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가 내려온다
“멧돼지 집중 포획으로 안전을 위해 외출을 자제해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세종시청.” 재난 문자에 익숙해져 가던 2020년의 어느 날, 휴대폰 화면 위로 또 다른 재난 문자가 도착했다. 이미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세종의 한 아파트 단지를 질주하는 멧돼지 떼 영상이 화제였다. 인간과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고 도시로 침범해 들어온 멧돼지 소식에 당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멧돼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들이 당혹스러울 터. 몇 년 새 자신들의 터전이 ‘휴먼’ 35만(세종시 인구는 35만 명이다)을 위한 도시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아직 세종시는 멧돼지와 공생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는지 매년 멧돼지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19년에는 400마리가량을 포획했다는데, 동물원, 사육장, 도축장, 실험실이 아닌 도시 내에 이들이 거주할 만한 곳이 있을까.
주폴리스
자연 대 문화, 야생 대 도시, 비인간 대 인간이라는 이분법은 오랜 믿음이다. 그러나 어디에서 도시가 끝나고 야생이 시작되는 것일까? 자연과 문화의 분리는 과연 여섯 번째 대멸종 앞에서 유효한가? 일찍이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지구의 절반을 보호 구역으로 떼어놓자고 제안한 바 있으나, 최근에는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하는 ‘비인간으로의 전환(nonhuman turn)’2이 진행 중이다. 조경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영역 간 하이브리드뿐 아니라 생물종에 있어서도 혼종성 개념을 적용하며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꿈꾼다. 주폴리스(zoopolis), 공동서식지(cohabit), 공동창조(co-creating)와 같은 용어가 그 사례다. 그렇다면 자연과 문화를 단절하지 않는 문화는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자연과 문화는 물질적 통합과 영적 화해를 이룰 수 있을까?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을 모색한 공모전 ‘생물체 설계공모(LA+ Creature Design Ideas Competition)’를 통해 힌트를 얻어 보자.
공모 개요
‘생물체 설계공모’는 저널 『LA+』가 주최한 공모전이다. 새로운 섬 속 유토피아를 그렸던 2017년의 ‘새로운 섬 설계공모(LA+ Imagination Design Ideas Competition)’, 뉴욕 센트럴 파크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오픈스페이스를 구축했던 2018년의 ‘센트럴 파크 우상 타파 설계공모(LA+ Iconoclast International Design Ideas Competition)’를 잇는 세 번째 판이다. 이번에는 ‘생물체creature’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인간이 도시 속에서 동물과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 우리의 도시, 경관, 그리고 마음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물었다. 참가자에게 요청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인간이 아닌 생물체를 의뢰인으로 선택하고 그의 요구 사항을 규정할 것. 둘째, 의뢰인의 삶을 개선하는 장소, 구조, 사물, 체계, 또는 과정을 설계할 것. 셋째, 설계를 통해 의뢰인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공감을 향상시킬 것.… (중략)
* 환경과조경 394호(2021년 2월호) 수록본 일부
김정화는 근현대 정원과 공원에서 일어난 식물, 아이디어, 제도의 국제적 교류를 연구하며 조경학을 가르치고 있다.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의 일원이며, 2021년부터 막스플랑크예술사연구소(Kunsthistorisches Institut in Florenz.Max Planck Institut)의 4A_Lab에서 연구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