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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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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서울역 고가, 다시 토론할 때다
빛의 속도로 완공된 ‘서울로 7017’, 서울시 보도 자료에 따르면 개장 한 달 만에 203만 명이 방문했고 연말까지 1,00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박원순 시장이 뉴욕의 하이라인에 올라 서울역 고가를 서울판 하이라인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2014년 9월 이후, 『환경과조경』은 여러 호에 걸쳐 이 사업의 중간 지점을 포착해 왔다. 특히 2015년 7월호에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당선작은 물론 출품작 전체에 대한 리뷰와 비평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토론의 장을 열기도 했다. 이번 호에서는 당선작 선정 2년 만에 개장한 ‘서울로 7017’을 다시 특집으로 올린다. 지난 겨울부터 기획을 시작한 편집부는 서울시 담당자, 설계사의 핵심 관계자, 시민 단체 리더, 자문위원, 관련 전문가들을 여러 차례 취재했지만, 아직 물음표를 거두기 쉽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특집에 담은 MVRDV의 글과 인터뷰, 이경훈 교수와 서예례 교수의 비평, 김정은 편집팀장의 취재기와 인터뷰는 어딘가 서로 어긋나 있다. 당위성, 지향점, 과정, 효과 등 여러 지점에서 갈팡질팡해 온 이 프로젝트의 민낯일 수도 있겠다. 편집부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서울역 고가가 그야말로 ‘열린 결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서울역 고가의 미래를 긴 호흡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다. 몇 달간 편집부에서 오고간 많은 대화 뭉치 중 한 토막을 옮긴다. E. 중간에 자문회의에 참여했던 사람들 만나보면 MVRDV가 지나치게 고집을 피웠다, 불합리한 부분까지 너무 지켰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H. 주로 당선작의 가나다 식재와 콘크리트 화분 길이 실제로 구현됐다는 점에 대한 비판인거죠? 그런데 ‘고집을 피웠다’고 보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아요. 설계대로 시공하는 건 원칙 중의 원칙입니다. 자문이 그 역할을 넘어서 설계안을 좌지우지하는 건 오히려 고쳐야 할 고질병 중 하나죠. 이번 프로젝트에서 유일하게 돋보이는 건 공모 당선작이 거의 원래대로 실현됐다는 점이에요. E. 문제는 ‘설계대로’에서 그 ‘설계’가 과연 무엇인가에요. 설계공모 당선작이 바로 그 ‘설계’로 확정돼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H. 맞아요. 설계공모란 건 적합한 설계자와 설계안의 밑그림을 공정하게 선정하는 절차죠. 따라서 당선작을 그 ‘설계’로 발전시키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합리적 과정이 뒤따라야 해요. E. 하지만 서울역 고가는 누구나 알듯이 대선용 프로젝트였어요. 과 정에 충실할 시간? 꿈같은 얘기죠. H. 소통과 과정과 참여의 대명사인 박원순 시장답지 않은, 전형적인 ‘시장표’ 전시 사업이죠. 초기 구상 때부터 이미 불변의 목표 완공 시점이 정해져 있으니 무리한 속도전을 벌일 수밖에 없고 당선작을 그 ‘설계’로 확정하는 과정이 실종되거나 소홀할 수밖에 없었어요. E. 서울로 7017 덕분에 모처럼 일간지와 방송에서도 조경·도시설계 프로젝트를 다루는 기사와 칼럼이 넘쳐나고 있어요. 내로라하는 논객과 SNS 스타들도 한마디씩은 거들고 있고요. H. 공론의 장에서 조경과 도시설계가 이렇게 토론된다는 것, 당연히 환영이죠. 그런데 메뉴로 올라오는 걸 보면 못생긴 콘크리트 화분 길, 난데없는 가나다 식재, 삭막한 콘크리트 포장, 옹색한 육교, 그늘이 없다, 걷기에 좁고 복잡하다 등 디자인에 관한 것들인데, 이제야 디자인으로 토론한다는 게 참 아쉬워요. 2년 전 당선작이 발표됐을 때 더 활발하게 갑론을박했어야 할 주제. E. 2년 전에 충분히 공론화됐어야 할 문제가 뒤늦게 다뤄지고 있다는 말인 거죠? H. 사실 그때도 조경, 건축, 도시설계 전문가 사회에서는 핫 이슈였죠. 우리 잡지도 기여를 했고. 그러나 시민들은 몰랐던 겁니다. 당선작의 조감도와 이미지 컷들을 아무리 지하철역마다 걸어놓았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한 거예요. 그때 그림 그대로인데도 막상 완공된 공간이 생경한 거죠. 공공 프로젝트는 내 집 앞마당을 내 맘대로 꾸미는 거랑 전혀 달라요. 시민 모두가 클라이언트인 셈이죠. 시민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다수의 시민이 MVRDV의 당선작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심만큼은 가지고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어야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인 거죠. ‘세상에서 가장 긴 화분’이 우리 앞에 등장한다는 걸 시민의 다수가 알고 관심을 가지고 상의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해요. 몰랐고 또 기회가 없었으니 시민들은 이제야 뒷북을 두드릴 수밖에. E. 클라이언트이자 사용자인 시민에게도 설계안에 대한 의견을 낼 권리가 있죠. 마음에 드는지 들지 않는지 보고 알고 이야기할 과정이 있어야 했다, 동감입니다. H. 개장 후 한 달간 가장 놀라웠던 건 한 일간지에 실린, 전 서울시 총괄건축가의 칼럼이었어요. 런던의 “‘가든 브리지’가 수년 동안 논란만 무성한 채 착공조차 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며 불과 2년 만에 완성한 서울의 실천을 부러워하며 조명한다”고 영국 「가디언」의 보도를 인용한 부분 있잖아요. 사회적 합의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가든 브리지’가 정상 아닐까요? 토건 시대도 아니고, 속전속결이 자랑거리는 아니죠. E. 며칠 전 시의회에서 시장은 다른 나라에서 10년이 걸린다고 우리도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비록 2년이지만 강력한 추진력으로 런던이 해내지 못한 걸 이뤘고 충분한 소통의 과정을 거쳤다고 자평하던데, 솔직히 ‘내로남불’처럼 들렸어요. H. 서울역 고가에 대한 비평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요. 사업의 구상과 목표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에 정치적 콘텍스트를 괄호 안에 묶어둔 채 순수하게 디자인 자체만을 비평하는 건 핵심을 벗어나거나 의미 없는 푸념에 그칠 가능성이 커요. 무슨 공원 바닥이 콘크리트냐, 화분 속 식물이 불쌍하다, 가나다가 웬 말이냐 같은 이슈는 다른 공원이나 가로에서는 중요하겠지만 서울역 고가의 핵심은 아니죠. E. 결국 다수의 공간이므로 어떤 설계안이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충분히 토론하면서 다수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중요한 거죠. H. 실은 초기의 공론화 과정이 더 중요하죠. 왜 하는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공론화, 지금 다시 그 이야기를 들춰서 특집에 담는 건 정말 뒷북이겠죠? E. 이번 기획에선 다루지 않더라도 여전히 생명력 있는 쟁점인 건 분명해요. 광화문광장 개선과 같은 또 다른 도시 정치 프로젝트가 대기 중이니까요. 무엇을 만드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어떻게 만드는가라는 점, 서울역 고가의 교훈. 오늘은 이 정도로 맺을게요
[칼럼] 낡은 다리 위에서, 전복의 풍경
‘파레르곤parergon’은 작품, 주제, 기능, 일, 행위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 ‘에르곤ergon’에 주변, 보조, 부차적이라는 의미의 접두사 ‘파라para’를 붙여서 만든 단어다. 아들을 위한 품행 지침서 제목으로 처음 사용한 18세기 초에는 텍스트에 덧붙인 보조적, 교육적 문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칸트, 쇼펜하우어, 자크 데리다 등 여러 철학자를 거치면서 복잡 미묘한 의미를 갖추게 되었다. 좁게 보면 주 텍스트에 달아놓은 주석으로 볼 수도 있고, 넓게 보면 작가의 전체 저서 중 중요치 않은 저작이나 작가의 주요 저서를 만들기 전에 제작한 소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함부로 분리할 수 없는 주석으로서 파레르곤이 주 텍스트를 보충해서 설명을 하면 할수록 다른 한편으로 텍스트가 지닌 근원적 복잡성이 드러난다. 역설적이게도 주요한 내러티브를 다중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논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텍스트의 역사에서 고정 불변성이 사라진다. 공사 당시 상황판 사진의 문구처럼 “서울역전의 평면교차로 인한 교통 혼잡”을 “완전 해결”하고자 근대적 교통 체계에 입체로 덧붙인 이전의 ‘서울역 고가도로’ 또는 오늘날의 ‘서울로 7017’은 태생적으로 파레르곤이다. 차량이 우선이었던 속도의 시대에 도도한 차량 흐름을 끊는 보행 동선과의 교차점을 없애거나 줄이는 방식의 보완 역할로 교통 체계의 효율을 높였으며(실상은 효율적이라고 믿었을 뿐이지만), 때로는 거대 도시 서울의 중심에서 1970년대 조국의 근대화를 웅변하는 상징물 노릇도 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고가도로들은 이미 1980년대에 정체를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교통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의심을 받았으며, 1990년대에는 흉물이자 골칫거리가 되었다. 건설 의도와는 정반대로 고가도로라는 파레르곤이 일견 완벽해 보였던 근대 교통 체계의 계산법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게다가 2017년 이 고가도로를 녹지가 있는 선형의 보행로로 재조성하면서, 급기야 우리는 오래된 콘크리트 덩어리의 ‘파레르곤’이 주변 도심 공간을 엮는 중심이자 주제인 ‘에르곤’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목도한다. 눈여겨 볼 것은 다중적 해석 속에서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자리가 뒤바뀌는 ‘파레르곤’과 ‘에르곤’의 전복적 양상이다. 숱하게 부수고 새로 지어서 한눈팔다 돌아보면 으레 강산이 바뀌어 있는 토건 국가에서 살아왔으니 구조물의 변신 자체는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다. 강을 건너는 노후한 다리를 폐쇄한 후 보행교로 용도를 바꾸거나 고가의 육교를 철거하는 작업은 이미 흔하게 봤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재미가 없다. 세상이 반드시 흥미로워야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의 경관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 대중에게 정보를 열어놓고 치열하게 논란을 거치면서 다시 구축했다는 점에서 ‘서울로 7017’은 분명히 진일보했다. 전복적 사고는 전면적 파괴나 철거나 멸실이 아니라 계보학적 접근을 통한 해체와 재구축 작업을 통해서 제대로 실현된다. 뉴욕의 하이라인을 거울삼았지만 애초에 한계는 명확했다. 다리 높이가 17m로 지상과는 너무 동떨어졌다는 점, 그에 비해 10m 폭은 비교적 좁다는 점, 주변 건축물 입면과 자연스레 접하는 지점이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다리 전체가 분주한 대로와 철로 위에 올라앉은 긴 섬이라는 형국. 이런 상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도 가장 압도적인 것은 다양한 크기와 높이로 만든 원형의 콘크리트 화분들이다. 하늘 위를 걷는 사람들이 냇물에 잠긴 작은 바위와 돌을 스쳐가는 물고기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대개는 가운데를 통해서 가지만, 화분과 유리 난간 사이로 난 좁다란 골목도 택한다. 화분이 원형이라서 이 독특한 골목은 구불구불한 형상으로 주변 경관을 부감하면서 아주 길게 이어진다. 흔치 않아서 재미있다. 다만 해체해서 재구축한 다리 위에 놓인 식물도감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건물 파사드와 연결하기 힘드니 행태 유발의 임무를 이름순으로 나열한 나무들에게 떠맡긴 것일까. 그러나 기표와 기의를 일치시키고 호명하는 근대를 탈근대 위에 올려놓은 이 질감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다. 설계공모에서도 제시한 수목원식 나무 배열은 그 목적이 관람이건 학습이건 누구나 익숙해서 무난할 테지만 그저 그뿐이다. 게다가 230여 종에 달하는 다종다양한 나무 모두에게 콘크리트 다리 위는 과연 살만한 환경인가. 식재의 내용보다는 고가도로라는 형식, 나무보다는 화분이라는 틀에 집중하면, 지상과 분리된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명력을 생생하게 드러냈을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늦지 않았다. 탈근대적 작품의 끝은 열려 있고 누구나 의견 개진이 가능하니 앞으로의 모습 또한 끊임없이 변모해갈 것이다. 모든 경관은 이미 정치적이다. 경관이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어쩐지 의도가 불순하다. 다수를 차지하는 유권자 층이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만 언제 어디서고 경관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 실상은 가장 정치적이다. 그렇다면 예술을 통해서 전망을 제시하는 진보적, 도전적인 작품들이 놓일 자리는 어디인가. 불행하게도 서둘러 정리되는 결말을 맞이했지만, ‘슈즈 트리’처럼 때로는 논란만으로도 충분하다. 논란거리를 아예 없애겠다는 태도가 오히려 심각한 문제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주석이 달리고 전복적인 논의가 따라 붙는 풍경이 필요하다. 낡았지만 새로 태어난 다리, ‘서울로 7017’이 그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1999년부터 19년째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조경설계 힘(studio HYMH)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그곳에 머무는 사람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경관에 대한 해석과 발언이 자유롭고 ‘시급 1만 원 시대’에 경제적으로 튼튼한 설계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인내심 많은 친구들인 안형주, 박준영과 함께 열심히 살고 있다.
서울로 7017을 묻다
지난 5월 20일 ‘서울로 7017’이 개방되었다. 2014년 9월 서울역 고가 공원화 발표 이후 채 3년이 지나지 않았다. 지금 서울역 고가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과 논란을 생산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보행, 재생, 디자인, 거버넌스, 산업 유산 등 다양한 키워드가 있다. 본지는 지난 2015년 7월호에서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를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이번 호에는 프로젝트 진행 과정과 완성된 모습을 전반적으로 짚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특히 프로젝트와 관련된 여러 주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는 데 주력했다. 또 각기 다른 프레임으로 서울로 7017을 바라보는 두 비평가에게 글을 청하기도 했다. 각자의 입장과 시선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퍼즐들을 맞춰보시길 권한다. 갓 개방한 공공 공간의 성과를 논하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이번 기획이 당분간 지속될 서울로 7017에 대한 관심과 비평의 시작이 되리라 기대한다. 서울로 7017_ MVRDV 행복하게 걷는 서울을 위하여_ 이교석 인터뷰: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_ 비니 마스, 벤 카위퍼르스, 이교석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_ SoA 비평: 서울로 7017 유감有感_ 이경훈 비평: 수목원과 보행로의 공간적 픽처레스크_ 서예례 서울로 7017, 과정을 돌아보다_ 김정은 인터뷰: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민의 공간으로_ 권완택 인터뷰: 공간 이용을 지켜보며 계획하겠다_ 온수진 인터뷰: 거버넌스의 실패가 아니라, 시작이다_ 조경민(조반장)
[서울로 7017을 묻다] 서울로 7017
건축 설계 MVRDV(Winy Maas, Jacob van Rijs and Nathalie de Vries with Wenchian Shi, Kyo Suk Lee, Ángel Sánchez Navarro, Jae Woo Lee, Antonio Luca Coco, Matteo Artico, Jaime Domínguez Balgoma, Mafalda Rangel, Dong Min Lee, Dae Hee Suk, Daan Zandbergen, Kai Wang, Sen Yang) / 디자인캠프 문박 디엠피 조경 설계 Ben Kuipers landscape architect, MVRDV / 한국종합기술 구조 설계 삼안 조명 설계 Rogier van der Heide, MVRDV / 나남에이엘디 식재 50과 228종, 화분 645개, 24,000여 주의 수목, 관목, 초화류 위치 서울역 고가도로(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일대) 길이 938m 면적 9,661m2 완공 2017. 6. MVRDV는 1993년 비니 마스(Winy Maas), 야코프 판레이스(Jacob van Rijs), 나탈리 더프리스(Nathalie de Vries)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설립한 회사다. 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작업을 통해 도시, 건축, 인테리어, 조경 관련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로테르담, 파리, 상하이에 지사를 두고 작업 초기부터 이해 관계자,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리서치를 베이스로 한 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2000년 하노버 엑스포의 네덜란드 기념관, 암스테르담의 플래그십 매장 크리스탈 하우스와 로이드 호텔, 상하이의 홍차오 오피스 캠퍼스, 로테르담의 디든 빌리지(Didden Village) 옥상 주거 증축, 스페이케니서(Spijkenisse)의 북마운틴 공공 도서관, 서울 강남구의 청하빌딩 등이 있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서울로 7017을 묻다] 행복하게 걷는 서울을 위하여
두 해 반 동안 숨 가쁘게 진행했던 서울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다. 우여곡절 없는 프로젝트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서울로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보통의 프로젝트보다 훨씬 뜨거워 설계팀의 부담이 매우 컸다. 개방 후 한 달이 지난 시점,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의 디자인 책임자로서 설계와 시공 과정 중의 시행착오와 고민을 공유하고자 한다. 초청 MVRDV는 2004년부터 한국에서 진행된 십여 개의 국제지명초청공모에 참여해왔다. 아마도 가장 많이 초청됐던 해외 건축팀 중 하나일 테지만, 동시에 연전연패連戰連敗, 가장 많이 낙선한 팀일 것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스PF 광풍이 불던 2006년 광교 파워센터 PF 공모에 당선된 적이 있지만, 국내 협업사가 협의 없이 변형 제출한 안이었던 터라 탈락보다 더 큰 상처로 남았다. MVRDV는 초청공모에 참여할 때, 디자인의 개념적 완성도에 집착한다. 당선 가능성이 부족하더라도, 명확한 메시지를 보여주는 디자인을 제안했기에 꾸준히 지명공모에 초청받고 있는 것이라 인지하고 있다. 경쟁팀 중에는 프로젝트가 다소 정치적이라고 판단하여 참가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한 곳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전 세계의 다양한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정치적이지 않고도 성공한 도시 프로젝트를 경험한 적이 없다. 정치politics의 어원이 도시polis에서 나왔으니, 도시를 다루는데 어찌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명확한 정치적 비전 없이 시작된 프로젝트가 추진력을 잃고 표류하며 건축가와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얼마나 큰 좌절을 주는지 여러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비전’인지일 것이다. MVRDV는 서울이 차량 위주의 도시를 보행 위주의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열렬하게 지지한다. 2015년 1월 서울역 고가 설계공모팀에게서 연락을 받은 후, 참가 여부를 결정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국내 회사와 협업하게 되어 있는 공모였는데, 우선 오랜 협업 관계를 유지해온 (우리와 함께 늘 낙선을 경험한) 오랜 친구 디자인캠프 문박 디엠피dmp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고, 다행히도 기꺼이 수락해주었다. dmp에서 국내 구조 회사와 조경 회사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들었다. 설계비도 적고, 당선되어도 실현이 불발될지 모르는 프로젝트에 선뜻 나설 회사가 많지 않았던 듯싶다. 오랜 설득 끝에 엔지니어링 회사인 삼안이 교량 구조를, 한국종합기술이 조경을 맡았다. 두 회사 모두 무척 실무적이고 실용적인 팀이었다. 가끔 우리가 망설일 때마다 dmp는 조금 더 과감하게 밀어붙이기를 독려했다. 삼안과 한국종합기술은 균형을 잡아주었다. 좋은 팀을 만났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서울로 7017을 묻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Winy Maas Founding Partner, Principal Architect / Urbanist, MVRDV Ben Kuipers Landscape Architect 이교석 Senior Project Leader / Architect, MVRDV 지난 5월 21일 MVRDV를 이끌고 있는 비니 마스Winy Maas를 만났다. 개장 이후 무척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몇 번의 일정 변경과 장소 변경을 거쳐야 했다. 일요일 오전 회현역 근처 티마크 그랜드 호텔 로비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서울로 7017’에서 마무리되었다. 이 자리에는 이번 프로젝트의 식재를 담당했던 조경가 벤 카위퍼르스Ben Kuipers가 동석했으며, MVRDV에서 서울로 7017을 맡았던 이교석 책임 디자이너가 통역을 도와주었다. 인터뷰에서 비니 마스는 한국 조경 사회의 우려를 이해하면서도 놀라움을 표했다. 그는 조경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며, 서울역 고가라는 인공 지반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작업의 ‘다름’, 즉 이 프로젝트 고유의 독특함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정은(이하 Kim) 이 고가를 처음 보았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또 그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접근했는가. Winy Maas(이하 Maas) 설계공모를 준비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을 때, 못생겼다고ugly 생각했다. 고가는 단순히 존재하고 있을 뿐이고, 역사의 일부다. 이는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전제 조건이었다.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것 또한 당신들의 역사를 다루는 한 방법일 것이다. 나에게 이 고가는 그 자체로 소생하는 드라마였다. 이 고가의 곡선은 매우 아름답다. 마치 19세기 영국 공원을 그린 풍경화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이교석(이하 Lee) 이 고가에는 나 뭇가지가 뻗어나가듯 찢어지는 구간이나 작은 언덕처럼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구간이 있었다. 그런 모습이 상당히 아름다웠다. 사실 그 가능성에서 설계를 시작한 것이다. Kim 설계안을 구현하는 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Maas 이 프로젝트는 복잡성이 상당히 크다. 기술적으로 토목과 조경 두 가지 문화를 접목해야 했다. 부연하자면 조경 프로젝트는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고, 토목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해야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가 어려웠다. 또한 수목원 콘셉트로 디자인했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수목을 많이 심고 싶었는데, 짧은 시간 안에 고르러 다니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고가 위에 공원을 만드는 일은 사례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것이 새로 고안되어야 했고, 여러 시행착오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서울로 7017을 묻다]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
서울로 7017(이하 서울로)의 만리동광장에 설치된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이하 윤슬)은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공공 미술 설치 작업이다. ‘서울은 미술관’은 도시 서울에 공공 미술이 어떤 맥락으로 개입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공공 미술을 매개로 시민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논의하는 프로젝트다. 공간을 마주한 우리가 떠올린 첫 질문은 “각종 적치장으로만 활용될 뿐 사람들에게 인지조차 되지 못하는 이 교통섬에 설치될 ‘공공’ 미술의 역할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였다. 이는 공공 예술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만드는 데 소소하게라도 기여하기 위해서는 플랫폼과 같이 행위를 담아내거나 유도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머물고 점유하고 경험하는 공간, 담기 위한 도시의 비워진 장소 같은 공공 미술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기본 및 실시설계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강예린, 이재원,이치훈, 강혜원, 전하경)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계동 서울로 7017 만리동광장 면적 480.98m2 완공 2017. 5. 2011년 강예린, 이치훈, 정영준이 서울에 설립한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는 현재 강예린, 이치훈, 이재원의 파트너십으로 운영되고 있다. 도시-건축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건축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해왔다. 도시사회학, 지리학, 디자인, 무용 등 건축 내외부 장르와 다층적 협업을 수행하며 가구, 인테리어, 공공 예술, 전시 디자인·기획, 출판, 글쓰기 등의 분야로 건축적 고민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서울로 7017을 묻다] 서울로 7017 유감有感
내키지는 않지만, 서울로 7017에 대한 논의는 뉴욕 하이라인과의 비교에서 시작 해야 한다. 고가 구조물을 보행자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비교의 출발이다. 게다가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뉴욕 방문 당시 공원화 계획을 발표하며 하이라인을 벤치마킹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니 둘의 비교는 서울로 7017을 이해하는 시작이다. 도시 또는 건축에서의 표절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이라인을 의식하고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찬성 측의 의견 또한 타당하기도 하다. 파리의 개선문을 닮은 기념물이 도처에 널려 있으며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모방한 도심 대형 공원이 웬만한 도시에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니 도시 공간의 독창성originality 문제는 문화적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다만, 건강한 벤치마킹을 위해서는 결과의 피상적 모방보다는 시스템과 과정에 대한 참조여야 할 것이다. 주어진 조건에 대한 창의적 해법만 있다면 반대하거나 애써 피할 일도 아니다. 이경훈은 국민대학교 건축학과와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졸업 후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Greenpoint Homeless Housing, 신탄진 고속도로 휴게소, 헤이리 랜드마크하우스 등의 건축 작업을 했다. 2003년부터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디지털 형태생성방법론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건축과 도시에 대한 글쓰기를 해왔다. 서울시도시계획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못된 건축』 등이 있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서울로 7017을 묻다] 수목원과 보행로의 공간적 픽처레스크
설계 작업 비평은 이론과 실무 사이에서 생산적 담론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행위다. 개인적 취향을 유보한 채 프로젝트의 이론적, 개념적 유례와 기반, 논리, 해석 가능성을 탐색하고, 의도했던 콘셉트가 실무 행위자의 연계망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가치, 의미를 생성해 내는지 모색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주관에 따른 단순한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아닌 기존 이론과 실무적 지식 담론에 위치, 참여, 질문하려는 노력이다. 필자는 2015년 설계공모 당시 지명 초청된 팀 중 CA조경기술사사무소의 도시·건축 담당으로 참여했다. 지명 초청팀 중 하나인 MVRDV는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보편적 문제에 프로토타입적으로 접근하는 다이어그램 방법론으로 유명했다. MVRDV 당선 당시 가장 궁금했던 점은, 다이어그램이 현실로 직역되는 직설성과 사이트의 특수성보다 보편성을 추구하는 비장소성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MVRDV의 콘셉트가 서울역 고가의 지역적, 맥락적, 역사적 장소성을 어떻게 다룰지였다. 따라서 설계 주체가 애초에 의도했던 ‘서울수목원’과 실제 완공된 ‘서울로 7017’ 사이, 즉 상상과 실제 사이에서 생성되는 담론적 의미 체계를 읽어보고, 이를 기반으로 어떠한 실천적 가능성이 창출되는지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중략)... 서예례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의 도시설계 교수이며, 서울시건축정책위원이다. 코넬 대학교, 바나드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뉴욕 시립대학교,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도시설계와 건축을 가르쳤다. 2012년부터 도시지형사무소(Office of Urban Terrains)의 디렉터로 다양한 건축, 조경, 도시설계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2001부터 2008년까지 와이즈/만프레디(Weiss/Manfredi)에서 시애틀 올림픽 조각공원, 뉴욕 바나드 대학 디에나 센터 등의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2014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반도 오감도’ 한국관 전시의 참여작가로 활동했다. 서울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하버드 GSD에서 건축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서울로 7017를 묻다] 서울로 7017, 과정을 돌아보다
‘서울로 7017’(이하 서울로)이 모습을 드러냈다. 완공과 대시민 개방 일정이 다가오자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리 서울로를 걸어본 사람들, 오며 가며 서울로의 공사 과정을 목격한 사람들, 혹은 SNS에서 서울로에 대한 소문(?)을 확인한 사람들, 그리고 자문회의에 참여했던 사람들 등.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가나다순으로 심긴 빈약한 식물의 상태에 대한 실망이 쏟아졌고, 콘크리트의 삭막함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5월 20일 서울로가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첫날만 15만 명이 다녀갔으며, 개장 한 달 만에 203만 명이 방문했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1천만 명이 방문할 것이라고 추정하며, “그늘 부족, 디자인 논란 속에서도 도심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는 모양새”라고 자평하고 있다. 서울시에서도 인식하고 있듯이, 개장 직후 흥행은 성공한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서울로에 대한 디자인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보행로라고 하는데 길을 가로막는 화분 때문에 걷기 힘들다거나, 설계공모 결과 공개된 조감도를 보며 푸른 정원을 상상했는데 시멘트 화분이라니, 실망감을 숨기지 않는 명사들의 칼럼도 이어졌다. 여전히 고가 보존 자체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으며, 고가 위라는 물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상상하고 원하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항간에서는 설계공모의 당선자인 비니 마스가 설계안을 고집하며 현장과 서울의 기후에 맞춰 수정하지 않았다거나 서울시가 설계자의 편만 들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동시에 외국 설계사니까 그나마 설계안을 존중받을 수 있었다는 의견, 즉 국내 설계사가 직면하는 관행에 대한 불만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지적의 핵심인 식물의 가나다순 배치와 화분 식재는 핵심적인 디자인 언어이므로, 설계공모라는 절차를 거쳐 도출된 안을 존중하려 한 서울시의 노력은 온당하다. ...(중략)... 인터뷰 어려움을 극복하고,시민의 공간으로_권완택 서울역일대 종합발전 기획단 재생사업반장 공간 이용을 지켜보며 계획하겠다_온수진 푸른도시국 조경과 서울로총괄기획팀 주무관 거버넌스의 실패가 아니라, 시작이다_조경민 서울산책 공동대표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타임스퀘어
타임스퀘어 극장가 중앙에 위치한 대상지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 42번가, 웨스트 47번가, 7번 애비뉴를 경계로 둔 나비넥타이bowtie 형태의 공간이다. 맨해튼의 격자 도시 체계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는 남북으로 뻗은 7번 애비뉴와 만나며 변칙적인 교차점을 만들었다. 이 교차점은 보행자와 차량 운전자 모두에게 위험 요소로 작용했는데, 특히 붐비는 보행로에서 차도로 밀려나온 보행자로 인해 다른 애비뉴보다 사고 발생률이 137% 높았다. 이런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9년 뉴욕 시 교통과는 ‘미드타운을 위한 그린 라이트Green Light for Midtown’의 일환으로 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09년 5월 웨스트 42번가와 47번가 사이의 차량 통행을 금지해 임시적인 보행자 전용 광장으로 바꾸었는데, 그 결과 보행자 사고가 40%, 차량 사고가 15%, 전반적인 범죄율이 20% 감소했다. 대기 오염 물질도 감소하여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공공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2010년 뉴욕 시 디자인·건설과와 교통과는 건축·조경설계사무소인 스노헤타Snøhetta에게 새로운 타임스퀘어 디자인을 의뢰했다. 공간에 활기를 부여하기 위해 우선 대상지를 방문하는 군중의 규모와 동선 패턴을 파악해야 했다. 서쪽에는 항만공사 버스 터미널Port Authority Bus Terminal, 동쪽에는 그랜드 센트럴 역Grand Central Station을 둔 타임스퀘어는 뉴욕 시의 주요 관문이며, 매일 평균 33만 명이 오가는 곳이다. 따라서 다양한 보행 속도를 고려한 설계를 통해 보행자들이 편안하게 광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Architecture and Landscape Design Snøhetta Landscape Architecture Mathews Nielsen Landscape Architects Broadcast Engineering Bexel Structural Engineering Buro Happold Security Consulting Ducibella Venter and Santore Lighting Design Arup, Leni Schwendinger Light Projects Security Design Review Rogers Marvel Architects Civil Engineering, Traffic Engineering, Utilities Thornton Tomasetti Weidlinger Transportation Practice Security Engineering Thornton Tomasetti Weidlinger Security Engineering Practice MEP Engineering Wesler Cohen ClientNYC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 NYC Department of Design and Construction Location Times Square, New York, USA Size 25,000m2 Timeline 2010 ~ 2017 Completion 2017 스노헤타(Snøhetta)는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건축설계사무소로 건축, 조경, 인테리어, 브랜드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장소의 정체성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 노르웨이의 오슬로(Oslo), 미국의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Innsbruck)에 사무소를 두고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여러 국가의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환경과조경351호(2017년7월호)수록본 일부
동탄역 푸르지오
대상지 남측에는 큰재봉공원과 반석산근린공원이 있고, 서측과 남측으로는 오산천과 치동천이 흐른다. 특히 반석산근린공원의 낮은 능선과 어우러지는 동탄1신도시의 빌딩들이 독특한 경관을 선사한다. 도심 속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의미의 ‘어반 플라워Urban Flower’를 콘셉트로, 주변 풍경을 끌어들여 지역적 감성이 묻어나는 친환경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동탄역 푸르지오는 자연과 문화, 사람이 한 데 어우러진 생활 문화 공간으로 계획됐다. 먼저, 일상 속에서 숲과 만날 수 있는 푸르지오의 조경 상품 ‘힐링포리스트Healing Forest’를 도입해 소나무숲과 대왕참나무숲을 조성했다. 순환 동선에는 왕벚나무길, 보조 동선에는 단풍나무길, 산책로에는 이팝나무길과 회화나무길을 조성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어린이, 학생, 노년층 등 연령대에 따라 맞춤한 공간을 마련했다. 단지 동측에는 치동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들어설 예정인데, 이를 고려해 곳곳에 어린이 놀이터와 청소년 운동 공간을 배치했다. 아이들은 단지 남쪽 부출입구에 배치된 새싹정류장에서 안전하게 셔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단지 중앙에 위치한 실버클럽 앞으로는 텃밭, 간단한 운동 시설, 지압 보도 등을 갖춘 로맨스가든을 조성해 노년층의 부족한 운동량을 늘릴 수 있도록 유도했다.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는 잔디마당과 석가산, 아쿠아가든, 터칭팜Touching Farm, 전망데크, 티가든, 작가정원 등을 조성했다. 작가정원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전문 가드너(작가 권아림)가 만든 정원으로, 허브나 초화류 등을 사용해 유럽식 정원 풍경을 구현했다. ...(중략)... 조경 설계 (주)기술사사무소 아텍플러스 건축 설계 (주)정일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 시공 (주)대우건설 시공 감리 (주)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 식재·시설물 주원조경(주) 위치 경기도 화성시 동탄순환대로 881-10 대지 면적 52,195m2 조경 면적 25,383m2 완공 2017. 6. *환경과조경351호(2017년7월호)수록본 일부
[이미지 스케이프] 불완전이 만든 완성품
지난 5월, 드디어 서울로가 열렸습니다. 개장 2주 만에 방문객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들리고,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아쉬움을 지적하는 기사들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슈즈 트리’ 논란까지 가세하면서 조경 프로젝트(‘건축’이라고 규정하는 분들도 있긴 합니다만)로는 이례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조금 더 사람들이 이용한 후로 판단을 미룹니다. 공간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익어가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오늘 사진의 주인공은 서울로 7017의 한쪽 끝에 위치한 ‘윤슬’이라는 공공 미술 작품입니다.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이라는 부제도 달려 있네요.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는 반짝이는 잔물결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라고 합니다. 어감도, 뜻도 참 예쁜 말입니다. ‘윤슬’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서울은 미술관’의 일환으로 진행된 공공 미술 프로젝트입니다. 건축사사무소 SoA(강예린, 이재원, 이치훈)의 작품인데, 이들은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지붕감각’을 설치하는 등 공공 공간에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최근 한강예술공원 프로젝트에 몇몇 조경가가 참여해 멋진 결과를 보여 주었습니다. 더 많은 조경가가 공공 미술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그들이 설계하는 법] 이중성
나는 아직 남들과 공유할 수 있을 만큼의 원숙한 설계 노하우를 체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설계하는 법은 꽤 오랜 기간 몸담았던 순수 예술이라는 영역, 함께 일하는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 스튜디오 MRDOStudio MRDO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의 확연한 작업 방식 차이 등에서 비롯한 다중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호에서는 그동안의 작업에서 예술과 설계라는 다른 두 분야가 서로 간섭했던 흔적들을 소개하고, 두 영역의 교집합과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조소과 재학 시절 인접 분야의 수업을 두루 들어보던 중 조경이라는 학문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나에게 조경은 핸드 드로잉보다 훨씬 세련된 컴퓨터 드로잉으로, 외국에서 실무를 마치고 귀국해 설계 쪽 일을 하는 사람들의 화려함으로 인식되었다. 조경의 일부만을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자연과 시스템 그리고 예술의 조합이라던 이 분야는 쿨한 창작을 하면서 동시에 규칙적인 보수도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자, 순수 예술이나 건축과 비교할 수 없는 블루오션으로 비춰졌다. 막연한 예상과 현실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물론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0년간 조경, 특히 조경 설계를 알아가면서 노력만큼 대가가 따르지 않는다고 느낀 적은 있었을지언정 그때의 착각이 큰 실수였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만일 내가 미술에 조경을 더함으로써 하나 이상의 프레임으로 디자인적 사고를 하는 디자이너라면, 미술만 할 때보다 창작에 있어서 더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 그때의 성급했던 결정은 역설적이게도 보다 넓은 풀pool을 만나게 해 준 고마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중략)... 전진현은 스튜디오 MRDO(Studio MRDO)를 공동 설립해 조경뿐 아니라 더욱 확장된 영역에서 디자인을 실험·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GSD 입학 전 신화컨설팅에서 근무했고, 현재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조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보더스: DMZ 지하 대중목욕탕(Borders; Korean DMZ Underground bath house Competition),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 공모, 서울 도시 디자인 공모전 등 다수의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www.studiomrdo.com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위하여
수목이 계단식 앉음벽의 층계를 뚫고 나온 듯한 모습이다. 계단식 앉음벽의 형태를 최대한 연속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수목 보호대를 계단의 형태 그대로 만들어 덮었다. 즉, 계단식 앉음면의 세 면을 파내고 그 공간에 수목을 식재한 후, 계단 모양의 뚜껑을 덮은 디테일이다. 일반적인 경우, 나무가 식재된 주변의 단을 들어올려 플랜터 벽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진의 장소에서는 계단의 조형적 형태를 부각하기 위해 독특한 플랜터 디테일을 만들었다. 계단과 같은 재질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수목 보호대에는 통기구들이 가늘게 뚫려 있고, 업라이트 효과를 위한 조명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계단의 형태 변형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목이 위치한 구멍을 작게 만들었지만, 그 구멍의 중심은 계단 디딤면이 아닌 수직면에 정렬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수직면과 이에 인접한 위아래 디딤면을 관통한 듯한 형태가 되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재미있는 제안이지만, 한편으로는 계단 수직면의 구멍으로 전기 배선이나 콘센트 등 숨겨 놓은 설비와 구조 내부의 모습이 눈높이에서 보여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로 보이기도 한다. 장소를 조금 이동하자 약간 다른 모습의 계단식 수목 보호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원리는 동일하지만 수목 보호대가 놓인 위치가 계단식 앉음벽이 아닌 일반 계단이기 때문에 보호대의 형태도 이에 동화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디딤면과 수직면의 크기가 앞의 사례보다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에 계단 수직면에 위치한 구멍 또한 작아져, 계단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본래의 디자인 의도를 보다 잘 전달하고 있다.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
최근 가장 ‘핫’하다는 연희동과 연남동.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은 그다지 잘 알려지 지 않은 한 사람이다. 이 일대에서 50여 채에 이르는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면서 불과 5~6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창조한 중심에는 수십, 수백억 원의 공적 자금이 아니라 지역에서 건축업을 하는 김종석 대표가 있다. 그렇다, 그는 소위 말하는 ‘업자’다. 학자도 아니고, 건축가도 아니고, 흔히 듣는 ‘공공◯◯가’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대화에 사용하는 언어는 어바니즘의 고전에 등장하는 설계 기법들이다. 노출 계단, 오픈스페이스, 선큰sunken, 발코니, 시선의 높낮이, 빛과 밝기, 공간 심리학 등. 어쭙잖은 건축가가 종종 내뱉는 말뿐인 소통이 아니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통, 대화, 연계와 맥락의 디자인’을 그의 건축을 통해 너무도 쉽고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거리와 건물의 소통, 사유 재산과 도시의 대화, 손님과 주민,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상호작용을 볼 수 있는 현실의 교과서다. 그는 언제나 현장을 두고 말한다. 그가 쌓아온 방식이다. 경남 함양 출신으로 스무 살에 상경해 연희동의 전파상인 정음전자에서 일하다 제대 후에 사장님이 돌아가신 가게를 인수했다. 그 후 연희동에서 30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사람들의 온갖 인생 스토리가 녹아 있다. 책상머리에서 구상한 거창한 마스터플랜 없이, 정부도 손 놓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혼자서 해결하고 있는 이 독특한 남자의 경험 보따리는 도시재생이 가야 할 방향을 일러준다. 그의 도시재생은 어찌 보면 자본주의 사회 체제에 가장 부합하는 도시재생이다. 공중에서 투하되는 지원 자금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욕망, 서로의 행복에 충실한 도시재생이기에 현실적이다. 우리 도시재생에 필요한 것은 눈먼 자금이 아니라 불합리한 절차와 제도의 개선을 통해 창의적인 개인이 뜻을 펴고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사업 성과를 위한 재생, 도시재생의 이름을 빌린 지자체의 치적 쌓기가 아니라, 삶을 위한 재생, 강소 경제 서민 상권을 부활시키기 위해 철저히 시장성을 바탕으로 한 살아남을 수 있는 재생이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정원 탐독] 문화로 식물을 읽을 때
식물을 그리지 않은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의 선조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가 있다. 벽화 속에는 소와 산양 등 주로 사냥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실적 표현이라기보다는 간결한 선과 색으로 표현된 일종의 상징 예술이다. 고고학자들은 아마도 구석기 시대부터 동굴의 벽이나 동물의 뿔과 뼈에 이렇게 전문적으로 그림을 새겨 넣는 작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상할 정도로 식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2013년 대영박물관에서 전시된 질 쿡Jill Cook의 ‘빙하시대의 예술: 현대적 감성의 출발Ice Age Art: Arrival of the Modern Mind’에서도 증명됐다. 구석기 시대의 여인상을 비롯한 수많은 조각물에서도 식물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 대해 전문가마다 주장이 다르다. 하지만 구석기인에게 식물은 지금과 다른 의미였을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즉 동물이 식량이며 잡아야 할 어려운 대상이었다면, 식물은 이런 목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산, 돌, 구름과 같은 자연의 현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들이 하늘, 태양, 구름, 산을 그리지 않았던 것처럼 식물도 환경이었을 뿐, 먹고 살아감의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관점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 건 그로부터 5천 년이 지나서다. 이 시기는 인류가 수렵에서 농경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었던 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기원전 2,500년 경, 이때부터 식물은 인류에게 풍요와 부활의 상징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림과 조각은 물론 신화의 세계로까지 깊숙이 파고든다. 기원전 1,300년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집트 테베 지역 센네젬Sennedjem 가문의 묘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밀과 아마를 키우고 수확하는 장면이 나온다. 벽화는 씨를 뿌리고 잎과 꽃을 틔우는 식물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만큼 식물을 키우는 일이 중요했다는 증거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시네마 스케이프] 죽여주는 여자
성매매를 하는 소영(윤여정 분)의 주 활동 무대는 탑골공원이다. 일명 바카스 아줌마인 그녀는 5년이나 이곳에서 활동했기에 단골도 제법 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죽여준다’는 소문을 듣고 고객이 찾아온다. 하지만 성병에 걸린 사실이 소문나는 바람에 활동 무대를 남산공원으로 옮긴다. 수포교와 남산 순환로를 배회해 보지만 탑골공원에 비해 영업이 시원치 않다. 먼저 다가가 “바카스 한 병 딸까요?” 했다가 모욕만 당하기 일쑤다. 딱한 처지에 놓인 코피노 꼬마와 이태원 산동네를 오르는 그녀의 발걸음은 오늘도 무겁다. 소영이 세 들어 사는 허름한 집에는 주인인 트랜스젠더와 장애자와 동남아시아 이주민이 모여 산다. 영화는 서울의 오래된 공간을 배경으로,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소외 계층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소영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에 이북에서 태어났다. 식모와 공장 직공을 거친 후, 동두천에서 만난 미군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돌도 안 된 채 입양 보내야 했다.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사는 그녀는 길 고양이뿐 아니라 곤란에 처한 꼬마나 노인들을 살뜰히 챙긴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이 “그럼 미군 상대하는 양공주였던 거예요?”라고 묻자, “그럼 일본군 상대했겠니? 그 정도 나이는 아니야”라며, “나같이 못 배우고 늙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라고 씁쓸히 미소 짓는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동네에 생기는 카페마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는 어디서 쉬었을까. 청계천과 서울역 고가를 공원으로 만들자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는 어디서 놀았을까. *환경과조경351호(2017년 7월호)수록본 일부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영역
고즈넉한 호수를 찾아 드라이브를 하던 중에 장엄한 폭포를 만나 들뜬 마음에 차를 세웠다. 앞에 ‘◯◯갈비’란 이름의 식당이 자리한 걸 보니 이게 그 유명한 ◯◯폭포구나 싶어 그 장대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는데, 곁에 있던 동료 작가가 장난삼아 한 마디 던진다. “모르지, 위에 밸브가 있을지도.” 우리는 돌아서며 그럴 법하다고 키득거렸지만(물론 이 말은 장난이고, 그럴 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이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한번 폭포를 찬찬히 살펴보다 절벽의 맨 위, 밸브를 발견했다. 크리스마스 밤이면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주던 산타가 실은 부모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런 허탈한 기분으로 차를 몰아 호수 인근에 당도하니, 어딘가에서 강한 기운의 일렉트로-토속-뽕짝이 귀에 흘러들어온다. ‘설마 호수 쪽에서 나는 소리는 아닐 거야’ 하는 기대와는 반대로 호수 입구에 다다를수록 소리는 커지고, 디즈니랜드와 디즈멀랜드Dismaland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맨홀 속으로 떨어지면 있을 법한 미니-놀이동산에 입이 벌어지는 것도 잠시. 블랙홀 같이 벌어진 입과 눈꺼풀 속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거대한 아기 머리-조각 작품 앞에서는 심지어 공포감에 빠졌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저 강력한 사운드의 원천, 사방팔방이 오방색으로 뒤덮인 ‘제의’가 열리고 있었으니, 호수의 기운이 그야말로 밑바닥에서부터 요동쳐 금방이라도 거대한 파도가 올라와 덮칠 것만 같았다. “오늘, 도, 추움~을 춘다, 두웅-기 둥기 두둥-실~”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흰 타이츠에 빨강, 파랑 치파오를 입은 파마머리 아주머니 셋이 제단 위에서 힘차게 다리를 벌려 선 채로 음악에 맞춰 커다란 장구를 때리는 동안, 그 앞에서 총천연색 아웃도어 복장의 중장년 남녀 한 무리가 이 각설이-테크노 뽕짝의 리듬에 맞춰 짝을 지어 흐드러지게 춤을 추는 것이었다. “얼~쑤! 아~하! 허잇!!! 헛! 헛! 두구두구두구두구 띠로리~~~~” 그런 ‘도란스’ 현장 뒤편으로 보이는 RGB 현수막에 붓글씨체로 쓰인 문구는, 다름 아닌 ‘제◯회 ◯◯시 산악협회 등산대회’. 글씨에 ‘볼드’와 ‘아웃라인’ 처리가 되어있음에도 워낙 현수막이 매직아이 같아서, 문구를 단번에 읽을 수 있던 것은 아니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1호(2017년 7월호)수록본 일부
터널 오브 날리지(Tunnel of Knowledge), 장충풍경
지난 6월 8일 한국도코모모가 주최한 ‘2017 근대 도시건축 Re-Birth 디자인 공모전’의 당선작이 발표됐다. 한국도코모모는 근대 문화유산의 보전과 활용을 위해 활동하는 학자, 건축가, 전문가 연합체로, 근대 문화유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으기 위해 매년 다양한 주제의 디자인 공모전을 열고 있다. 이번 공모전의 주제는 ‘남산2호터널과 장충동 일대의 문화적 재생’으로, 남산과 장충단을 역사적으로 조명한다. 교통 기능이 취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 역할을 다한 남산2호터널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냉전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극복할 수 있는 도시건축적 해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대지와 프로그램의 범위는 “응모자가 스스로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석과 디자인 제안의 방향에 따라, 제공된 도면 외부로의 확장”도 가능했다. 명확하지 않은 설계 범위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최측의 예상과 달리 “꽤 구체적이고 당장 실현가능한 안에서부터, 장충동 일대의 장소성을 근간으로 이상적인 메니페스토manifesto를 제안한 안 등 폭넓은 응모작”들이 접수됐다. 총 150여 개의 작품 중 대상 2점(국토부장관상, 문화재청장상), 우수상 2점(한국도코모모 설립추진위원장상, 새건축사협의회장상), 특별상 2점(도코모모 인터내셔널회장상, 심사위원장상), 특선 7점, 입선 26점 등 총 39점의 수상작이 선정됐다. 조민석 대표(매스스터디스, 심사위원장), 김찬중 대표(더시스템랩), 정현아 대표(디아건축), 조남호 대표(솔토건축), 한광야 교수(동국대학교 건축학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공모전에 참여하는 과정의 반 이상은 좋은 질문을 찾아내는 것이다. 구체적인 지침이 제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참여작이 작품의 완성도와 설득력을 통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심사 총평을 밝혔다. ...(중략)... *환경과조경351호(2017년 7월호)수록본 일부
공공장소에서 해도 되는 일, 하면 안 되는 일
성큼성큼 걷는다, 손을 잡는다, 음악을 들으며 마음으로 춤춘다. 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럼 다음의 경우는 어떤가. 한발로 오래 서 있는다, 바닥을 만진다, 책을 읽다가 베고 잔다.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주위의 눈을 의식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옷을 몽땅 벗고 나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공공장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지난 5월 20일 윤슬(p.44 참고) 개장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윤슬 사용법’은 우리에게 “어느 순간 사회적인 제약에 묶여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익숙해져 하고 싶은 것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닌지” 물었다. 윤슬 내부를 자유롭게 뛰노는 어린이 퍼포머를 선두로 아홉 명의 무용수(공영선, 강진안, 최민선, 장홍석, 김승록, 박유라, 허효선, Pieters Alma, Yena)가 ‘안무’보다는 ‘행위’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펼쳤다.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등 놀이 같은 퍼포먼스에 어린이들이 끼어들어 놀기 시작했고, 윤슬 상부의 루버 사이로 푸른 공이 쏟아지며 공연은 극에 달했다. 간간이 말소리만 울리던 선큰 공간이 십여 분 만에 아이들이 신나게 공을 튀기는 놀이터로 바뀌어 있었다. 이런 독특한 형식의 공연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윤슬 사용법’의 콘셉트 기획과 안무를 맡은 공영선 안무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중략)... *환경과조경351호(2017년 7월호)수록본 일부
[편집자의 서재] 반란의 도시
독회 모임의 세 번째 책은 S가 고른 데이비드 하비의 저작이었다. 그에 대한 수식은 대략 이렇다.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중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문학자 20인 중 1인, 급진 지리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이론가, 세계적인 비판적 지성, 유연한 마르크스주의자….” 책날개를 펼친 순간 대학교 4학년 때 스터디를 하며 개념어와 씨름했던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데이비드 하비 지음, 구동회 옮김, 한울, 1994)이 떠올랐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책을 고른 S에 대한 원망이 몇 줌 섞여 있는 두통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1970년대 중반 무렵 파리에 머물던 나는 우연히 생태주의자가 붙인 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로 시작한 책은 “우리는 폐허 위에서 대안을 구축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이는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의무, 피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의무이다”로 끝났다. 첫 문장에서 엿볼 수 있듯 개인적 경험과 구체적 사례가 책의 후반부까지 이어졌다. 아주 가끔 서울이 등장했고, 중국은 약간 더 비중 있게 다뤄졌다. 보충 도서로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창비, 2017)까지 읽고 온 S의 발제는 이해도를 높였다. P는 매끄러운 번역을 칭찬했다. 일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1870년대 파리 대개조, 1930년대 대공황, 1950~1960년대 도시 재개발과 교외화,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와 부동산 버블 등 여러 사회 혼란의 근원으로 하비는 소수에 의해 사유화된 도시를 주목한다. 도시의 위기는 곧 자본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자본주의적 도시화’가 현대 도시의 위기를, 또 현대 사회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 하비는 ‘약탈에 의한 축적이 자행되는 도시에서 주변부로 추방당했던 99%의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을 강조하며 글을 맺는다. 밑줄 그었던 문장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도시 네트워크를 통한 운동은 계급적 지배와 상품화된 시장의 결정이라는 제약을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성이 꽃피는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마르크스는 물질적 제약을 넘어설 때 진정한 자유의 세계가 시작된다고 했다.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되찾고 조직하는 것은 그 위대한 출발점이다.” 물론 독회 모임에서는 예상했던 대로 ‘공유지의 비극, 공유재를 둘러싼 투쟁, 도시 공유재의 비극, 공유재 거버넌스 메커니즘, 도시 공유재를 되찾자’ 등에 대한 독후 소감이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공원의 공공성과 사회적 역할에도 이야기의 흐름이 잠시 머물렀다. 하비는 마지막 장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거론하며 “권력의 지렛대가 밀집한 장소 부근의 중심적인 공공 공간 즉 공원과 광장을 빼앗아 거기에 눌러앉는 방법으로 공공 공간을 정치적 공유재”로 바꾼 점에 주목하며 “공공 공간에 사람이 모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항수단”이라고 갈파했으나, 독회 멤버들은 공원의 근원적 필요성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다는 점에 만족해했다.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바로 우리 모두의 것이다!”라는 하비의 주장에 격하게 공감하며 이어진 2부 독회에서는 ‘나의 도시’에 대한 추억이 하나둘 소환되었다. 지난번에 『당신의 사물들』(허수경 외 48인 지음, 한겨레출판, 2015)을 읽고 각자의 사물을 두 가지씩 꼽아보았던 것처럼, 나의 도시를 정해보기로 한 것. ‘나의 도시 이야기’는 과천, 필라델피아, 베이징, 항저우, 경주, 파리, 하바나, 수원, 치앙마이, 에든버러를 거쳐 서울에서 끝났다. ‘나의 도시’는 태어나서 자란 도시, 그래서 속속들이 가장 알고 있는 도시이기도 했고, 오래 머물렀으나 여전히 모르는 도시이기도 했으며, 우연히 다섯 번이나 방문한 바다 건너의 어떤 도시이기도 했다. L은 가보지 못한 도시인 쿠바의 아바나Havana를 꼽았다. 송일곤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간의 춤’을 본 적이 있냐고 물으면서…. ‘인생은 노래처럼, 혁명은 춤처럼!’ 길거리, 공터, 집, 장소를 불문하고 이어지는 쿠바인들의 낭만과 멋을 이야기할 때 그의 감탄사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반면 S는 뜻밖에(?) 서울 예찬을 펼쳤다. ‘박철수 교수가 그 사람이 누군지 알려면 책장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자신의 책장을 보았더니 서울에 대한 책이 가장 많았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있는 도시가 서울이고, 가족과 집이 있으니 그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냐면서. 한강철교를 건널 때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는 유머(?)도 곁들여가면서. 5월호 ‘편집자의 서재’ 말미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숙제, S가 애착을 넘어 집착하는 손톱깎이란 사물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하지 못한 채 글을 닫는다. P가 추천한 다음 책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를 하며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결핍의 도시로 에든버러를 기억하는 K의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4차 독회 모임은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으니 말이다. 참, 요즘 모임은 누가 일부러 유도하지 않아도 ‘기 승 전 서울역 고가’로 귀결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이 날의 독회 모임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서울역 고가는 다들 가봤어요? 어땠어요?’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툭 던지면 다들 두 마디씩 거든다. 정체성부터 과정과 그 결과물까지 참으로 논쟁적인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논쟁적 = 부정적’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일단, 논쟁은 반갑다!
[CODA] 열린 결말
미즈무라 미나에의 『본격소설』은 에밀리 브론테의 연애 소설 『폭풍의 언덕』을 근대 일본을 배경으로 다시 쓴 소설이다. 책을 읽어주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소설가 김영하는 이 소설이 근대에 쓰인 고전을 다시 쓰거나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문학에 속한다고 설명하며 그 특유의 저음으로 소설의 일부를 낭독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책 이름을 저장하며 옛날이야기를 현대에 되살릴 때 어떻게 현대 독자를 사로잡을 매력을 만들어낼지 궁금해했다. 2014년 11월의 일이다. ‘다시 쓰기’라는 표현 때문이었을까. 당시는 서울역 고가 공원화 구상이 등장하며 논란이 피어나던 시기라 고가를 어떻게 다시 쓸지, 다시 쓸 대상인 서울역 고가는 소설로 치면 ‘고전’이라 부를 만큼 시대를 초월한 가치가 있는지 등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스마트폰 안에서 잠자고 있던 기억을 다시 소환한 것은 역시 서울역 고가였다. 7월호 특집으로 준비한 서울역 고가, 이제는 서울로 7017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어째 쉽게 입에 붙지 않는다. 참 고민스러운 기획이었다. 이미 2015년 7월호에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결과를 비평과 함께 특집으로 다뤘고, 2년 만에 그림이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서울로가 실체를 드러내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점화된 디자인 논란. 그 핵심은 설계자의 콘셉트를 부정하는 것이고, 이는 설계공모라는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설계안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그 절차가 적절하게 진행되었는지 질문한다면 논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과연 고가를 보존해야 하는가 혹은 고가 보존이 과연 보행 친화 도시를 만드는 길인가, 그 여부를 사회적으로 합의했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당선안을 잘 이해하고 수긍했는가 등의 이슈로 소급된다. 이미 2015년 2월 김영준 서울역 7017 MP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사업 자체를 되돌리는 논의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제 정해졌으니 정해진 상황에 맞는 논의를 하란 말인데, 기본 취지에 동의하는 과정이 없었는데(혹은 워낙 빠르게 지나갔는데) 어떻게 그 다음 이야기를 할지 난감해진다. 이번 특집의 방향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한동안 갈팡질팡했다. 한참 논란이 되고있는 세부적인 디자인이나 식재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지, 혹은 서울로 7017이 표방한다고 알려진 도시재생 차원에서 넓게 보고 이야기할지, 아니면 다시 절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그런데 그건 너무 늦어버린 주제가 아닌지…. 어쨌건 세부적 디자인 논란은 이번 특집의 핵심이 아니라는 데 편집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과정과 결과를 잘 정리하고 각 주체의 의도를 충분히 드러내 앞으로 이어질 논의의 기초 자료로 제공하겠다는 큰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세부적인 주제 중 하나로 거버넌스에 대해 짚어보고 싶었다. 그간 서울로는 운영을 민간에 위탁하거나 민간 공동 운영과 같은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논의의 중심에는 시민 단체인 서울산책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민간 위탁은 무산되었고, ‘협치’는 실패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있다. 많은 공공 프로젝트에서 ‘협치’, ‘거버넌스’, ‘플랫폼’, ‘허브’ 같은 말로 시민과의 동행을 표현한다. 결국 절차의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과연 우리 사회에 공공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동의하거나 반대할 의지를 가진 시민이 존재하는가. 과연 관은 누구와 협치를 할 것인가.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는 설계공모 직후 마련된 특집의 비평 지면에서 “이 프로젝트에서 시민들은 과연 존재하는가” 질문한다. 해외 사례에서 목도하는 주도적인 시민의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 아닌지 꼬집는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역 고가의 ‘거버넌스’는 어떤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진일보한 점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우리에게 하이라인 친구들 같은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시민이 없다면 거버넌스는 실패한 것인지, 과연 우리 사회에서 협치란 무엇인지, 홍보용 보도 자료에 등장하는 ‘선한’ 용어로서 협치 대신 현실적으로 어떤 것이 가능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서울연구원의 라도삼 박사(도시사회연구실 선임연구위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라 박사는 소위 협치에는 여러 가지 방식(단계)이 있을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행정 주체 간의 협치, 즉 부서(기관)를 넘어서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행정과 시민 단체/주민 단체와의 협치. 그리고 세 번째는 주민 속에서 소통하며 이루어지는 주민과의 협치로 나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단계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우니, 서울로의 과정 중에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MVRDV의 이교석 씨가 밝혔듯이 서울시를 넘어 부처 간의 협치, 즉 경찰청, 문화재청, 코레일과의 협의에는 어려움이 컸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인 구 서울역사를 압도하는 쇼핑센터(롯데마트)는 조성이 가능한데, 서울로에서 서울역광장으로 이어지는 연결로를 못 만들 이유가 무엇이겠냐고 반문했다. 조반장(서울산책 공동대표)은 행정 기관 사이의 협치는 덜컹거렸지만 서울시 내부의 협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평했다. 시민 활동가인 조반장이 관의 전략 회의에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의미 있는 선례가 되겠다 싶지만,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을 기한 내에 완수하기 위해 서울시 내부의 여러 부서가 협력한 것이 과연 협치의 진전으로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조반장은 또 현장시장실을 운영한 시의 시도에도 의미를 부여했지만, 남대문시장 상인과 지역 주민의 관심이 보행로 혹은 공원의 성격에 있던 것은 아니니, 과연 이 공공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지역 주민이 있었는가도 의문이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과연 시민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작동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나 선명한 답변을 얻기 힘들었다. 결국 첫 번째, 두 번째 협치에 대해서도 물음표 투성이다. 온수진 주무관은 “현재 우리의 경제 수준이나 사회 시스템 아래서 온전히 자발적인 민간에 의한 운영 방식이 불가능한 것인지 고민스럽다”는 솔직한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그의 고민에 공감하면서도, 서울시에서 조직한 그린트러스트같은 시민 단체가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역할과 색깔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비록 처음에는 관변 단체처럼 시작했지만 서울산책의 내적 진화도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사회만의 해법과 문화가 있을 것이란 희망도 가져보고 싶다. 결국 어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이번 기획을 마무리 했다. 어쩌면 성급하게 답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서울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지켜보며 또 다른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PRODUCT] 어스그린코리아(주) 빗물저장형 잔디보호블록 ‘그린100’ 출시
어스그린코리아(주)가 빗물저장형 잔디보호블록 ‘그린100’을 출시했다. ‘그린100’은 빗물 저장·투수 기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잔디의 생장점과 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돌기가 있어 잔디의 생육 환경 개선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205 × 205 × 40mm 규격으로 제작되었으며, 설치와 해체가 편리해 블록 일부가 파손되더라도 쉽게 교체할 수 있다. 블록 연결 부위가 벌어지지 않는 맞물림 구조로 설계해 잔디 보호판 침하나 토사 융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블록을 구성하는 육각형의 벌집 구조는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한다. 또한 경사지에 블록을 설치해도 잘 밀리지 않는 지반 밀착력을 지녔다. 간단한 커팅만으로 다양한 형태를 구현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공원, 산책로, 골프장, 카트 도로, 특별 행사장 등 다양한 장소에 활용할 수 있으며, 특히 잔디 훼손이 예상되는 구간이나 토사 유출 방지가 필요한 법면에 적용하면 효과적이다. 한편 어스그린코리아(주)는 LID형 빗물 침투 기술을 적용한 30여 건의 특허를 지니고 있으며 NEP 신제품인증, 조달청 우수제품 지정 등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물순환 도시를 조성하는 데 필요한 10여 개의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가로수 생육 환경을 개선하는 ‘생육 삼통관’과 ‘생태형 가로수 보호판’이 있다. 이 제품들은 현재 일본, 베트남은 물론 중국으로도 수출되고 있다. TEL. 02-858-2970 WEB. www.earthgre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