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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스토스 ×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최전선을 이끌어온 스토스(Stoss)의 최근 작업들로 봄을 여는 3월호 특집을 꾸린다. 세기의 전환기,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녹색 장식술을 반복하며 낭만적 복고주의로 회귀하고 있던 조경과 도시설계에 교정의 방향을 제시했다. 21세기의 개막과 함께 문을 연 스토스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실천 가능성을 선보인 일련의 실험을 전개했다. 그리고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가시적 실체에 대한 물음표를 지워냈다. 회사 공식 명칭에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붙인 —즉, Stoss Landscape Urbanism— 유일한 설계사무소이기도 했다. 21세기 초, 도시의 탈산업 부지를 회복하고 재생하는 다수의 국제 설계공모를 통해 경관의 잠재력이 재발견됐고, 경관을 매개로 도시의 재구성을 기획하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부상했다. 제임스 코너와 함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지평을 연 찰스 왈드하임은 『경관이 만드는 도시(Landscape as Urbanism)』(한숲, 2018)에서 이 새로운 담론에 전문 실무를 처음 결합한 조경가로스토스의 설립자 크리스 리드(Chris Reed)를 꼽는다. 왈드하임은 리드의 초창기―21세기의 첫 10년― 작업들을 생태, 인프라스트럭처, 어바니즘을 병치하고 합성해 경관의 힘을 확장한 시도라고 해석한다. 왈드하임은 포틀랜드 테이버산 저수지(Mt. Tabor Reservoir)(2003), 밀워키 이리 스트리트 광장(Erie Street Plaza)(2006), 토론토 로어 돈 랜드(Lower Don Lands)(2007) 등 설계공모 작품들에 나타난 스토스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서 세 가지 특징을 포착한다. 첫째는 스토스가 모든 대상지와 설계 주제에서 물의 잠재력을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스토스의 설계는 물과 관련된 기존 인프라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새로운 수문학적 판(surface)은 다공성, 안정성, 다양한 생물군이 융합해 빚어내는 혼성의 장치로 작동한다. 두 번째 특징은 복잡한 비선형 기하학 구조를 이용해 만든 판이다. 이러한 판은 단순한 형태 요소를 반복시킨 복합적 시스템이며 다중의 공간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가변성을 지닌다. 세 번째 특징은 고유한 것과 외래의 것, 지역적인 것과 이국적인 것 사이의 긴장에 내재된 잠재력을 확장하는 설계다. 이번 특집에서 볼 수 있듯, 2024년의 스토스는 여전히 ‘경관의 힘’에 대한 강한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경관이 도시, 환경, 지역 사회, 일상생활에 긍정적 변화를 추동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는 스토스의 비전은, 삶의 질과 생물 다양성을 향상시키는 역동적 경관의 설계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경관의 형태보다 경관을 대하고 읽는 ‘태도’를 중심에 둔 스토스의 접근 방식은 이제 실험을 넘어 워터프런트, 그린 네트워크, 도시 숲, 공원, 광장 등 다양한 스케일의 장소에서 실현되고 있다. 스토스의 근작들을 통해 동시대 조경의 의제를 공유하고자 열 개의 주제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눠 지면을 구성했다. 공간의 성격 대신 프로젝트의 스케일에 따라 구분한 세 범주는 광역적 접근, 지구 단위 계획 단계, 상세와 실행이다. ‘광역적 접근’ 범주에 배치한 주제는 연안 침수 회복탄력성 전략, 형평성과 접근성을 갖춘 수변 계획, 생태 복원과 침식 저감 계획, 다양한 커뮤니티의 재연결이다. 다음으로 계획 스케일의 ‘지구 단위 계획 단계’는 주민 참여 디자인, 디자인과 정책의 상호작용, 역사‧문화적 맥락과 디자인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상세와 실행’ 범주에서는 도시 숲과 장소 만들기, 장소를 만드는 기능적 요소, 디자인 상세의 중요성에 대한 스토스의 실천을 소개한다.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스토스는 침수 워터프런트, 소외 지역, 방치된 구도심, 버려진 탈산업 부지 등 복잡하고 어려운 조건에 놓인 부지에서 경관의 힘을 계속 실험해왔다. 이번 지면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잠재력을 다시 환기하는, ‘경관이 만드는 도시’의 가능성을 다시 소환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특집 기획부터 구성, 원고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않은 스토스의 김준연 디렉터에게 감사드린다.
  • [풍경감각] 꽃 피는 집
    다세대주택이 가득한 골목에 ‘꽃 피는 집’이라고 남몰래 이름을 붙인 곳이 있다. 빨간 담벼락과 검은 쇠창살로 꼭꼭 단속해둔 이웃 건물 사이로 유일하게 울타리를 없앤 집이다. 햇살이 쏟아지는 마당에는 큼직한 화분이 가득하고, 계단과 난간에도 좌르륵 화분을 줄 세워 놓았다. 계절마다 팬지, 백일홍, 코스모스 따위가 빛났고, 스티로폼 박스에 뿌리를 박은 고추와 호박이 열매를 맺고, 고무 통에는 꽤 큰 라일락과 서양측백도 있다. 식물을 키우려고 담장을 허문 걸까. 작고 낡고 오래된 공간을 살뜰히 가꾸는 마음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곳이 재개발조합추진위원회 사무실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 집을 통째로 갈아엎는 꿈을 꾸면서도 마당에 씨앗을 심고 물을 줄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마당 한 쪽엔 승용차가 서 있는데 담장을 없애 단순히 편하게 주차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면 이전 집 주인이 남긴 흔적이었던 걸까. 며칠 전고도 제한 완화 축하 현수막이 골목 어귀에서 나풀거렸고, 꽃 피는 집에는 수선화 꽃봉오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 [제도가 만든 도시] 소유
    현대 도시에서 공간의 소유에는 영역성 같은 동물적 본성부터 도시 공간에서 창출되는 부가 가치가 귀속되는 사회적 장치까지, 인류 역사를 통해 누적된 여러 층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오랜 시간 주민들이 다니던 길을 막아 사유지임을 알리는 험악한 경고문을 붙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전세로 살던 집이 재개발되어도 소위 갭 투자를 한 집주인만 새 주택을 분양받는다. 공간 소유에 담긴 여러 의미는 다양한 법·제도에서 촘촘하게 규정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소유를 인정하는 권리인 재산권은 근대 자유주의 체제에서 기본권이자 불가침을 원칙으로 하는 천부 인권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한국도 재산권은 대다수 근대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합의한 가장 상위의 규율인 헌법에서 ‘국민의 권리’로서 보장된다. 그에 따라 민법에서 부동산(토지와 정착물)과 소유권의 내용(사용·수익·처분)을 규정한다. 또한, 한국 도시 공간은 물론 사실상 국토의 어느 한 조각도 ‘소유’의 밖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공간의 소유는 우리 사회에서 참으로 철저하게 작동하고 있는 체제다. 이렇게 보면 마치 재산권이 어떤 공간 정책과 제도도 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연재를 시작하며 언급했듯, 모든 공간 제도는 “공공복리”를 근거로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는 정당성을 가지며, 이는 재산권을 보장하는 헌법에서 함께 규정된다.(각주 1) 이런 근거로 우리의 공간 제도는 토지와 건물 등 공간의 소유에 대해 배타적으로 보장되는 사용·수익·처분의 권리 모두에 촘촘하게 개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시계획상 일반상업지역이라면 단독주택을 지을 수 없다. 지금은 서울시 열린송현 녹지광장이 된 옛 미 대사관 부지는 한때 민간 기업 소유로 한옥 호텔 등 관광 숙박 시설 사업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학교에 인접한 탓에 계획이 불허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즉, 소유권이 있어도 땅의 ‘사용’은 제한될 수 있다. 또,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올릴 때도 법이 정한 한계가 있으니 개인이 소유한 공간으로 ‘수익’을 내는 것에도 참견한다. 공공은 물론, 민간이 개발한 아파트를 팔 때도 무주택자에게, 혹은 신혼부부에게, 다둥이 가족에게 우선하여 팔라는 분양 제도는 ‘처분’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처럼 직접적 제한을 비롯해 차등적 세금 체계를 통해 소유권에 간접적 제한을 가하여 정책적 목적을 유도하는 제도는 수도 없이 많다. 도시 개발의 매개, 소유 개발 이익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각주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든 건물이든 소유권 자 체를 강제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기본권인 재 산권의 보장 원칙을 침해하는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대규모 시가지를 개발하고 혹은 고속도로 나 공항, 산업 단지 같은 인프라를 조성하는 등 광대한 토지가 필요한 경우, 조각조각 나뉜 개별 소유권을 인정하고 자발적 동의를 얻어 실행한다 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재산권 을 보장하는 사회에서는 도시 개발에 필요한 토 지와 건물의 소유권을 강제적으로 가져오는 것, 즉 ‘수용’을 하고 적정한 보상을 하는 방법을 채택한다.(각주 3) 물론 나라마다 수용이 정당화되는 범위 와 보상의 방식, 수준은 다를 것이다. 지난 반세기 엄청난 속도로 도시화를 이룬 한국은 도시 개발을 위해 개별 소유를 어떻게 다뤘 을까. 현재 한국의 도시 공간을 만든 대표적 개발 방식은 1980년대까지 주를 이룬 토지구획정리사업, 그리고 그 이후는 택지개발사업이다. 두 사업 모두 도시 용지로서 인프라가 전혀 없는 농 지와 자연 발생 촌락을 도로망과 공공시설 용지 를 갖추고 용도에 맞게 획지가 나뉜 시가지로 조 성하기 위한 제도지만, 소유권 측면에서는 완전 히 다른 구조로 진행됐다. 전자는 원 토지주의 소유권을 유지한 채 지자 체나 공사가 사업을 시행하고, 완료 후 원래 소유 한 토지 면적에 비례해 새로 조성한 도시 용지로 돌려받는 ‘환지’ 방식이다(그림 1). 다만 도로나 공 공시설 용지를 확보하고 사업 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체비지’를 떼어두어야 하므로 돌려받는 토 지의 면적은 원래보다 상당히 줄어들게 되는데, 이를 ‘감보율’이라고 한다. 심한 경우 절반까지 줄 어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도시 용지로서 인프라 를 갖춘 반듯한 땅의 총 가치는 기존 농지의 토 지 가치에 비해 훨씬 높고, 또 지가는 계속 오르 고 있었으니 토지주 입장에서는 손해가 아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일제강점기 영등포, 청량리 일대 개발에 처음 도입됐고,(각주 4)전후 도시 개 발을 위한 재원이 부족했던 시기에 서울을 비롯 한 대도시에서 광범위하게 채택됐다. 도시 개발 에 필요한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보상비가 들지 않으며, 앞서 설명한 바처럼 개발 이익이 토지주에 귀속되는 구조로 실행이 용이했다. 반대로 택지개발사업은 택지개발지구가 지정되면 사업을 시행하는 지자체나 공사가 해당 토지를 강제 수용하고 현재 토지 이용(농지)을 기준으로 원 토지주에게 보상한 후에 개발을 진행한다.(그림 3) 이렇게 조성된 공공택지는 원 토지주와 상관없는 주택 건설 사업자 등에게 소형 주택을 짓는 조건으로 원가 이하로 공급된다. 그리고 여기에 지어진 아파트는 분양 제도에 따라 무주택 자 등에게 우선 공급되는 흐름이다. 1980년대를 전후해 주된 도시 개발 수단이 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 택지개발사업으로 전환된 배경에는 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 도시개발에 아 무런 기여가 없는 소수의 원 토지주(종종 투기꾼)에 게 개발 이익이 집중되는 문제가 있다. 도시계획과 그에 따른 도시 개발이라는 공적 행위로 창출 된 이익 배분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유를 매개로 한 사업의 구조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유권을 가져옴으로써 원 토지주 를 개발 이익에서 배제한 결과, 택지개발사업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도시 개발을 시행한 지자체와 공사, 그리고 아파트를 건설한 사업자에게도 돌아가지만, 가장 큰 이익을 챙기는 것 은 시세보다 훨씬 낮은 분양가로 아파트를 최초로 분양받은 사람이다. 물론 원 토지주와 마찬가 지로 최초 분양자도 개발 이익을 가져갈 특별한 기여와 노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주 택난과 낮은 주택 소유율 하에서 주택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수요자에게 간다는 전제로 우 리 사회의 암묵적 동의를 얻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소유하는 소유권(Ownership Takes It All), 오래된 도시 공간의 공간 가치는 누가 가져 가는가 신도시 개발의 이익이 대부분 농지와 인프라를 갖춘 도시 용지의 가치 차이 그 자체에서 발생한 다면, 기성 시가지에서 공간 이익의 상당 부분은 오랜 시간 여러 도시 활동이 누적된 결과로 공간 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에서 온다. 그런데 누가 얼마큼 기성 도시 공간의 가치 상승에 기여했는가 를 가르기란 매우 어렵다. 수많은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으며, 여러 도시 정책과 공공 투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의 지가는 미미하지만 잠깐 그 동네 어학원을 다닌 사람들의 몫부터 시작해 대로를 따라 늘어선 고층 빌딩과 같은 민간의 투자와 서울 어느 곳보다 도 촘촘하게 놓인 6개 전철 노선 등이 반영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간 가치 상승의 이익은 소유권에 귀속된다.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은 기성 도시 공간에서 이러한 기여와 이익 배분의 어긋남을 잘 드러낸다.일반적으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은 독특한 문화 자원이 있는 지역이 명소화되면서 임대료가 높아지고, 기존 점유자들이 내몰리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디 음악의 근거지였던 홍대 앞이 그런 예다. 그러나 이제는 상대적으로 물리적 환경 이 낙후되어 임대료가 낮았던 지역에 특색 있는 소비―주로 식음― 공간이 하나둘 생겨나 그 자체 가 그 지역의 문화 자원이 되어 젠트리피케이션 을 촉발하는 현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구 시가지 저층 주거지, 영세 제조 업체나 도소매점 이 밀집한 지역 등 전통적인 소비 중심지와 거리 가 먼 입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의 과정에 서 공간 가치 상승의 기여자는 누구일까? 상업 공간은 주택에 비해 건물 자체의 노후도가 중요 하지 않으며 인테리어나 주방과 냉난방 설비 등 을 대개 건물주가 아닌 임차인이 영업 목적에 맞 게 따로 투자한다. SNS에 올릴 만한 소품과 메 뉴 또한 임차인의 능력이다. 이런 몇몇 가게가 유 명세를 타면 주변에 더 많은 카페와 음식점이 새 로 문을 열고, 이 지역을 소위 OO리단길로 명명 하며 더 많은 사람이 찾고 또 자발적인 홍보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듯, 건물주가 아닌 임차인과 이 지역을 찾는 사람들이 만든 공간 가 치는 임대료와 부동산 가격에 반영되어 ‘소유’만 이 그 이익을 가져갈 자격이 된다. 도시 공간에 새겨지는 소유 도시의 생김새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변하지만, 어떤 특성들은 도시 공간에 깊게 새겨져 상대적 으로 오래도록 유지된다. 스피로 코스토프는 오랜 도시 역사에서 산과 강, 해안선 같은 지형적 특성이 만든 특유의 도시 윤곽, 다음으로는 주요 가로망과 블록, 그리고 필지의 구획이 차례대로 쉽게 변하지 않는 도시 형태의 요소들이라고 설명한다. 소유는 여기서 상대적으로 쉽게 변하는 필지를 단위로 한다. 그런데 지난 반세기 한국의 도시 공간을 만들어 온 과정과 그에 결부된 제도를 보자면 오히려 반대가 아닐까 싶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산을 깎 아내고 바다를 메워 산업 단지를 건설하며 택지 를 조성하기 위해 강줄기 바꾸기를 서슴지 않았다. 도로를 새로 개설하거나 넓히기 위해 도시계 획선들은 수백 년에 걸쳐 자리 잡은 옛길을 무심 하게 가로질러 선 밖의 토지를 강제 수용했다. 숱 한 주택 재개발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엮인 저층 주거지를 하나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병합해왔다. 이 과격한 이력과 반대로 개별 필지 단위에서 제도의 개입은 오히려 소극적인데, 소유권을 침해할 만큼의 ‘공공복리’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뜻 이다. 부정형 필지를 반듯하게 펴거나 지나치게 작은 필지나 도로가 닿지 않는 맹지를 다른 필지와 합치는 소소한 조정조차 각 필지를 소유한 이 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 쉽지 않아 어렵다. 그렇 기 때문에 소유의 구획은 도시 공간에 의외로 오래도록 유지되어 깊게 새겨진다. 한번 하나의 소유로 묶인 공간은 그 이후의 변화에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 단위가 된다. ‘그림 5’는 2010년대 우후죽순 지어진 도시형생활주택 의 대지 형상이다. 한 필지의 크기가 작은 저층 주거지에서는 도시형생활주택을 짓기 위해서 보 통 둘 이상의 필지가 필요하다. 소유주가 각기 다른 연접한 필지들을 한번에 사들여 병합 개발 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서 한 집은 팔고 싶어 해도 다른 집은 그럴 의사가 없거나 매매 가격을 맞추기 어려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확보 가능한 연접 필지에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도 시형생활주택의 대지가 테트리스 조각 같은 기 형적인 형상이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작은 필지 들을 병합은 사실상 비가역적이다. 또한, 병합 개 발에 편입되지 않은(또는 못한) 작은 필지는 독자적 인 재건축이 어려워 장기간 노후한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결국 임의적인 병합에 의한 불합리한 대지 형상을 조정할 기회는 도시형생활주택이 재건축 시기를 맞게 될 몇 십 년 후가 될 것이다. 집합 소유라는 시한폭탄 작은 필지를 합쳐 도시형생활주택을 짓듯, 도시 에서 토지를 이용하는 단위, 즉 건축물의 대지는 대체로 계속 커지고 있다. 경제 발전으로 점점 더 큰 규모의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은 땅을 불리하게 만드는 여러 제도가 작용한 탓(각주 5)도 있다. 그러나 소유권 하나의 토지 면적은 심각하게 작아지고 있다. 커진 대지에 들어서는 건물 다수가 소유권이 여럿으로 나뉜 ‘집합 소유’ 이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도시형생활주택의 경우도 두 세 채의 단독주택 필지를 합쳐 하나의 도시형생활주택 대지를 이루지만, 통상 도시형생활주택 한 동에는 적어도 십여 세대, 많게는 수십 세대 가 있고 모두 개별적인 소유권이 있다. 실제 서울 시 강서구 화곡동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서 315채의 단독주택이 적어도 3,465세대의 도시 형생활주택으로 개발됐고, 그로 인해 소유권 하 나당 평균 토지 지분은 191.7m2에서 19.5m2로 극단적인 감소를 보였다. 집합 소유 공간에서 개별 소유권의 사용·수익·처분의 독립성은 세대 내 공간에 한정된 것이 다. 부수고 짓고 용도와 외관을 바꾸는 도시 공간의 내에서의 변화는 개별 소유 단위가 아닌 집합 소유 단위로 일어난 다. 그렇다면 30년 후 도시형생활주택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기껏해야 300~400㎡에 불과한 대지에 수십 세대, 거기에 임차인까지 수많은 이해 관계가 얽혀 그 공간의 변화를 꾀하기란 너무나 어려울 것이다. 다양한 크기의 필지와 골목길이 사라져 슈퍼 블록화되고 건축물의 크기가 커 지는 것만큼, 도시 공간의 소유 구조가 집합으로 바뀌는 것 또한 미래의 공간 수요를 수용할 유연성과 민첩성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소유 밖의 공간은 가능한가 이번 글에서는 소유가 우리 도시 공간에서 얼마나 공간적으로나 사회적 으로 견고하게 작동하는 전제 조건인지 살펴봤다. 우리 사회의 모든 제 도가 점점 더 촘촘해지고 있고 소유의 구획 밖에 남겨지는 공간은 사실 상 없어지고 있다. 그리고 개발 규모가 커질수록 일상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언제든 닫혀버릴 수 있는 사적 소유의 공공 공간(privately owned public space)이라는 모순적인 설명이 붙는 공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겨울밤 출출한 퇴근길의 포장마차나 광장에 설치된 소외된 자들의 절박한 외침이 그저 느슨한 시절의 낭만일 뿐, 소유권이 없이도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이상은 필요치 않게 된 것인가. 결국 현재 소유가 독점하는 배타적 권리의 선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인정해야 하지만, 그래도 항상 질문은 필요하다. **각주 정리 각주 1. ‘대한민국 헌법’ 제23조 1항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2항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3항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ㆍ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각주 2. 토지구획정리사업과 택지개발사업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 음 연구를 참고. 박배균, “Where Do Tigers Sleep at Night? The State's Role in Housing Policy in South Korea and Singapore”, Economic Geography 74, 1998, pp.272~288; 권영덕·이보경, 『서울, 거대도시로 성장하다』, 서울연구원, 2020. 각주 3. 소유권을 완전히 가져오는 수용이 아니라도 어떤 사용·수익·처분 에 대한 제한에는 수용과 마찬가지로 보상이 따른다. 보상이 따라 야 하는 제한과 그렇지 않은 제한의 구분은 당연히 근대적 재산권 개념과 도시계획의 정당성 정립에서 첨예한 논쟁과 갈등, 수많은 사례가 축적된 중요한 이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 김지 엽, 『도시를 만드는 법』,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22. 각주 4. 당시 일본에서는 영세 자영농의 반대로 토지구획정리사업의 실 행이 제한적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대규모로 시행된 건 역 설적으로 조선 자영농이 일본 지주의 소작농으로 전락했기 때문 이다. A. Sorensen, “Land Readjustment and Metropolitan Growth: an Examination of Suburban Land Development and Urban Sprawl in the Tokyo Metropolitan Area”, Progress in Planning 53, pp.217~330, 2000. 각주 5. 『환경과조경』 2023년 5월호, “제도, 크기를 정하다” 참고.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라이브스케이프
    플래시백 우연히 한 사진을 본다. 한 무리의 바위들 사이에서 나오는 물안개가 땅과 바위를 적시고 있다. 사람들은 바위에 걸터앉거나 기대어 눕기도 한다. 젖고 싶으면 더 들어가면 된다. 사람과 자연이 경계 없이 함께 비벼져 있는 풍경. 살아있는 자연의 현상과 그에 반응하는 사람의 어우러짐이었다. 피터 워커(Peter Walker)의 테너 파운틴(Tanner Fountain)이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수공간을 디자인하면 십중팔구는 수조의 윤곽을 그리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그것이 곡선이냐, 직선이냐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이곳은 물의 소리, 습기와 같이 살아있는 것이 주인공이다. 2002년 월드컵 응원의 열기가 뜨거운 여름, 미국에 도착해 조경을 공부하고 실무를 경험했다. 2008년, 예전에 다녔던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요청으로 귀국해 조경 디자인 부서를 맡았다. 자연은 살아있다 원 없이 많은 프로젝트를 하던 시절에도 테너 파운틴이 줄곧 떠올랐다. 이따금 살아있는 자연의 성질을 이용한 디자인을 시도했고 몇 개의 설계공모에서 당선됐지만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다만 ‘자연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다. 작은 틈에도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오랫동안 품은 마음이 있었기에 회사의 이름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2012년 여름 라이브스케이프를 열었다. 명쾌하고 생생하게 설계의 설은 혀 설舌이라는 설이 있다. 말이 앞선다는 뜻이다.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할 뿐 디자이너 본인이 먼저 느끼게 되면 안 된다. 명쾌하고 생생한 것을 추구한다. 첫 작업인 복실이를 만들 때부터 그랬다. 러버콘을 뒤집어 연결해 보니 우연히도 커다란 스피커 같은 모양이었다. ‘소리를 형상화 했어요’라고 말할 것 같았고, ‘정말 소리를 내는 장치로 만들어 버리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권병준(사운드 아티스트)과 함께 광화문 앞에 복실이 1호를 만들어 냈다. 이듬해 2014 캐나다 국제 가든 페스티벌에 초청된 복실이 2호에서는 아예 어쿠스틱 악기를 만들었다. 흙으로 작은 동산을 만들고 러버콘을 뒤집어 그 위에 심었다. 개중의 몇 개는 절반을 자른 후 북 판과 기다란 쇠 스프링을 붙였다. 조금씩 흔들리면서 생기는 진동이 쇠 스프링을 흔들고 그것은 다시 북 판을 진동하게 해 러버콘의 몸체를 울림통으로 사용하여 증폭된다. 사람이 앉거나 만지면 우우웅 하는 큰 바람 소리가 난다. 설명이 아닌 와우 설명보단 이해, 이해보다는 감탄을 원하며 콘셉트가 무엇이건 그것을 명료하게 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가령 한 프로젝트에서 클라이언트가 중정에 멋있는 나무 하나를 심어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도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에서 좋았던 순간을 떠올리도록 하고 싶다. 산속에서 땀 흘린 뒤 마시는 한 모금의 상쾌함. 이 경험을 가져오고 싶었다. 산이라면 발바닥의 감각이 다를 것이다. 최대한 넓고 큰 돌을 바닥에 깔고, 사람이 다녀야 하는 곳은 작은 돌들을 채워 넣고 그렇지 않은 곳은 풀로 채웠다. 이런 풍경이 내외부를 오가며 관통한다. 발은 분명 산에 있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자연과 사람이 한자리에 비벼진 풍경이다. 사무실 개소 후 초반부터 스스로 작아도 공사에 직접 관여가 가능한 현장을 만들고자 했다. 오랫동안 그림에 익숙해진 디자이너에게 현장의 피드백은 큰 도움이 된다. 한 프로젝트에서 건축주가 숲을 옮겨 온 것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건축주의 바람으로 만든 작은 정원에 최대한 거친 자연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주차장조차 평소에는 정원이 되도록 하고, 담장을 따라 설계된 트렌치를 레인 가든으로 변경해 건물과 자연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게 했다. 소재와 설계를 매칭하는 작업 역시도 큰 매력이다. 알펜시아의 레지던스를 위한 작업에서는 데크를 벌려 그 사이로 그라스를 식재했다. 골프장의 넓은 경관이 거실 바로 앞까지 닿아있는 듯한 풍경을 완성했다. ‘조’성한 ‘경’치였다. 과연 이게 다일까. 계속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장르를 넘나들며 미디어 아티스트와 함께 실험적 악기를 만들며 그들의 작업과 기술들을 접했다. 비슷한 시점에 공간 기획사와 많은 일을 했다. 자연은 여러 분야와 소통하기 좋은 소재다. 공급자로서만 생각하던 습관을 수요자의 관점으로 의식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 자연을 주제로 하되 다양한 장르를 연합하는 우리의 정체성은 이즈음부터 만들어졌다. 기획, 디자인 그리고 운영으로 이어지는 선형적 프로세스에서 하나의 전문 분야보다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이끈다. 몇 년 전부터 건축, 인테리어, 조경, 사이니지를 아우르는 디렉터의 포지션에서 수행하는 프로젝트가 생겨나고 있다. 융합을 통한 전체적인 접근을 도모하지만 그 중심은 언제나 자연인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니스프리 정밀 텃밭 이니스프리의 뉴욕 플래그십 공간 조성에 참여한 인연으로 아모레퍼시픽 사옥 2층 주스 매장의 작은 공간을 만들게 됐다. 디자인보다는 시스템 개발에 가까웠다. 착즙 주스를 파는 곳이다 보니 원재료가 자라는 모습을 전시하는 작은 텃밭을 만들고자 했다. 텃밭상자 위에 얇은 두께의 선반을 두고, 그 내부에 LED, 환기 팬, 관수 장치를 설치했다. 일반적인 스마트팜처럼 식물의 뿌리 쪽에서 수분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비가 내리듯 30분에 한 번씩 작은 물방울을 후드득 떨어뜨리고 싶었다. 물방울은 식물 성장 LED의 조명을 받아 반짝이며 이따금 수십 개의 작은 팬이 환기를 위해 바람이 분다.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를 맞는 야외를 보고 간다. 새로운 영역으로 한 걸음 내딛는 기회였고, 이를 발판으로 바이오필릭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들이 연결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낮에는 꽃집 밤에는 현상설계 직접 작은 공간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 연남동에 작은 꽃집을 열었다. 꽃집의 정체는 마당 한편의 작은 텃밭에서 키운 작물로 마치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에 나올법한 아우라의 샤브샤브 채소 모듬 같은 꽃다발을 만들어 파는 집이었다. 이름은 초식草式이라 지었다. 풀의 방법이란 뜻이다. 대박은커녕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디자이너와 운영자는 처절하게 다른 것이다. 그 대신 나의 디자인은 그리는 디자인에서 공감하는 디자인으로 변화하게 된다. 당시 참여했던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리모델링 국제지명초청 설계공모에서 내외부를 자연으로 특화하는 해법으로 수많은 산책로를 만들고 자연을 걷는 경험이 경기장 내부까지 계속 이어지게 계획했다. 더 낮게, 더 가까이, 더 천천히란 문장이 떠올랐다. 치열한 경쟁을 이제는 내려놓자는 의미였다. 용 한 마리가 힘 있게 배치도를 가로지르는 선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자신감은 흙에 손을 담그고 자연을 즐기며 지내본 시간이 바탕이 된 믿음이다. 공공 디자인 영역에서 서울시 디자인 정책과와 함께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 ‘마음풀(Maumpool)’을 진행했다. 취학 연령 인구들이 감소하면서 교실은 남아돈다. 아이들의 게임, 핸드폰 중독은 사회 문제로 발전한다. 유휴 교실을 활용해 다양한 감각으로 자연을 경험하는 콘텐츠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원예 활동을 염두에 두고 실제로 학교 상담 프로그램인 위클래스(Wee class)와 대학생들을 연결하는 운영위원회도 구성했다. 함께 용역을 수행한 커뮤니티 디자인 전문회사 마이너스플러스백(Miners+100)에서 참여형 워크숍을 주도했고 그 내용을 디자인에 반영하고자 했다. 안 쓰는 교실에 자연을 담는 것. 취지는 좋은데 궁금했다. 이렇게 하면 정말 힐링은 되는걸까. 워크숍 설문 조사를 보면 아이들의 반응은 ‘매우 강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로 드러난다. 이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취지로 하지만 사실 이용자는 그조차도 싫어한다. 작은 교실, 작은 책상에서 종일 버티고 있어야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학교의 억압적인 공간의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크리스티안 미쿤다(Christian Mikunda)가 주장하는 제3의 공간 이론처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무목적의 공간을 떠올렸다. 되도록 편하고 자연스럽게 자연을 경험하도록 했다. 운동장의 수돗가를 모티브로 한 대형 싱크대를 배치했다. 한쪽에는 물이 조금씩 떨어지는 고장난 수도를 만들었다. 물이 천천히 흘러가면서 수조에 머물면 모판의 흙이 젖고 상자의 온실 효과로 학기 초에 아이들과 함께 만든 씨드페이퍼에서 떼어낸 씨앗들이 발아한다. 자라면 창턱과 숲에 옮겨 심을 수 있다. 숲에는 직선으로 나가는 초음파에 음원을 태우는 초지향성 스피커라는 것을 설치했다. 새소리, 물소리 등 각각의 채널을 하나의 믹서에서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연결했다. 각도와 출력을 조정해 공간 안에서 초음파를 반사되게 하면 마치 새가 주위에서 지저귀는 듯하다. 이니스프리 프로젝트에서 활용한 빗물 관수 장치를 이번엔 교실 천장에 설치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사이를 걸으며 함께 다양한 자연의 현상과 감각을 즐길 수 있다. 마음풀은 이후에도 서울시와 5년 동안 5개의 공간을 만들며 지속 사업으로 고도화 돼 갔다.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받았으며 디자인 서울 비전 2.0의 추진 과제 중 하나로 선정됐다. 사람의 정원, 자연의 정원 IFLA 한국 유치를 기념하는 정원이었다. 손 닿지 않는 자연의 세계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작은 생명들, 그리고 이를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작업이었다. 지금의 시대, 땅과 자연을 생각하는 청지기로서의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봤다. 우리의 일은 살아있는 것들의 세계를 펼치는 일이다. 울타리 안에서 관조적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아닌, 울타리를 넘어 생명 창조의 가능성을 담고자 했다. 살아있는 모든 세계의 일원으로서, 지금 우리 시대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러한 가능성을 확장하는 일이다. 추상적인 ‘관념’을 실체적 ‘형상’으로 땅 위에 세우는 일은 디자이너의 본령이다. 대상지 안에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원을 그렸다. 원의 안쪽은 자연의 정원이며 사람은 들어가지 못한다. 바깥은 사람의 정원으로 설정했다. 울타리는 바위로 하고 둘레를 따라 안개를 뿜는 링을 만들었다.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울타리 너머는 그들이 주인이다. 우리가 숲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자연의 친구들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살아가는 수많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래되어 쓰러진 나무에서 피어나는 버섯, 숨어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우산이끼들, 애벌레가 겨울을 버티고 나온 자국 속에서 싹트는 작은 식물들, 사람의 접근이 제한된 상태에서 자연이 그들의 시간 속에서 깊어간다. 자연의 정원은 지형이 복잡하다. 오랫동안 그늘을 드리우는 곳, 물이 천천히 빠지는 습지, 종일 따스한 햇볕을 받는 곳도 있다.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다양한 환경을 만들었다. 안개구유라고 이름을 붙인 원형의 링을 경계에 두고 사람의 정원 한 편에는 유목을 식재했다. 번식을 위해 강제 가지치기를 당했던 나무와 작은 풀들에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면 안개구유가 작동하여 자연의 정원을 적신다. 안개를 자주 맞는 쓰러진 고목에는 어디선가 날아온 목이버섯이 자리를 잡는다. 작은 먹이를 찾는 벌레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손닿지 못하는 자연을 깊어지게 한다. 오래 전 달 표면의 ‘고요의 바다’라는 곳에 달 착륙선이 내려갈 때 사람들이 느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상상했었다. 우리가 만든 이 작은 세상도 지구인에게 중계되면 좋겠다. 동시에 평소에 관심을 두며 좋아했던 아티스트의 작업이 떠오른다. 즐겨보던 NASA의 유튜브도, 순식간의 일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의 서랍들을 모으고 정리하며 이야기를 더하는 것을 좋아한다. 조성한 후 시간이 꽤 지난 시점, 실제로 온갖 생물들이 들어오고 있다. 어느새 알에서 나온 아기청개구리. 번식기를 맞아 수초 사이를 오가는 왕잠자리. 작은 벌들과 초대하지 않은 물피. 강아지풀도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심은 여러 풀에 꽂혀 새롭게 호박벌. 사향제비나비도 가족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있는 DMZ처럼 우리의 한가운데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자연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디자이너가 자라는 곳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좋은 방법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디자이너로 하루씩 살다 보면 어느새 디자이너가 되어있을 것이다. 회사는 그렇게 디자이너가 자라는 곳이다. 우리의 일이란 게 자기 안의 우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다. 인사이트는 누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내면의 관점이기에 인사이트다.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을 찾는 것, 내 우물이 인사이트 가득한 초정리 암반수로 채워지게 하는 걸 지속하면 어느새 취미가 성과가 된다. 자신만의 인사이트로 채워진 우물을 젊은 시절부터 만들기 바라며 라이브 사이트라는 답사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좋은 곳을 다니며 사진을 보아선 알 수 없는, 직접 머물러 야만 알아챌 수 있는 맥락을 발견하길 바란다. 핀터레스트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모아 놓아도 그것들을 꿰뚫는 이야기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시대이므로. 디자인할 때는 빨리 날리듯 그려내면서 손과 머리가 함께 주거니받거니 찾아가는 과정을 중요시하기에 회의에서는 재미있는 날것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인절미를 얹는데 대신 어깨가 나란히 되도록 이빨을 맞추고…” 같은, 형태와 함께 이해되는 느낌적 느낌의 문장들이다. 디자인 과정에서 민주적이지 못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정보와 경험의 무게가 기울어져 있기에, 그러나 도대체 며느리도 모른다는 디자이너의 블랙박스의 내부, 찰나의 순간에 벌어지는 일들을 날것 그대로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을 중요시 한다. 라이브스케이프는 12년이 됐다. 바이오필릭 공간 기획, 조경설계, 건축설계, 공공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및 시공을 한다. 디자인연구소 OZLAB에서는 자연을 경험하는 무선 리모컨을 만든다. 많은 영역에 관심을 두며 일하지만 중심은 여전하다. 자연이다. “살아있는 것을 디자인합니다.” 그저 표현을 위한 수사가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는 어떤 길로 들어가고 있다. 라이브스케이프(LIVESCAPE)는 건축과 조경을 기반으로 한 융합 디자인을 추구한다. 아이디어 기획부터 손에 만져지는 실체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아우르며 작은 실내 정원부터 대규모 마스터플랜까지 다양한 스케일에서 환경과 예술이 결합하는 창의적 지점을 다룬다. 오랜 기간 축적한 전문성과 인접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자연을 담은 공간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새로운 도시의 정체성을 찾아
    지겹고 신비로운 아이콘, 옴스테드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3개월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이야기 만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털어놓지 못한 내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의 개인사부터 성장 과정, 공원과 도시에 대한 글까지 옴스테드의 열정은 논문 수 편이 나올 정도로 복잡하고 흥미롭다. 무엇보다 이 흥미로움을 돋우는 건 21세기―요즘 많이 쓰는 말로는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19세기 중반을 살았던 사람의 견해와 사고방식, 인생의 목적과 정체성이 신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칸트 미학의 용어를 적용하자면, 옴스테드의 삶과 정신이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기에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이라는 미적 대상의 조건을 충족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에피소드 1. 정체성 감사하게도 지난 몇 년간 ‘외국어를 얼추 잘하는 박사과정’으로 해외 조경가나 설계가의 통역을 맡거나 해외 학술대회 발표를 통해 중간자의 위치에서 한국을 조망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용산공원을 비롯한 이전 적지에 관한 구두 발표 후에 웬일로 질문이 나왔다. “공원 설계안을 설명하면서 정체성 이야기를 왜 그렇게 많이 하는 건가요?” “공원의 정체성이 굉장히 첨예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대체 왜죠?” “지금 전부 설명해 드리긴 힘들 것 같은데요. 세션 끝나고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19세기 말 시작된 한국의 식민지 역사와 그 이후 냉전과 한국 전쟁을 겪으며 생겨난 현대 한국인의 국가관과 사회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이 자 리에서 대답하려면 그냥 논문을 하나 새로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 아예 박사학위를 하나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영사전에 입력하면 identity라고 바로 나오는 정체성. 우리가 오픈스페이스를 설계하고 설명하며 쉽게 쓰고 있는 ‘공간 정체성’은 직역하면 spatial identity가 되는데, 이처럼 모호한 단어가 또 없다(자연이나 본질로 번역되는 nature, 경관부터 현황까지 모조리 아우르는 landscape 수준의 모호함이다). 다시 말해, 우리 안에서는 충분히 설명되므로 굳이 그 의미를 따지지 않고 외부에서 사용할 때는 어디서부터 그 의미를 설명할지 머리 아픈 단어란 거다. 우리는 왜 도시에서, 공간에서 정체성을 논하게 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가 의견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좌지우지되지 않는, 그 자체로 유기적 생명력을 지닌 도시를 삶과 일상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그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 자아실현의 차원에서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환경과조경431호(2024년 3월호)수록본 일부 *그림 출처 그림 2. Detroit Publishing Company 컬렉션, 미국 국회도서관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 [PRODUCT] 도시의 빗물을 머금은 지하형 빗물정원 ‘G-Hbox 침투저류모듈’을 활용한 물순환 회복
    언제부턴가 비는 무더위를 해소하는 반가운 존재가 아니라 일상을 위협하는 걱정거리로 인식되고 있다. 계절성, 국지성, 게릴라성 집중 호우에 꼼짝없이 당하는 여름을 보내는 횟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불투수층으로 가득한 도시에 전에 없던 강우에 대비할 수 있는 기후 적응 공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LID 기반의 조경 공간 특화를 통해 도시 물순환을 제고하는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는 도시에 맞춤형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하형 빗물정원을 선보이고 있다. 지하형 빗물정원은 건습지 형태의 기존 빗물 정원과 다르게 하부에 담수가 되는 저류 공간을 만들어 최소한의 면적에서 빗물 관리 효율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다. 도시 하부 특성을 고려해 제작된 ‘G-Hbox 침투저류모듈’로 유효한 공극을 확보해 면적 대비빗물 관리 용량을 최대로 높일 수 있다. 도로변 띠녹지와 가로수 주변 하부 공간은 훌륭한 지하형 빗물정원 조성지가 된다. 저류된 빗물이 상부 식생대에 저면 관수돼 생태적인 방식으로 재이용할 수 있다. 기존 도시 생태계를 구성하는 식생대와 유기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우수한 생태 공간을 조성한다. 식물을 통한 빗물의 증발산은 미기후 조절, 열섬 저감, 미세먼지 완화 등 쾌적하고 건강한 도시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지하형 빗물정원은 도시의 그린 네트워크를 건강하게 지속시키는 기술로서 빗물의 효과적인 발생원 관리, 분산형 관리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한 블루 네트워크 형성의 초석이 되고 있다. TEL. 02-587-9444 WEB. www.greeninfr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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