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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기술사 시험의 출제경향
조경기술사 시험은 지난 1월호에 소개된 바와 같이 필기시험(논술시험), 자격심사, 면접시험의 단계로 진행된다. 이중 올해의 필기시험은 60회(3월 5일), 61회(5월 28일), 62회(9월 17일) 3회에 걸쳐 시행될 예정이다. 기술인에게 최고의 영예인 기술사 특히, 조경기술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격요건, 필기시험, 면접시험 등 그야말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응시자들은 이미 시험자격요건을 확인하고 시험에 응시하기 때문에 자격연한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또한 면접시험도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2년간 자격이 유효하고, 지금까지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2년 안에 면접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 없다는 측면을 생각하면 어려운 관문은 아니다. 결국, 1차 필기시험이야말로 기술사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할 가장 힘들고 험난한 관문이 된다. 필기시험은 매교시 100분씩 4교시 400분에 걸쳐 치루어지는 시험시간만으로도 만만치않은 논술형 시험이다. 일반적으로 1교시는 용어정의나 단답형 방식으로, 2, 3, 4교시는 필수와 선택문제가 혼합된 논술형 문제 위주로 출제된다. 합격기준은 평균 60점이 기준이나 지난 1월호에 소개된 바와 같이 절대평가 기준으로서의 60점은 무의미하다. 즉, 회차별로 필기시험의 합격자가 2~10명 정도이고, 한 회의 응시자가 60~120명선임을 감안한다면 시험본 회차의 응시자중 적어도 5~10% 안에는 들어야 합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 키워드 _ 조경기술사, 시험경향, 출제경향, 조경기사
※ 페이지 _ 1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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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사에 발을 들여놓기 30년
1950년대 후반부터 나는 전남대학교 임학과에서 삼림입지학과 양죽론 그리고 조경학 강좌를 담당하면서 대나무의 연구에 관여하고 있었다. 우리 대학이 있는 지방은 대나무의 고장이었기에 대나무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강좌에 ‘양죽론’이라는 강의를 새로이 설강할만큼 연구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조경」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상륙, 1973년에는 서울대학교와 영남대학교에 조경학과가 새로이 설치되었고 조경학회도 창립되어 내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고심끝에 나도 우리 대학에 조경학과를 설치하고 학문의 방향도 조경쪽으로 돌려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사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나무에 미쳐 일생동안 대나무와 함께 할 뜻을 굳히고 있었다. 대나무 연구에서 조경사 연구로 1962년 12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고온과 저온의 갑작스런 변화로 시작된 이상기후는 마침내 3·4월에 이르러 전국의 대나무숲(竹林)에 큰 피해를 주어 상당수의 대나무가 말라죽어 갔다. 나는 당시 현지 답사를 통해 같은 지역이라도 대나무가 얼어죽지 않은 곳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그 간접적인 피해 요인은 국소적인 지형조건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피해지역을 찾아 그 피해상태를 파악하는 한편 이에 대한증명을 위해 국소지형(局所地形)에 대한 최저기온을 측정하고, 내한성을 판단하기 위해 대나무의 환원당(還元糖)을 조사하기로 하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최저온도계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주문하여 많은 양을 주문 제작하였다. 그리하여 산지에 고도 5m마다 설치한 온도계와 광주 소방서의 화재 감시탑에 수직으로 2m 간격으로 설치해 놓은 온도계의 기온을 날마다 측정하였는데 그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 키워드 _ 정동오, 조경사
※ 페이지 _ 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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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에 젊음을 바치고 ; 관악캠퍼스 마스터플랜의 수립
1973년 3월초 청와대에서 관악산 조림계획을 수립하여 조속히 보고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다. 그 당시 미립목지가 많았고 토사의 유실을 막기 위해 사방공사를 한 곳도 있었다. 관악산 시설지역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호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웅장한 관악산 자체가 시설지역에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박대통령이 판단하고 조림계획을 지시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관악산의 시각구조에 대하여 분석한 결과, 순환도로에서 중복부까지를 시설지역의 배경으로 보고 조림대상지역으로 하였다. 조림계획의 중대성과 시기상으로 조급함을 느끼게된 나는 서둘러 현황조사에 착수하였다. 지형도와 카메라, 야장을 준비하여 미립목지의 범위를 지형도에 표시하고 현황을 사진에 담고 야장에는 토질을 기재하면서 중복부까지 구릉과 계곡을 답사하였다. 현지답사를 마치고 기간이 임박하여 관리과 안봉준 계장과 여관에 투숙하면서 며칠 밤을 새웠다. 또한 정확성을 더하기 위하여 관악산 항공사진과 지형도를 대조하면서 도면에 임반을 구획하고 번호를 부여하면서 면적을 산출하였다. 장래의 경관미와 시각미를 우선하고 계곡, 사면 등의 특성에 따라 적지 적수로 수종을 선정하였다. 상록수는 리기다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낙엽수는 주로 단풍나무, 자귀나무, 낙엽송 등의 20여종이 선정되었다. 상록수와 낙엽수의 비율은 산림환경의 안정을 위하여 7:3으로 계획하였다. 면적당 식재주수를 산출하고 조림계획보고서를 작성하였으며 조림계획의 타당성과 보완을 위하여 수원농과대학 이창복 교수, 심종섭 교수, 임경빈 교수를 초빙, 김도연 관리국장, 안봉준 계장이 참석한 가운데 설명회를 가졌다. 이 보고서를 근거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임반별로 조감도를 그리도록 하였다. 조감도를 그리는 화가와 같이 임반별로 대표적인 지역의 현황사진을 골격으로 삼고 조림한 수목이 성목이 된 상태의 색조로 조감도를 완성시켰다. 각 수종에 고유번호를 부여, 표시하여 조감도에 부착하고 일목요연하게 이해가 되도록 작성한 조감도의 사진을 찍어서 앨범 좌측은 현황사진, 우측은 조림 후 장차 성림이 된 상태와 비교가 되도록 임반별로 스크랩하여 청와대에 보고하였다.
※ 키워드 _ 서울대캠퍼스, 강우창, 마스터플랜, 1970년대 조경
※ 페이지 _ 13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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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조경교육의 장, 서울대 환경대학원 그리고‘조경학 개론’ 발간
이번호에는 우리나라에서 첫번째 조경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월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당시 청와대의 요청으로 귀국한 필자는 조경분야의 육성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다른 무엇보다도 교육제도가 가장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중장기 ‘국토개발’을 위하여 전문분야인 ‘조경’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시기였던 만큼 학문적으로 조경학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한 인력이 거의 전무했던 당시 상황에서는, 우선적으로 대학에 조경학과를 설립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학과를 설립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수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또는 농과대학 내에‘조경’전공학과를 신설하는 안, 서울대 행정대학원 내에 기존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외에 조경학과를 신설하는 안, 행정대학원의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를 분리하여 독립적인 대학원을 새로 설립하되,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와 나란히 조경학과를 설치하는 세가지 안을 검토한 끝에, 세번째 안을 추진하게 되었다. 건축, 임학, 원예, 도시계획, 토목 등 조경 인접 분야에 있는 인력 중에서 조경에 관심있는 인원들을 선발, 2년 과정의 교육을 실시해서 각 대학의 조경학과 개설시 교수직을 담당케 하고, 기업의 건설 관련 담당자들을 재교육시켜서 건설분야 업무에 조경의 마인드를 접목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런 기본 구상 아래, 당시 선발대상으로 고려되었던 사람들은 조경과 관련있는 학부를 졸업한 사람들과 건설계통에 근무하고 있는 국가공무원, 토지개발공사(현 토지공사), 대한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등에 종사하고 있는 국영기업체 임직원, 육·해·공군의 시설 관련 초급장교들이었다. 그리고‘환경대학원’이란 명칭은, 조경이 원래 건축·토목·원예·미학이론 등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기본개념은 자연경관과 생태에 대한 순수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며, 대상과 관념의 관계가 종합적·과학적으로 설정되어야 하는 차별성을 갖고 있고, 또한 앞으로 조경분야가 산업사회 진입에 있어서 국토조경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 이 국토조경은 장차 대두될‘환경문제의 해소’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명명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조경’이란 용어보다도 더 생소했던‘환경’이란 개념을 조경분야에 접목시키게 된 것이다.
※ 키워드 _ 오휘영, 근대조경, 환경대학원, 조경학개론
※ 페이지 : 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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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분야에서의 GIS 활용과 전망 ; 국내 GIS 활용 사례
해양수산부에서는 지난해 말 갯벌의 보전 및 현명한 이용정책수립은 물론 교육, 관광 등 다양한 부문에 활용 가능한 강화도 갯벌생태지도 시안을 발표하였다. 갯벌생태지도란 갯벌의 생태정보를 종합·도면화한 지도로서 이번에 발표된 갯벌생태지도는 강화도 남단을 대상으로 갯벌면적의 변화, 갯벌의 종류(모래, 펄 등), 철새서식지역 및 저서생물의 분포밀도 등 다양한 정보를 지도 한 장에 담고 있다. 특히, 동 갯벌 생태지도는 CD동영상으로 제작·배포됨으로써 앞으로 정책수립, 관광, 환경교육 등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강화도 갯벌생태지도는『갯벌생태계조사 및 지속가능한 이용방안 연구』성과의 하나로서 작성된 것이며, 동 연구가 완료되는 2003년까지는 총 2백30억원을 투입하여 전국 갯벌을 대상으로 하는 갯벌 생태지도가 마련될 예정이다. 본 시스템은 위와 같은 갯벌생태지도의 관리를 통해 갯벌생태의 보존 및 갯벌현황자료의 분석을 통한 정책결정 의사지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갯벌생태 교육 및 관광사업에의 활용을 목적으로 시범 구축된 GIS를 이용한 갯벌생태계 보존 및 관리시스템이다. 당사는 GIS 응용 어플리케이션, GPS, ITS, CNS(Car Navigation System)등에 대한 Consulting 및 System 구축사업, 교육지원 및 건설CALS, 건설정보화구축, 새주소 부여 사업 등 도시정보화와 시설물정보화 관련 등을 수행하는 업체로서, 이번에 시범구축한 본 시스템은 앞으로 전국적으로 구축될 갯벌생태지도에 활용될 새로운 공간관리 및 분석 도구인 GIS를 기반으로 하는 환경정보시스템의 이용 사례를 제시하였다.GIS(지리정보시스템)가 환경관리 및 자연환경분야에서 널리 활용가능한 예로는, 환경오염정도의 파악, 지표자료 구축, 동식물의 정보, 환경 모니터링, 지속 가능한 토지관리, 환경자원정보 네트워크, 환경관련 의사결정, 개발과 환경의 조화 등과 같은 환경문제와 환경의 유지·관리 등이다. 환경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각종 환경정보들은 필연적으로 공간현상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공간정보에 속성정보를 추가하여 관리할 수 있고, 공간질의와 분석, 시각화가 가능한 지리정보시스템(GIS)은 환경정보시스템 구축에 매우 적합하다
※ 키워드 _ GIS, GIS 활용사례※ 페이지 _ 7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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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가로 설계안 선정 ; 서울시 자치구
서울시는 지난 12월 22일 각계 전문가 11인으로 심사위원단을 구성, 서울시 20개 구청(종로, 중구, 성동, 마포, 관악 제외)이 제출한 시범가로 설계(안)에 대한 평가회의를 개최했다. 대상지 선정의 적합성, 설계안의 타당성 및 디자인 수준, 주민참여도 및 실현 가능성, 사업취지의 부합성 및 우선 지원의 필요성을 기준으로 시행된 이날 평가회의 결과, 최우수구에 서대문구가, 우수구에 용산구, 성북구, 강동구가, 가작에 양천구, 금천구, 영등포구, 송파구가 각각 선정되었다. 이에 본지는 최우수구와 우수구의 설계(안)을 소개한다(여기에 소개된 설계(안)은 12월 22일 평가 당시의 안이며, 추후 부분적으로 변경된 부분이 있음을 밝혀둔다). ※ 키워드 _ 시범가로, 가로공원, 거리, 현상설계, 설계공모 ※ 페이지 _ 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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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마을경관의 원형과 복원
최근 남한산성이 수도권 제일의 역사문화 관광지로 부각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의 수가 늘고 있으며 학술적 관심과 연구 또한 확대되고 있다. 남한산성의 역사는 백제 초기 도읍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대
규모 취락이 형성된 것은 조선조 인조 5년에 광주부의 읍치를 산성안으로 옮기고 산성거민을 확보할 목적으로 광주 관내의 백성은 물론 타 읍의 거주민도 모민입거(募民入居)한 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마을의 규모면에 있어서는 이읍(移邑) 초기에는 대략 300여호 정도였으나 점차 그 수가 늘어나『광주부읍지』(1842~43)에 나타난 산성마을의 호구수를 보면 1,088호에 인구는 4,047명(남:2,100명 여:1,947명)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당시의 우리나라 생활양식을 고려해 볼 때 남한산성이 상당한 도시적 면모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마을의 구조나 모습은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유리원판사진이나 일정초기에 제작된 지형도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성세가 20세기초 까지만해도 그대로 유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남한산성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은 산성이 갖는 고즈넉한 옛 멋과 역사의 현장으로서의 남한산성, 그리고 전통적 산성마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대형화되고 변형된 건축물에 먹거리 집들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역사 유적들과 조화되지 않은 현재의 마을 모습에서 실망을 감추지 못하곤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산성마을을 복원하기 위한 몇가지 논의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 키워드 _ 남한산성, 경관, 공원, 역사문화
※ 페이지 _ 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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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좋은 공중정원, 있으나마나 ; 종로타워 공중정원, 편법조성
벤침체된 도심건축물에 개성을 불어넣은 역작’이라는 찬사부터‘종로 특유의 지역성을 무시한 오만한 건물’이라는 혹평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종로 타워가, 이유야 어찌됐든 세간에 화제를 뿌리며 준공 6개월여를 맞고 있다. 그리고 최상층인 33층의 레스토랑‘톱 클라우드(Top Cloud - 건물중간부가 비어있는 건축양식으로, 먼 곳에서 보면 마치 윗부분이 떠다니는 구름처럼 보인다해서 붙여졌는데, 이 건축양식의 이름이 그대로 레스토랑의 이름이 되었다)’는 뛰어난 전망을 앞세워 도시민들을 유혹하며, 각종 일간지와 잡지의 ‘가볼만한 곳’에 버젓이 명함을 내밀고 있다. 그렇지만 공중정원, 하늘공원, 스카이정원, 옥상광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던 공중정원은 아직까지 일반에 개방되지 않고 있다. 또한 건물 용도가 애초의 백화점에서 오피스 건물로 변경되면서 백화점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었던 공중정원의 초기 설계안은 상당부분 변경되어 결국 매우 썰렁한(?) 형태로 완성되고 말았다.
※ 키워드 _ 공중정원, 옥상정원, 종로타워, 편법, 옥상정원 편법
※ 페이지 _ 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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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분야에서의 GIS 활용과 전망 ; 국내 조경분야의 GIS 활용 사례
우리 나라에 GIS가 도입된 것은 1980년 중후반이다. 이 때에는 주로 GIS의 개념을 소개하는 원론적인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조경분야에서도 그 개념의 도입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는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GIS를 이용한 공간분석이나 본격적인 GIS의 도입을 위한 연구와 프로젝트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조경분야에 있어서는 지형분석, 경관분석, 적지분석 등 연구 프로젝트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국가 GIS구축 기본계획(1995~2000)”의 시행과 더불어 많은 GIS 관련회사들이 생기고 학계에서도 GIS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되었으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GIS를 이용한 각종 업무시스템이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이 개별적인 단일시스템의 구축에 머물거나 주로 시설물 관리분야에 집중되어 종합적인 정보시스템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전반적인 분야에서 개별적 단일시스템과 더불어 종합적인 시스템도 동시에 기획, 개발하고 있으며 조경분야에서도 전체 시스템의 부분으로 또는 독립된 시스템으로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발달하고 있는 인터넷과 더불어 인터넷 GIS의 응용도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조경분야에서의 GIS의 활용은 아직 초보단계에 있다.아직 국내에서 GIS의 기본이 되는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못하고, 기술인력이나 장비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여 아직 그 활용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나 기술의 발달, 기반시설의 발달과 더불어 머지않아 이러한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히 갖추어 질 것이며 활용기법도 더욱 실용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또한 인터넷과 연계된 인터넷 GIS의 발달과 더불어 이러한 시스템에 시민들의 참여폭이 더욱 넓어질 것이며, 이에 따라 주민참여계획 및 설계 분야에도 GIS의 응용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게 되면 기획에서부터 설계, 시공, 관리까지 조경분야의 대부분 과정에서 GIS와 연계한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 키워드 _ GIS, GIS 활용사례※ 페이지 _ 6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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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가치의 공유는 새천년의 화두 ; 문국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자연녹화캠페인‘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로 유한킴벌리를 일약 환경친화기업의 대표주자로 끌어 올린 문국현 대표이사(52세).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경영이념에 감복하여 1974년 사원으로 입사, 꾸준한 승진으로 대표이사까지 오른 그는 철저한 관리와 남다른 성실함으로 인정받는 기업인이자 열정적인 환경운동가이다. 무엇보다 그가 1980년대 정부주도의 경직된 산림녹화사업을 민간참여로 확산시킨 장본인이라는 점은 그의 환경에 대한 열정을 가늠하게 하는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1983년 기획실장 재직 당시 안식년을 기해 경영학 공부차 호주, 미국 등을 둘러보던 문사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엉뚱하게도 환경문제. 울창한 숲과 쾌적한 환경을 벗하며 살아가는 선진국들의 모습은 경제성장과 환경이 상생할 수 있다는 색다른 충격을 일깨워 준 것이다. 이제 우리도 뭔가 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귀국한 문사장은 물이나 대기 문제보다는 그 원천이 될 수 있는 산림 가꾸기의 중요성을 강
조했고 이는 곧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산림가꾸기를 위한 지원금을 산림청에 전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같은 제안은 기부금에 대한 과다한 세금문제와 산림청측의 재정형편상 다른 용도로 이용될 수 있다는 문제로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고 대신 산림청측으로부터 산림가꾸기 홍보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출발한 유한킴벌리의 홍보사업은 국민적 캠페인으로 발전할 만큼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었으며 회사의 이미지 제고는 물론 경쟁력까지 끌어올리는 훌륭한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했다.
※ 키워드 _ 문국현, 녹색정신, 유한킴벌리
※ 페이지 _ 124-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