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 한강공원의 실시설계를 맡게 되었을 때 너무나 설레고 흥분되었다. 내가 긋는 캐드 선 하나하나가 그대로 실현될 것이라 상상하니 의욕이 불타올라 밤늦은 줄 모르고 도면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다. 다섯 단계의 선 두께, 흑색과 회색 사이 선의 진하기를 조절해 가며 온갖 치수로 빼곡하게 채워 완성한 도면 한 장은 그저 아름다웠다. 모든 요소의 크기와 간격, 곡률을 도면에 정의했으니 이제 그대로 짓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잘못될 여지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공이 시작되자 수많은 질문이 날아들었다. 도면대로 시공할 수 없는 온갖 이유와 한시가 급하니 당장 대안을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우려와 함께 현장에 도착해 목격한 것은 그렇게 시공되지 말았어야 할,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대상지에 새겨진 상처들이었다. 현장에서 즉흥적 결정에 의해 디테일이 바뀌고 있었고, 한껏 공을 들인 자식 같은 설계 도면들은 휴지 조각이 되어 있었다. 어차피 시공이 끝나고 나면 아무도 보지 않을 도면인데 아무려면 어떠랴, 스스로를 쓸쓸히 위로했다. 호주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몇 개 프로젝트를 통해 비슷한 패턴을 경험하고 나니 의문이 끓어올랐다. 왜 우리는 도면을 만드는 데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이는가? 왜 시공자는 우리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안 하는가? ...(중략)...
* 환경과조경 378호(2019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이홍인은 호주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다. 한국의 오피스박김, 호주의 맥그리거 콕샐(McGregor Coxall)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현재 하셀(Hassell) 멜버른 오피스에서 BIM 모델링,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가상 현실 등 신기술을 조경 실무에 응용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