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이익 삑, 핸드폰이 이런 소리도 낼 줄 아나 싶은 괴상한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땐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 폭설이나 태풍을 예보하는 경보였다. 요즘은 주로 미세 먼지로 굉음을 낸다. 여러 사람이 모인 카페에서는 동시에 울리며 더 큰 소리로 퍼지지만 이젠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몇 해 전 요르고스 안티모스(Yorgos Lanthimos)감독의 ‘더 랍스터(The Lobster)’(2015)를 보고받은 충격은 다음 작품인 ‘킬링 디어The Killing of Scared Deer’(2018)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2019)는 대체 어디까지 가게 될까.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거나 신화에 기대어 멀쩡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도 봤는데, 어지간한 기묘함과 충격에는 눈 깜짝 안 할 자신감이 생긴 터였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역사극이라 분위기는 이전보다 편했다. 18세기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 분)을 중심으로 권력의 실세인 사라(레이첼 와이즈 분)와 하녀 애비게일(엠마 스톤 분)의 밀고 당기는 관계를 그리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궁중 사극에서 시기와 질투로 죽고 죽이며 인형에 바늘을 꽂는 그런 장면 말이다. 아침 드라마는 또 어떤가. 재벌 2세 실장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싸가지 없고 경우도 없는 악한 강자와 외로워도 슬퍼도 웃음을 잃지 않는 콩쥐형 주인공, 사약을 드링킹하거나 해외 도피하는 악한의 파국, 바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초긍정적인 주인공은 끝내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이야기 유형. 이제 식상하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카페의 창문 밖으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해가 기우는 하굣길에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태극기를 봐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팝콘 봉지를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나 동해물과 백두산을 봐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운동장은 시간이 멈춘 듯 아득했고, 극장 안의 분위기는 생뚱맞았다. 같은 민족의 통일을 앞두고 언제까지 남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 눈치를 봐야할까. 여전히 아득하고, 생뚱맞다. 유관순 열사가 이 땅에서 독립을 외친 지 올해로 100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