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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생태학적 상상력과 풍경의 디자인
조경가 김아연 인터뷰
조경가 김아연은 1990년대의 문을 연 90학번이다. 이 시기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분기점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변곡점이기도 하다. 조경 1세대와는 전혀 다른 토양에서 성장한 김아연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업을 내놓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은 “조경의 시대”라는 수사가 결코 과장이 아닐 만큼 한국 조경의 전성기였다. 정부와 공공이 빅 프로젝트와 국제 설계공모를 쏟아냈고 민간의 아파트 시장도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사회 전반의 녹색 열풍은 조경의 시대를 여는 촉매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국 조경은 이런 외적 조건을 충분히 소화해내기에는 기초가 허약했다. “양적·외형적 비대 성장의 이면에 넓게 퍼진 비만한 고독, 그리고 문제의식과 실험정신이 부재한 자리에 골 깊게 팬 몰개성과 무비판의 우울한 반복.”1 김아연이 맞닥뜨린 환경이었다. 그는 당시의 한국 조경을 둘러싼 표피적 장식주의와 상업적 물량주의를 정면 돌파하며 ‘다른’ 조경의 서막을 열고자 했다. 대규모 마스터플랜 설계공모에서 연이어 성과를 내는 한편, 상상을 현실에 구현하는 작업을 통해 특유의 디자인 문법을 정련해가기도 했다. 실무의 최전선과 학교 교육을 가로지르며 설계 실천과 교육의 접면을 넓혀온 그는, 최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 조경가들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조경가로서는 드물게 다수의 설치 미술 작업을 병행해 온 그가 공공 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의 일환으로 최근 문을 연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내에 ‘숲 갤러리’를 선보였다. 전시장에서 멀지 않은 녹사평의 한 카페에서 조경가 김아연을 만났다.2
숲, 이미지의 소비를 넘어 살아 있는 일상의 공간으로
-두 번째 경험은 역시 처음과 다르네요. 얼마 전 ‘숲 갤러리’를 처음 관람했을 때는 낯선 숲에서 무언가를 알아보고 싶은 느낌이 들었는데, 두 번째 오니 궁금함보다는 숲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충동이 생겼어요. 작가에게도 자신의 작품이 올 때마다 다르게 느껴집니까?
“구조체가 완성된 후 조명 연출을 시작했는데, 계속 에러가 나서 거의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했어요. 제 눈에는 계속 하자 난 것만 보여요.”(웃음)
-조명 연출이 아주 까다로웠다고 들었어요.
“전문 조명 팀 유엘피ULP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런데 결국은 제 작품이다 보니 모든 결정과 연출을 직접 해야 해서 외주 주듯 맡겨 놓고 뒷짐지는 게 안 됐죠. 조명 제품의 성격, 스마트 방식의 연출 프로그래밍을 다 공부해야 했어요. 어떤 것까지 가능한지 스스로 테스트해야 한 거죠.”
-여전히 조명 부분이 아쉬운 건가요?
“그래도 많이 좋아졌는데, 조명 자체만 아는 거로는 안 되더라고요. ‘숲 갤러리’ 후면 공간이 깊지 않아요. 유리판과 광원의 관계를 제가 몰랐던 거죠. 될 줄 알았는데 앞에서 보니까 유리가 빛을 적절하게 확산시키지 못했어요. 그래서 막판에는 혼자 인천의 페인트 가게에서 반사 효과가 있다는 열 차단 페인트를 사서 다시 바르고 난리를 쳤어요.”
-잡지에 별도로 나가겠지만, 그래도 ‘숲 갤러리’의 의도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사람들이 숲을 구체적인 일상의 공간으로 생각하기를 바랐어요. 우리가 숲이라는 어떤 공간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면 그 공간에 대한 태도와 인식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요즘 시대가 자연을 소비하기만 하잖아요. 특히 인스타그램 같은 이미지 매체를 통해 자연이 그냥 사진 찍기 좋은 배경 이미지로만 소비되죠.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숲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숲에서 감동 받고 숲을 일상의 공간이자 살아 있는 유기체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게 이번 작업의 핵심이었어요.”
-‘구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건 어떤 거죠?
“사람들은 소나무 숲이라고 하면 대부분 하동이나 경주 남산의 송림 같은 곳을 찍은 배병우 선생의 유명한 사진 속 장면, 즉 아주 잘 관리된 순림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현실의 소나무 숲은 도시 속에서 퇴행적 천이를 겪는 숲이에요. 그런 숲 속에선 소나무의 세력이 계속 약해지고 참나무, 팥배나무, 때죽나무류가 우세해지기 시작하죠. 일종의 전쟁터 같은 공간인데, 우리는 그 메커니즘을 잘 몰라요. 순간적으로 소비하는 자연의 이미지 이면에 존재하는 지난한 프로세스의 한 단면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전형적인 그림처럼 박제된 숲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에 존재하는 숲,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숲을 문화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요즘은 숲에서 놀이 활동도 하고 강연도 하는데, 막연하게 바라보는 숲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거죠. 나의 구체적 활동 공간으로, 일상의 공간으로 숲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숲이 단지 생태적 공간이 아니라 문화적 공간으로 작동되면서 시민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자연을, 숲을 이미지로만 소비하면 안 되나요?
“중요한 지적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음식만 찍는 게 아니라 숲을 찍으며 잠시 기뻐하는 것도 물론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조금 더 거시적으로 보면, 자연을 대상화한 근대의 문제가 동시대에는 자연을 시각적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현상으로 대체된 게 아닐까요? 조경은 시각적 연출이 아니라 공간의 구조와 형태를 만드는 행위잖아요. 조경이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다루는 작업이라면, 그 관계의 구체적인 지점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배정한,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 도서출판 조경, 2007, p.6.
2. 조경가로서 김아연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6년 전인 『환경과조경』 2013년 5월호(pp.36~45)의인터뷰 기사를 권한다. 또한 그는 『환경과조경』 2014년 7월호부터 세 달간 연재한 ‘그들이 설계하는법’에 설계 작업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지향점을 피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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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빛꽃
또 LED 장미야? 좀 식상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DDP에서 큰 인기를 얻은 후로 너무 많은 곳에서 설치해 이젠 싫증이 나기 시작했거든요. 더구나 색이 바뀌는 LED 표현은 선호하지 않아서 말이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LED 조명을 보면 약간의 거부 반응이 들 정도입니다. 이번 사진은 ‘다락옥수’ 지붕에 설치된 LED 장미정원입니다. 다락옥수는 옥수역 고가 하부 공간을 활용해서 만든 공공 문화 시설입니다. 최근 고가 하부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시도되고 있죠? 운동 시설을 설치하기도 하고,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 주거 공간이나 사무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곳 옥수역도 여러 번의 변신을 거듭한 끝에 작년 4월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과 모임 장소, 북카페 등으로 구성된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건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고 옥상부에 맥문동을 식재해서 식물로 둘러싸인 건물을 만들었는데, 이 맥문동이 말썽이었던 모양입니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로 맥문동이 다 죽어버려서 오히려 흉물처럼 보였던 거죠. 주민들은 개선해 달라고 계속 요구했고, 그래서 이 LED 장미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4,000여 송이의 LED 장미꽃은 일곱 가지 다채로운 빛깔로 구성되어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성동구의 기대를 살짝 비웃으면서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속으로는 ‘이런 클리셰는 이제 그만 해야지’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이상스럽게도(?)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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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이미지의 재생산과 사유의 확장
화가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 ‘저녁에’로부터 영감을 받아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의 추상화를 그렸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김광섭의 시에서처럼 밤하늘의 수많은 별이 연상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나의 점으로 빠져들게 된다. 김환기는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캔버스에 점을 찍었다고 한다. 점 하나하나마 다 특별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면, 하나의 점을 찍는 데도 수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림 1은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 당선작인 ‘깊은 표면(Deep Surface)’에서 제안한 광장의 포장 이미지다. 오토캐드에 900×900mm의 정사각형 모듈을 만들고, 그 위에 폴리선(polyline)으로 5~7개의 점을 찍어 다각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폴리선 편집 명령edit polyline을 통해 다각형의 폴리선을 스플라인(spline)으로 전환 했다. 이 스플라인 위의 점들을 임의로 옮겨가며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원형들을 재생산했다. 이후 원형 패턴들을 900×900mm 모듈 안 적당한 위치에 배치했다. 몇 번의 복사 명령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지만, 광장의 전체 면적, 즉 3만6천여 개의 그리드 안에 원형의 패턴을 겹쳐지지 않도록 적절한 위치에 놓는 데는 (실제 조성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꼬박 이틀이 걸렸다.
이 작업은 도면 위에 트레이싱지를 깔고 그림을 그리는 아날로그적 작업 방식과 유사하다. 그래픽 알고리즘 편집기인 그래스호퍼 3Dgrasshopper 3D와 패턴 알고리즘 파일(온라인상에서는 수많은 패턴 알고리즘이 무료로 공유된다)을 활용하면 손쉽게 다양한 패턴을 실험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저 방식을 택했을까?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변화 속에서 디자인을 배웠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상상할 때는 항상 펜을 들었다. 머릿속 상상이 손끝의 감각을 통해 지면으로 옮겨지면, 그 그림을 통해 다시 사유하게 되고, 또다시 손은 무언가를 그려낸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사유는 확장되고 디자인은 더욱 구체화된다. 그런데 디지털 프로그램의 정확성과 신속함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생략시킨다. 그래서 디지털 프로그램으로는 디자인을 상상하고 확장하기보다 단순히 결과물을 작성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디지털 시대의 산물을 온전히 체득하지 못한 내게 이 방식은 사유와 이미지, 혹은 상상과 실제 사이의 간극을 줄여준다.
여기 또 다른 이미지들(그림 2~6)이 있다. 브이레이V-ray를 통해 얻어지는 렌더ID(Render ID)파일들로, 렌더링 작업의 부산물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진양교 교수의 ‘채우기와 비우기’ 설계 이론과 제임스 코너의 실천적 어바니즘을 기반으로 한 간단명료한 디자인에 영감을 받았다. 15년여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 설계와 페이퍼 아키텍처를 추구하며, 독자적인 설계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깊이(invisible depth), 생성적 경계(generative boundary), 언플래트닝 랜드스케이프(unflattening landscape)를 탐구하고 있다. 최근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 팀의 당선을 이끌었으며,개인 자격으로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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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조경] 첫 조경 드로잉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조경과 관련된 큰 사건들이 일어났다.우선 조경이라는 전문 분야가 확립됐다.1전문 분야를 가리키는 우리말 조경가/조경에 해당하는 영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가 만들어지고 분야의 정체성이 확립되었다.엄밀히 말해 첫‘조경’드로잉이 그려진 시기다.이전 연재에서 다뤘던 대개의 드로잉 유형이 용도에 따라 전문화됐다.공모전 드로잉으로는 대중과 의사소통하기 수월한 투시도가 중요하게 이용됐고,공사를 위해서는 수치 정보가 정확히 기입된 평면도와 입단면도 같은 투사 드로잉이 사용됐다.현재 조경 계획과 설계에 빈번하게 이용되는 기법인 경관 정보의 맵핑과 지도 중첩(map overlay)방식도 이 시기에 처음 등장한다.
센트럴 파크 공모전 드로잉
우리가 공원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 중 하나인 센트럴 파크가 조성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1857년 개최된 뉴욕의‘센트럴 파크 설계공모전(Plans for the Central Park)’에서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1822~1903)와 칼베르 보(Calvert Vaux)(1824~1895)의 출품작‘그린스워드(Greenswar)d’계획이 채택되어 조성된다(그림1).서른세 개의 출품작 중 가장 늦게 제출된 그린스워드는 가로8피트,세로3피트에 달하는 마스터플랜과 이를 설명하는 열두 장의 일러스트레이션 보드(이 중 열한 장이 남아 있다),설계 설명서로 구성되었다.2옴스테드와 보의 드로잉을 보면 알 수 있듯이,그들의 안은 이전의 영국 풍경화식 정원 양식의 영향권에 있다.마스터플랜에서 보이는 구불구불한 길과 잔디가 무성한(greensward)지형은 풍경화식 정원을 연상시키며,공원의 주요 전망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과 공원의 모습을 묘사한 투시도 드로잉은 옴스테드와 보가 그리는 센트럴 파크의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3그린스워드 계획의 마스터플랜은 다른 출품작과 마찬가지로 공모전의 지침에 따라 먹(India ink)과 세피아 톤으로 그려졌다.단,부지의 현재 모습과 설계 이후의 모습을 그린 아홉 쌍의 이미지 중 설계 이후를 보여주는 세 쌍의 이미지는 유화로 공들여 마무리되었다(그림2, 3, 4).4이러한 회화적 묘사 기법은 미국의 야생지(wilderness)풍경을 화폭에 담은 당대의 허드슨 강 화파(Hudson River School)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5
흥미로운 점은 현존하는 그린스워드 계획 드로잉 중 마스터플랜과 다른 드로잉 한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시도의 형식을 취한다는 사실이다.예외인 한 장에서 위쪽 정원 아케이드 빌딩은 입면으로,아래쪽 화원은 평면으로 그려졌다.6이러한 요소는 공모 지침의 필수 요구 사항이었기 때문에 넣었던 것이며,공모전 당선 이후 옴스테드와 보의 구체적 설계 과정에서는 자취를 감춘다.짐작하자면,옴스테드와 보는 센트럴파크를 여러 장의 풍경으로 구성된,말하자면 완벽히 그림 같은 공원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영어landscape architect/ure의 기원과 전문 분야의 탄생 과정에 관한 연구로 다음을 참조할 것. Joseph Disponzio, “Landscape Architecture/ure: A Brief Account of Origins”, 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 Designed Landscapes 34(3), 2014, pp.192~200; Charles Waldheim, “Landscape as Architecture”,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 Designed Landscapes34(3), 2014, pp.187~191.우리말 조경의 명칭과 전문 분야의 성립 과정에 관한 연구로는 다음을 참조할 것.우성백, “전문 분야로서 조경의
명칭과 정체성 연구”,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2. Morrison H. Heckscher,Creating Central Park, 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8, p.26.그린스워드 계획의 설계 설명서는 다음 책에 실려 있다. Charles E. Beveridge and David Schuyler, eds., The Papers of Frederick Law Olmsted: VolumeⅢ,Creating Central Park 1857-1861,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3, pp.117~187.
3.
옴스테드와 보의 그린스워드 계획은 풍경화식 정원의 영향을 받았지만,조금 다른 미학을 추구했다. 18세기 초중반 영국에서 유행한 풍경화식 정원이 목가적 풍경을 지향했다면,그린스워드 안은 목가적 풍경과 함께 미국의 거칠고 손대지 않은 야생지를 감상하는 자연 문화를 반영하기도 했다.흔히18세기에서19세기 초까지의 영국의 정원을 뭉뚱그려 풍경화식 정원이라 부르고,그러한 공원이 구현한 목가적 풍경을 픽처레스크 미학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픽처레스크는18세기 말 영국의 아마추어 정원 이론가인 윌리엄 길핀(William Gilpin, 1724~1804),유브데일 프라이스(Uvedale Price, 1747~1829),리처드 페인 나이트(Richard Payne Knight, 1750~1824)가 정원 설계 방법에 대해 논쟁을 벌이면서 만들어낸 하나의 미학적 범주다.그들은 당대에 지배적 미적 범주였던 미와 숭고의 중간에 위치하는 자연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제3의 범주인 픽처레스크를 제시했다.픽처레스크는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숭고의 특징을 어느 정도 길들인 것으로,대체로 자연의“울퉁불퉁하고 거칠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의미했다.이러한 픽처레스크 미학 혹은 길들여진 숭고의 미학은19세기에 미국으로 수용되어 초월주의 자연 문학과 허드슨 강 화파의 회화에 적용되면서,야생 자연에서의 명상적 감상을 추구하는 초월적 숭고(transcendental sublime)로 변모하게 된다.옴스테드와 보가 센트럴 파크에 만들어내고자 한 자연은 그러한 미국적 숭고의 미학이 반영된 자연이다.국내 연구로 다음을 참조할 것.이명준·배정한, “숭고의 개념에 기초한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의 미학적 해석”,『한국조경학회지』40(4), 2012, pp.78~89.
4.그린스워드 계획이 혁신적이라 평가받은 이유는 공원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공원 아래로 감추어 보이지 않게 하고 보행로 유형을 다양하고 유기적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이다.공모전 출품작에 대한 설명으로 다음을 참조할 것. Charles E. Beveridge and Paul Rocheleau,Frederick Law Olmsted: Designing the American Landscape, New York: Rizzoli International Publications, 1995, pp.54~55; Sara Cedar Miller,Central Park, an American Masterpiece: A Comprehensive History of the Nation’s First Urban Park,New York: Abrams, 2003, pp.81~88; Morrison H. Heckscher, Creating Central Park , pp.20~24.
5.옴스테드와 보는 센트럴 파크를 설계하고 조성할 때 허드슨 강 화파의 영향을 받았다.예컨대 보의 아내 메리 멕엔티(Mary McEntee)의 형제는 허드슨 강 화파에 속하는 저비스 맥엔티(Jervis McEntee, 1828~1891)였고,옴스테드와 보는 그에게 그린스워드의 설계 이전과 이후의 드로잉을 그리도록 부탁했다고 한다.또한 옴스테드와 보는 허드슨 강 화파의 유명 화가인 프레드릭 처치(Frederic Edwin Church, 1826~1900)와도 친분이 있었다. 1871년 보의 제안에 따라 옴스테드는 처치를 센트럴 파크 공사 감독 위원으로 임명한 바 있다. Mark R. Stoll,Inherit the Holy Mountain: Religion and the Rise of American Environmental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p.98.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조경 설계와 계획,역사와 이론,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가천대학교와 원광대학교,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경비평 봄’과‘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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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탄생, 1968~2018]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 계획 제도와 일상적 소품
인위적인,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도시화
인간은 온전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가?영국의 초기 낭만주의 시인이자 찬송가 작사가로 유명한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1731~1800)는“신은 농촌을 만들고,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God made the country and man made the town)”라는 유명한 시구를 통해,농촌(country)과 도시(town)의 창조 주체를 신과 인간으로 대비하며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를 표현했다.1흥미롭게도 한국의 도시화50년은 소도시(town)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많은 도시city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거주하는 초거대 도시(megalopolis)를 만들어냈다.그간의 연재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도시화50년의 현황과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이번 글에서는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살펴본다.
나는 공교롭게도2000년대 초반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기와2000년대 중후반 행정중심복합도시 및 지방혁신도시가 건설되던 시기에 실무 건축가로 일했다.게다가 대한민국의 대표적 대규모 설계사무소에서 주로 현상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팀에 소속되어 일했다.인구 수천 또는 수만을 위한 아파트 단지,인구 수십만을 위한 도시가 삽시간에 계획되고 곧바로 건설되어,그곳에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변화의 현장에 있게 됐다.그때의 짜릿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던 경험이 없었다면,때늦은 미국 유학도 지금의 연재도 없었을 것이다.한국의 도시화50년이 초래한 물리적 세계의 변화는 인위적인,너무나 인위적인 변화였다.하지만 이는 마치 우리 주변의 물이나 공기처럼 이제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미국에서6년여의 박사 과정과 강사 생활을 마치고,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제1년 반이 조금 넘었다.미국에서 동아시아의 급속한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이미 공고한 문화가 돼버린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낯설게 실감할 때가 있다.지난 반년 동안 서울시 모 자치구의 거리 재생을 위한 기본 구상 연구에 참여했다.경쟁 입찰에 당선된 후 주민과 담당 공무원을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담당 공무원은 놀랍게도 나를 자신의 상사에게“과장님,용역 업체입니다”라고 소개했다.한 번도 내가 용역 업체에서 일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용역,용역 업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용역用役(service),물질적 재화의 형태를 취하지 아니하고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2용역 업체用役 業體(service company),경비,청소,운송 등과 같이 주로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육체적 노동을 제공하는 기업체.3
지금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일과 유사한 일을 미국,중국,심지어 남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에서도 수행했지만,한국처럼 정부 중심의 수직적 관계가 문화로 내재되어 있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없다.대학교수의 연구 과제조차 용역 업체의 업무로 인식되고 있으니,일반 설계사무소나 엔지니어링 회사의 업무는 어떻게 간주되고 실행될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이같이 마치 개인의 습관이나 조직의 관행 또는 사회의 문화처럼 우리 일상 속에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한국 도시화의 메커니즘을 계획 제도,정부 사업,행정 소품 등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도시화 메커니즘의 계획 제도:법,제도,정책,국정 과제,슬로건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첫 번째 단계로 계획 제도가 있다.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과 제도를 통한 통치를 원칙으로 한다.대한민국의 최상위 법 규범으로서 헌법은 공공복리와 공공 필요에 따라,4그리고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해5국민의 사유 재산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근거를 제시한다.이에 따라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헌법의 하위에 법률,대통령령,총리령·부령,자치법규 등의 법령이 위계에 따라 구성되며,상위법 우선,신법 우선,그리고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적용된다.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의 종류 및 특징은 표2에서 보는 바와 같다.흥미롭게도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의 종류와 제정 시점은 해당 정부의 성격 및 임기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를테면 박정희 정부는‘건축법’, ‘도시계획법’, ‘국토이용관리법’, ‘주택건설촉진법’등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을 최초로 제정했으며,이에 대한 시대적인 법적 정비로서 김대중 정부는‘주택법’, ‘국토계획법’등의 법령을 제·개정했다.한편 노무현 정부에서는 주목할 만하게도‘행복도시법’, ‘혁신도시법’, ‘도시재생법’등 여러 특별법을 제정했으며,문재인 정부는 오늘날 이에 대한 법적,제도적 계승을 시도하고 있다.여기서 특별법은 일반법에 비해 지역·사람·사항에 관한 법의 효력이 좁은 범위에서 적용되는 법률을 말하며,일반법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주요 법령에도 보수와 진보의 정권 성향이 중요하게 반영돼 있으며,나아가 대한민국의 실제 물리적 세계에도 여러 단절적 전환이 법적,제도적으로 시도됐음을 알 수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William Cowper, The Task: A Poem in Six Books , London: Printed for J. Johnson, 1785.
2. “용역”,표준국어대사전, 2019년4월10일 접속(https://ko.dict.naver.com/#/entry/koko/fa27753328404c4ca29c7861983be780).
3. “용역 업체”,고려대한국어대사전, 2019년4월10일 접속(https://ko.dict.naver.com/#/entry/koko/eb4afa670562415a93b87fa066093b0f).
4.대한민국 헌법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②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③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5.대한민국 헌법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중국의 쓰촨 대학교,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인간,사회,자연에 대한 건축,도시,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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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 조경] 정원 신세계의 정복자들
모더니즘과 개인 정원
20세기의 모더니즘 정원은 유럽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점이 과거와 확연히 달랐다.우선 미국으로 수출됐고 남미,캐나다 등 미 대륙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아시아에도 상륙했다.지금 돌아보면 한국의1950년대, 1960년대의 정원에도 영향을 미쳤던 듯하다.나는 소위 말하는‘미국식 정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산 증인이다.흔히 말하는 신흥 주택이었던 것 같다.거실 유리문을 열면 바로 넓은 잔디밭이었고,연못과 온실이 있었으며,잔디밭 가장자리에 화단이 있었다.그 미국식 화단에서 한국 호미로 장미와 백합을 정성스레 가꾸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서울 도심에 아직 한옥이 즐비하던 시절이었다.친척과 친구들의 집이 죄다 한옥이었던 기억이 난다.더러는 마당 한가운데 높이 단을 쌓고 화단을 가꿨던 집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시멘트로 도배한 신식 마당이었다.
서울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한옥이 사라지고 외곽의 신흥 주택이 고층 아파트 단지로 뻥튀기되며 한국의 근대 조경이 시작됐다. 1970년대 중반,지구의 다른 곳에서 모더니즘이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 중간 과정 없이 역사 속으로 불쑥 뛰어든 것이다.그 까닭에 한국의 조경은 개인 정원보다는 공공 정원,고속 도로변의 조경이나 단지 조경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개인 정원의 비율이 아직은 극히 낮고 조경가의 설계 범위에 거의 속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이 자리에서 모더니즘과 개인 정원을 고찰하는 것이 좀 어설퍼 보인다.그럼에도 모더니즘의 첫 라운드가 개인 주택의 좁은 마당에서 치러졌던 까닭에 한 번 개괄해 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베를린만 보더라도 현재 정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개인 정원이 무려160개소에 달한다.여러 번 전쟁을 치르고도 살아남은 주택과 빌라 정원들이다. 1860년대에 조성된 것도 많지만 대부분은 모더니즘 시대에 탄생했다.모더니즘 정원사에서 개인 정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된다.
정원의 신세계?
대개 미술이 가장 앞서가고 그다음 건축이,그리고 제일 뒷전에서 정원이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조경가가 남달리 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원의 속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시멘트나 철근,벽돌 또는 물감은 그 자체로19세기 중엽 루돌프 지베크(Rudolph Siebeck)가 설계한 빌라 정원(1857).풍경화식 정원의 설계 기법을 여과 없이 반복했던 시대의 산물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이런 설계 방식을1920년까지 고수한 인물들도 적지 않았다.별 감동을 주지 않는다.다만 이들을 쌓고 세우고 화폭에 붓질을 하면 감동적 작품으로 변신이 가능하다.그에 비해 정원을 이루는 나무와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문제다.구식으로 심건,신식으로 심건 나무 몇 그루만으로도 정원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게다가 절기에 따라 모습을 바꿔가면서 늘 스스로 새로워지고 변화하는 것이 정원이다.그러므로20세기 새 시대가 도래하여 모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어도 정원 전문가들 사이에선 새로운 정원에 대한 요구가 그리 절실하지 않았다.정원 혁신을 원한 것은 오히려 타인들,건축가와 예술가들이었다.건축가들은 자신이 고안한 새로운 건축과 조화되는 정원을 원했고 예술가들은 아방가르드 개념을 정원에 적용하여 제멋대로의 정원을 만들었다.이들이 이렇게 남의 영역을 침범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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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어떤 나라
북한 영화를 본다는 것
작년 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에서 주최한‘영화로 보는 북한 도시와 경관’심포지엄을 기획하며 북한 영화를 두루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북한이 해외 영화사와 공동 제작한‘김동무는 하늘을 난다’(2012)가2018년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대중적 관심도 높아진 터였다.유튜브 검색만 하더라도 북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고,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이 올린 영상을 통해 변모한 평양의 최근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는 북한 콘텐츠도 예상보다 많았다.보유 리스트를 검색해서 사전에 신청하면 자료를 볼 수 있었다.하지만 그중 심포지엄에 적합한 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매끈한 상업 영화에 길들여진 눈높이로는 전형적 인물 유형,작위적 서사,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옥희의 대사 같은 톤을 인내하기 쉽지 않았다.무엇보다 모든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체제 선전 메시지가 깔리고“위대한..님”투의 표현이 빈번히 등장했다.여성 건축가가 재취업하며 자아를 찾는 과정을 담은‘행복의 수레바퀴’(2000),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일상을 그린‘우리집 이야기’(2016),평양의 도시계획을 수립한 김정희에 대한‘한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1987)모두 공공장소에서 풀 버전으로 상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판단했다.결국 북한의 문화 유적과 도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와 해외에서 제작한 북한 영화를 대안으로 선정했다.
선택한 영화 중 하나인‘어떤 나라’(2004)는2003년 평양에 사는 두 소녀가 매스 게임(mass game)(집단 체조)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모란봉 제1중학교에 다니는 열세 살 현순과 열한 살 송연이 주인공이다.현순은 노동 계급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전업 주부인 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사는 외동딸이다.송연은 김일성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지식 계급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의 세 자매 중 막내딸로 반려견과 함께 산다.승연의 집 베란다에서 대동강이 좀 더 가깝게 보이고 아파트 평수가 조금 더 넓다는 점을 제외하면 두 집의 계급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순이네 가족은 소파와 텔레비전이 있는 방에서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보낸다.이 방에 상을 펴고 밥을 먹는다.조부모가 지내는 방인데 일종의 가족실 기능도 한다.등교와 식사 준비로 분주한 아침,일과를 마치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강변에서 여가를 보내는 휴일 풍경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다.끄고 켤 수 없고 볼륨 조절만 가능한 라디오를 통해 매일 아침7시에 기상 사이렌이 울린다거나,단 하나의 국영 채널을 통해 하루 다섯 시간 동안 선전 뉴스와 드라마를 방영하는 방송 시스템이나,정전이 될 때마다 익숙하게 초를 켜는 모습이 이곳이 평양임을 상기시킨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북한의 조경가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다. 어떤 개념과 이론을 바탕으로 설계를 할까. 시공하는 데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고, 권한과 지위는 어느 정도일까. 영화의 배경에 등장하는 강변의 풍경과 광장 디자인,녹지 패턴과 식재 수종이 눈에 들어오는 직업병을 어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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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정원을 감각하는 방식
한국의 정원 展: 소쇄원, 낯설게 산책하기, 2019. 4. 18. ~ 5. 19.
담양의 소쇄원이 서울 도심에 이색적인 모습으로 재현됐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4월 18일부터 5월 19일까지 개최되는 ‘한국의 정원 展: 소쇄원, 낯설게 산책하기’에서 소쇄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낯설게 만나볼 수 있다. 총 17개의 설치 미술, 영상, 사진, 동양화, 공예, 페이퍼 아트, 북 아트, 그래픽 디자인, 인터랙티브 디자인 작품은 아날로그 예술부터 현대 디지털 미디어를 폭넓게 아우르며, 소쇄원을 다채롭게 감각하는 법을 보여준다.
조경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소쇄원은 가장 친숙하고 대표적인 전통 정원이다. 하지만 소쇄원을 비롯한 한국의 정원은 아직 일반인에게 낯선 공간이다. 서양의 정원과 달리 한국 정원은 시각적으로 형태가 분명하지도 않고, 자연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며, 찾아가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상당수다. 방송 미술·영상 콘텐츠 제작 전문 기업 SBS A&T가 주최하고 크리에이티브 팀 올댓가든(All That Garden)이 주관한 이번 전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국 정원이 가진 독자적 아름다움과 철학적 의미를 쉽고 감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여 작가 대다수는 전시 준비를 계기로 소쇄원을 처음 알게 된 이들이다. 작품 세계가 뚜렷한 전문 작가보다 다양한 현장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활동가들을 참여 작가로 초청했는데, 이를 통해 작품 자체보다는 전시의 주제인 소쇄원과 정원을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을 부각하고자 했다.
전시는 네 개 섹션으로 나뉜다. ‘일상으로부터 달아나기’(섹션 1), ‘따뜻한 기억에 더 가까워지는 순간’(섹션 2), ‘조금 특별한 상상을 허락한다면’(섹션 3), ‘같이 산책할까요?’(섹션 4)는 대숲, 애양단, 제월당, 광풍각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풀어낸 권혜원 작가의 글을 토대로 구성됐다. 전시장 구성은 소쇄원의 공간 구조를 모티브로 한다. 대숲, 애양단, 대봉대, 제월당, 광풍각을 통과해 퇴로로 나가는 구조를 큰 관람 방향으로 설정하고, 작품간 여백의 변화를 통해 ‘열림과 닫힘’, ‘중첩의 반복’이라는 소쇄원의 공간적 특성을 드러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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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의 교차점에서 설계를 묻다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귀국전: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2019. 3. 27. ~ 5. 26.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귀국전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Spectres of the State Avant-garde)’1이 지난 3월 27일부터 5월 26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귀국전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선보인 기본 전시 구성에 참여 작가의 신작을 더하고, 미술관의 공간 구조를 반영해 재구성한 연출을 통해 보다 풍부한 내용과 관점을 담고자 했다.
서울은 수차례에 걸쳐 다시 만들어진 도시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한강의 기적’이라 불렸던 모습조차 재건축, 재개발에 덮여 이제 낡은 영상과 사진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보존형 도시재생의 아이콘이된 세운상가도 처음에는 국가의 현대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아방가르드적 도상이자 문화적 혁신을 추구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1960년대에 막 문화를 논하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서 도시의 아방가르드를 실현하고자 했던 집단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이하 기공)는 세운상가, 구로 한국무역박람회장, 여의도 마스터플랜(1969)등을 통해 국가 중심의 도시 개발에서 설계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현대성 구성에서 기공의 역할을 되짚고 미래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데 대한 설계의 역할을 묻는다.
1960년대 한국의 국가관과 기공
국가로 대변되는 권력과 설계 분야의 대립과 타협을 다루는 만큼, 전시 소개문은 서두부터 기획 의도와 전시 관점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1960년대 말은 국가의 계획 이데올로기와 건축가의 비전이 뒤엉켜 있던 시대”였다. 역설적으로 “억압적인 발전 국가”는 “건축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냉전 시대 특유의 국가적 이미지 고취에 대한 필요성과 아방가르드에 대한 건축적 이상이 조우한 시대적 상황, 이로 인한 아방가르드 건축의 비상은 비단 국내의 유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분단 상황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건축적 경쟁 구도, 그 결과물인 한스 샤로운(Hans Scharoun)의 샛노란색 베를린 필하모니(Philharmonie)건물이나 1987년 베를린 국제건축전IBA을 떠올려보자. 1960년대 한국에 존재한 국가적 아방가르드라는 모순은 세계적 상황이 압축된 형태였다. 기공은 한국적 상황 또는 “한국 근대성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하나의 틀이다. 전시는 기공의 2대 사장이었던 김수근의 지휘 아래 진행된 네 개의 프로젝트―세운상가, 구로 한국무역박람회장, 여의도 마스터플랜, 엑스포70 한국관―를 중심으로 1960년대 한국의 설계의 환상과 현실을 엮으며 오늘과 미래에 대한 고찰을 이끌어 낸다. 1층의 서현석의 ‘환상도시’, 김경태(EH)의 ‘참조점’,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1960년대 기공 프로젝트에 내재한 모순과 역설을 다룬다. 2층에 위치한 김성우의 ‘급진적 변화의 도시’, 설계회사의 ‘빌딩 스테이트’, 바래BARE의 ‘꿈세포’, 최춘웅의 ‘미래의 부검’, 로랑 페레이라(Laurent Pereira)의 ‘밤섬, 변화의 씨앗’은 한국의 근대 아방가르드가 외면한 공간 또는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공간을 조명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1.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는 근대 한국의 도시계획을 주도했으나 그 실체가 남아 있지 않고, 아카이브도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다. 이에 착안해 전시는 국가적 목표와 개인의 이상향 사이에서 표류한 당대의 건축가와 그들의 유산을 ‘유령’으로 설정했다.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경관에 이끌려 조경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서울대학교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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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땅을 상상하다
‘DMZ’ 전, 3. 21. ~ 5. 6.
남과 북이 휴전 협정을 맺으며 한반도 허리를 길게 가로지르는 철책이 놓였다. 두 개의 철책이 만든 너비 4km의 선형 공간은 비무장 지대DMZ(demilitarized zone)다. 말 그대로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사 시설이나 군대를 주둔할 수 없는 구역이지만, 이름과 달리 DMZ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모순적 공간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간 남북이 경쟁하듯 DMZ 내에 감시 초소 GP를 세워 왔기 때문이다. GP당 40~80여 명의 병력이 주둔한다고 하니, DMZ를 한반도에서 가장 무장된 지역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지난해 DMZ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9 · 19 군사 합의’의 일환으로 남북 GP 20여 개가 철수된 것. 강원도 고성 DMZ 평화 둘레길의 민간인 통행이 승인되고, DMZ국제다큐영화제 수상작 앵콜 상영회가 열리는 등 DMZ와 관련된 여러 소식도 들려온다. 이러한 변화를 시작으로 DMZ는 진정한 평화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앞으로 DMZ는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가게 될까? 3월 21일부터 5월 6일까지 문화역서울 284에서 선보이는 ‘DMZ’ 전은 DMZ와 접경 지역을 정치·사회 적, 문화·예술적, 일상적 측면에서 살피며 이러한 궁금증에 답한다.
전시의 틀은 민간인 통제선에서 시작해 DMZ와 GP로 이어지는 공간의 축, DMZ가 형성된 시점부터 GP가 사라지는 미래까지의 시간의 축에 의해 형성됐다. 전시장 곳곳으로 뻗어 나가는 두 개의 축은 서로 교차하고 헤어지며 다섯 개 섹션을 만들어냈다.
3등 대합실에 마련된 ‘DMZ, 미래에 대한 제안들’(섹션 A)은 예술가와 건축가, 디자이너, 철학자 등이 제안한 DMZ의 미래를 보여준다. 최재은은 대합실 입구에 ‘증오는 눈처럼 사라진다’를 발판처럼 설치해 관람객들이 무의식적으로 밟고 지나게 했다. 이 작품은 DMZ의 철조망을 녹여 만들어졌는데, 철조망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게 된 두 진영 사이의 증오”를 상징한다. 즉 남북을 갈라놓았던 구조물이 분리된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새들의 수도원’은 새와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승효상의 고찰이 담긴 작품이다. 그는 DMZ가 인공 시설이 들어서기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는 점을 고려해, 자연스럽게소멸되는 대나무와 마 끈을 재료로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허물어질 수 있는 느슨한 구조물을 제안했다. 너른 자연 위에 고요히 서서 주변을 지나는 새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모습은 승효상의 건축 철학 ‘빈자의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