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연재의 마지막 글이다. 첫 회에는 ‘분위기, 맥락, 주제’라는 키워드로 설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설계적 개념)를 다루었고, 2회 차에서는 ‘스케일’을 주제로 개념을 실재화하는 구체적인 방식(설계적 문법)을 논의했다. 이번 3회 차에서는 물리적 실체가 있는 설계 요소, 즉 설계 재료(설계적 어휘)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간다. 조경이 다루는 설계 재료는 꽃과 나무 같은 식물 재료, 돌이나 철 같은 무기 재료, 빛, 바람, 습도 같은 물리적 환경 요소 등 무수히 많지만, 본 연재에서는 조경 설계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식물에 관한 개인적 관점을 소개한다.
자연을 다루는 작곡가
“저는 조경학과를 나왔지만 나무는 잘 몰라요.” 업계에서 일을 하다보면 이렇게 말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미학, 계획, 설계, 역사, 이론, 생태학 등 그 앞에 조경을 붙일 수 있는 다양한 세부 학문이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가 설계가라면 분명히 문제다. 조경 설계에 있어 식물은 가장 중요한 설계 재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식물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재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설계가는 악기의 소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곡가에 비유할 수 있다. 악기 소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화성학 같은 음악 이론을 바탕으로 곡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만든 곡이 듣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더욱이 그 곡이 하나의 악기로 연주하는 독주곡이 아니라 여러 악기를 함께 연주해야 하는 협주곡이라면 어떨까? 다양한 소리가 함께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작곡가는 각 악기의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그 소리들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음색의 변화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조경가는 자연을 다루는 작곡가 같은 역할을 한다. 악기 소리에 해당하는 식물 재료의 특질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설계 재료로서 식물을 어떻게 배우고 익혀야 할까? 악기 소리는 직접 연주해 보고 그 음을 들어 봐야 깊게 이해하고 다룰 수 있듯이, 식물 재료도 직접 보고 만지고 심어 봐야 알 수 있다. 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것이 있지만 적어도 식물을 다루는 방법은 글로 익히기 어렵다. 설계가의 몸이 직접 식물과 만나면서 배워야 하는 일이다.
식물 없는 식재 설계
학창 시절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있었다. 바로 ‘빵빵이를 돌린다’는 말이다. 식물에 일자무식이었던 신입생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스튜디오 수업의 과제는 주택 정원 설계였다. 지금은 잘 쓰지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제도용 손 도구 중 여러 가지 크기의 원이 뚫린 도형자가 있었다. 그때의 식재 설계란 하얀 바탕 위에 나무를 상징하는 여러 크기의 원을 보기 좋게 배치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컴퓨터 툴을 활용해 나무 이미지를 붙여 넣는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도형자의 원이 나무 형태의 심벌로 바뀌었을 뿐 결국 하는 일은 같았다. ‘빵빵이를 돌린다’는 말은 나무를 잘 모른 채 식재 설계를 하는 행위를 향한 자조 섞인 표현이었다. 이렇게 작성한 도면이라면 그 안에 진정한 의미의 식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실체는 없고 공허한 개념만이 부유할 뿐이다.
학생이 아니라 현업에 있는 동시대의 젊은 조경가들은 식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종종 젊은 설계가와 교류할 기회가 있는데, 공간에 대한 예리한 감각, 창의적 표현, 세련된 의사 전달 방식 등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이들조차 정작 식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식물의 생물학적 특성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공간을 구성하는 회화적 표현 재료로써 식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색과 질감, 양감 같은 공간의 구성 요소를 식물 재료로 표현하는 데 미숙한 젊은 조경가가 많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담론이 중요했던 지난 십여 년간 한국 조경은 공원 스케일의 프로젝트에 전념해 왔다. 조경가를 양성하는 대학도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추어 왔다. 공간에 대한 종합적 구성, 빈틈없는 프로그래밍, 설계 개념을 전달하는 강력한 표현 전략같이 큰 프로젝트를 다룰 때 유용한 방법을 주로 다루었다. 반면에 식물 소재의 선, 색, 질감 등에 대한 교육은 부족했다. 몇 차례의 특강 또는 실습만으로 이를 해소하고자 했다. 이런 주제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므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배워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 간주하고 미루어 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조경 설계 실무를 시작하면 식물을 배울 기회가 많은가?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법적 조경 감리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설계가들은 식물을 가까이 마주하며 다루어 볼 기회를 좀처럼 갖기 어렵다. 학교 교육에서 모자랐던 부분이 실무에 종사하면서도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다.
식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더 좋은 식재 설계를 하기 위해 젊은 설계가들은 나름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어떤 이는 정원을 설계하는 회사에 취직하거나 정 원박람회에 참여해 개인적 차원에서 식물을 익히고자 노력한다. 어떤 이는 식재 설계가 중요한 프로젝트에 서 정원 디자이너와 협업해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자 한다. 또 어떤 이는 식물을 깊게 알고 싶어서 설계 사무실에서 퇴사하고 식물원에 취직을 하는 강수를 두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을 하는 이들이 마음에 품은 공통된 생각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식물 없는 식재 설계를 하고 싶지 않다.”
식물의 선
학생일 때 나는 식물의 색, 질감, 형태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었지만, 형태의 세부적인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선線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계 관점이 없었 다. 식물이 갖는 선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정원 설계를 하는 회사에 취직하고 식물을 일상 적으로 마주하며 일하면서부터다.
우리는 흔히 어떤 대상의 외양을 묘사할 때 ‘선이 곱다’ 혹은 ‘선이 투박하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선이 아름다운 사람, 선이 아름다운 자동차, 선이 아름다운 옷, 선이 아름다운 풍경 등 우리는 일상에서 아름다운 선을 수없이 보고 경험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자. 선이 아름다운 나무, 선이 아름다운 풀, 선이 아름다운 꽃이란 어떤 것일까? 누군가 이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녀)는 평소 식물의 형태를 눈여겨본 사람이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 식물도 선을 가지고 있다. 땅에서 하늘을 향해 자라면서 아래부터 위를 향해 점점 얇아 지며 뻗어나가는,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선이 바로 식물의 선이다. 이런 선은 수종마다 다르고 또 같 은 수종이라도 개체 하나하나마다 다 다르다. 여름철 이면 이 선들이 잎에 가려져 두드러지지 않지만, 잎이 진 겨울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눈에 띄는 가지가 없 는 풀과 꽃에도 선이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 봄부터 겨울까지 성장하는 가느다란 줄기 또는 억새처럼 가늘 고 긴 잎 등이 풀과 꽃의 선을 만든다. 어떤 선은 가늘 고 섬세하며 어떤 선은 굵고 투박하다. 어떤 선은 가지 런하고 어떤 선은 어지럽게 교차한다.
큰 나무에도 선이 있고 작은 풀과 꽃에도 선이 있기에 정원 안에서는 수많은 선이 교차한다. 정원 전체의 풍 경이 아름답게 느껴지려면 그 안의 무수히 많은 선이 질서를 가지고 조율되어야 한다. 선을 어떻게 조율하 는가? 나름의 방식이 있겠지만 내가 배운 방법은 제일 먼저 큰 선, 그 다음에는 중간 스케일의 선,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선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화가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과 유사하다. 큰 밑 선을 먼저 그리고 나서 단계적으로 작은 선 을 정리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정원 일은 회화와 많이 닮아 있다. 다만 회화에서는 대개 평면 작업이 주를 이루지만, 조경은 3차원의 공간을 다룬다.
이 때문에 선을 조율하는 일 역시 다각도의 시선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시점에서 볼 때 아름다운 선의 흐름이 다른 시점 에서는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한 시점에서의 완벽함을 포기하더라도 전체적으 로 좋게 보이는 최적의 선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 경 험 많은 설계가라면 최선이라 할 수 있는 선을 빠르게 찾아내겠지만, 식물의 선을 읽는 경험이 적은 설계가 라면 이를 쉽사리 발견하기 어렵다.
나무의 선
식물의 선 중에서도 나무의 선은 특히 중요하다. 큰 나 무의 선은 공간의 골격과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을 때는 전체적인 수형뿐만 아니 라 나뭇가지 선 하나하나의 흐름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선의 흐름은 나무가 본래 어느 방향으로 자라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그 선을 잘 살려 심으면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느껴지고 곁에 다가선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 반대로 선에 대한 고민 없이 무 심하게 심긴 나무는 주변 풍경과 부조화를 이룬다.
수많은 종류의 나무는 저마다 고유한 선을 갖는다. 예를 들어 단풍나무는 기둥부터 중간 가지 그리고 잔가 지에 이르기까지 그 선이 큰 굴곡 없이 매끈하게 이어 진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고운 곡선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에 반해 배롱나무는 잔가지가 적고 가지가 분지되는 부분마다 큰 굴곡이 있어 꺾인 선 이 강조되는 특징을 갖는다. 단풍나무보다는 투박하게 보이는 선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조형성을 느끼게 한다. 어떤 나무의 선은 다른 나무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느티나무의 선은 가지에 비해 기둥부가 굵은 특징을 지 니는데, 마치 큰 붓으로 그린 나무처럼 묵직한 인상을 준다. 매화나무의 선도 흥미롭다. 다른 나무보다 상대 적으로 키가 작고 큰 가지가 옆으로 퍼진 후 작은 가지가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자라는 매화나무의 선은, 얼핏 보았을 때는 어지럽고 산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불규칙한 선이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 준다. 과거 선비들이 그린 사군자 속의 매화나무에도 그런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노각나무의 선도 독특하다. 노각나무는 자작나무처럼 주 가지가 수직으로 길게 자 란다. 그런데 보통의 나무는 가지가 나무 바깥쪽에서 나무 기둥 쪽으로 안으로 굽듯이 자라는 반면, 노각나 무는 종종 가지가 안에서 바깥으로 꺾이며 자란다. 비유하자면 팔꿈치가 몸 안으로 굽는 것이 아니라 몸 바깥으로 굽는 격이다.
나무를 바라보는 설계가의 관점은 모두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경가가 나무가 갖는 고유한 선을 섬세 하게 읽어 내고 자기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설계 재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의 전체 수형 만 생각하고 진행하는 설계와 가지의 디테일한 선까지 고려하는 설계에는 큰 차이가 있다. 후자와 같은 방식 으로 설계를 하고 시공할 때 기존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조경가 김용택이 설계한 여주 주택은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적절한 사례다. 주택의 현관 옆에 심은 낙상홍 한 그루에 관한 이야기다. 건축을 압도하지 않는 적절한 스케일의 나무를 선정하고 가지의 선을 공간에 맞추어 심어, 마치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공들여 키워온 나무 처럼 보이게 했다. 기둥이 하나인 큰 나무를 심지 않고 땅에서부터 가느다란 가지가 여러 개 올라오는 다간형 나무를 심음으로써, 큰 선에 해당하는 건축의 외곽선이 그대로 느껴지도록 하는 동시에 공간에 적절한 양감을 부여했다.
초화의 선
나무에 선이 있듯이 초화에도 선이 있다. 초화의 선을 만드는 요소는 나무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하다. 나무 의 선은 가지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지지만, 하나의 정원을 만들 때도 수십 가지 종류가 쓰이는 초화 식물 의 경우, 선을 구성하는 요소도 매우 다양하다. 바늘 꽃이나 부처꽃처럼 긴 줄기가 큰 선을 만들기도 하고, 범부채나 유카처럼 독특하게 생긴 잎이 선을 형성하기도 한다.
톱풀이나 원추리같이 꽃이 필 때만 올라오는 긴 꽃대가 선을 느끼게 하기도 하며, 꼬리풀처럼 독특 하게 생긴 꽃 자체가 흥미로운 선을 보여 주기도 한다. 털수염풀처럼 하늘을 향해 나풀거리는 선을 만드는 식 물도 있고, 줄사철 같이 땅을 기는 듯한 수평적 선을 가진 식물도 있다. 모닝라이트 억새같이 길고 섬세하 게 느껴지는 선을 갖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은쑥처럼 잎이 짧고 촘촘해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그래 서 선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질감이 더 드러나 보이는 식물도 있다.
초화를 식재할 때 단일 수종을 군식하기도 하지만 비 교적 작은 공간에 수십 가지의 수종을 혼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수많은 종류의 초화의 선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 화가가 캔버스 위에서 선과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듯, 조경가도 저마다 초화 의 선을 조율하는 방식이 모두 다를 것이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원칙을 가지고 초화의 선을 조율한다. 첫 번째 원칙은 식물의 선이 서로 상충하지 않도록 식재하는 것이다. 만약 한 지점에 큰 선을 갖는 식물을 심었다면 그 주변에는 선이 강한 식물을 심지 않고, 대신 색, 질감, 양감 등을 보충하는 식물을 함께 심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강한 선의 아름다움은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공간에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부여한다.
두 번째 원칙은 식재 시점의 완성도에 관한 것인데, 식 물이 갖는 선의 결을 맞추는 것이다. 조금 모호하게 들 릴 수 있겠지만, 이는 앞서 나무의 선을 결정할 때 본 래 그 자리에서 자란 나무처럼 심는다고 한 것과 같 은 맥락의 이야기다. 즉 여러 가지 초화를 혼식하더라 도 식물들이 본래 그 자리에서 함께 태양을 바라보며 자란 듯 선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식재하는 것이다.
크고 작은 선이 방향성을 가지고 켜켜이 쌓 이면 하나의 결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심을 경우 비교 적 단기간에 안정되어 보이는 초화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초화의 색과 질감만을 고려하고 작은 선을 읽지 않은 채 식재할 경우, 누군가 헤집어 놓은 듯 어수선한 모습의 공간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식물들이 태양을 따라 반응하며 자연스럽게 선을 잡아 나가겠지만, 제 법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잔잔한 것이 더 아름답다
자연을 담은 공간을 설계하고 짓는 일을 하면서 느낀 점 한 가지를 공유한다. 주로 정원을 만드는 설계 사무소에 취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질문을 한 적 이 있다. “소장님은 어떤 나무가 좋으세요?” 설계가로 서의 기호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 다 좋다. 다 좋은 점이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답 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것 같다. 나무도 꽃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일견 개성이 없고 평범해 보 이는 풀 한 포기도 자세히 바라보면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잔잔한 아름다움을 갖는 풀이 없다면 그 옆에 있 는 화려한 꽃의 아름다움도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을 빛나게 하는, 자기 본연의 가치를 드 러내는 그런 잔잔한 것이 더 아름답다(연재 끝).
최재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정원과 조경 설계 실무를 익혔다. 수상 경력으로 제8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제3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전 대상, 2017 코리아가든쇼 대상 등이 있다. 2017년 한강예술공원 시범사업의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스튜디오 오픈니스(Studio Openness)를 창업하여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