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와의 운명적 만남
한국은행에서 일하던 ’50년대 중반 나는 서해안 만리포로 자주 수영하러 다녔다. 당시 한국은행 이사였으며 나중에 재무부장관까지도 역임했던 송인상씨의 별장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해수욕장으로 개방되어 상업시설들이 빽빽히 들어섰지만 당시는 인적이 드문 아름다운 해변이었기에 여름이면 친구들과 함께 수영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미국에 서 가족, 친지나 친구들이 오면 어김없이 이곳 만리포로 데리고와서 그 아름다운 비경을 보여주며 즐거움을 함께 했다. 그러기를 몇년째, 어느날 동네 노인이 다가와 만리포 바로 옆에 있는 천리포 부근에 땅을 좀 사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해왔
다. 당장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땅을 사본 것이 바로 그 때로 나는 천리포에 3천여평의 땅을 구입했다.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당장 돈이 필요한 그들을 돕는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1962년의 일이다.
이후 천리포의 한 노인이 미국인에게 땅을 팔았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그곳의 많은 주민들이 자기네 땅을 사달라는 요청들이 쇄도했다. 처음엔 곤란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땅을 사놓으면 미래 언젠가 뭔가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그저 특별한 생각없이 조금씩 그들의 땅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결국 3천평에서부터 시작된 땅 매입은 ’75년까지 15만평으로 불어났고 대책없이 모아놓은 이 땅위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나의 커다란 고민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애꿎은 땅이 되어버린 그때 내 인생을 바꾸어버린 결정적 계기는 바로 한 친구의 전화와 그가 보낸 트럭 한대에 담겨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내모습과 천리포수목원을 탄생시킨 모태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 키워드: 천리포, 천리포수목원, 수목원
※ 페이지 30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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