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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만, 신화컨설팅
시작하며
기억은 정확치 않았다. 최원만 사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자료를 뒤적거리다 발견한 <환경과조경> 2001년 5월호 표지에는 자그마치 8명의 인물 사진이 실려 있었다. 지난호 이 지면에서‘박윤진·김정윤 소장이 올해의 조경인 수상자가 아니면서 표지에 인물사진이 실린 유일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고 했었는데, 보기 좋게 기억이 빗나가 버린 것이다. 당시“‘지금, 여기’조경인의 하루”라는 특별기획을 통해 소개했던 최원만 사장을 8년여만에 다시 지면에 모셨다.
표지에 인물사진이 실렸었는지는 기억치 못했지만, 당시 단독주택을 개조해서 사용하던 신화컨설팅(이하 신화)의 논현동 사무실 풍경은 잔상이 꽤 오래도록 남았다. 특히 볕이 잘 들던 2층의 소장실은 온화한 최원만 소장(당시)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참 아늑했었다.
그때 신화의 설계특징을 물었을 때“색으로 치면 무채색이었으면 좋겠다. 대상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있는 무채색”이라고 답했었는데,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지, 당시 16명이었던 직원은 얼마나 늘었는지, 광교·여의도·판교 당선작은 어떻게 안을 풀어나갔는지 등등의 궁금증을 안고 신사동 아이콘빌딩으로 이전한 신화의 4층 사무실로 들어섰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이 몸에 밴 탓인지, 말을 아끼는 편이어서 인터뷰 분량이 부족하진 않을까 살짝 걱정하면서…….
창립 20주년을 맞아
마침 올해가 1989년 12월 12일 처음 문을 연 신화컨설팅이 창립 20주년이 되는 해라, 우선 그 이야기로부터 말문을 열었다. 지금은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김도경 교수(경희대)와 홍형순 교수(중부대), 그리고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이 신화를 가꾸어나가고 있는 유의열 회장과 최원만 사장, 이렇게 네 명의 멤버로 출발한 신화는 이제 직원 31명인 대표적인 한국조경설계사무소로 자리 잡았다. 서인과 한림이 대표자가 바뀌거나 중간에 휴지기가 있었던 것에 비해, 서안과 신화는 연속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한국조경설계의 변화와 성장을 이끈 대표적 사무소인 셈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그려나가고 있는 신화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 중심에 있는 최원만 사장의 디자인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졌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최원만 _ 물론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의 기억이 자꾸 새로워진다. 음식도 어렸을 때 먹던 음식을 나이 들어 다시 찾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잊고 지내던 것들에 대한 향수가 커졌다. 구체적으로 디자인에 집중해서 이야기하자면, 전에는 솔직히 디자인의 형태에 치중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보기 좋은 형태를 얻을 수 있을까, 보여지는 그림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런데 요즘엔 종이 위의 형태 보다는, 이 디자인이 결국 어떤 입면으로 서게 될 것인가, 적용할만한 자연소재는 새로운 것이 없을까를 고심한다. 콘크리트라 하더라도 세월이 흘러 전혀 다른 질감을 갖게되면, 하나의 자연소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소재 찾기에 몰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때가 많아졌다.
가장 달라진 점은 어렸을 때 보았던 어떤 원형 기억과 같은 옛 모습을 창출하려고 할 때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래서 설계 대상지의 기억을 찾고 싶고, 또 찾아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욕 과잉의 시기가 지나고, 정서적 혹은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것에 새롭게 눈을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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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풍경은 없다(1) 옥수동 계단, 세월에 새긴 인정투쟁의 리듬
별 생각 없이 매일 스치는 풍경, 그 앞에 문득 서보자. 그리고 말을 건네 보자. 오늘 하루 어땠냐고? 좀 생뚱맞은 질문도 던져보자. 당신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냐고? 갑작스런 질문에 처음엔 서로 좀 어색하겠지만, 곧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연한 풍경은 없으니까.
우리의 조경이라는, 공공미술이라는 작업이 삶의 풍경에 관계하는 일이라면, 그 삶이 그려내는 풍경을 공대하고 그것들이 품은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의 작업 또한 풍성해지지 않을까? 이 연재를 시작하는 짧은 이유이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향하던 시절, 가파른 돌산이라 농사도 지을 수 없어 과수원이 있거나 대장장이나 살았다던 옥수동에, 여우도 울었다던 옥수동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먼저 하천가를 따라 집이 지어졌다. 하천가의 바위에 기대어 판자, 천막, 돌, 흙 같이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로 벽이 세워졌고 검은 루핑으로 지붕도 얹혀졌다. 방과 부엌을 나누는 것은 사치였고 그냥 방 하나가 집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를 “하꼬방”이라 부른다. 하꼬(箱)는 상자, 궤짝 등을 가리키는 일본어인데, ‘방(房)’이라는 단어가 붙어 하꼬방이 된 것이다. 집도 아닌 방이 궤짝같이 작고 허술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낮 동안 행정의 단속으로 사라졌던 하꼬방은 밤이면 다시 지어졌다. 하천가가 모두 점령되면 그 뒤로 한 켜, 또 한 켜. 어느새 옥수동의 온 산은 하꼬방으로 가득 찼다. 급한 경사는 계단으로 극복했고, 그도 안 되면 돌아서 길을 냈다
“46년 됐어,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서울로 왔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하꼬방 4개만 있었어. 저기 4층 집 있지 거기 하나 있고 저 위에 집 하나 있고 거기엔 우물도 있었지. 그리고 여기에 두 집 있었지. 처음엔 논도 있었지 근데 맨 산이었지, 여우도 울고 나무도 많고 나무가 꽉 찼었지. 처음에는 하꼬방이었다가, 한 칸, 한 칸 지었지, 벽돌 얻어서, 흙담으로 돌로. 처음에는 지프차 천막으로 집 지었다가. 그 땐 한 달 벌어서 방 한 칸 만들고 한 달 벌어서 방 한 칸 만들고 그랬지. 내가 이사 오고 한 3, 4년 되니까 하꼬방이 꽉 차기 시작했지. 길도 없었어. 경치? 경치도 없고, 공기도 안 좋아. 미군이 버리는 기름 갖다 태우고, 석탄 태우고, 연탄도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고, 여기 공기가 얼마나 안 좋았는데, 시커매서.” - 옥수쌀집 할머니, 개인면담, 2000년 5월 26일
이곳에 찾아든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하늘이라도 가릴 수 있는 잠자리가 필요했을뿐, 길이나 상·하수도 같은 인간다운 생활을 가능케 하는 기반시설은 사치였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수록 하천은 오염되기 시작했고 구분되지 않은 집과 길은 그 자체가 불편이었다. 정부의 손길은 멀었기에, 이들은 스스로 길을 내고 공동 우물과 공동 화장실도 지어 자신들의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략)
옥수동 사람들이 겪어낸 시간은 처연하기까지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명랑하다. 나무가 비바람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몸에 새긴 둥그런 파동이, 어르신들 이마의 주름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또 그렇게 시간을 온전히 드러내는 리듬은 건강하다. 거짓이 없다. 단추 하나로 몇 수십 미터를 단숨에 오르내리지는 않는다. 한 단 한 단 높이의 변화를 시간 속에서 근육으로 느끼고 견뎌야 한다. 배려심 또한 옥수동 계단이 갖는 미덕일 터이다. 한 방향으로 향하나, 중간에 집이 나타나면 살짝 방향을 틀어주고 불편하지 않도록 단의 폭도 넓혀준다. 보기엔 불편해보이지만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의 몸에 맞춰진 만큼 걸음걸이에 적당한 크기를 지녔다. 또 이들은 얼마나 개성이 뚜렷한지 모르겠다. 지하철역의, 대로에 놓인 육교의 그 일률적이고 재미없는 계단과는 격이 다르다. 시간에 따라 편의에 따라, 상황에 따라 모양을 갖추었기에 그 폭도 높이도 모두 달라 별다른 기교 없이도 지루하지 않다. 부창부수라고 이곳 사람들은 이 개성을 잘도 활용한다. 좀 넓어지는 곳에는 화분을 내어놓기도 하고 오르다 힘들면 잠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기도 하고 계단에 맞추어 집을 잘도 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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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정비사업 들여다보기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주재로 개최된‘2008년 제3차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이하 4대강 정비사업)’의 진행을 발표한 시점부터이다. 충주(한강), 대구·부산·안동(낙동강), 연기(금강), 나주·함평(영산강)을 중심으로 2008년 말부터 2011년 말(댐·저수지 등은 2012년)까지 약 18조원의 국가예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그러나 지역적 특색을 살린 하천정비에 나서기로 한 것. 사업목적은 온난화와 각종 이상기후 때문에 발생하는 홍수와 가뭄 등의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아보자는데 있다. 여기에 사회간접자본(SOC)사업에 대한 투자와 창출되는 신규 일자리를 통해 가라앉은 내수경기와 지역경제를 부양시키겠다는 사업적 타당성도 견지하고 있다. 더불어 정부에서는 4대강 정비사업과 문화를 융합시킨‘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를 비롯, 다양한 구상으로 본 사업과 연계되는 세부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단순한 하천정비 사업이 아니라는 말.사실 올 연초 정부는 저탄소·친환경·자원절약 등 녹색성장전략에 고용 창출정책을 융합한 녹색뉴딜사업, 그‘9개 핵심사업’중‘4대강 정비사업’을 하나의 축으로 설정한 바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에서 내놓은 카드가 녹색성장이고, 그 가운데 4대강 정비사업이 9개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생태와 경제성
대규모 하상준설, 인위적인 갑문설치 등으로 점철되어진 한반도 대운하. 결국 국민의 60% 이상이 반대하기에 이른다. 우리 하천에 인위성이 담긴 터치를 배제하자는 국민적 요구이기도 하다. 4대강 정비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도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변질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 대상지에 대한 설계안은 얼마든지 설계변경으로 변형이 가능하고, 지금의 계획안에서 살짝만 비틀어도 물류수송이 가능한 대운하의 밑그림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대규모 토목공사만으로 만들어진 하천이 아닌, 자연친화적, 생태적 공간으로 정비되어진 하천의 모습을 바라고 있다.
플랜이 세워지고, 사업도 시작됐다
지난 12월 29일 생태하천 조성을 위한 착공식이 안동·나주지구에서 열렸다. 단순한 착공식이 아니라 4대강 정비사업이 가시화되었단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정부는 선도사업지구로 선정된 충주(한강), 대구·부산(낙동강), 연기(금강), 함평(영산강) 등 나머지 5개 지구의 사업도 조만간 착공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지난 5년여 동안 중단되었던 경인운하 사업도 홍수방지, 물류수송, 한강 르네상스와 연계 등을 목표로 다가오는 3월부터 재개하겠다는 국토해양부의 발표가 있었고, 4대강을 문화가 흐르는 강으로 만들겠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보고도 있었다. 사업은 이미 시작되었고, 사업의 옳고 그름보다 이제는 ‘어떻게’에 역량을 집중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자라나고 있다.
마치며
‘녹색 뉴딜정책’,‘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 토목적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심지어‘정비는 찬성하되 훼손은 반대한다’는 여론의 무게까지, 4대강 정비사업이 조류를 타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찬성 혹은 반대, 아니면 방법론, 그 어느 것이 되었든 미온적이어선 안된다. 일련의 내용은 그동안 우리가 정성스레 가꾸어온 한 그루의 사과나무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기본계획 수립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 의견을 제시하고, 견제를 함으로써 분야의 전문성을 강조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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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크로스장르 _ 건축제안展“경기도미술관@안산”
경기도미술관(관장 김홍희)은 오는 2월 15일까지 <크로스장르 _ 건축제안展“경기도미술관@안산”>을 개최한다. 경기도미술관 1층 로비에서 지난 12월 17일부터 개최되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미술과 인접한 타 장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기획 전시로, 현대미술과 건축의 새로운 관계를 도출하고자 한다. 전시 제목이 시사하듯이, 이번 프로젝트는 경기도미술관의 위치, 장소, 공간에 기초한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작업으로 펼쳐지게 되며, 총 4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참여작가는 건축사무소 이나바INABA의 설립자인 제프리 이나바(미국), 매스스터디스의 조민석(한국),���빅의 비야케 잉겔스(덴마크), 그리고 매드의 설립자인 마얀송(중국)이다. 참여 건축가(건축사무소)들은 안산시의 역사적, 문화적, 지형적 특성을 연구하여 향후 실행 가능한 네가지 마스터플랜을 도출하였다. 이 마스터플랜은 안산시를 위한 건축적 제안이며, 동시에 경기도미술관의 활성화 방안이자 미술관 내 전시를 위한 작품이 된다. 관람객들은 작품의 내재된 기능들을 찾아내어 스스로 재배치하고 이용하면서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 위치하는 건축 오브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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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개발(주) 이종문 대표이사
근래들어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영역간 교류와 통합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한 분야내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접 분야로의 진출이 많아지고 있으며, 조경계도 이러한 움직임에 예외가 아니어서 타 분야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분야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진출 분야가 한정적이고 실패 사례도 빈번하게 나타나는 바, 향후 이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정림개발(주)의 이종문 대표이사는 조경인들에게 모범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조경 시공현장에서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호텔업을 비롯한 서비스ㆍ교육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종문 대표이사를 만나 그의 철학과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호텔 경영선친이 1958년부터 가꾸어 온 3만2천여평의 숲에“도심 속 자연공간”을 표방하며 들어선 메이필드호텔은 2003년 10월 7일에 그랜드오픈을 하였으며, 그 출발부터 다른 호텔과는 차별화되었다. 대부분의 호텔들이 건물을 중심으로 조경이 부수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비해, 메이필드호텔은 50여년동안 가꾸어 온 숲속에 건물이 들어섰기 때문에, 다른 어느 곳보다도 녹지공간의 중요성이 높았으며, 더불어 지극히 자연스러운 숲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이 대표는 호텔을 설계시, 어느 곳에서든지 수목을 볼 수 있도록 하여 고객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마음으로 느낌으로써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또한 계절의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수목을 통해 도심 내에서 특별한 경관을 창출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이 모든 일들은 이종문 대표의 풍부한 실무 경험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후학들을 위한 교육원 설립한 분야에 먼저 진출했던 선배로서 후학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이 대표는 경영 이외에 후학들을 위한 교육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이중 하나로, 메이필드호텔내에 “메이필드스쿨”이라는 기관을 두어 조경실무와 호텔 서비스 등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주제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현장형 스튜디오 설계 실습을 통한 식재, 시설물의 시공, 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실무 중심의 교육을 현장에서 실행함으로써, 건설 근로자가 아닌 전문조경기술자를 양성하여 향후 조경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