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는 단단하지만 우린 물렁하니까
‘솔리드 시티’ 전, 세화미술관에서 8월 31일까지
전시장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이 괴생명체는 무엇인가. 천장까지 닿는 커다란 덩치에, 몸통엔 여러 개의 다리가 덕지덕지 붙어 있으며, 숨이라도 쉬는 듯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병찬은 검은 비닐을 라이터로 지져 붙이고 그 속에 공기를 주입해 풍선처럼 부푼 조형물을 만들었다. 조형물에 딸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공기가 빠지며 힘없이 축 늘어지고, 문을 닫으면 다시 탱탱해진다. 팽창과 붕괴를 반복하며 호흡하는 ‘불쾌한 골짜기’에는 도시 공간이 가진 모순과 불안정성이 함축되어 있다. 묵직한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진 도시에 내가 정착할 곳은 없고, 한 장의 로또가 누군가의 인생을 역전시킨다. 이렇듯 도시의 질량은 자본을 중심으로 왜곡되어 있다. 맞은편에 놓인 ‘파티클’은 화려한 모양새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싸구려 플라스틱 재료로 만들어진 과대 포장 상품일 뿐이다. 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진 부동산을 은유했다.
세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솔리드 시티(Solid City)’는 도시의 단단한 외피 이면을 주목하는 전시다. 도시를 이루는 단단하고 반짝이는 정육면체들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만 공간과 개인의 서사를 쉽게 가려버린다. 하지만 도시의 생명력은 팍팍한 생활 속에서 일상을 일구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된다. 도시가 하나의 큰 건축물이라면 내부를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 공간, 그리고 산재하는 현실의 이야기다. 전시의 주 무대는 서울.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 반세기만에 집약적 성장을 이뤘지만 끊임없는 발전 강박에 시달리는 도시이기도 하다. 전시는 “낡고 상처투성이인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건강한 도시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예술가들을 초대했다. 자본의 논리가 낡은 서울을 파헤치고 다시 세우며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동안, 도시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도시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기억하는지 공유하고자 했다.
*환경과조경398호(2021년 6월호)수록본 일부
-
보통의 존재, 잡초
‘식물일기’ 전, 5.12.~5.18.
도시에는 사람만큼이나 많은 식물이 산다. 길 가장자리를 따라 선 가로수, 높은 건물 앞을 치장한 정원, 창문 밖으로 옹기종기 내어놓은 화분들까지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보도블록 틈바구니나 갈라진 벽 사이를 비집고 자란 이름 모를 풀에 유독 오래 시선을 두게 된다. 누군가의 계획에 따라 심어지지 않아 고운 손길로 관리 받지 못한, 머무를 곳을 스스로 정해자라난 잡초는 꼭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아가는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닮았다.
김제민은 이처럼 주변에 아무렇게나 크고 있는 식물을 캔버스에 옮기는 작가다. 그는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하다가 박재동 화백의 시사만화에 마음을 빼앗겨 동네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불어난 미술에 대한 애정은 김제민을 서울대학교 서양학과에 입학시키기에 이르렀다. 지난 5월 12일부터 18일까지 갤러리도스에서 이 김제민의 식물 그림을 모은 전시 ‘식물 일기’가 열렸다.
그는 무성하게 자란 풀숲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섬세하게 묘사하기도 하지만, 작은 풀포기를 하나의 캐릭터로 의인화해 익살스러운 정경을 담기도 한다. 김제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식물들 의 이미지는 실은 모두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대변자이며, 나의 분신이며, 자화상”이라고 밝혔는데, 그래서일까 화폭을 넌지시 들여다보고 있으면 꼭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리모컨을 옆에 두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풀포기를 그린 ‘TV 좀 작작 보고’ 아래에는 “TV 좀 작작 보고 운동 좀 해라, 이 화상아!”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작가가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말로보이는데, 어찌나 친근한 상황인지 관객도 쉽게 저 게으른 식물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후략)
*환경과조경398호(2021년 6월호)수록본 일부
-
2020 코리아가든쇼
주광춘의 ‘초대장’ 대상 선정
지난 5월 4일 ‘2020 코리아가든쇼’가 순천만국가정원에서 개막했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은 코리아가든쇼(이하 가든쇼)는 작년 10월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5월로 연기됐다. 산림청이 주최하고 국립수목원, 전라남도, 순천시가 공동 주관한 이번 가든쇼는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공간, 정원’을 주제로 10개의 정원을 선보였다.
작년 10월 한 달간 진행된 공모를 통해 10명의 작가를 선정했으며, 면적 70m2 내외의 정원 설치 비용으로 개소당 4,000만원(설계비 500만원, 시공비 3,500만원)을 지원했다. 조성을 마친 정원을 대상으로 최종 심사를 진행한 결과 주광춘의 ‘초대장(Invitation to Nature)’이 대상작(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 상금 700만원)을 차지했다. 최고작가상(산림청장상, 상금 500만원)은 황신예의 ‘정원의 속도’에게, 2020년의 작가상(전라남도지사상, 상금 300만원)은 강희원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위한 정원’에게 돌아갔다. 순천 이 주목한 작가상(순천시장상, 상금 100만원)에는 권아림의 ‘유리투정원You Can Live Here, Too’과 이현승의 ‘차경: 자연을 얻는 방법’이, 코리아가든쇼 작가상(국립수목원장상, 상금 100만원)에는 심준보의 ‘클라우드 룸’, 임우성의 ‘이누이트의 새로운 겨울’, 정성희의 ‘일상풍경’, 정홍가의 ‘링’, 최윤정의 ‘리틀포레스트’가 선정됐다.
대상작은 두 개로 구획된 공간에 자연 본연의 모습과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정원을 표현했다. 정원 안에 투영되는 자연의 모습과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왜곡된 현실의 이미지를 담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표현한 점이 높게 평가됐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인호 교수(신구대학교,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장)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식물 배치가 자연스럽고 정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설명했다. (후략)
*환경과조경398호(2021년 6월호)수록본 일부
-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만리동광장, 손기정체육공원, 중림동 일대에서 5월 14일부터 5월 20일까지
회색 건물숲이 가득한 도심에서 세계 각국의 특색 있는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다. 본래 작년 10월 개막을 목표로 준비되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지속되면서 개최가 2021년 5월로 연기되었다. 아직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피로감이 누적된 시민에게 정원박람회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선사하고자 했다.
서울시와 서울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환경과조경이 주관한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의 주제는 ‘정원을 연결하다, 일상을 생각하다(Link Garden, Think Life)’다. 단절된 도시 공간을 정원으로 연결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정원을 통한 물리적 생태계의 연결, 심리적 커뮤니티의 연결, 이를 통한 도시 환경 개선과 공동체 회복을 목표로 전 세계 조경가와 정원 디자이너들과 함께 서울시만의 정원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했다.
도심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정원
5월 14일 손기정체육공원에서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일주일간 손기정체육공원, 만리동광장, 중림동 일대에서 오프라인 전시가 펼쳐졌다. 앤드류 그랜트(Andrew Grant)(그랜트 어소시에이츠 대표)가 선보이는 해외 초청정원(1개소, 남대문로문화공원), 6개국의 조경가가 참가하는 작가정원(5개소, 손기정체육공원), 중림동 동네정원사가 만든 ‘동네정원’(16개소, 중림동 일대), 학생들이 꾸린 ‘학생정원’(5개소, 만리동 및 손기정체육공원 일대), 영화와 카페를 모티브로 한 팝업가든(10개소, 만리동광장과 손기정체육공원), 서울에 사는 외국인 가족이 만든 ‘세계가족정원’(20개소, 만리동광장)이 조성됐다. 해외 초청정원과 작가정원, 동네정원, 학생정원은 정원박람회 기간이 끝난 후에도 존치되어 시민들의 녹색 쉼터로 쓰인다.
해외 초청정원을 설계한 앤드류 그랜트는 싱가포르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를 설계한 세계적 조경가다. 그가 남대문로문화공원에 조성한 ‘덩굴의그물망(The Vine’s Web)’은 도시와 정원 사이의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를 덩굴을 형상화한 구조물로 표현한 정원이다.
매년 조경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작가정원 부문은 국제공모를 시도해 변화를 꾀했다. 정원박람회 주제에 맞게 상생의 메시지를 전하는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19개국 80팀(국내 50팀, 해외 30팀)이 참여했으며,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프랑스, 한국, 홍콩 등 6개국에서 참여한 5팀이 최종 선정됐다. 금상은 테오 히달고 나체르(Teo Hidalgo Nacher)(스페인)와 데이비드 바르디(David Vardy)(영국)의 ‘분홍섬(The Pink Island)’이 차지했다. 만리재로에서 손기정체육공원으로 올라가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이 정원은 두 개의 고리를 통해 자연과 인공의 무한한 순환을 은유한다. 은상에는 이반 발린(Ivan Valin)(홍콩)과 나탈리아 에체베리(Natalia Echeverri)(홍콩)의 ‘기층+꿰다’, 동상에는 제허르 달렌베르흐(Zeger Dalenberg)(네덜란드)와 캉탱 오브리(Quentin Aubry)(프랑스)의 ‘공감의 정원’, 원종호와 박태영의 ‘기억을 걷는 시간’, 홍광호의 ‘결승선, 자연의 위로’가 선정됐다(자세한 내용은 48~73쪽 참조). (후략)
*환경과조경398호(2021년 6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식물성 도산
이것저것에 관심(만) 많은 D는 종종 자신의 사업 아이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날의 주제는 텃밭이 딸린 자급자족 식당. “매장에서 직접 기른 채소를 수확해서 그 자리에서 신선한 요리를 만들어주는 거지.” 큰 흥미를 못 느낀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농사가 쉽
냐?”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얼마 전, 직접 키운 채소로 음료와 디저트를 만든다는 카페가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D와 함께 압구정을 찾았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카페의 이름은 ‘식물성 도산’. 여기에서의 ‘성’은 별성星, “지구와 화성 사이에 위치한 신선함의 별”이라는 뜻이란다. 식물로 이루어진 싱그러운 행성이라니. 일단 콘셉트는 합격이다.
간판은 없다시피 하고 외관은 메탈 소재로 마감돼서 멀리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큰 창을 통해 보이는 실내 수직 농장이 눈길을 끌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신기한듯 한 번씩 쳐다봤다. 종종 지하철 역사에서 보던 (보라색 조명이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수직 농장과는 달랐다. 하얀 프레임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채소들이 백색광 아래서 싱그럽게 웃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한 스마트팜 스타트업에서 운영하는 카페였다. 즉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쇼룸이었던 것.
디자이너가 누군지 몰라도 일단 ‘콘셉트에 진심인 편’인 건 분명해 보였다. 곳곳에 식물성이라는 콘셉트가 녹아들어 있었다. 우선 제조 음료 대부분은 식물성植物性이다. 나는 두유가 들어간 식물성블랙(라테)을, D는 매장에서 직접 기른 바질로 만든 바질파인소르베를 주문했다. 주문을 하니 카운터에서 보딩(boarding)쿠폰을 주었다. 지구에서 식물성으로 가는 우주선 탑승권처럼 디자인된 작은 종이였다. 유치하게 뭐 이런 걸……. 대수롭지 않게 받았지만 속으론 엄청 좋았다(참고로 난 콘셉트에 약하다). 카운터 옆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물속에 뿌리가 잠긴 여러 개의 화분이 마치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처럼 레일을 따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카페를 가로지르는 긴 테이블 위쪽의 절반가량은 화산석으로 빼곡하게 채워 행성의 거친 표면을 표현했다(지독한 콘셉트 같으니라고!).
음료를 기다리며 ‘풀멍’(풀을 멍하게 보는 것)하다 시선을 돌리니 매장에서 수확한 야채 상품과 수경 재배 키트가 보였다. 로메인 등의 엽채류가 신선해 보이도록 뿌리를 자르지 않은 채 포장했고, 작은 박스형의 수경 재배 키트는 모듈식이어서 개당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쓸만해 보이고, 흙은 최소한만 필요해서 키우는 데 품이 덜 들 것 같았다. 포장된 채소와 수경 재배 키트를 한참 눈으로 만지작거렸다. 급기야 제품을 검색해보기에 이르렀는데, (지금의 지갑 사정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3단 프레임을 사면 매달 5kg의 채소를 얻을수 있다는 말에 소비심이 흔들렸다. 정교하게 설계된 공간이 내 안의 잠자는 도시 농부를 깨우고 있었다.
공간, 경험, 브랜딩 이 삼박자에 놀아났다는 생각이 드는 차, 주문한 음료가 나왔음을 알리는 진동벨이 울렸다. 여담이지만 커피보단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야금야금 뺏어 먹다 결국 스푼을 하나 더 받아왔다). 한 입 먹을 때마다 파인애플 섞인 시원한 바질 향이 기분 좋게 밀려들었다. 바질을 보면서 먹어서 그랬나. “저 키트 하나 사볼까? 아니면 스마트팜 관련주는 어때?” D에게 물으니 시큰둥한 답이 돌아왔다. 라면 물 올리기도 귀찮아하는 네가 퍽이나 잘 하겠다며. 그리고 차기 식품 산업의 미래는 배양육에 있다나? 그러거나 말거나. 초록빛 행성이던진 미끼를 물어버린 나는 통통하게 물오른 바질 잎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상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좋아하는 단어가 사라지는 꿈을 꿨다
태어난 곳은 서울과 산자락 하나를 공유하는 경기도 어디쯤. 보통 뜻하지 못하게 가난을 맞닥뜨리면 더 외곽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라는데, 부모님은 특이하게도 서울 북쪽에 어중간하게 놓인 동네로 기어드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내 최초의 기억은 다세대 주택과 단독 주택이 뒤섞인 동네 한구석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여태 서울의 귀퉁이를 떠돌고 있다. 메가시티 같은 그럴듯한 수식어가 어울리는 시민은 못됐다. ‘서울 촌놈’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을 때, 딱 나를 위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집과 학교 근처만 뱅뱅 맴돌아 경험이 얄팍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번도 도시를 떠나본 적 없는 나는 시골 풍경을 마주하면 한참 눈을 떼지 못한다. 뿌리를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끼기도 한다. 왜 그럴까. 이유를 궁금해하다 보니 어릴 적 기억에 가닿았다.
할머니는 괴상한 마을에 살았다. 꽤 번화한 도시 가까이에 있지만,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에 칭칭 감겨 있어서 촌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버스는 두 시간에 한 번 오고,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차를 타고 이십 여분을 달려야 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으면 부엌 바닥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지만, 고구마밭에서 포대 자루로 썰매 타기에 바빴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미닫이식의 중문을 열면 우리 집보다 큰 마당이 보이고, 넉넉하게 비워둔 외양간에서 통통하게 살찐 송아지가 울었다.
마당 밖에는 시야를 닫는 높은 건물이 없었다. 좁은 방과 고불고불한 골목길이 익숙했던 나에게 할머니의 마을은 남부럽지 않은 여행지였다. 크고 높고 넉넉했다. 이상하게도 그 안에 서면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이 모두의 것처럼 느껴졌다. 막 모내기를 마친 논이나 고춧대가 자라고 있는 밭에 분명 주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굽이치는 고랑과 이랑, 힘없는 줄기를 받쳐주는 지지대를 따라 일렬로 선 작물 모두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인데도 자연의 일부 같았다. 아마 논밭의 식물들이 뒤편의 작은 숲과 똑같이 햇빛을 받고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풍경은 계절의 흐름을, 또 자연 앞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의 존재를 깨닫게 한다. 갖은 노력을 다해도 야속한 장맛비는 이제 막 잎을 틔운 작물의 허리를 꺾고, 자비 없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뙤약볕은 잎끝을 태운다. 그럴 때면 땅은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고 또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잎 하나 줄기 하나 최선의 모습으로 관리한 것처럼 보이는 정원보다 한 전시장에 깔린 카펫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도 같았다. 지난 5월 22일, 제17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이 개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귀국보고전을 열지 않은 대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주요 작품을 만날 수 있었는데, 전시장의 한복판에 낯익은 풍경 하나가 낮게 누워 있다.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의 ‘블랙 메도우Black Meadow: 사라지는 자연과 생명의 이야기’다. 이 카펫은 비엔날레의 주제인 ‘이주, 디아스포라의 확산, 기후변화의 충격, 사회적·기술적 변화의 속도’를 논의하는 공간적 바탕으로, 먼 훗날 기후변화로 인해 생명이 사라진(Black)초지(Meadow)를 은유한다. 금강 변에서 채취한 갈대꽃과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쓰는 사탕수수 두 종으로 만들어진 카펫은, 사실 빗자루 천여 개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해 만들어졌다. 이미 한참 전에 생명을 잃은 식물로 만든 풍경인데도 블랙메도우는 나를 순식간에 어딘지도 모르는 강가로 데려간다. 숨죽이면 강물 소리가 들려오고 바람이 불면 나도 갈대와 함께 스러져버리고 싶은 풍경 속으로.
슬프게도 블랙메도우는 오롯이 상상에 기대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청소기의 등장으로 갈대 빗자루는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고, 풍성한 갈대밭을 자랑하는 금강하굿둑은 생태계 교란으로 서서히 망가지고 있다. 이런 풍경은 칼로 도려낸 듯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함께 얽혀 있는 작은 새와 동물 더불어 식물들까지 함께 데리고 떠나 강 주변의 풍경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좋아하는 단어가 사라지는 꿈을 꿨다”(오은, ‘아찔’)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어느 날 잠에서 깨니 집도, 땅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가질 수 있었던 풍경이 사라졌다면 어떤 기분일까. 시 속 화자가 보고 있던 “거울 속 할 말이 없는 표정”이 어느새 나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
[PRODUCT] 스마트폰처럼 다양한 기능을 갖춘 ‘스마트 퍼걸러’
이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쾌적함과 에너지 효율을 높인 휴게 시설물
세인환경디자인이 출시한 ‘스마트 퍼걸러’는 스마트폰처럼 하나의 제품 안에 여러 시설을 탑재한 휴게 시설물이다. 에어 커튼, UV.LED 살균기, 프리 필터, 헤파 필터, 냉난방기, 디스플레이, 무선 충전기, SOS 벨 등 이용자의 건강과 편의를 증진하는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퍼걸러 반경 3m 안에 사람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필터를 갖춘 흡입기와 LED 살균기, 에어 커튼이 작동된다. 미세먼지를 거르고,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을 없앤 깨끗한 공기를 분사하며 이용자의 몸에 붙은 유해한 물질을 제거한다. 내부에서의 움직임 또한 센서가 인식하여 자동으로 에어컨, 모니터, 온열 벤치를 작동시키는데, 에어컨은 실내 온도에 따라 냉방, 난방, 송풍 모드를 스스로 조정한다. 퍼걸러 하단부에 설치된 와류 토출구는 냉난방기에서 나오는 바람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게 막아준다.
실내외 공기 질을 측정해 이용자에게 알려주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내부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온습도, 미세먼지 등에 관한 정보를 인포그래픽으로 알기 쉽게 전달한다. 휴대폰 충전이 필요할 땐 내부에 마련된 책상의 무선 충전기를 이용하면 된다. 퍼걸러 내부에 사람이 없으면 자동으로 모든 기능이 종료되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TEL. 02-877-8811WEB. www.seindesig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