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 용어를 일상 속에서 쓰는 일은 낯설지 않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나 ‘회복탄력성’ 같은 예를 들지 않아도, 당황하면 머릿속 ‘서버가 다운’되고, 저녁이면 스마트폰뿐 아니라 나도 ‘방전’된다. 디지털 세상에는 각종 ‘밈(meme)’이 돌아다니고, 학기말이 가까워질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방은 점점 더 엉망이 된다. 그리고 사람 간 성향이 잘 맞아 조화를 이루면 ‘케미(스트리)’가 좋다고 한다. 마지막 예는 근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이미 19세기에, 그것도 대문호 괴테가 소설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1807)에서 사용했다.1 친화력(affinity), 혹은 선택적 친화력(elective affinity)은 특정 물질끼리 강하게 결합하려는 성질을 뜻하는 화학 개념이다. 괴테는 사람, 특히 연인 관계에 이 개념을 도입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 관계의 변화에서 정원과 자연은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부유한 귀족 에두아르트와 샤로테는 재혼 부부다. 젊은 시절 서로에게 끌렸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다른 이와 결혼한다. 그러다 둘 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우여곡절 끝에 재혼한다. 동화였다면 이들은 에두아르트의 시골 장원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겠지만, 애틋한 사랑도 일상에서는 담백해지기 마련이다. 단조로운 시골 생활이 지루해진 에두아르트는 어려움에 처한 친구인 대위를 집에 들일 생각을 한다. 샤로테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곧 기숙 학교에 있는 조카 오틸리에도 집에 들인다는 조건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막상 네 사람이 함께 있게 되자 상황은 미묘하게 바뀐다. (후략)
각주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친화력』은 민음사(김래현 역, 2001)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오순희 역, 2013) 등에서 출간되었다.
* 환경과조경 399호(2021년 7월호) 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