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의 어느 늦은 오후, 처음 방문한 신트리공원에서 동네 주민들이 저마다의 루틴에 따라 공원을 알차게 활용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은퇴 후 주로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잠시 휴식 시간을 즐기는 청소년들, 퇴근 후 아이들과 산책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은 가장 동시대적인 목동의 풍경이다. 도시계획을 통해 조성된 공원을 가장 일찍 경험한 목동 주민들은 도시의 일상 속 공원 녹지가 여가 공간으로서 얼마나 큰 행복과 위로를 주는지 지난 30년 동안 경험해왔다.
그래서인지 낡은 신트리공원을 고쳐 쓰기 위한 새로운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것은 아주 부담스러운 작업이었다. 오래돼서 낡은 가죽 신발이지만 그 어떤 신발보다 편안하고 나름의 멋이 있어서 그대로 신고 싶은 주인의 마음이 바로 목동 주민들의 마음일 것이다. 비전문가인 그들에게는 지금의 공원이 최선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새로 고친 공원이 새 가죽 신발을 신은 것 마냥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공원에 얼마나 많은 불편과 위험 요소가 있는지. 지금 보이는 풍경이 결코 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잠깐의 상상을 통해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신트리공원 리모델링 계획의 첫 번째 전략으로 ‘리스펙트respect_지금을 받아들이다’ 를 세웠다. 거창하고 새로운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유치하기보다는 현재의 공원 골격과 프로그램을 존중해 활용하는 것이 우리가 제시한 가장 중요한 방향성이다. 지난 30년간 이곳에 누적된 공동체 문화는 신트리공원의 가장 큰 정체성이며 다음 세대를 통해 이어져야 할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지역의 삶과 문화, 자연이 그대로 담길 수 있는 넉넉한 그릇으로서 공원이 계속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전략은 ‘리–어레인지먼트re–arrangement_다시 구성하다’다. 현재의 틀을 유지하되, 그동안 임기응변식 시설 추가로 무질서하게 널려 있는 프로그램을 재배치해 새로운 변화가 유입될 수 있는 여백을 만들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텃밭과 장미정원, 장기판 전용 퍼걸러, 지압 보도, 생활 체육 시설, 논습지 등은 언뜻 보면 공존하기 어려운 프로그램 같지만 이미 주민들에게 검증된 프로그램이다. 설계자에게만 어색해 보이고 공원을 사용하는 이들은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더 나은 구성을 제시하고 현재의 조합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새로운 공간의 유입을 위한 틈을 만들고자 했다.
* 환경과조경 410호(2022년 6월호) 수록본 일부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심원조경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다. 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