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웃거리는 편집자] 낮달을 기다리며
등산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진경산수화 같은 풍경의 산을 완상하는 건 좋지만, 정상을 정복하는 등산은 별로다. 하지만 만약 극한의 한계를 극복하는 알피니스트처럼 등산을 해야 한다면 한라산에 오르고 싶다. 특히 비바람이 몰아치는 한라산 정상에 가고 싶다. 이러한 로망은 순전히 한 드라마 때문이다. 한때 즐겨 보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 속 남녀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재회하는 장소가 바로 비바람과 안개로 가득한 한라산 정상이었다. 그들의 재회보다 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역동적인 풍경이 이상하게 끌렸다. 나아가 그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극한의 등산을 마친 후 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벗겨내고 사발면의 뜨끈한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어떨지 궁금했다. 눈물 젖은 빵이란 진부한 표현 대신 한라산 정복 후 먹는 사발면이란 비유를 머리 대신 몸에 새기고 싶은 작은 욕심이라고 할까.
어떤 비유를 찾는 목적의 등산을 꿈꾸는 나처럼 다른 목적으로 등산을 하는 이가 있다. 그는 등산전문지 『월간 산』 에디터 윤성중으로 얼마 전 『등산 시렁』(2024)이란 책을 펴냈다. 등산 시렁은 그가 월간 산에 연재하던 꼭지의 제목으로,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잘 안 잡히는데 콘셉트는 이렇다. 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실제로 딴짓을 하며 어떻게 등산을 즐길 수 있는지 몸소 보여준다. 역경과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진지한 등산가들이 나오는 등산 잡지의 전형적 문법에서 벗어난 기발한 발상과 저자의 고유한 엉뚱함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는 취재를 위한 등산을 할 뿐, 단순히 순수한 재미나 휴식을 위한 여가 활동으로 하는 등산을 하지 않는다. 등산 자체를 위한 등산을 하지 않지만, 등산 중 기발한 딴짓은 누구보다 다양하게 시도한다. 등산을 싫어하는 이들을 설득해 등산 시렁 산악회를 만들어 함께 산에 오르고, 산 정상에서 책 낭독회나 사생대회를 개최하고, 복학생인 척하면서 대학생 산악부 선발 면접에 참가하는 등 등산을 매개로 한 재미있는 일을 벌인다.
또한 에디터로서 기자 정신과 전문성도 두루 갖추고 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산속 약수터를 찾아다니고, 아웃도어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일일 직원 체험을 하며 아웃도어 시장의 현실을 들여다 본다.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가로지르는 47km의 능선과 도로를 하루 안에 주파하는 일명 불수사도복 종주를 위해 밤낮으로 달리기 훈련을 하는 등 등산 전문가로서 성장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그는 책 서문에서 등산이 진짜 좋은지, 왜 좋은지가 여전히 궁금하고, 연재와 등산을 통해 자신을 점점 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도구는 딴짓이었지만 결국 등산의 본질을 탐구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이우성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그의 비범한 태도와 자질에 대해서 평범함 속에 깃든 천재성이라고평가했다. 문득 이번 특집의 주인공 원종호 소장이 떠올랐다. 정욱주 교수의 표현(66쪽)처럼 그 역시 평범함을 가장한 비범함이란 단어가 잘 어울린다. 그는 무엇을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조경설계를 추구하며, 자신의 작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조경가로서 정진했다. 물론 내가 그를 정확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그의 작품과 에세이 원고를 통해 본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직선처럼 조경을 향한 자신만의 단정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고, 이제껏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설계를 향한 고유한 시선과 명징한 감각을 오랫동안 다듬어 온 조경가였다.
보이지 않는 조경가로서 보이지 않는 조경을 추구하며 자신만의 조경에 대해 깊게 탐구하고 정확하게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주변 동료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우리만의 공간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집에서 그를 부르는 여러 명칭이 등장했는데, 내가 부르고 싶은 이름은 낮달이다. 그가 추구하는 조경설계가 평소 잘 보이지는 않지만, 맑은 날 그 존재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낮달과 닮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가 설계로 그려내는 보이지 않는 낮달을 더 보고 싶다. 나아가 현재 낮달처럼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스케치를 그리고 있을 미래의 조경가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여의도공원을 그렇게 멋대로 밟고 다닌 건 처음이었다. 살기 위한 걸음이었다. 잔디를 가로지르고, 철책을 무시하고, 녹지와 길의 경계를 가르는 울타리 위에 올라서고, 잎이 다 떨어진 화살나무의 앙상한 가지에 패딩이 뜯기지 않도록 우스꽝스럽게 걸었다. 인파에 가려 발밑이 보이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앞 사람이 “요 앞에 턱 있어요. 조심하세요!” 하면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난해 초 끊어졌던 인대를 떠올리며 더욱 조심조심 걷는 수밖에. 국회의사당 초록 지붕을 표적 삼아 걸으며 ‘광장’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절실해졌는지 모른다.
친구 K는 모이기에는 역시 광화문광장만 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모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 발에 걸리는 턱이 없는 공간, 차량이 덮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원한다면 행진을 할 수 있는 공간, 고개만 돌리면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공간이 광장이라는 걸 몸소 깨달았다. 그래도 여의도공원은 평지 공원이라 다행이었다. 어느 SNS에서 봤는데, 부산에는 주로 서면에 모인단다. 파도타기를 하면 조금 이어지던 물결이 금세 갈래갈래 나뉜 골목으로 흩어져버리고, 오르막길이 많아 행진을 하다보면 숨이 차서 구호와 노래 소리가 점점 잦아든다고 그랬다. 그래서 광장이 없는 도시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인터넷이 먹통이 됐던 기억을 떠올리며 LED 화면과 통신사 이동기지국 차량이 가까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바닥에 앉아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고 연단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은 집중할 수 없었다. 핫팩을 주무르고 보온병의 물을 마시려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질까 봐 관두었다. 예고 없이 불어오는 바람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마음을 빼앗은 건 한 야구 팀 유니폼을 입고 무대에 오른 시민의 발언이었다.
그는 자신을 “앞선 세대가 쟁취한 민주주의의 드넓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태어난 세대, 여러분이 일구어낸 생존이라는 결실”이며 “그래서 삶을 꿈꾸게 된 세대”이고 “절박함이 아닌 사랑으로 연대하는 세대”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곳에 서게 된 이유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빗대어 말했다. “무너진 민주주의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에 무승부가 있을 수 있습니까? 콜드게임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천 취소, 강설 취소가 있을 수 있습니까? 스포츠 팬 여러분! 우리는 국가대표처럼 끝까지 맞설 것입니다. 게이머 여러분! 우리는 정의의 엔딩을 위해 몇 번이든 리트(리트라이)할 것입니다! 오타쿠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최애인 것처럼 민주주의를 수호할 것입니다. 빠순이 여러분! 우리는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보려고 밤새워 기다렸듯, 찬란한 민주주의의 태양이 다시 뜨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함께, 여기에서, 독재의 담장을 넘어 홈런을 칠 것입니다! 맞습니까? 야구 팬 여러분, 스 트라이크를 세 번 놓친 타자에게 네 번째 기회가 있습니까? 우리는 이 광장에서 꽉 찬 직구를 던질 것입니다.”
세상은 넓고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은 그리 넓지 못하다. 세상은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관심이 없지만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것,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기 다른 세상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세상의 넓이는 나의 인식이 미치는 범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들이 늘어갈수록 내가 구축하는 세상의 크기는 점점 커지게 된다. 무언가를 깊이 사랑해본 사람들의 세계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발 딛고 선 세계가 끔찍해지더라도 그곳을 떠나기보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지난해 12월 7일,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물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그 물음을 들었을 때, 광장에서 들었던 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그의 이야기를. 세계가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워지는 만큼, 그 세계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이 온전히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늘어나리라 믿는다. 나는 전보다 더 광장을 사랑하게 됐다. 그 너른 광장의 크기만큼 나의 세계도 넓어졌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