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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취맨, 하자는 ‘줄고’ 나무 이식은 ‘빠르게’
지아이조경건설의 한국형 굴취기기
나무 이식을 잘하는 기계가 있다. 바로 ‘굴취맨’이다. “나무 이식을 잘한다는 것”은 적은 인력을 투입해 시간 당 많은 나무를 옮겨 심는다는 뜻이지만, 이후 하자가 적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나무를 캐서 옮기는 과정이 물건 옮기듯 단순하지 않은 이유는 살아있는 나무를 죽이지 않고 운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생명과 연관된 섬세한 작업을 돕는 장비 ‘굴취맨’의 작업 비결을 알아보자.
굴취맨의 나무 이식 과정
보통 나무를 이식하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나무 근원직경 3∼5배 크기로 땅을 파서 뿌리분을 뜬다. 그리고 분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녹화마대나 가마니로 분을 감싼다. 이것을 새끼로 단단히 감아서 이식할 장소로 운반하고, 땅을 파서 심는다. 이 과정에서 잔뿌리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해야 옮긴 후에도 수분을 잘 공급받아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굴취맨의 작업은 이렇다. 우선 이식할 나무가 굴취맨의 중앙에 들어오도록 위치를 조정한다. 그리고 굴취맨의 특수 삽날을 하나씩 땅속에 삽입하여 분 모양으로 나무를 담아낸 뒤, 함께 들어 올리면 분뜨기가 된다. 들어 올린 나무를 가지고 이식할 장소로 이동한 뒤, 미리 굴취맨이 분 모양으로 파 놓은 구덩이에 나무를 내려놓으면 작업이 완료된다.
굴취맨의 방식이 기존 작업과 다른 점은 우선 특수 날을 이용하기 때문에 땅을 파기 쉽고, 분을 떠서 그대로 이동하기 때문에 녹화마대로 감싸거나 새끼로 감아주는 작업이 생략된다. 또한 수목지주장치가 달려 있어서 운반 시 나무를 잡아주기 때문에 나무의 손상이 적다는 점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48호(2017년 4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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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상냥한 폭력의 시대
스물여덟 살. 그중 스물다섯 해를 한 동네에서 보냈다. 몇 번 이사를 다니긴 했지만, 걸어서 십여 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였다. 덕분에 동네가 변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며 자랐다. 초등학생 시절 동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시장 한가운데 있던 교회였다. 그런 교회의 첨탑이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 다른 건물에 가려지기 시작했다. 유명한 패스트푸드점이 사거리 모퉁이를 차지했고, 주상 복합 건물이 들어섰다. 동네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중학교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에 벽보가 붙기 시작한 때도 그 무렵이었다. 재개발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빼곡하게 들어찬 벽보가 담벼락을 채웠다. 때론 붉은 스프레이로 ‘투쟁’, ‘생존’, ‘죽어도 못 나간다’ 등 뉴스에서나 볼 법한 단어와 문장들이 적히기도 했다. 그 모습이 왠지 무서워 혼자 골목을 지날 때면 걸음을 서두르곤 했다.
골목은 주기적으로 정돈되고 다시 채워졌다. 덜 떼어진 벽보 귀퉁이가 남은 자리에 다시 벽보가 붙고 붉은 글자 위에 페인트가 덧칠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얼마 뒤 골목은 방치되기에 이르렀다. 벽보의 끄트머리가 헤져 팔락거리고 붉은 색 글자가 바래 흐릿해지자, 나는 혼자 골목 걷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그 풍경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벽보와 골목을 메운 단어가 갖는 힘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 자리에는 모양새가 제각각인 주택 대신 반듯반듯한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문득 궁금해진다. 그때 붉은 스프레이를 들고 숨죽여 골목을 누볐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담벼락의 주인들이 벽보를 떼어 내고 페인트칠을 하는 모습을 보며 느낀 불편함은 어쩌면 정이현이 말하는 ‘상냥한 폭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이루어진 ‘상냥한 폭력의 시대’는 정이현 작가가 『오늘의 거짓말』(2007)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단편집의 제목이다. 2013년부터 2016년 5월까지 쓴 일곱 편의 단편을 묶은 책으로, 그는 이 책을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고통 속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고통을 각각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관찰해가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스릴러나 험난한 인생사를 다룬 소설에 등장할 법한 ‘고통 속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각종 학원 버스를 갈아타는 초등학생, 피곤이 가득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손님을 맞는 아르바이트생, 날이 갈수록 오르는 식재료 값에 한숨을 쉬며 퇴근하는 직장인, 자녀가 찾아오는 걸 본 적이 없는 이웃집 할머니 등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삶에 지친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도치 않은 폭력을 행사한다. 물리적인 폭력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때때로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다른 이의 죽음을 외면하는 등 상냥한 외피를 뒤집어쓴 폭력은 주먹보다 서늘하고 잔인하다.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책 속의 이야기는 나도 몰랐던 내 안의 폭력성을 발견하게 한다. 이제 열여섯 살이 된 어린 딸이 낳은 미숙아의 수술 결정을 미루며, 인큐베이터 안에서 죽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 섬뜩함을 느끼면서도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의 심정에 일부 공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절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고개를 돌려 버리면 쉽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 수 있기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외면해 왔을까.
취재를 위해 방문한 세운상가가 어렸을 적 보았던 동네의 모습과 겹쳐 떠오른다. 재개발 논란과 몇 십 년간 계속된 상인 그리고 주민과의 갈등 끝에 거대한 주상 복합 건물은 간신히 철거를 면하게 됐다. 지난 3월 세운4구역 사업의 정상화가 발표되며 세운상가와 그 일대를 대상으로 한 각종 공모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상가의 일부는 허물어져 새롭게 태어날 것이고, 상가 곳곳에는 4차 산업혁명을 실험할 단체가 들어서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운상가를 검색하면 기존 상인의 입장과 의견을 포용하지 못해 불만을 사고 있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어쩌면 도시재생이라는 명목으로 세운상가에 상냥한 폭력을 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세운상가가 신중한 방식으로 재생되기를 기대한다. 벽보를 무시하고 붉은 아우성을 덮어버리기보다, 모든 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느리게 나아가기를. 세운상가는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고 천천히 소멸해 갈 것”이니까. “샥샥은 샥샥의 속도로, 나는 나의 속도로, 바위는 바위의 속도로”세운상가는 세운상가의 속도로 살아가 시대에 맞추어 천천히 소멸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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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아파트
건설사에 다니는 J는 광주에서 고층 아파트를 짓는 현장에 있다. 시간되면 내려갈게 라는 공수표 날리기를 1년여. 이번에는 진짜라고, 당장 내려가 화창한 토요일 오후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연도 보고 광주 시내도 함께 누비자고 했다. 이번에는 J가 난색을 표한다. 샘플하우스 오픈 준비 때문에 바쁘단다. 그래, 괜찮아. 일이 먼저지. 앞으로 계속 바쁠 일만 남았다구? 그래, 다음에는 너 틈날 때 내가 딱 맞춰 날아 갈게. 그러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우린 맨날 이렇게 고달프냐. 그래서 어디냐고? 나 예술의전당. ‘르 코르뷔지에’ 전시가 곧 끝난다잖아. 근데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코르비 옹이 이렇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거야? 전시장에 들어가려면 1시간이나 줄을 서 기다리란다. 젠장, 토요일 오후 데이트 장소가 여기밖에 없는 거니!
르 코르뷔지에 전시가 장안의 화제이긴 한 모양이다. 평소 미술과 디자인 분야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무시했던 동생이 이 전시는 꼭 봐야 한다며 강력하게 권유했으니 말이다. 요즘 주말에 스케치를 배우는 동생은 전시회에 다녀오더니 르 코르뷔지에는 대단한 사람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건축 설계를 했던 나의 부친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 남매가 동네 미술 학원에서 그려온 그림들을 보시곤 일찌감치 남동생을 포기하고 나에게 꿈을 물려주려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나 역시 그쪽으로 큰 재능이나 열정이 없었다는 점이 부녀지간 비극의 시작이었지만.
화가로서 르 코르뷔지에를 재조명하고 있는 전시를 보니 동생이 받고 있는 취미 미술 수업에서 왜 건축가 전시를 찾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르 코르뷔지에는 처음부터 자신을 화가로 여겼다. 그는 건축가이기보다는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기를 바랐다. …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을 때만, 그는 자신을 건축가로 생각했다.”(앙드레 보겐스키) “내가 건축이라는 것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그림이라는 운하를 통해서였습니다.”(르 코르뷔지에) 마치 한 편의 자서전처럼, 혹은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전시는 친절하게 화가이자 건축가로서 그에 대해, 또 형에게 빼앗긴 어머니의 사랑을 평생 갈구했던 아들이자, 뮤즈였던 아내 이본느를 사랑했던 한 남자로서 르코르뷔지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 롱샹 성당에 꼭 가보고 싶어.” 동생은 그의 그림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며 롱샹 성당이 무척 감동스러웠다고 한다. “하긴, 전에는 합리적이고 미니멀한 빌라 사부아를 설계한 사람과 시적인 롱샹 성당을 설계한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점이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평생 그림을 그리고 게 껍데기 따위를 모으며 형태를 연구했다고 하니, 이젠 좀 납득이 가긴 해.” 동생은 르 코르뷔지에가 아내 이본느를 위해 지었던 4평짜리 오두막 카바농Cabanon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게 틀림없어.” 동생은 최소의 기능만을 담았던 단출한 카바농에서 초가삼간이나 정자를 지어 마음을 가다듬고 자연을 즐겼던 조선 선비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일까. 여하튼 큰 감동 받은 동생이 사들인 비싼 도록을 휘휘 넘겨보았다(동생아, 패킹도 안 뜯고 책장에 꽂아둘 거면 책은 왜 사니?).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가 영향을 미친 것이 어디 건축 양식뿐이랴. 전 세계의 천재들이 모여든다는 파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동그란 안경을 쓰고 나비넥타이에 양복을 차려입으며 자신을 브랜딩했던 그의 사진을 보니(마치 스티브 잡스가 검정색 터틀넥 니트와 청바지, 운동화로 스스로를 아이콘화했던 것처럼), 여전히 많은 르 코르뷔지에의 후예들이 동그란 안경을 즐겨 쓴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러나 가장 큰 상념을 안겨 준 것은 아파트를 창안한 혁명가로서 르 코르뷔지에였다. 어렵게 비집고 들어간 전시장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수백만 서민의 거주지를 해결한 공동 주택(아파트)을 창안해 집이 없는 이들의 삶을 바꾸다”란 문구였다. 지면을 녹지로 활용할 수 있게 한 필로티, 옥상 정원, 인간이 최소한의 공간에서 불편함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최적의 비율 모듈러가 적용된 마르세유 유니테다비타시옹(1952년 준공)은 세계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의 모티브가 되었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 (정작 유럽에서 건물을 고층화해 지상을 녹지 낙원으로 조성하겠다는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계획이 실패했다고 평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나는 아파트 단지를 고향처럼 느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번 달 칼럼을 쓴 송준규가 과천의 아파트 단지에 느끼는 애착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오래된 아파트 단지와 그곳에서 몇 십 년을 자란 나무를 보면 편안함을 느낀다. 그 아파트 단지들이 재건축되고, 내가 다녔던 학교가 초고층 주상 복합 아파트로 둘러싸인 격변을 목도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 지금은 코르비 옹이 서민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창안했다는 아파트 한 채를 서울에 마련하지 못한 채 새로운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4~5년 전쯤 내가 새로 정착(?)한 동네는 망원동이다. 조용한 서민 동네이면서, (홍대나 상수동 등지에서 높은 임대료 때문에 밀려난) 개성 있는 상점이나 카페들이 군데군데 숨어있는 묘한 분위기가 좋았다. 골목길이 있고 세탁소와 철물점 그리고 전통 시장이 있는, 거리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동네다. 아파트는 장만 못했지만 이런 동네 생활이 좋다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그러나 망원동의 변화는 이미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요즘은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는 ‘망리단길 싫어요’ 서명 운동 글이 올라왔다. 최근 몇몇 TV 프로그램과 신문 등에서 망원시장 일대를 ‘망리단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과 같은 소위 핫 플레이스로 소개하면서 언론에서 붙인 이름이다. 시장 주변 골목에는 젊은 창업자들이 차린 트렌디한 음식점과 프렌차이즈 카페들이 점점 많아지고, 주말이면 맛집 탐방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서명 운동을 제안한 주민은 망원동이 주목받으며 임대료가 상승하고, 음식점과 카페가 오래된 원주민들의 근린 생활 시설을 밀어내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었다. “반짝 뜨고 지는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모두가 오래오래 살고 싶은 동네이고 싶다”는 바람에서 ‘망리단길 안부르기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좋아요’를 꾹 누르고 서명을 했지만, 과연 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근처 합정동에 얼마 전 준공된 높다란 새 아파트를 보면서 착잡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골목길이 있는 동네의 정취 역시 오래 누릴 수 없다면, 늘 날 어린애 취급하며 걱정했던 J의 말처럼 진작 아파트 분양 정보나 열심히 찾아볼 걸 그랬나 후회도 슬며시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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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주)예건 도피오 벤치 출시
단숨함이 주는 강렬함
(주)예건이 도피오 벤치Dopio Bench를 새롭게 선보였다. 러프한 스케치처럼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벤치의 형상으로 구현했다. 대개 러프 스케치는 주곡선과 이를 보조하는 덧곡선으로 이루어지는데, 제품의 모든 디테일을 표현한 도면이나 사진보다 그 특징을 명료하게 전달한다.
콘셉트와 도피오의 유래
도피오Dopio는 두 잔의 에스프레소가 들어가는 커피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인데, 일반 커피에 비해 풍미가 짙고 끝 맛의 여운이 오래간다. 강렬한 인상의 드로잉처럼, 두 잔의 에스프레소가 담긴 도피오의 짙은 정체성이 벤치의 디자인 콘셉트와 일부 유사하여 도피오라 명명했다.
재질을 통한 콘셉트의 구현
펜 드로잉의 주곡선과 덧곡선의 리드미컬한 선형을 구조적 형상으로 구현한 벤치다. 알루미늄 프레임의 측면을 에지로 다듬었는데, 키네틱kinetic 요소를 적용해 펜의 날렵하고 유연한 흐름을 금속의 유체 흐름으로 시각화했다. 도피오의 매력은 전체적인 외관의 미적 요소뿐만 아니라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 두 선이 만나고 분리되는 유기적인 홀hole의 정교한 마감은 벤치 전체 선형의 미려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사용성과 안정성에 대한 디테일
등받이는 척추선과 유사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103도(권장 100~110도)로 설정했다. 103도로 기울어진 등판은 이용자가 착석했을 때 편안함과 시각적인 안정감을 준다.
생산성과 가격 적정성에 대한 디테일
벤치 좌대 금속부의 돌기는 목재 좌대의 설치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기능적인 측면과 더불어 시각적인 미감을 고려했다. 대부분의 일체형 좌대 목재 교체 소모비는 크지만, 도피오의 좌대는 개별 목재를 결합해 각 목재의 심미적인 디테일을 살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설치와 교체를 개별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성 벤치와 비교해 경제성과 시공의 용이성을 확보했다.
지면 고정부의 디테일
도피오의 다리 내측에 일체화된 볼트 포켓bolt pocket을 적용해, 시공 후 눈높이에서 투박하게 보이는 볼트 체결부의 외부 노출을 최소화해 기성 벤치와 차별화했다.
TEL. 031-943-6114 WEB. www.yek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