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A] 시공을 가르는 문화 산책
11. 1. 조감도, 제국의 야심을 그리다
‘조감도鳥瞰圖, 제국의 야심을 그리다’ 전(한양대학교 박물관, 10. 16. ~ 11. 3.)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제국’ 그러니까 일본이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기에 그려진 조감도에 관한 전시다. 조감도bird’s-eye view는 새의 눈, 즉 높은 시점에서 땅의 모양이나 나무, 건물을 실물에 가깝게 묘사한 투시도다. 이번 전시는 일제 식민지기에 요시다 하츠사부로를 비롯한 일본인 화가들이 그린 조감도를 소개한다. 전시를 기획한 한양대학교 동아시아건축역사연구실의 서동천 겸임교수(건축학부)가 말하는 요시다 하츠사부로식 조감도의 특징은 “새의 눈으로 보는 한계를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토를 대상으로 그린 조감도에는 교토 시가지는 물론이고 멀리 도쿄와 규슈, 조선이나 대만, 지나, 심지어 유럽의 명칭까지 보인다. 역으로 조선박람회를 위해 그린 조감도에는 도쿄와 오사카 등의 지명과 후지산이 보이는 식이다. 서 교수는 당시 근대화된 일본에는 측량을 기반으로 한 지도가 대중화되었으므로 조감도는 지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대신 일본과 식민지의 관계 또는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당시 식민지를 개척하던 일본은 굳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한 장의 조감도에 그려 넣어 그들이 꿈꾸는 제국주의의 열망을 담았다. 요시다 하츠사부로는 1929년경 조선을 방문해 조선총독부의 요청으로 수많은 도시 조감도와 전람회, 박람회, 진흥회를 홍보하는 행사 지도를 그렸고, 백화점이나 철도 회사의 의뢰를 받아 관광용 조감도를 그리기도 했다. 한동수 교수(한양대학교 건축학부)는 이러한 하츠사부로식 조감도가 일본인뿐만 아니라 조선인에게도 식민지 도시 공간의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선일체 사상을 내면화하는 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이제 하츠사부로식 조감도는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조감도에 객관적 정보만 담기는 것 같지도 않다. 오늘날 조감도는 조경이나 건축 계획에서 완공 이후의 모습을 이해시키기 위해 빠지지 않고 쓰인다. 마치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클라이언트 혹은 (설계공모)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마스터플랜에 비해 과장하거나 왜곡하기도 쉽다. 그래서 우리는 더 푸르게, 더 넓게, 더 드라마틱하게 묘사된 이미지를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인공 지반 위에 사계절의 꽃이 만개한 풍경이라든가, 실현을 위해서는 계획된 예산 범위를 훨씬 초과하는 비용이 드는 다이내믹한 구조물 등 말이다.
8. 24. ~ 11. 14. 문화비축기지
이번 호에 소개된 문화비축기지는 갈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인상을 주는 장소였다. 처음에는 휑한 마당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개장에 앞서 열린 기자 간담회 시작 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기지 입구에 다다랐을 때, 텅 빈 마당을 보면서 어디로 가야할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탱크를 향해 언덕을 달리고 6번 탱크의 램프를 돌아 간담회장에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들으니, 그 자리에 모인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이 탱크들이 얼마만한 양의 석유를 비축했고, 현재 공간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의 몇 퍼센트를 친환경 에너지로 충당하는지에 집중됐다. 문화비축기지의 전신이 에너지원을 저장하는 석유비축기지였으니 그리 생뚱맞은 질문은 아니었지만, 핵심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은 그때부터 받은 것 같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마침 내리는 비를 맞으며 탱크를 답사했다. 설계공모의 도판으로만 보던 탱크와 폐허와 같은 잔해를 보니 숭고함이라고 부를 만한 압도적인 공간감도 느껴졌다. 그 감동이 뚝뚝 끊어지고 어수선한 느낌은 우르르 몰려다닐 수밖에 없는 행사 자체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몇 주쯤 지나서, 이번에는 저녁에 열린 야시장에 갔다. 첫 방문 때 그렇게 휑하게 느껴진 마당 한 구석에서 여느 축제처럼 셀러들이 직접 만든 가방과 그릇, 음식 등을 팔고 있었고, 체험 프로그램도 빠지지 않았다. 폐타이어로 만든 놀이 시설은 아이들에게 무척 인기 있었고, 작은 음악 공연도 밤 분위기를 운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소위 축제의 최신 트렌드를 따르는 듯했다. 휙 둘러보며 두 손 가득히 물건을 사고 만족했다. 그렇지만 이런 마켓이 열리는 공간이 꼭 문화비축기지 마당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또 몇 주 뒤, S와 함께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는 축제 개막식에 참석했다. 행사는 나쁘지 않았지만 뭔가 익숙한 느낌이다. 최근 서울시에서 문을 연 공공 공간들이 그렇듯 이벤트가 끊이질 않는다. 비워두면 안 된다는 강박과 초조가 느껴진다. 그리고 또 몇 주 뒤, 아티스트 J와 함께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한 답사 모임에 합류했다. 짧은 답사 후, 벤치에 나란히 앉은 우리는 이곳이 꽤 매력적인 공간이란데 공감했다. 그런데 건축이나 조경에 문외한임을 자처한 J는 눈앞의 나무 펜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대략 탱크를 구축한(재활용한) 태도와 저 (비용과 공기 등의 이유로 시공 현장에서 결정되었음이 분명한) 펜스를 만든 태도가 다른 것 같다는 의문이었다. 나는 이 장소 구석구석이 단일한 디렉팅으로 만들어지지 못했음을, 그리고 그러한 관행이 딱 짚어 누구의 책임이라거나 명백하게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기 어렵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드디어 사람이 많지 않은 어느 날 아침 문화비축기지를 방문했다. 이번에는 매봉산으로 연결된 긴 산책로가 따뜻하게 다가왔고, 6번 탱크가 단풍과 잘 어울려 보였다. 마포 주민의 눈으로 보기에, 가끔 산책할 수 있는 일상적 공원으로서도 꽤 괜찮은 곳이다 싶었다. 그리고 아주 차분하게, 이번에는 이곳의 진수를 느껴보리라 작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탱크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훌륭했다. 그러나 설계자는 어두운 전이 공간으로 연출했을 법한 공간은 환한 전시실이 되었고, 외부의 자연을 향해 밝게 트인 공간은 전시대로 막혀 있었다. 조용히 관람객을 인도하고 싶었을 것이 분명한 무채색 노출콘크리트 벽은 밝은 색 공공 미술 작품이 휘감고 있었다. 설계자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는지, 혹은 그 의도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판단에 앞서, 설계자가 의도한 시퀀스를 차분하게 밟아보고 싶었던 나의 시도는 이번에도 미수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