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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탐닉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언젠가 혼자서 책을 한 권 쓴다면 ‘공원 탐닉’이란 제목으로 쓰리라 마음먹었다. 나름 구성도 짜보았고, 챕터 제목도 끼적여 놓았다. 오래된 폴더를 열어 작성한 날짜를 확인하니 2006년 7월 18일이다. 파일명은 ‘개인 단행본 집필 아이템’.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신명조 서체만큼이나 생소한 차례 구성안이 모니터에 펼쳐진다. ‘①물: 흐르고 비추는, ②빛: 낯보다 찬란한, ③풀: 흔들리며 유혹하는, ④돌: 단단하거나 무르거나, ⑤흙: 그 자체로 아름다운, ⑥점: 작지만 소중한, ⑦선: 나누고 연결하는, ⑧면: 여백을 넘어, ⑨생: 성장하며 진화하는’ 등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이버 아이디로 ‘녹색 여백’을 쓰던 때인데, 그 아이디만큼이나 상당히 작위적이다. 아마 9장으로 구성한 건, 물, 빛, 풀, 돌처럼 한 글자로 된 근사한 단어를 더는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12장으로 구성된 256쪽 안팎의 책이 가장 부담 없고 읽기 편하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니까(이런 구성이면 한 챕터가 20쪽 내외여서 적절히 사진이 가미되면 한 호흡으로 읽기 좋다). 실제로 책을 펴낼 때까지 3개를 더 찾아내야 할 텐데….
‘물’은 일산호수공원을, ‘빛’은 노래하는 분수대를, ‘풀’은 하늘공원을, ‘돌’은 선유도공원을, ‘흙’은 올림픽공원을, ‘점’은 옥상공원을, ‘선’은 양재천을, ‘면’은 공원 전반을, ‘생’은 조경의 이모저모를 소재로 쓰려고 했다.
아마, 지금 쓴다면 경의선숲길과 광교호수공원, 양화한강공원, 서울숲, 서서울호수공원, 여의도한강공원을 어딘가에 포함시킬 테고, ‘흙’은 지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나무와 풀을 품어내는 기반으로서의 소중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까 싶다. 키워드 하나당 공원 하나씩을 매치시켰지만, 특정 공원을 중심으로 쓸 생각은 없었다. 몇 곳이 되었든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내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느낀 공원의 매력에 집중할 요량이 었다. 그러니까 ‘물’은 우리가 공원에서 만나는 흐르고, 떨어지고, 솟구치고, 반사하는 각양한 물을 주인공으로 쓰고, ‘돌’은 석재를 비롯해서 다양한 재료의 물성과 맛을 탐닉하는 방식이다. ‘풀’은 나무와 꽃도 포함한 공원의 식물을 이야기하는 챕터로 할애할 생각이었다. 잎 넓은 나무 다음으로 풀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라스 류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많지 않으니까. 부제는 ‘도시의 녹색 여백, 공원을 만나다’ 정도가 무난해 보였다. 이 ‘공원 탐닉’ 집필 프로젝트는 에피소드 몇 가지만 스케치 해놓고는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았다. 충분히 뜸을 들이면서 진행하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좋은 (?) 사례를 기다리자는, 좀 대책 없는 설계를 처음부터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감 독촉하는 에디터도 없는 책이 아닌가. 이번호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란 질문에 충실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의 구상을 얼기설기 풀어 놓는다. ‘나의 공원’ 이야기는 지난 달 코다에서 충분히 했으니까(궁금하신 분은 『환경과조경』 2015년 9월호, p.143 참조).
미리 쓴 ‘책을 펴내며’ 중에서
여백餘白의 여는 남을 ‘여餘’다. 그러니까 쓰고 남은 흰부분이 여백인 셈이다. 뭐, 빈자리라고 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잉여의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핵심은 ‘쓰고 남은’ 면이란 점이다. 그런데, 쓰다가 우연히 남은 것과 쓰면서 일부러 남긴 것과의 차이는 크다. 남은 여백에는 의도 따위가 담겨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여백은 더 채우지 못해 아쉬운 빈 곳이거나,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어 방기된 공간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남겨진 여백은 이야기가 다르다. ‘여백의 미를 잘 살린 작품…’ 운운할 때 등장하는 여백은 보는 이에게 진한 여운을 남겨주기도 하고, 그곳이 여백이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졌을 때보다 더 큰 완성도를 갖게 해준다. 이우환은 『여백의 예술』(이우환 저, 김춘미 역, 현대문학, 2002)에서 “예술 작품에 있어서의 여백이란,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열리는 앙양된 공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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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머무는 공간, 나의 공원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기억을 찾아서
어렸을 적부터 이십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한 동네에 살고 있는 탓에 동네 공원은 내게 무척 익숙한 공간이다. 이름도 ‘고척근린공원’, 지명이 그대로 이름이 된 참 평범한 공원이다. 익숙하다는 말과 평범하다는 말은 의미도 쓰임도 제법 다르지만 두 단어가 주는 인상만큼은 비슷하다. 평범하니 익숙하고,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평범하다고 느낀다. 고척근린공원은 그렇게 내게 무척 평범하고도 익숙한 공간이다. 이리 익숙한 공간이라도 막상 공원에서 보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반추하고 정리해 보려니 꽤나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이 너무 많아서인가보다.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만큼이라면 도리어 쉬울 텐데. 그래서 이 산발적인 기억을 정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 보았다. 공원 내의 다섯 개의 장소를 뽑아 순간적으로 튀어 오르는 기억들을 적어나가는 거다. 물론 이 방법이 산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공간을 통해 추억을 더듬는 것이 시간을 되짚는 것보다 기억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까 싶다. 참,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다섯 개의 장소가 고척근린공원에 있는 공간의 전부가 아니란 점은 밝혀두어야겠다. 이 장소들을 선정한 기준은 ‘나의 기억이 많이 깃든 곳’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 만남이 꽃피는 정문
공원 진입부인 정문은 초중고생 때 친구들을 만나던 약속의 장소였다. 크고 기다란 모양의 탑이 기준처럼 서있고 그 옆으로 의자 대용으로 쓸 만한 조형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친구들을 기다릴 때면 그 조형물 위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처음 이 조형물이 생겼을 때, ‘이건 뭔가 이상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공원의 도입부를 알리기 위한 기념물로 세워 놓았나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실 정문의 명물은 이기이한 조형물보다 조그만 트럭에서 늘 뻥튀기를 튀기고 있는 아저씨다. 매번 보는 광경이어서 그런지 뻥튀기 아저씨가 없으면 공원에 온 거 같지가 않을 정도다. 공원 가까이에 다가갈수록 탁탁 거리는 기계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내게 고척근린공원의 최고 이정표는 동떨어진 섬처럼 자리한 조형물이 아니라 그 앞을 지키고 선 뻥튀기 아저씨다.
둘, 두 얼굴의 놀이터
놀이터에는 꽤 재밌는 추억이 남아 있다. 네 살 즈음이었나. 미끄럼틀을 무서워해서 매번 동네 친구들이 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던 나는 친언니의 엄청난 놀림을 받고나서야 미끄럼틀을 타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미끄럼틀이 왜 그렇게 무서웠던 건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히 겁이 많아서였던 건지, 어린 아이의 눈에 미끄럼틀이 너무 높고 커 보였기 때문인 건지. 무튼 나는 아주 큰맘을 먹고서야 미끄럼틀을 타는 데 성공했고, 그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아직도 내 앨범에 꽂혀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놀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밤 9시 즈음부터 11시 정도까지, 학원을 땡땡이치고 놀이터에 가면 반 친구들을 참 많이도 만날 수 있었다. 낮 동안 땀이 나게 뛰노는 아이들의 주무대였던 놀이터는 저녁이 되면 일탈을 꿈꾸는 청소년들의 비행장소가 되었다. 친한 친구들이 아니라도 곧잘 어울려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보면 종종 눈이 맞아 연애를 하는 애들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놀이터에 마지막으로 가 본 게 언제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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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떨림이 시작된 공원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동아리를 만든 게 불순한 의도는 아니었으나
대학교에 입학해서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했다. 과대표부터 시작해서 학생회 활동도 일부 돕고, 사진 동아리, 무술 동아리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잡지사의 학생통신원까지 하면서 여러 모임을 두루 경험했다. 다 배워보려 시작한 활동들이지만 대학 생활이란 것이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기승전‘술’로 연결되다보니 참으로 쓸데없이 허송세월 한 것 같은 느낌도 가끔 든다. 그래도 잘한 일 중 한 가지는 군 입대 전 학과 동아리를 만든 것이다.
우리 과에는 과거 학술 동아리가 있었는데 체제가 학부에서 학과로 개편되면서 명맥이 끊긴 상태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교수님들께서 동아리를 만들면 지원을 많이 해주신다 약속하셨고, 어찌어찌 내가 총대를 메고 동아리원을 모집해 조직 구성, 운영, 행사 진행 등을 도맡았다. 그렇게 몇 개월을 유지하다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어릴 때 학과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다보니 나름 선배들에게 예쁨 받는 후배가 돼 있었다. 한참 윗 기수학번의 선배들도 알게 되고 교수님들께도 신임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얻은 듯싶었다. 하지만 학과동아리를 만든 게 내 대학 생활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된 이유는 이게 아니다. 복학과 동시에 재학생들과 자연스레 융화되는 장치가 됐고, 그럼으로써 연애를 하는 발판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어찌 잘 만들었다 안 할 수 있을까.
동방탈출: 애정의 시작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나는 연애를 늦게 시작한 편이다. 동갑내기 친구들보다 군대를 조금 늦게 간 편이라 전역했을 때 나이가 스물넷이었는데, 그해 처음 연애를 했다. 복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과 동아리에 가입한 같은 과 후배를 꼬셨다. 그녀는 지금의 내 여자 친구다. 사실 처음엔 연인 사이로 발전할 줄 꿈에도 몰랐다. 내가 그녀를 갈구는 못된 선배였기 때문이다.
복학하기 전에 학과 동아리 방에 잠깐 들른 적이 있는 데 그때 여자애 둘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보다 학번이 3년 아래인 꼬맹이들이었다. 한 명은 회장, 한명은 부회장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군대에 가 있는 사이 동아리 회원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는데, 동아리를 만든 입장에서 애정이 있던 터라 그 후배들을 도와 신입생들을 뽑고 가르쳐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 회장과 부회장을 정말 많이 괴롭혔다. 그러다 심하게 감정적으로 서로 격해진 일이 있었는데 이후 화해를 하고 다시 친목을 다지기 위해 공원으로 스터디를 위한 답사 겸 출사를 나가게 됐다.
사랑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내 대학 시절 생활권이었던 전주의 중심부에는 덕진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덕진공원의 면적은 약 15만m2로 전주에서 가장 큰 도시 공원이다. 공원 면적의 3분의 2를 연못이 차지하고 있는데, 초여름 연꽃이 만발하면 절경을 이뤄 출사지로 각광을 받는다. 또한 이곳은 후백제 때 견훤이 도성 방위를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설과 고려 때 건지산과 가련산을 잇는 비보풍수를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함께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왕조의 발원지로서의 전주와도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오제면 물맞이를 하기도 하고, 축제의 장소로, 그리고 평상시 소풍과 나들이 장소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전주의 명소 중 하나다.
도시 마케팅의 수단으로 하고많은 관광지 중 구색맞추기식으로 공원을 넣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하지만 전주에서 덕진공원은 지역민들이 타지 사람들에게 꼭 소개하는 핫플레이스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전주내에서 놀러 갈 외부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전주에서 주거지와 멀지 않은 근교의 손꼽히는 나들이 장소는 크게 전주동물원, 한옥마을, 덕진공원 정도다. 물론 지금은 패턴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으나 불과 4~5년 전쯤에는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이유로 덕진공원은 그 주변에 위치한 대학교들의 조경학과 졸업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대상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조경학과 동아리이니 답사를 목적으로 가닥을 잡고 토요일 낮 점심 때 쯤 덕진공원에 모였다. 지금은 조경시공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 같은 1년 후배와 나보다 키가 작아 신뢰하는 ‘평생 막내’,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신입부원들을 데리고 답사를 빙자한 나들이에 나섰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도 있어 조촐한 인원이었는데 이날 부회장이 조카를 데리고 와서 더 나들이 분위기로 기울었다.어쨌든 격식을 갖춰보고자 각자 카메라로 세 가지 주제를 찍어보라고 후배들에게 미션을 줬다. 이 공원에서 안 좋은 요소, 좋은 요소, 그리고 풍경 사진을 포함해 각자만의 ‘주제 사진’을 하나씩 찍도록 했다. 첫 두가지는 수업 때 들었던 “문제를 해결하는” 설계의 재료를 찾아나서는 과정의 일환이었고 세 번째는 후배들에게 사진 찍는 데 재미를 붙이게 하려는 목적 혹은 그냥 공원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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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지구인들로부터 공원을 빼앗는 몇 가지 방법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공원이 있는/없는 미래 2105Our Future With/Without Parks 2105’2를 다루고자 했을 때―공원이 없는 미래라니, 매력적이지 않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공원이 없는, 즉 공원이죽은 미래를 그린 수상작들을 만나볼 수 있길 바랐다(그림1). 발칙한 생각이지만 그 편이 훨씬 흥미로울 것 같았다. 누군가의 밥벌이meal-ticket가 될 수도 있는 공원이 죽었으면 좋겠다니. 어쨌든 한껏 기대하고 있던 중에 도쿄에서 문자 하나가 도착한다. “공모전 관련 단행본 작업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자료를 공개할 수 없음.” 공원 이용 실적이 저조한, 공원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은 에디터에겐 좋지 않은 소식이다. 이것 말고는 쓸 것도 없었으니까. 결국 손에 쥐어진 자료라고는 작품 전시 당시 일본 리포터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저화질의 패널 사진―제목과 메인 조감 이미지, 개념 다이어그램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이 전부. 확실한 것은 ‘만화적 상상’이 엿보이는 11개 공원 시나리오가 도시 인구 밀도,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 지진과 쓰나미 등의 재해, 에너지 부족과 같은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한 대응의성격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뭔가 부족하다. 미처 읽어내지 못한 ‘만화적 상상’이 더 필요하다. ‘누가(수상자) 어떤 이유로 공원을 미래 지구인들로부터 빼앗으려 한 걸까’ 물론 이러한 만화적 상상에도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상을 좋아한 건축가 히메네스 라이Jimenez Lai는 “만화는 창작을 토대로 해야 성공적이지만 이야기 순서를 유지해야 하는 갈등, 또는 만화 전체에서 모든 것이 이치에 맞아야만 하는 ―즉 등장인물이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순없다―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결말을 맺을지 알 수 없는 이야기에도 복수의 타임라인이 존재할 수 없다.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도 똑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피해자, 사건 장소, 용의자, 모티브, 살해 도구, 추정 사망 시각 등의 희미한 단서를 단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 속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범죄자의 심리에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라면 어떻게 미래의 지구인들로부터 공원을 빼앗으려 할까’ 이 공원 이야기는 미래 도시와 공원에 대한 복수의 세계관multiverse이 단일 연속선상의 어느 한 순간을 구성하며 하나의 타임라인을 구성하게 될 것universe이라는 “주관적이고 특수한” 만화적 상상을 바탕으로 한다. 즉, ‘공원이 없는 미래’를 그린 공모 작품과 현대 도시를 대체할 새로운 땅에 대한 현재진행형 세계관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상상은 가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다. 참고를 했든 인용을 했든 아류작이건 반복이든 간에 전에 본 적 있는 것들의 재배치를 이해할 수 있을 까?3 그리고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의 끝에서 ‘당신의공원’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프롤로그
이름 없는 어느 은하의 언저리에 자리한 한 술집에 손님(구매자)이 들어온다. 우주 쓰레기 더미 속에 감춰진이 술집에서는 우주 문명에 대한 거래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문명 거래는 대부분 고고학자들이 진행하며, 품목은 대개 소유권이 소멸한 공간이다. 그런데 이 소유권을 소멸시키기까지가 참 고되다. 문명권 모두에게 버림받았다고 판단되어야 소유권이 소멸한다. 고고학자가 술집에 들어선다. 드디어 한 문명이 소유권을 포기한 듯하다. 품목명은 ‘인류의 도시 공원.’
Do-or-Die
“인간의 창의성이나 동기 부여는 그 상황이 ‘죽음과 같은 극한 상황do-or-die’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발휘된다.”
Clip#1
오늘은 또 뭘 들고 왔지(구매자)? 인류의 마지막 도시 공원(고고학자). 도시 공원? 인류의 주거지 속 낙원이랄까. 인류의 기술 개발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도시에 인간이 밀려들면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공간적 처방이었다는군. 아무튼 한동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상품이었지. 크기와 형태가 다양했고 보통 녹색 생명이 가득한 공간이었는데, 인류의 시간으로 약 100년 간 아주 잘 팔렸어. 아주 잘 팔렸다면 여기 있을 수 없는 거 아닌가? 소유권이 남아 있는 공간을 거래했다간…. 그건 이야기를 다 듣고 판단하도록 해. 내 얘기가 맘에 들면사고, 아님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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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상상하는 대로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상상하는 대로’ 미래가 변한다면, 공원도 ‘상상하는 대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이미 공원은 우리들의 상상과 욕망을 반영하며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많은 공원은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 새로 꾸미고 치장한다고 과연 좋기만 한 걸까 ‘나의 공원 이야기’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을 때, 두 개의 상반된 생각이 교차됐다. 변화를 이야기할 것이냐, 추억을 이야기할 것이냐. ‘아, 나의 공원 이야기라니 이게 웬 날벼락이람.’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인간이 예측 가능한 미래는 2045년까지라는 주장이 있다. 2045년이 되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기 때문이라는데, 곧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가 온다는 말 같아서 섬뜩하다. 엘빈 토플러는 “미래는 우리에게 항상 빨리 닥쳐와서 예측이 불가능하다”며 인간이 미래 예측에 어려움을 겪어 왔음을 이야기했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미래 예측의 정확성을 확보하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적으로 가장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니, 모든 사물의 이치를 드러낼 것처럼 자만했던 인간의 능력이 또 한 번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 셈이다. 그렇더라도 신에게 인간의 미래를 맡기는 시대가 다시 도래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과거 수많은 상상이 현실이 됐듯 앞으로도 수많은 상상들이 눈앞 현실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속 미래에 대한 상상은 이미지 그대로 현실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보면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그리는지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그려가야 한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현실이 된 상상
2015년을 상상한 영화가 있다. 1989년 개봉한 영화 ‘백 투 더 퓨쳐 2Back To The Future Part 2(1989)’는 주인공 마티가 자신의 아들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브라운 박사와 애인 제니퍼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뒤인 2015년의 미래로 간다. 미래의 아들을 구하고 영화 속 현재로 왔다가 다시 1955년의 과거로 가는 것이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다.
영화 속 2015년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묘사됐다. 주인공이 갈아 신은 나이키 슈즈는 저절로 사이즈가 조절되고 자동으로 끈이 매지는 신발이다. 실제 나이키에서는 2011년에 이와 똑같이 생긴 LED등을 단 ‘NIKE MAG’이라는 제품을 한정 수량 출시했다. 또한 올해에는 자동으로 신발 끈이 매지는 신발을 개발 중이라고 하니 ‘영화 따라잡기’로 미래가 변하는 경우다. 이 영화에는 3D 영화관도 등장한다. 현재는 3D 텔레비전이 보편화 돼 안방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술이다. 공중을 나는 호버보드와 플라잉 카는 기술적으로는 가능해졌지만 상용화되진 못했다. 그 외 스마트 텔레비전이나 지문 인식도어,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 등은 이미 상용화가 됐으며, 젖으면 자동으로 건조되는 재킷은 아직 상상 속에 남겨져 있다.
영화 속 상상이 현실이 된 사례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손끝 센서로 홀로그램 모니터를 다루는 기술이나 신원 확인을 위한 동공 확인 시스템은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미래 공원, 공룡 정도는 키워야지
공원은 그 잠재성에 비해 상상의 폭이 넓지 않은 듯하다. 조경가들의 상상력 빈곤이 가장 큰 문제겠지만, 공원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그다지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영화 ‘쥬라기 시리즈’는 그나마 가장 직설적으로 공원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다. 공룡이라는 흥미 있는 테마를 통해 지구사적 시공간을 뛰어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영화 속 ‘쥬라기 공원’이다.지난 6월에 개봉한 영화 ‘쥬라기 월드’는 9월 현재 역대 4위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공룡들을 앞세운 테마파크를 배경으로 지능과 공격성이 진화된 공룡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면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위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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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내가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리는 이유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한강공원은
자연과 인공이, 휴식과 질주가
절묘하게 조합된
이중적인 공간이다.
일요일 저녁 8시,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월요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벌써부터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전투를 앞에 두고 진격하는 적군의 북소리를 듣는 심정이랄까? 게다가 이 적군은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으며 나 역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몇 시간 뒤면 주말 동안 밀려있던 일거리가 전원 돌격 명령을 내리고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월요병이 전염병처럼 도시에 유행할 것이다. 월요일을 앞에 두고 배수의 진을 친 일요일 저녁엔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느슨해진 마음에 빵빵하게 자신감을 채우고 식은 엔진처럼 삐걱거리는 몸에 기름칠하고 불을 댕길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오후 8시. 이대로 밤을 보내기엔 너무 아쉽고 하얗게 불태우기엔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그런 저녁엔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린다. 전열을 가다듬고 숨을 고르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화풀이하러 한강에 갑니다
벚꽃놀이나 불꽃 축제를 구경하러 1년에 한두 번 정도 갈까 말까 했던 여의도한강공원을 요즘처럼 자주 찾게 된 것은 2013년부터다. 종로에 있는 한 통신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불규칙한 취재 일정과 예고 없는 잦은 회식으로 인해 몸무게가 왕창 늘어나던 때다. 회사 면접을 위해 산 정장 스커트에 더 이상 엉덩이를 우겨 넣을 수 없게 되자 뭐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 근처 여의도한강공원을 가게 되었다. 나는 늘 사람들이 새까맣게 북새통을 이루는 축제 기간에만 여의도한강공원을 갔던 전형적인 시골 사람이었던 터라 평범한 일요일 저녁, 여의도한강공원에 운동하러 가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도시의 삶을 묘사하는 미드(‘섹스 앤 더 시티’나 ‘프렌즈’ 같은)나 외국 영화를 보면 꼭 한 번은 타이트한 운동복을 입고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비일상적인 듯 일상적인 모습을 내가 재현하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굳이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린다. 종로 빌딩숲 한복판, 그 살얼음판 같은 회사에서 구르고 깨지는 게 일이었던 쭈구리 막내인턴에게 이곳의 자연과 한강 풍경은 말없는 위로를 건네고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한강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만만한 곳’이자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곳’이었던 것 같다. 조선 시대, 나라의 허가를 받아서 물품을 판매하는 종로 육의전六矣廛의 위세 높은 상인에게는 뺨을 맞아도 아무 소리 못하던 서민들이 한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비공식적인 시장인 난전亂廛에서는 큰소리치는 상황에서 속담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나도 종로에서 뺨맞고 만만한 한강에서 화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도시 문화를 맛볼 수 있는 공원
단순히 자연에서 위로를 얻기 위해서라면 선유도나 양화, 망원, 이촌 쪽으로도 갈 수 있지만 총 12개 지구의 한강시민공원에서 굳이 여의도한강공원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보통 여의도로 넘어가는 서강대교와 이어지는 고가도로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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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의 맛, 게으른 피크닉을 꿈꾸며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오롯이 백수였던 시절이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자유로워진 평일 오후, 한 대학 캠퍼스의 넓은 잔디밭에 나와 앉았다. 그 당시 하늘은 넓고 푸르렀고 눈앞에서 낮게 넘실대는 녹색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게다가 함께 있던 친구가 바로 그 잔디밭으로 짜장면을 시켰다. 야외인데도 음식이 배달된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고 심지어 그 상황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 ‘풀밭 위의 식사’는 나에게 여유의 상징처럼 각인되었다. 그런데 누군가 ‘화창한 평일 오후에 자연 속에서 맛있는 식사도 했으니 행복한 기억이겠구나’라고 묻는다면 글쎄, 선뜻 답하기 어렵다. 그 감정은 불안과 낯섦 사이를 오간다. 백수 신분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탓일까. 노동이 신성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강박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작년 가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졌던 ‘멍 때리기대회’가 언론의 화제가 되었던 것은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냥 ‘쉼’을 견디지 못하는(혹은 인정하지 않는)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일을 떠올리게 된 것은 K 때문이다. 이번 특집 주제를 찾느라 고민 중인 나에게 그녀는 공원의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광교호수공원을 방문한 그녀는 예전에는 놀이 공원에서나 먹을 수 있던 솜사탕과 추로스를 발견한 덕택에 이 공원에 대한좋은 기억을 남겼다는 것이다. 추로스라니! 막대 모양의 페이스트리 반죽을 기름에 튀겨낸 이 스페인 전통요리의 쫄깃한 식감, 그걸 들고 다니던 놀이 공원의 한 장면, 설탕이 솔솔 뿌려져 있어 달착지근하고 끈적끈적해진 손의 느낌까지 여러 가지 기억이 호박넝쿨처럼 끌려나온다. 솜사탕은 어떤가. 고운 설탕실로 만들어진 솜뭉치의 인공적 맛이야말로 야외의 맛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과연 광교호수공원에서 갖가지 모양의 솜사탕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아, 요즘 아이들은 좋겠다. 우리 때는 하얀색과 분홍색의 단순한 솜사탕 밖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오리, 꽃, 눈사람 등 믿을 수 없는 모양과 세련된 색상의 솜사탕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전부터 솜사탕이 불량식품이라는 민원에 광교호수공원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K의 주장은 장소와 연결되는 음식, 어떤 공간의 경험을 완성시키는 맛이 있다는 것이다.
미각, 공감각적 경험의 시작
최근 소위 ‘먹방’이나 요리 프로그램의 열풍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일상적 경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야외 활동과 음식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만약 어떤 장소에 간다면 우선 ‘맛집’부터 검색한다. 혹은 등산을 하는 수많은 중년 남성(?)들은 배낭에 막걸리를 챙겨 넣는다. 산 정상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셔야, 아니면 하산 길에 도토리묵에 살얼음 동동주를 먹어줘야 비로소 등산을 마무리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계곡에서는 백숙, 고속도로에서는 호두과자, 소풍에는 김밥… 예는 수없이 많다. 우리는 음식을 보고 공간을 떠올리고, 어떤 장소에 갈 때 특정한 음식을 맛보길 기대한다. 미각은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의 감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술을 예로 들어보자. “알코올은 분위기 설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알코올이 우리의 기분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그것은 자주 그렇게 한다. 이완과 흥겨움을 나타내는 표시로서의 알코올은 심지어는 술을 마시기도 전에 몸에 해방을 준비한다.”1 우리가 야외에서 추구하는 미각은 필연적으로 다른 감각과 기억, 정서적 활동과 연관된다. 전통적으로는 화전놀이가 그런 예가 아닐까 싶다. 당시 젊은 남녀나 부녀자들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벌이는 꽃놀이를 기대하며 한동안 설레었을 것이다. 얇고 하얀 찹쌀가루 반죽 위에 진달래꽃이나 장미, 국화의 선명한 꽃잎이 올라간 화전의 맛은 어땠을까. 사실 화전의 맛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눈으로 먹고, 분위기로 먹고, 간만에 쐬는 콧바람에 이미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공원 계획과 음식
도시 공공 공간의 양적 팽창이 한계에 접어들면서 최근 좀 더 활기 있는 공공 공간을 위한 질적 변화에 대한 고민도 늘고 있다. 혹자는 공원에 필요한 것은 미술품이 아니라 음식을 제공하는 시설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제 공원을 계획할 때는 음식과관련된 활동에 대한 고려는 크지 않은 편이다. 피크닉장이나 캠핑장이 기본적인 시설로 계획되는 정도다. 미국의 도시학자인 윌리엄 화이트William H. Whyte는 그의 저서 『The Social Life of Small Urban Spaces』(1980)에서 공공 공간에서 사람들의 활동을 끌어들이고 싶다면 음식을 내놓으라고 권고했다. 특히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을 예민하게 알아채는 코를 가진 노점상은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음식은 사람들을 모으고, 음식이 있는 곳은 사회적 장소가 된다. 몇 개의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만으로 커다란 시각적 효과를 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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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공원은 자본주의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토지를 함께 소유하고 사용하는
모순의 장소이기도 하다.
…
개인적 욕망보다는
늘 사회적 가치가 우선이다.
우리는 가득하지만
나는 없는 곳,
공원의 리얼리티다.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그동안 쓴 글과 지은 책의 소재 대부분이 공원이고 이런저런 공원의 계획과 설계에도 참여해 왔지만 막상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맞닥뜨리니 숨이 턱 막힌다. 시간의 물성이 켜켜이 쌓인 선유도공원, 하늘을 향해 열린 자유와 해방의 하늘공원, 시적 공감각이 신체를 감싸는 빅스비 파크, 황폐한 숭고미가 새로운 희망과 동거하는 뒤스부르크-노르트 파크 정도가 언뜻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 장소들의 매력이 나의 삶과 한데 뒤섞이는 것은 아니다. 답사의 대상이거나 연구의 주제이거나 강의의 소재이기는 하지만, 내가 도시를 살아가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숱하게 찍은 내로라하는 유명 공원들의 사진을 다시 보면 전형적인 구경꾼의 시선만 느껴진다. 사진에 담겨 있는 건 그저 조경 잡지에서 본 프레임을 복습하는 모범생의 무표정한 시각, 아니면 스타 조경가의 작품을 앞에 두고 연예인 보듯 들뜬 마음이다.
‘나의’ 공원은 어디인가. 연중행사로 큰맘 먹고 가는 정도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원은 집에서 멀지 않은 분당중앙공원과 율동공원이다. 이 두 공원에는 적지 않은 추억도 녹아 있다. 아이들의 성장사가 영상처럼 재생된다.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큰 아이의 흥분된 모습이, 갈고 닦은 인라인 스케이트 실력을 뽐내는 작은 아이의 상기된 얼굴이 생생하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과 기억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건 획일적인 녹색의 풍경, 다른 어떤 곳으로 탈출하지 못한 무력감, 공원에서도 내일 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피로와불안, 명절 세일 중인 백화점보다 더 많은 운동 인파, 이런 것들이다. 나의 공원은 과연 어디인가. ‘어디인가’를 ‘무엇인가’로 바꿔 보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라는 답은 나만의 공원을 발견하고 또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공원이다
‘조경비평 봄’의 세 번째 책 『공원을 읽다』(나무도시, 2010)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공원이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공원의 여러 숨겨진 단면을 노출시켜 독해함으로써 그 기능과 역할을, 그 이념과 가치를 되묻고자 한 기획이었다. 책의 서문격인 글 ‘그래서 공원이다’의 일부를옮긴다. “… 공원의 어깨는 무겁다. 우리는 공원이라는 단순한 장치가 아주 복잡하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되기를 기대한다. 공원은 아침형 인간이 하루를 여는 조깅코스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등교시킨 주부가 모처럼 여유를 느끼며 걷는 산책의 장소다. 모니터 앞에서 오전을 시달린 직장인이 햇볕을 쬐며 커피와 독서를 즐기는 카페테리아다. 물론 평범한 가족의 주말 휴식을 공원에서 빼놓을 수 없다. 공원은 또한 유치원 꼬마들의 소풍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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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진행하는 도중에 케이티 머론이 엮은 『도시의 공원』이 떠오르긴 했지만 처음부터 그 책을 염두에 두진 않았습니다. 그 보다는 바람이 좀 선선해지면 한강공원에 퍼질러 앉아 특집 기획을 빙자해 치맥을 즐기자는 누군가의 바람이 이번 특집의 출발점입니다. 작년인가, 김정은 팀장이 취재차(?) 다녀왔던 서울광장에서 열린 ‘멍 때리기 대회’를 시연해보자는농담도 곁들여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공원 이용 행태가 하나씩 튀어나왔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말이죠. 그런데 요리사가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의외로(?) 공원을 즐기는 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늘 공원을 모니터 속에서 노려보아서일까요? 특히 조경학과 출신 에디터들의 공원 이용 실적이 저조했습니다. 여기에는 조경학과 출신 편집주간도 포함됩니다. 그동안 너무 조경의 대상지로만 공원을 바라보았다는 자책까지 나오진 않았지만, 공원의 일상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_ 배정한
• 야외의 맛, 게으른 피크닉을 꿈꾸며 _ 김정은
• 일요일 저녁, 내가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리는 이유 _ 조한결
• 공원, 상상하는 대로 _ 박광윤
• 미래 지구인들로부터 공원을 빼앗는 몇 가지 방법 _ 양다빈
• 사랑의 떨림이 시작된 공원 _ 이형주
• 기억이 머무는 공간, 나의 공원 _ 박인수
• 공원 탐닉 _ 남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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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중력과 싸우는 흙 쌓기
이십여 년 전 설계사무실 초년병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배들이 다 그려놓은 하얀 트레이싱 페이퍼 뒷면에 먹을 넣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캐드에서 폴리라인polyline으로 봉합하고 솔리드solid를 채워 녹지 공간과 시설지의 공간을 구분하는 작업이 손쉬운 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연필심을 곱게 갈아 모은 뒤 휴지에 묻히고 곱게 발라줘야 하는 극도로 정교하고 시간을 요하는, 초짜들의 시간 죽이기용으론 최고의 작업이었다. 게다가 조금만 삑사리가 나거나 균일한 농도를 맞추지 못해 얼룩이라도 생기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선배들의 가르침이 무지막지했다. 그렇게 도면에 먹을 먹이는 작업을 하면서 유심히 살펴 본 평면도의 녹지 공간에는 어김없이 지렁이처럼 생긴 점선들이 있었고 그 앞으로 경관석이라는 이름의 돌덩어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점선들은 흙을 쌓는 모양과 높이를 알려주는 마운딩mounding이라는 이름의 설계 기법이었다. 웬만한 당시 도면들에는 어김없이 이런 계획이 들어 있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장소를 답사 해보면 그 형태와 기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별생각없이 받아들이고 몸으로 익히게 되었다.
최근 경기도 인근에 작은 모델 정원을 만들면서 그때 일을 다시 떠올렸다. 터파기를 하며 나온 흙과 나무를 심을 웅덩이를 파내며 만들어진 엄청난 양의 흙이 봉긋하게 쌓여 있었는데, 그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거니와 예전 마운딩 설계안이 머릿속에 겹쳐졌기 때문이다. 저 많은 흙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는 한숨과 함께 말이다. 흙이라는 재료가 너무 흔해서 쉽게 생각되지만 그 처리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단위 비중이 돌과 비슷한 몹시 무거운 재료이며, 쉽게 흘러내려서 쌓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면적도 많이 차지한다. 물론 쌓으면 많은 장점이 있다. 이미 단단하게 다짐된 공사장의 지반 위에 성토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흙의 구조가 떼알구조가 되므로 식물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경사면은 단조로운 경관에 입체적이고 풍성한 모습을 연출할 것이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