 호이트(Hoyt)를 비롯한 여러 학자는 도시에서 나타나는 CBD와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른 주거지 및 소비 공간, 산업 단지, 느슨한 교외 주거지 등이 이루는 특정한 배열을 유형화한 토지 이용 모델(land use model)을 제시했다.

3. 지금은 없어진 여의도광장, 서울 이곳저곳에 추진되고 있는 국가 상징공간이 그 예다.

4. 도시지역 4종(주거, 상업, 공업, 녹지)과 관리지역 3종(보전관리, 생산관리, 계획관리), 농림지역, 자연환경보전지역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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